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5화 〉 집착 #2
* * *
하나의 드럼 세탁기만 돌아가고 있는 빨래방 안.
마련된 의자에 스텔라와 함께 앉아있던 나는, 그녀가 모자를 벗으려고 하자 조용히 말했다.
“안 돼.”
“왜... 나 답답해...”
“감시카메라 있어.”
“모자 벗고 위만 쳐다보지 않으면 되잖아.”
“그래도 네 얼굴은 잘 나올 걸? 정 벗고 싶으면 마스크 써.”
“.... 어이없어... 설마 빨래방 주인이 날 알아보고, 나쁜 사람이라서 유출할 것 같아? 그거 범죄야. 그리고 지금 새벽이라서 주무시고 계실 텐데?”
어지간히 벗고 싶었나보다.
강하게 주장을 하는 걸 보면 말이다.
결국 나는 그녀의 투정을 받아주기로 했다.
“그럼 그렇게 해. 대신 손님 오면 다시 바로 써.”
그에 자신의 모자를 확 벗어던진 스텔라가 내게 따지고 들었다.
“왜 아까부터 날 어린이 취급해?”
“내가 언제?”
“화, 화장실에서도 막 유치원 선생님 같은 목소리로 다리... 벌리라고...”
말을 하는 도중 빨개지는 얼굴.
그때 일을 적나라하게 말하자니 무척 창피한 모양이었다.
태연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자, 스텔라가 계속 말을 이었다.
“지금도... 계속 뭐 하지 말라고 하고...”
“그건 널 알아보는 사람이 많으니까, 새벽시간에 빨래방에 단둘이 있는 걸 보면 괜한 오해를 받아서 이미지에 타격이 갈까봐 그런 거고. 너도 잘 알잖아.”
“.... 난 상관없어.”
그렇게 말해줘서 기쁘단다.
“인기가수가 스캔들 때문에 나락가는 일이 수두룩한데 상관이 없긴 뭐가 상관없어. 그리고 아까 다리 벌릴 땐 좋아라하더니, 왜 이제 와서 툴툴대는 거야?”
“내, 내가 언제 좋아라했는데! 오빠가 뭘 생각하든 그건 오빠 마음인데, 그게 정답이라는 듯이 말하지 마!”
찔려서 화내기는... 쯔쯔...
나는 진중한 얼굴로 스텔라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해.”
“.... 아니야... 내가 미안해...”
버럭 했다가 지금은 축 쳐지는 스텔라.
오늘따라 감정기복이 장난이 아니다.
큼지막한 눈은 피로로 인해 반쯤 감겨있다.
그녀의 어깨를 감싸 가슴팍으로 당겨온 내가 말했다.
“한숨 자. 졸려 보여.”
“안 졸린데...”
나른한 하품을 하고 있으면서 안 졸리긴 무슨.
피식한 나는 그녀를 앞으로 안아들고 엉덩이에 팔을 받쳤다.
대놓고 어린아이를 대하는 듯한 취급.
그럼에도 스텔라는 방금마냥 투덜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 어깨에 턱을 괴고는 허리를 감싼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귀엽긴.’
내가 이런 식으로 대해주는 걸 좋아라한다는 방증.
이 상태에서 그녀의 등을 일정한 리듬으로 톡톡 두드려주니, 스텔라가 온몸에 힘을 빼더니 잘 준비를 했다.
“오빠...”
“왜.”
“나 오늘 스케줄 쉬어도 돼...?”
“열심히 하겠다며. 라디오에서 그랬잖아.”
“내일부터... 열심히 할게... 나 진짜 힘들어...”
오늘 겪었던 일들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려면, 꿈을 뒷전에 두고 쉴 필요가 있긴 하다.
최승환이 싫어하겠지만, 보영이한테 이야기를 해놓는다면 대놓고 불만을 표출하진 못할 테지.
“알았어. 한숨 자.”
대답을 듣고 배시시 웃은 스텔라는 곧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뱉었다.
거의 기절하듯 잠들었다. 어지간히 피곤했던 모양.
일단 푹 자게 놔두고, 오늘 저녁쯤 아델이나 세화를 붙여놔야겠다.
이참에 유리아와 실비아, 그리고 박사까지 포함해서 여자들끼리 모임을 가지라고 해야지.
알렉스 같은 철부지 동생과 있는 것보다, 그녀들과 함께하는 것이 마음이 더 편하다고 생각할 수 있게끔 만들어야한다.
