〈 407화 〉 스파이를 만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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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앙~ 하느은~♬”
빌린 호프집에서 동료들과 인사를 나눈 스텔라는, 지금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아내느라 죽을 지경이었다.
아델이 막내가 온 기념으로 한 곡 부르겠다며, 자신의 데뷔곡을 불렀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아델의 노래 실력이 빈말로라도 잘 부른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
높은 음역대로 음이탈을 내고 괴성을 내지르는데, 그 모습이 웃기고 귀여워서 미칠 것 같았다.
노래를 부르는 건 아델인데, 괜히 자신의 얼굴이 화끈해지기까지 한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표정관리를 한 스텔라는, 리듬에 맞춰 박수를 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박사도, 선배들도 전부 자신과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다.
비웃는 게 아니었다. 그녀들의 눈엔 아델을 향한 애정이 담겨있었다.
특히 실비아가 그랬다.
아델처럼 지구가 아닌 행성에서 온 외지인이라 그런지, 그녀에게 정을 많이 주고 있는 듯했다.
“못 부른다. 그치?”
옆에 있던 유리아의 귓속말.
흠칫한 스텔라가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에요... 잘 부르고 계세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 저게 잘 부르는 거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수를 해도 되겠는데?”
“.... 그게... 음 이탈이 조금 있긴 해요...”
“누가 봐도 음치인데... 착해가지고...”
개구쟁이 같은 말을 하는 유리아.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던 스텔라는 그냥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그러자 유리아가 낮은 웃음을 터뜨리더니 스텔라의 등을 툭툭 쳤다.
“기분 상했으면 미안해. 곤란하게 할 생각은 아니었어.”
“아뇨아뇨...!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노래를 끝낸 아델이 스텔라의 옆에 딱 붙어 앉았다.
힘겨운 듯 숨을 고르다가 물을 벌컥벌컥 들이켠 아델이 스텔라를 향해 물었다.
“어땠어? 처음 불러본 것치고는 나쁘지 않지?”
“아, 그...”
스텔라가 일순 머뭇거렸다.
뭐라고 대답해줘야 할지 전혀 모르겠어서였다.
솔직히 말하기엔 아델이 실망할까 두렵고,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자니 나중에 자신의 실력을 알아차린 아델이 뭐라고 할까봐 두렵다.
어찌할까 망설이던 스텔라는, 맞은편에 앉은 박사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았다.
뭐라고 말하든 괜찮다고 하는 듯한 얼굴.
그에 마음속이 편해지는 것을 느낀 스텔라가 대답했다.
“멋졌어요. 엄청.”
이건 빈말이 아니었다.
자신의 실력에 자신감을 갖고, 분위기를 띄우려 나선 아델을 향한 진심어린 칭찬이었다.
“그렇지?”
헤실헤실 웃으며 칭찬에 좋아라하던 아델.
그녀가 자신이 사용했던 마이크를 박사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마, 마마마막내가 왔으니 격려의 한마디를 해주셔요...”
순식간에 풀이 죽은 표정으로 변하고, 말까지 더듬는 걸 보니 박사를 무척이나 어려워하는 모양이었다.
물론 박사가 냉랭해 보이긴 하지만, 딱히 어렵지는 않은 것 같은데...
예전에 호되게 혼이 난 적이 있나? 괜히 궁금해진다.
“그럴까? 우리 아델... 엄청 착하네? 나도 챙겨주고.”
“제, 제가 착한 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는 사실이어요...”
쑥스러워하면서 할 말은 다 하는구나.
자신도 아델처럼 소신이 있었다면 좋겠다.
그리 생각한 스텔라는, 자리에서 일어난 박사가 아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마이크를 입으로 가져가자 귀를 쫑긋했다.
“얼마 전, 마지막 아이테르의 적합자인 스텔라 헤일리가 새로운 가족이 되었습니다.”
축사를 시작하는 박사.
스텔라의 코끝이 찡해졌다.
가족이라는 단어에서 나오는 울림이 너무 좋았던 것이다.
이제야 진정한 본부의 일원으로 소속된 기분이다.
세화, 유리아, 실비아, 아델, 그리고 박사와 지혁.
혈육이 아닌 이들이 친가족처럼 느껴진다.
박사의 말을 하염없이 경청하며 집중하던 스텔라는, 실비아가 자신의 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자 절로 몸에 힘을 뺐다.
마치 친언니가 보듬어주는 것 같은 포근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행복해...’
미국에서 갖은 고초를 겪고 살았다가, 보영의 오디션에 합격하고 한국으로 왔다.
그리고 이 한국에서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있었다.
가수의 꿈을 이뤘고, 소중한 동료들을 만났으며, 사랑하는 연인까지 생겼다.
