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3화 〉 키워서 잡아먹기 #2
* * *
@@
‘내가 미쳐...!’
온수에 몸을 맡긴 스텔라의 생각이었다.
또 젖어버렸다. 심지어 야외에서.
지혁과 몸을 부대끼기만 하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데... 돌아가실 수준이다.
슬쩍 옆을 보니 빤 속옷이 수건걸이에 걸려있었다.
하루에 몇 번이나 갈아입어야 하는지... 이러다가 속옷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다.
힘차게 뿜어져 나오는 따뜻한 물에 얼굴을 가져다댄 스텔라는,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 손을 가져갔다.
“하아...”
질질 샌다고 해도 무방했던 애액이 물과 섞여 씻겨 내려간다.
점성이 묻어있는 속살. 찔걱거리는 감촉과 후끈한 온기가 불쾌하면서도 야릇하다.
절로 숨이 가빠져오면서 눈앞에 지혁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고개를 마구 털어냄으로서 정신을 차린 스텔라는 몸을 깨끗이 씻었다.
이후 몸을 잘 닦아내고 박시한 티셔츠와 츄리닝 바지를 입었다.
예전엔 신경 쓰지 않았는데,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건 꽤나 불편했다.
알렉스만 없었다면 알몸으로 후련하게 뛰쳐나가 침대에 털썩 누웠을 텐데, 뭔가 아쉽다.
끼익...
조심스레 문을 연 스텔라는 굳게 닫혀있는 알렉스의 방 문을 보고 세탁실로 향했다.
지혁이 말했던 그 냄새를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아무렇게나 널브러져있는 빨래.
그 안에서 알렉스가 오늘 입었던 옷을 찾아낸 스텔라가 코를 킁킁거렸다.
‘안 나는 것 같은데...’
자신이 둔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딱히 거슬릴만한 냄새는 맡을 수 없었다.
방향제에서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하지만 지혁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었거니와, 자신도 그 냄새를 확실하게 맡았었는데...
쪼그려 앉아 알렉스의 옷들을 뒤적거리던 스텔라는, 그냥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은 이런 것에 신경을 쓰는 것보단 지혁을 생각하는 게 훨씬 나았다.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 손을 깨끗이 씻은 스텔라가 침대에 털썩 누워 눈을 끔벅였다.
머리를 제대로 말리지 않아 베개가 젖어온다.
마치 자신의 아래처럼...
“아 진짜...!”
자꾸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정말 싫다.
내일은 혼자 훈련장소로 나가야겠다.
그를 만나면 아래가 또 젖어버릴 게 분명하니까.
이쯤 되면 자신은 정말 변태가 아닐까?
여태 숨겨져 있었던 성욕이 깨어난 기분이다.
언젠가 지혁과 관계를 가지게 될 텐데, 그땐 어떻게 될지 감히 상상조차 못하겠다.
누나! 나 밥!
방 밖에서 알렉스의 철없는 외침이 들려온다.
여태까지 안 먹고 뭐한 거람... 그냥 라면이라도 끓여서 먹으면 되지...
차려주고 싶지만 오늘은 정말 피곤해서 안 되겠다.
그리 생각한 스텔라가 소리쳤다.
“나 잘 거야! 너 알아서 챙겨먹어!”
벌써!? 알았어!
그래도 빠르게 수긍해주는구나. 괜히 더 미안해진다.
한숨을 푹 내쉰 스텔라는, 결국 침대에서 나와 문을 열었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인데, 자신이 챙겨줘야지.
@@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세화가 보인다.
운동을 하고 왔는지 레깅스와 브라탑을 입고 있다.
그로 인해 몸매가 드러났는데, 세화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스텔라의 눈빛에 부러운 기색이 감돌았다.
힙업이 무척 잘 되어있다. 움푹 패인 기립근 또한 완벽하다.
몸의 곡선이 장난이 아니다. 양 허벅지 사이에 살짝 나있는 공간도 아름답다.
꾸준한 관리만이 만들 수 있는 워너비 몸매.
자신도 저렇게 되고 싶다.
‘부럽다...’
운동할 시간은 낼 수 있으려나?
그 전에 지혁이 가져다주는 맛있는 아침을 끊을 수나 있을까 싶다.
그러한 생각을 하던 스텔라는, 인기척을 눈치챈 세화가 뒤를 돌아보자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왔어? 잘 지냈니?”
“네. 선배님은요?”
“똑같지 뭐. 그나저나 유리아 언니한테 들었어. 충전 때문에 문제를 겪고 있다며? 훈련할 수 있겠어?”