그 이후엔 상황을 봐서 마물을 한 마리 내보내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슬슬 두 번째 결투를 할 때도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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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신의 집을 도둑마냥 살금살금 걸어야하는지...
피곤해 죽겠는데 알렉스까지 신경을 쓰느라 미치겠다.
그냥 밴에서 잔다고 할 걸... 괜히 부끄러워져선 돌아가겠다고 했나보다.
뽀송뽀송해진 이불의 감촉이 퍽 좋다.
갓 건조한 터라 따뜻하기까지 한 상태.
그 안으로 손을 넣으니 지혁이 입었던 티셔츠의 감촉이 느껴진다.
‘어...?’
이게 왜 여기 있을까?
아마 건조기에서 옷을 빼다가 섞였으리라.
뭔가 느낌이 신선하다. 자신의 옷과 지혁의 옷이 함께 있다는 게.
마치 커플끼리 동거하는 상황 같아서, 스텔라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상념은 여기까지만 하고 어두컴컴한 거실을 지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던 스텔라는,
덜컥!
문이 열리면서 알렉스가 눈을 비비며 나오자 정말 까무러칠 정도로 놀라고야 말았다.
“꺄아아아악!!”
“으아아악!! 무, 뭐야!? 뭔데!”
누나의 비명을 듣고 마주 놀란 알렉스.
빠르게 거실 불을 켠 그는, 바닥에 이불과 커버를 널브러뜨린 채 주저앉아있는 자신의 누나를 바라보며 황당해했다.
“뭐하냐 지금...?”
“너, 너야말로 뭐해...?”
“뭐하긴... 지금 여섯 시 반이야.”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다는 말인가?
스케줄을 빼길 정말 다행이었다.
그리 생각한 스텔라가 끙끙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새벽까지 게임한 거 아니었어? 근데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난 거야?”
“그냥 눈이 뜨였어. 근데 누나, 내가 새벽까지 게임한 건 어떻게 알았는데? 다리는 왜 이렇게 떨어?”
속으로 찔끔한 스텔라가 황급히 핑계거리를 늘어놓았다.
“새벽에 잠깐 화장실 가고 싶어서 깼는데 키보드 소리가 들리더라고... 그래서 알았지. 다, 다리가 떨리는 건 놀라서...”
“그래...? 어디 갔다 와?”
“빨래방... 이불이랑 베개랑... 커버랑 전부 빨 때 돼서...”
“내 옷도 같이 빨았어?”
“네 옷...?”
“저거 내 옷 아니야?”
알렉스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엔 지혁의 티셔츠가 있었다.
잔뜩 긴장한 스텔라가 애써 태연스레 대답했다.
“아닌데? 이거 내가 잘 때 입는 옷이야.”
“그러냐? 알았어.”
어깨를 으쓱인 알렉스는 곧 냉장고 문을 열고 물을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하마터면 알렉스에게 들킬 뻔했다.
다행이었다. 어제 지혁이 입었던 게 흔해빠진 무지 흰색 티셔츠라서.
옷가지와 이불을 가지고 방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은 스텔라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하아...”
절로 거칠어지는 숨.
침을 꼴깍 삼킨 스텔라는 자신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기이한 감각이 일었기 때문이다.
오싹하다고 해야 할까? 알 수 없는 흥분감이 전신으로 퍼졌다.
“.....”
다리가 아직까지 후들후들 떨리고 있다.
아랫입술을 잘근 깨문 스텔라는 시트에 커버를 깔고 누웠다.
이불을 덮으니 무척 따뜻했다.
아까부터 억지로 참아왔던 졸음이 팍 쏟아진다.
‘얼른 자자...’
그러고 보니 지혁이 그 이상한 냄새에 대해서 알렉스에게 물어보라고 했는데...
모르겠다. 일단 자고 일어나서 생각하자.
**
오랜만에 들른 임시신전은 분주했다.
신도들이 뭘 준비하느라 바쁜 게 아니라, 뽈뽈 돌아다니며 세화에게 내부를 소개시켜주는 아델 때문이었다.
“이곳은 목욕탕이야. 원래는 지혁 씨와 나, 그리고 목욕시중을 드는 신도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인데... 너두 여기 오게 해줄게.”
“정말? 나만 특별대우해주는 거야?”
“그럼...!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데에... 그러니 고마워하도록 해.”
