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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406화 (406/471)

〈 406화 〉 집착 #3

* * *

“일은 잘 처리했어?”

외투를 벗어 의자에 걸치고 있는 내게로 다가온 보영이 답한다.

“네. 신곡 관련으로 꼭 상의할 게 있다고 주장했어요.”

“최승환은 뭐래?”

“처음에 조금 투덜거리긴 했는데, 그 이후엔 알겠다고 했습니다. 식사 준비할까요?”

“커피만 줄래?”

“네, 대표님.”

허벅지가 거의 다 드러나는 반바지를 입은 채로 선반에서 커피콩을 꺼내는 보영.

발뒤꿈치를 들어서인지 평소보다 다리가 길어 보인다.

그리고 스텔라와 비견될 만큼 하얀 오금이 성욕을 자극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마기로 떨어뜨렸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신전의 신도들처럼 세뇌였다면 지금보다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이젠 상관없지.’

마기를 감지할 수 있었던 아델이 내 권속이 된 이상은 딱히 걱정거린 없다.

다만 아델과 실비아 때 신탁을 내리며 적극적으로 개입하려했던 로사리오가 지금 가만히 있는 게 약간 거슬릴 뿐.

소파에 편한 자세로 앉아있으니, 보영이 직접 내린 커피를 가지고 와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곁으로 다가와 앉는 그녀.

그녀의 뽀얀 어깨선에 손을 올린 나는 태블릿을 켜며 지나가듯 말했다.

“불은 왜 하나만 켜고 있는 거야?”

“아... 그게... 암막커튼이랑 이것저것 설치하고 나니까 어두운 게 좋아져서요... 메인등 켤까요?”

“됐어. 나도 어두운 게 좋거든.”

“알겠습니다. 아, 저 아래로 내려갈까요?”

봉사를 하겠다는 뜻이었다.

피식한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됐어. 요즘 힘든 일은 없고?”

“활동을 쉬고 있는 참이라서... 딱히 없어요.”

“심심하지는 않아? 다시 활동 시작할래?”

“아뇨. 이제까지 열심히 달려온 터라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훨씬 좋아요.”

보영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건 오랜만이었다.

알겠다고 대답한 나는 박사가 보내준 자료들을 보며 시간을 때웠다.

자료는 세계연합에서 시행하고 있는 임상시험, 거기에 참여한 인원들의 신상정보였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꽤 다양한 인간들이 지원을 했다.

근데 남자는 왜 포함시켰는지 모르겠구나.

어차피 반응조차 안 할 텐데.

이들은 지금쯤 세계연합이 비밀리에 만들어놓은 베이스캠프에서 실험을 당하고 있겠지.

어떤 방식으로 실험하는지 궁금하지만, 세계연합이 거동을 조심하고 있었기에 거기까지는 알아내지 못한 상태였다.

‘성과 좀 내봐라.’

그래야 너희들이 연구한 자료를 쏙 빼먹지.

보영의 몸에서 나는 향긋한 냄새를 맡으며 태블릿을 넘기던 나는 눈을 반짝였다.

세계연합에서 비밀리에 새로운 부서를 결성하려고 한다는 대목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부서라...’

일반적인 부서는 절대 아니었다.

그랬다면 비밀리에 만들려고 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내가 생각하기로는 아이테르와 관련된 비밀조직 같은데...

이거 왠지 재미있어질 것 같은 예감이 팍팍 든다.

뭔지 알아보고 싶지만, 박사의 보고서엔 달랑 이 한 줄이 끝이었다.

아직 제대로 파악해보지 못했다는 뜻.

보안의 보안을 거듭하여 만든 부서일 테니 시간이 걸리는 것도 이해가 간다.

세계연합의 음모를 머릿속에 넣어둔 나는,

우웅­!

스텔라에게서 전화가 오자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일어났어?”

­응... 오빠 왜 나 안 깨웠어...?

졸음이 가득한 목소리다.

일어나자마자 전화를 했다는 방증이었다.

“많이 자라고 안 깨웠지. 얼른 일어나서 세수해.”

­알았어... 근데 방금 아델라인 선배님한테 문자 왔어. 오늘 선배님들이랑 박사님이랑 모이자고 하시는데... 1시간 뒤에 만나자고 하시네? 가도 돼?

“피곤하지 않아?”

­엄청 오래 자서 괜찮을 것 같아. 그리고 피곤하다 해도 참여해야 돼. 난 늦게 동료로 들어간 만큼 더 열심히 해야 되잖아.