지혁과 본부 사람들이 있는 이곳이 정말 좋다.
떠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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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너머로 누군가의 힘찬 고함소리가 들린다.
미간을 구긴 내가 물었다.
“거기 왜 이렇게 시끄러워?”
여기 화장실인데도 들려?
“들려. 혹시 동료끼리 싸우고 있는 거야?”
절대 그런 건 아니구... 그... 아델라인 선배님께서 술 드시더니 계속 노래만 불러.
아델의 짓이었구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본 적이 없어서, 이렇게나 못 부를 줄은 몰랐다.
콧노래를 흥얼거릴 땐 나름 정상적이었던 것 같은데... 나중에 내 앞에서도 한 번 불러보라 해야겠다.
“그랬구나. 재미있게 놀고 있어?”
응. 선배님들이랑 박사님 모두 날 잘 대해주셔. 오늘 나 늦게 들어가도 돼?
스텔라의 말투에선 감출 수 없는 기쁨이 묻어나오는 상태였다.
모임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보다.
덜렁아, 잘 생각해봐.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동료들과 가까운 곳에서 매일같이 어울리며 사는 생활,
상상만 해도 즐거운데, 그게 현실로 벌어지면 얼마나 행복하겠어?
나와의 오붓한 시간은 덤이고.
오늘 늦게까지 놀면서 잘 고민해보렴.
“그래도 되는데, 혼자 들어갈 생각은 하지 마.”
데려다주게? 오빠 안 자도 돼?
“괜찮으니까 계속 연락이나 해.”
알았어. 지금 뭐해? 아직도 보영이 언니 집에 있어?
나는 지금 미국 버지니아에 와있었다.
세계연합에서 만들고 있는 비밀조직에 대한 정보를 캐내보기 위해서였다.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으리라고 확신하지만, 박사와 마르셀라의 실력으로도 이 철저하게 숨겨진 조직에 대해서 알 수 없을 정도니 발품을 팔아볼 가치는 있다고 본다.
“아니. 보영이 누나랑 회의 잠깐 하고 집에 돌아와서, 지금은 편의점 가는 길이야.”
오빠 집? 오피스텔 거기?
“응.”
그렇구나...
저렇게 말을 하는 걸 보니 마음이 기울고 있는 모양이다.
여기서 알렉스가 마약을 한다는 걸 알아차리면 명분이 생기긴 한다.
질이 나쁜 친구들과 떨어뜨리고 동생을 감시, 갱생시킨다는 명목으로 말이다.
일단 사전작업은 다 쳐놓았으니, 나머지는 스텔라가 알아서 할 것이다.
그러니 잠자코 기다리고 있자. 그녀는 무조건 덫에 걸려들게 되어있다.
“얼른 들어가서 같이 놀아. 널 위한 모임인데 주인공이 빠지면 안 되지.”
1시간 뒤에 다시 전화할게. 아니면 톡할까?
“원하는 대로 해.”
알았어. 끊을게 오빠.
“그래.”
전화를 끊은 나는 노점에서 파는 핫도그를 하나 사고, 관광객인 척 거리를 돌아다녔다.
미국 국방부의 상징인 웅장한 펜타곤이 보인다.
전 국가의 세계연합을 통솔하다시피 하는 세계연합 미국지부는 이곳 깊숙한 곳에 있다.
보안이 철저한 여길 잠입할 생각을 하는 건 말도 안 되지만, 그건 인간들의 입장.
나에겐 해당되지 않는 얘기다.
‘보자...’
입 안에 핫도그를 집어넣고 우걱우걱 처먹던 나는,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며 여러 입구에서 펜타콘에 출입하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악의를 주입할만한 인간이 있나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여기 이러고 있자니 아델과 실비아가 처음 지구에 왔을 때가 생각난다.
박사를 떨어뜨리던 시절도 생각나고...
예전엔 그녀들에게 신임을 얻기 위해 별 개지랄을 다 하며 생 쇼를 했는데, 감회가 새롭다.
‘그냥 포탈을 탈까?’
펜타곤 화장실로 포탈을 타서, 화장실에 들어오는 인간에게 악의를 주입한다면 일이 수월해질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하며 자리를 옮겨 다니길 한참.
스텔라에게 온 전화와 톡을 받아주던 나는, 펜타곤 서쪽 입구에서 나오는 한 젊은 여자를 발견하고 눈에 이채를 띠었다.
빡세게 훈련을 받은 절도 있는 걸음걸이,
예의를 차리는 복장이되 움직이기에는 편한 신축성이 있는 정장, 그리고 무릎 밑을 덮는 롱코트까지 걸치고,
선글라스를 껴서 눈을 가리고 있음에도 감출 수 없는 아리따운 외모까지...