“어쩌지? 난 유리아 언니랑 실비아 언니도 잘 챙겨주는 아델이 좋은데...”
“그, 그래...? 좋아. 그럼 두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씩 출입허가를 내어줄게.”
“일주일씩이나?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으음... 그런가아? 그러면 사흘에 한 번으로 바꾸면 어때...?”
목욕탕 출입이 무슨 중대한 문제인 양 대화를 하는 두 사람이 어이가 없으면서도 웃기다.
아델의 수정안을 들은 세화는 다소 과장된 리액션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동생을 챙기듯 그녀를 꽉 안아주었다.
세화가 아델을 조련하는 법을 잘 알고 있구나.
숨이 막힌다며 버둥거리던 아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세화의 허리를 꼭 껴안고는 포옹을 즐겼다.
푸히히 하며 작게 실소를 터뜨리기까지 하는 아델.
세화의 품 안이 포근한가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은 나는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여기서 뭐하고 있어?”
그에 세화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날 돌아보았다.
“아델이 네가 내준 임무를 잘 수행했다면서 자랑하더라. 그래서 따라와 봤어.”
“어때?”
“나름 괜찮다고 생각해. 아직 신도들이 얼마 없는 게 흠이긴 하지만, 세계연합에서 복제한 아이테르를 연구할 때까지는 시간이 있잖아. 그때까지 차차 늘려나가면 될 테니까 걱정은 없어.”
세화는 다른 세계에서나 볼 법한 하늘하늘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저번에 아델이 신전에서 입었던, 특별한 지위를 상징하는 복장과 비슷한 디자인이었다.
내 눈길을 눈치챈 세화가 다소 어색한 투로 말을 이었다.
“아델이 입으라고 해서... 이걸 꼭 입어야 신전에 출입이 된대. 여기 규칙이래.”
아델이 종교놀음에 푹 빠져버렸구나.
나처럼.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 아델이 총총걸음으로 다가오더니 물었다.
“지혁 씨, 새로운 신도들은 보셨나요?”
“먼발치에서 기존 신도들의 도움으로 옷을 갈아입는 여자들의 모습을 봤습니다. 두 명이더군요.”
“그래요. 제가 직접 선별하여 고른 예쁜 물건들이지요. 이제는 저희 신도가 되었으니 잘 대해주셔요. 한 명은 치어리더, 한 명은 경찰이에요.”
치어리더와 경찰이라...
정신적, 재정적인 어려움에 빠진 인간들이 직업을 가리지 않고 있어서 좋구나.
전자는 여초직장에서 일을 하는 만큼 포교에 도움이 될 테고,
후자는 마르셀라가 하고 있는 일을 덜어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세화의 말마따나 현재의 구원진리교엔 신도들이 별로 없다.
하지만 괜찮다.
다양한 직종에 포진한 그녀들이 다른 인간들을 포섭하면, 그 포섭된 인간들이 또 다른 인간을 포섭하고...
일정한 숫자에만 도달하면 그 이후부터는 신도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거다.
내가 신의 힘을 얻는 시간 또한 신도들이 느는 시간과 비례해서 짧아질 테지.
간단하게 미래의 청사진을 그린 내가 세화에게 말했다.
“오늘 저녁에 스텔라랑 모임 좀 가져줘. 유리아랑 실비아, 그리고 누나까지 다 포함해서.”
“알았어.”
“응. 집착이 한창 심할 때니, 나에 대한 이야기는 먼저 꺼내지 마.”
세화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내가 스텔라와 무엇을 하였는지 대번에 꿰뚫은 것이다.
의미심장한 눈빛을 한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녀를 향해 마주 웃어준 나는 아델을 불렀다.
“그리고 아델.”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자 기대감으로 번들거리는 눈을 한 아델이 답했다.
“제가 또 나서야할 일이 있나보군요. 막내와 관련된 일이 분명하겠지요?”
“맞습니다.”
“흔쾌히 수락하겠어요. 제가 무엇을 하면 되지요?”
“아델은 세화와 함께 스텔라가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니만큼, 옆에서 잘 케어해주세요.”
“막중한 임무군요. 맡겨주셔요.”
콧대를 세우는 아델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나는 세화와 눈을 마주쳤다.
신난 아델이 선을 넘는 행동을 할 것 같으면 사전에 차단해줬으면 하는 바람.
이런 내 마음을 읽어낸 세화가 걱정 말라는 듯 방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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