“그래? 그럼 다녀와.”

­응. 1시간마다 전화할게.

얼핏 듣기론 남자친구가 걱정하지 않도록 하는 여자친구의 배려로 들렸다.

하지만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스텔라가 저런 말을 한 이유는, 날 감시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그녀는 내가 혹여나 한눈이라도 팔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

­지금 뭐해? 잠깐 만날 수 있어?

“나 지금 보영이 누나네 집에 있어.”

­.... 오빠가 왜 거기 있는데?

아주 잠깐의 침묵 이후, 취조하는 투로 질문을 던지는 스텔라.

애써 태연스레 말하고는 있었지만 불편해하는 기색이 섞여있다.

연기를 너무 못한다. 드라마나 영화에 캐스팅되면 작품이 망하겠구나.

“네 신곡이랑 관련해서 상의할 게 있어서.”

­내 신곡을 왜 오빠랑 보영이 언니가 상의해? 오빠 음악 하나도 모르잖아.

“어떤 컨셉인지 체크해보려는 거야. 매니저니까 알긴 해야지.”

­그건 맞지만...

덜렁아. 네 소중한 스승에게까지 질투를 하면 어떡하니.

하기사 네 입장에서야 나와 보영은 고등학생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한 선후배겠지만...

나가도 너무 나갔다.

“지금 씻을 거야?”

­응...

“씻고 다시 전화해.”

­알았어... 지금 옆에 보영이 언니 없지?

아니, 있어.

“없어. 그러니까 편하게 대화하는 거지. 얼른 씻어. 나도 출발해야겠다.”

­왜? 또 어디가려고?

“너 데려다주려고.”

­진짜? 오빠 보영이 언니랑 컨셉회의 한다며?

확 밝아진 목소리.

매번 느끼는 거지만 스텔라는 감정이 너무 잘 드러난다.

“금방 다녀오면 돼.”

­아, 알았어. 나 바로 씻으러 갈게. 끊어 오빠.

수화기 너머에서 분주한 소리가 났다.

급하게 샤워를 하려는 듯한데... 하는 짓이 너무 앙증맞아서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전화를 끊은 나는 기지개를 켜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갔다 올 테니까 쉬고 있어.”

“네, 대표님.”

**

덜컥.

문을 열자마자 후다닥 조수석으로 올라오는 스텔라.

내가 건네주는 담요를 자신의 허벅지 위에 올려놓은 그녀가 말했다.

“이거 보영이 언니 차 아니야?”

“맞아. 밴 끌고 가면 연예인 차인 줄 알고 사람들이 쳐다볼 거야. 그래서 이걸로 갖고 왔어.”

“아... 그래? 나간다고 하니까 보영이 언니가 뭐래?”

“별 말 없었어.”

“진짜 별 말 없으셨어...?”

“뭐가 그렇게 미심쩍은 건데? 지금 나 의심하는 거야?”

“의, 의심이라니...! 말 함부로 하지 마...!”

격앙된 반응을 보아하니 딱 맞췄구만 뭘.

우리 덜렁이는 솔직하지 못해서 탈이에요.

차를 출발시킨 나는, 성을 내려고 하는 스텔라에게 지나가듯 말했다.

“너 그냥 우리 오피스텔로 이사하면 안 되냐?”

“오빠는 그게 문제라니까... 내가 어제도 그랬던 걸로 아는... 뭐?”

재잘재잘 떠들다가 당혹스러워하는 스텔라.

이어서 기나긴 침묵이 뜨거워지려는 분위기를 팍 식혔다.

전방을 주시하고 있긴 했지만, 나는 스텔라가 날 빤히 바라보는 것을 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텔라가 더듬거리며 침묵을 깼다.

“그... 그게... 나도 옮기고는 싶은데... 알렉스가 걱정돼서... 무턱대고 옮겼다가 이상한 행동이라도 하면 어떻게 해?”

그 이상한 행동의 종류가 어떤 건데?

만약 성욕과 관련된 일이라면 알렉스는 고자가 될 거야.

그게 아니라면 뭐... 받아주면서 업보 스택을 쌓아가는 거지.

“알렉스는 기존 집에 자취하라고 두고, 너만 옮겨오면 되잖아.”

“아, 알렉스를 혼자 두라고...?”

“알렉스도 성인인데 독립할 때도 됐지.”