내가 바라는 인물상에 딱 부합하는 인간이다.
‘경호원인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도 사기업이 아니라, 국가에서 훈련을 받은 경호원.
오늘 비번인가? 저녁 시간대이니 퇴근을 하려는 건가?
아니면 저녁을 먹으려고 하는 건가?
일단은 이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그런 인간이니,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그리 생각한 나는 태연스럽게 여자의 뒤를 밟았다.
어둑해진 거리를 따라가고 있는데 인적이 점점 뜸해졌다.
사람들이 많았다가 갑자기 확 없어진 게 아니라, 주택가에 들어서면서 유동인구가 적어졌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눈치챘군.’
여자는 내가 미행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심지어 자신의 실력에 크나큰 자신감이 있는지, 혼자서 날 유인하고 있다.
티도 안 날 정도로 태연스럽게 행동하는구나.
한쪽 입꼬리를 올린 나는 잠자코 그녀의 유도에 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는 한 주택 입구에 있는 쓰레기봉투를 들고, 주택과 주택 사이의 골목으로 들어갔다.
언뜻 보기엔 자신의 집 쓰레기를 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건 날 제압하기 위한 유인책.
자신의 집도 아닌 것 같은데 대범하다.
아무런 생각이 없는 사람마냥 여자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간 나는,
우득!
내 팔 관절이 뒤로 확 꺾이면서 단단한 무언가로 결박되고,
등에서 둔탁한 충격이 일어나며 몸이 벽에 쿵 처박히자 제법 놀랐다.
아무리 힘을 뺐다지만 이렇게 쉽게 제압당하다니.
여자는 남녀간의 선천적인 힘의 차이를 극복하는 방법까지 잘 알고 있었다.
수갑은 또 언제 채웠대? 쓸 만한 소모품이 될 것 같다.
“소속?”
뒤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아리따운 음색.
내 뒤통수에서 서늘하고 묵직한 느낌이 이는 것으로 보아, 총을 겨누었음이 분명했다.
감정이 전혀 없어 보이는 목소리인데, 뭔가 꼴린다.
놀아줄까? 아니면 바로 악의를 집어넣을까?
둘 다 해야지.
“소속이라니요. 그쪽이 너무 제 취향이라서 연락처라도 물어보려고요.”
빠아악!
장난스레 저리 대답하니, 둔탁한 소리와 함께 뒤통수가 얼얼해졌다.
부실한 변명에다 당황해하는 기색도 없이 대답해서, 여자가 권총 그립으로 뒤통수를 후려갈긴 것이다.
그냥 기절시킨 다음 내게서 정보를 캐낼 심산인 것 같은데... 어쩌냐?
내 몸은 보기보단 튼튼하거든.
기절한 척 몸에 힘을 쫙 빼며 그대로 쓰러진 척한 나는, 여자가 내 몸에 손을 대려는 틈을 타 결박된 양손으로 그녀의 손을 붙잡고 위로 들어 올리면서 바닥에 넘어뜨렸다.
쿵!
“헉!”
놀란 여자가 황급히 무언가를 하려 했지만, 이미 그녀는 내 아래에 깔려 단단히 고정된 상태였다.
아무리 약한 마왕이라고는 해도 인간들과는 차원이 다르지.
넌 빠져나갈 수 없단다.
틱!
수갑과 수갑을 이은 쇠사슬을 간단하게 끊어낸 나는, 한손으로 여자의 양 손목을 잡아 고정시켰다.
이후 나머지 한손으로는 여자의 입을 완전히 막아버렸다.
“으읍! 읍!”
버둥거리는 그녀의 눈에 일순 공포의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저번에 보영과 누구였더라... 아델에게 정화되었던 연예인 지망생을 강제로 떨어뜨렸을 때, 그녀들이 보였던 눈빛과 비슷했다.
내가 그렇게 무섭나? 서운하게.
나는 그녀의 얼굴에 내 얼굴을 가까이 대고는 입을 쩍 벌렸다.
그러자 이빨로 상처를 내어놓았던 입 안의 환부에서, 검붉은 피가 주르륵 떨어지더니 여자의 온 얼굴을 적셨다.
그것이 여자의 눈과 코, 입으로 들어가자,
“읍... 으읍... 으흐으븝...”
어떻게든 내게서 벗어나려던 그녀의 몸에서 점점 힘이 빠졌다.
여자의 눈 초점이 점점 흐려지는 것을 보며, 나는 새하얀... 아니, 피로 덧칠되어 시뻘개진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이제 나만의 스파이가 되어서, 세계연합의 음모를 낱낱이 파헤쳐주렴.
좋은 성과를 얻으면 평소대로 살아갈 수 있게 해줄게.
특별히 마기까지 다 빼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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