“아... 그건 해결해나가고 있어요. 오늘은 53퍼센트까진 채워왔구요.”
“많이 채웠네?”
“그렇죠...? 여, 열심히 했어요.”
사실은 지혁이 열심히 도와준 것이지만 뭐...
자신의 신진대사도 활발하게 돌아갔으니, 그게 그것 아니겠는가.
“다행이네. 아침은 든든하게 챙겨먹었니?”
“아뇨... 굶었어요...”
맨날 지혁이 해준 밥을 먹는 게 습관이 되어서, 아침은 알렉스 몫 외에 만들지 않는 편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세화가 말했다.
“그래서 지혁이가 오늘 나한테 연락했구나.”
스텔라의 귀가 쫑긋했다.
지혁이 왜 세화에게 연락을 했을까 궁금해서였다.
“지혁이 오빠가요...?”
“응. 아침 보낼 테니까 너랑 같이 먹으라고 전화했었어. 지금 보니까 대충... 무슨 일인지 알겠네.”
의미심장한 눈초리로 스텔라의 위아래를 훑어보는 세화.
자신의 몸이 샅샅이 벗겨지는 느낌을 받은 스텔라가 허벅지를 딱 붙이고 가슴에 양손을 올렸다.
“왜,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세요...?”
“아냐. 밥 먹게 저기 가서 앉아.”
“.... 네...”
눈빛이 음흉한데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겠냐고...
그러한 생각을 한 스텔라가 한쪽에 마련된 다 스러져가는 벤치에 앉았다.
세화와의 식사는 불편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로 마음이 편안했다.
지혁이 직접 만들어서 보낸 음식을 나눠먹는 것도 딱히 거부감이 없었다.
원래라면 자신 혼자 먹으려고 욕심을 부렸을 텐데 말이다.
“왜 그렇게 쳐다봐? 쌈 먹는 거 이상해?”
너무 빤히 바라보아서였나?
세화가 뻘줌한 듯 젓가락을 잡은 손으로 옆머리를 긁었다.
다정하지만 때때로는 엄한 친언니처럼 느껴진다.
만나는 동료들을 자꾸 가족처럼 생각하게 되는데, 같은 비스트 슬레이어라는 특수한 상황과, 여태까지 맛보지 못했던 애정을 받는 게 맞물려 가족놀이에 미쳐버린 것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
“죄송해요... 그냥...”
“고민이라도 있어? 궁금한 거라거나.”
그러고 보니 세화의 일상이 알고 싶다.
“아... 그게... 음... 선배님들께서는 마물이 나타나지 않으면 보통 뭘 하시는 편이에요? 그냥 학교 다니시는 거예요?”
“보통은 그렇지만, 가끔 눈에 띄게 날뛰는 범죄조직이 있으면 우리가 나서기도 해.”
“진짜요...? 아, 맞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선배님께서 범죄조직을 소탕하셨다는 소식을 보긴 했어요.”
“그 이후로 우리한테 자경단이라는 꼬리표가 붙을 뻔해서, 웬만하면 비밀리에 처리하려고 해. 범죄자들을 잡는 게 아니라, 그냥 그들이 사용하는 무기나 사업장을 무너뜨리고 나머지는 검경한테 맡기는 편이지.”
멋지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그런 일에 발 벗고 나서는 것이.
마치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하는 언성히어로 같다.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있는 스텔라를 바라보던 세화가 픽 하고 웃었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너도 충분히 훈련했다 싶으면 투입될 수도 있어.”
“제, 제가요...? 범죄자들을 잡는 일에요?”
“응. 같은 인간을 상대하는 일이라 힘 조절을 세심하게 해야 하긴 하지만, 겪어보면 실전경험에 큰 도움이 될 거야. 왜? 싫어?”
마약을 유통해서 사회에 큰 혼란을 야기하고,
죄 없는 사람 잡아가서 장기를 떼어다 팔거나 성매매를 시키고,
민간인을 학살하기까지 하면서 국가 전복을 노리는 것들이다.
법의 처벌을 피해 음지에 숨어든 자들을 처벌하는 게 싫을 리가 없잖은가.
깨끗한 지구를 만들기 위해선 나서야만 하는 일이다.
“아뇨...! 전혀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진심이 느껴져서 좋네. 마지막 아이테르의 적합자가 너라서 다행이야.”
세화에게 듣는 칭찬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정말 좋았다.