“오빠 미쳤어...? 걔 혼자 두면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른단 말이야...”

“정 불안하면 같이 옮겨. 네가 옆에서 잘 지켜보면 되잖아. 나 너랑 같이 살고 싶어.”

“나, 나랑 같이...?”

스텔라의 눈이 크게 뜨였다.

동거를 이야기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모양.

신호에 걸려 브레이크를 밟은 나는, 스텔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렇게 권유를 해도 스텔라는 이사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마음은 동하지만, 고작 하룻밤만 보낸 것 가지고 너무 성급한 결정을 내리는 건 아닐까 우려스러울 테지.

하지만 괜찮다. 스텔라는 자연스레 나와 동거하고 싶어질 테니까.

나는 그녀가 무어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

“농담이야.”

“.... 농담...?”

“진담 반, 농담 반. 그냥 희망사항이었을 뿐이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는 마.”

“.....”

“약속장소가 어디라고 했지?”

“아, 그... 한대거리... 잠깐만... 내가 내비 찍을게...”

한대거리라... 세화와 유리아를 공략할 때 자주 갔던 곳이다.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나는구나.

복잡해진 심경을 정리하느라 말이 없어진 그녀에게 모과차를 건네준 나는, 묵묵히 운전을 하며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분주하군.’

예전에서 항상 붐볐던 장소라 이럴 것 같았다.

호프집 전체를 대여했다고는 하지만 스텔라를 알아보는 인간들이 분명히 있을 텐데, 나중에 다 처리해놔야지.

죽이는 것도 일이다, 일.

스텔라의 머리에 모자를 씌워준 나는, 후드까지 그 위에 덮어놓고 말했다.

“답답하겠지만 안에 들어갈 때까지만이라도 써.”

“알았어... 나 지금 나가?”

“잠깐만...”

“왜? 사람 없을 때까지 기다리려구?”

“아니. 저기 봐봐.”

조수석 창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니, 스텔라가 고개를 돌렸다.

이후 물개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저 멀리서 아델이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델라인 선배님이다! 오빠, 나 갈게!”

당장 나가고 싶어선 엉덩이를 달싹거리는 스텔라를 보니 뭔가 서운하다.

목소리 톤마저 확 올라갔구나.

“마스크 써.”

“응.”

용돈을 받기 직전 얌전해진 꼬마마냥 냅다 마스크를 쓰고 무릎 위에 손을 올리는 스텔라.

어서 빨리 허락해달라는 듯 날 노려보고 있다.

혀를 끌끌 찬 내가 입술을 내밀자, 그녀가 흐힛 하는 요상한 추임새를 넣더니 쪽 소리가 나도록 키스를 해왔다.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인 내가 말했다.

“기다려. 아델한테 전화할게.”

“이렇게까지 해야 돼?”

“어. 해야 돼. 네가 연예인이라는 자각을 좀 가져.”

단호한 목소리에 움찔한 스텔라의 어깨가 축 쳐졌다.

“알았어...”

이런 반응까지 보일 정도면 동료들과 빨리 만나고 싶었나보다.

실소를 터뜨린 나는 아델에게 전화해, 눈앞에 보이는 차로 오라고 했다.

박시한 후드티를 입고 총총걸음으로 다가오는 아델.

낯선 사람을 본 강아지처럼 차 주변을 배회하던 그녀는, 스텔라가 조수석 문을 살짝 열자 환한 미소를 지었다.

“막내야!”

“선배님, 안녕하세요!”

힘차게 인사를 한 스텔라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아델의 몸을 부서져라 껴안았다.

아델 또한 마찬가지. 스텔라의 허리를 꼭 껴안고 재회의 기쁨을 누렸다.

무슨 이산가족 상봉도 아니고... 어이가 없다.

“아델,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그제야 포옹을 푼 아델이 헤실헤실 웃으며 답했다.

“알겠어요. 모임은 아주아주 늦게 끝날 예정이니, 지혁 씨는 집으로 돌아가 외로운 시간을 보내도록 하셔요.”

“그러겠습니다. 끝날 때가 되면 연락 한 통 주세요.”

“그러지요. 저는 사랑하는 막내를 데리고 가보겠어요.”

아델은 곧 스텔라의 엉덩이를 톡톡 두드리며, 그녀와 함께 차에서 멀어졌다.

우리 덜렁이... 마음껏 놀아라.

결투에 대비해 기력을 많이 보충했으면 좋겠구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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