그녀의 조곤조곤한 목소리에서 나오는 진정성이 마음에 닿아서인지도 모른다.
텐션이 올라간 스텔라가 말했다.
“저도 선배님들께서 절 가르쳐주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삐빅! 삐빅! 삐빅!
그때, 스텔라와 세화가 찬 디바이스에서 요란한 소음이 일었다.
“어...? 어?”
당황해하는 스텔라와는 달리, 세화는 침착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디바이스를 살펴보았다.
“노르웨이, 에너지의 양을 봤을 때 A급 이상이야.”
“아... 어, 어떻게 해야...”
“우리끼리 포탈타고 먼저 가있으면 돼. 심호흡해.”
머릿속이 하얘진다.
하지만 침착해야한다. 이렇게 철딱서니 없는 모습을 보여줄 순 없었다.
“후우... 후...!”
한쪽 가슴에 손을 올리고 호흡을 고르는 스텔라.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로 그녀를 바라보던 세화가 말했다.
“그냥 포탈을 타면 어지러울 테니까 변신한 뒤에 타자. 알았지?”
“아, 네...!”
**
‘저놈은 너무 심하잖아.’
새하얬던 노르웨이의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등장한 마물.
피보다 진해보이는 검을 붕붕 돌리는 기사를 본 나는 어이가 없었다.
3기사 중 하나인 적기사는 S급 마물이다.
말파스의 힘이 빠져나가긴 했다지만 지금의 스텔라가 상대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으아아... 어, 엄청 강해 보여...
저 봐라. 벌써부터 쫄아가지고는 빌빌대고 있잖은가.
세화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스텔라의 곁에 있긴 하지만, 박사와 마르셀라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자숙하고 있던 이놈을 출현시킨 건지 모르겠다.
통신기의 연결을 끊은 나는 박사를 돌아보았다.
“누나, 뭐하는 거야? 스텔라한테 억하심정이라도 있어?”
“전혀 없어. 난 스텔라 좋아해.”
“근데 왜 적기사를 내보내? 몇 수 겨뤄보지도 못하고 패배할 것 같은데.”
“마르셀라가 좋은 방법을 제시했어.”
“무슨 방법?”
“스텔라에게 라이벌을 만들어두는 거야.”
알겠다. 스텔라를 저놈과 붙여서 참패시킬 생각이구나.
오기가 발동해서 더욱 열심히 훈련하도록, 첫 번째 목표를 저들에게서 승리하는 것으로 잡도록.
목표가 있다면 성장세가 가파를 테고, 패배하면서 구르고 구르다보면 쌓이는 경험은 덤이었다.
“어때? 괜찮은 방법 아니야? 저 녀석도 나름 기사라서 다른 마물들보다는 점잖고, 마물들이 파괴만 일삼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스텔라에게 각인시킬 기회이기도 해.”
“나쁘지 않긴 한데...”
“마르셀라가 3기사들한테 얘기해놨어. 네게 속죄를 구해야하는 저들의 입장 상 당연히 승낙했고, 열심히 하려고 할 거야. 오히려 다른 마물들보다 훨씬 나을 걸?”
그래, 뭐... 두 사람이 서로 상의해서 결정한 계획이니까 믿어주자.
“좋아. 세화도 이 사실을 알아?”
“알아.”
“알았어. 이제 그냥 지켜보기만 하면 돼?”
“응.”
다시 통신기를 켠 나는, 박사의 말대로 잠자코 적기사를 쳐다보기만 했다.
눈앞에 있는 세화와 스텔라를 지그시 바라보던 녀석이 돌연 칼을 겨누었다.
대상은 스텔라였다.
패기가 느껴지는군. 너와 결투하고 싶다.
삼류지만 명예를 아는 악당의 대사로군.
그런데 어쩌냐? 스텔라는 마계의 언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데.
분명히 혼란스러워할 것이다.
무, 뭐라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박사님? 저 마물이 저한테 뭐라고 하는 것 같아요... 눈빛이 막 이글거리는데...
예상대로, 당혹스런 스텔라의 목소리가 통신기에서 울려 퍼졌다.
잠깐 침묵한 박사가 말했다.
“우리도 당황스러워. 보통 마물이라면 가장 먼저 주변을 파괴했을 거야. 그렇지 않는다는 건... 네게 바라는 것이 있어 보여.”
바라는 거요...?
“중세 기사 같은 생김새, 그리고 콕 집어서 네게 칼을 겨눈 것으로 보아 결투를 하고 싶은 것 같아.”
네에...? 저, 저랑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