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0화 〉 마법의 단어
* * *
흐리멍덩한 눈으로 날 올려다보는 스텔라.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몸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롭다.
그녀의 다리 사이에 내 한쪽 다리를 끼워 넣지 않았다면, 이미 풀썩 주저앉았을지도 몰랐다.
한 팔로 스텔라의 허리를 두른 나는, 그녀의 코앞에서 부드럽게 웃었다.
“괜찮아?”
“.....”
지금 이 상황이 부끄럽기 그지없었는지, 아무런 말도,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다.
뽀얀 피부는 이미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상태.
아직 정리되지 않은 스텔라의 앞머리를 옆으로 넘겨준 나는, 긴장한 그녀가 입술을 적시는 틈을 타 양손을 집어넣었다.
스텔라가 입은 펑퍼짐한 티셔츠 안으로 말이다.
“허억!”
기겁한 스텔라의 몸이 한 차례 튕기더니, 다리가 양옆으로 미끄러지듯 벌어지면서 엉덩이가 내 허벅지에 딱 달라붙는다.
흐리멍덩해진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나는 온 신경을 손끝으로 집중해 스텔라의 살결을 느꼈다.
허리는 무척이나 얇았고, 말랑했으며, 매끈했다.
매일매일 만지고 싶을 정도로.
손끝에 힘을 약간 주니 갈비뼈의 형태가 그대로 느껴진다.
요새 잘 먹였음에도, 이쪽은 살이 잘 붙지 않는구나.
등 뒤로 손을 옮겨보니 살아있는 기립근이 날 반긴다.
운동조차 하지 않는데도 이정도면 타고났다고 봐도 좋았다.
트드득! 트드득...!
스텔라의 뒤에서 무언가가 긁히는 소리가 아주 크게 들려왔다.
부엌 수납장의 손잡이를 손톱으로 마구 할퀴고 있는 건가?
차라리 내 몸을 긁어주지... 그게 못내 아쉽다.
눈썹을 구긴 내가 말했다.
“손.”
트득! 트득! 트득!
그러나 긁는 템포가 더욱 빨라진다.
엄한 목소리로 꾸짖으니 반항심이 든 모양.
헛웃음을 켠 나는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지금부터는 저런 짓을 할 겨를이 없을 테니까.
적당히 예열을 끝내놓은 나는, 스텔라의 입술에 내 입술이 닿을 정도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러자 스텔라의 눈이 크게 뜨였다.
신음을 터뜨릴 만도 한데, 말문이 막혀버린 건지 나와 눈싸움만을 하고 있다.
누구 한 명이 약간이라도 움직이면 입술이 부딪칠만한 가까운 거리.
가만히 스텔라를 응시하며 반응을 살펴보던 나는,
“.... 후아...”
스텔라가 무겁고 뜨거운 한숨을 내뱉는 틈을 타, 그녀의 입술을 삼켰다.
“흐븝...!”
방금과는 정반대로 질끈 감기는 눈.
나는 스텔라의 등 뒤에 가있던 손을 엉덩이까지 내렸다.
거기서 힘을 주어 당기니, 스텔라의 몸이 마치 갈대가 움직이듯 쉽게 끌려왔다.
수납장을 긁고 있던 그녀의 손은 어느 샌가부터 내 팔을 잡고 있는 상태였다.
여기서 혀를 밀어 이빨과 맞닿은 잇몸을 살살 건드리자, 감전이라도 된 사람마냥 몸을 간헐적으로, 움찔움찔 떤다.
탄력이 살아있는 엉덩이 밑부분을 천천히 주물럭거릴 때마다 콧바람을 끊어서 내뱉는 건 덤.
리액션이 너무 찰진데, 계속 이런 식으로 괴롭혀볼까 싶다.
스텔라의 입에선 토마토 맛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내가 오기 전에 배가 고파서 몇 개 주워 먹은 모양인데... 그녀다웠다.
서로의 혀와 타액이 끈적하게 얽히고 섞이길 한참,
키스에 적응을 했는지, 스텔라가 수동적인 모습에서 능동적인 모습으로 변했다.
돌연 내 목에 자신의 팔을 두르고 자신의 혀를 내 입속으로 넣으려 했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나한테 휘둘리기만 하니 오기가 생겨서 이러는 것일지도 몰랐다.
뭐가 됐든 좋은 방향으로의 발전이었기에, 나는 스텔라의 바람을 들어주기로 했다.
스텔라의 입 안으로 침범한 혀를 다시 집어넣자마자, 그녀의 혀가 공격적으로 밀고 들어왔다.
어설픈 움직임으로 내 이빨을 강하게 누르면서 핥는데, 그물에 걸린 미꾸라지가 발악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기특하기도 하거니와 가소로워서 절로 웃음이 새어나오려 하지만... 간신히 참아냈다.
여기서 실실 쪼개면 모처럼 용기를 낸 스텔라가 실망할 수도 있었으니까.
“하움... 헤웁...”
흥분한 여자가 키스를 하다가 호흡을 몰아쉴 때 내는 특유의 소리는 야하기 짝이 없다.
그나저나 스텔라는 알고 있을까? 그녀의 엉덩이와 내 허벅지가 맞닿은 곳이 축축해져오는 것을,
차 안에서 침을 흘렸을 때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창피한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적당히 키스를 받아주던 나는 얼굴을 떼어냈다.
이후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스텔라를 바라보며 진중한 표정을 지어준 뒤, 그녀의 티셔츠를 가슴께까지 올렸다.
이후 한손을 스텔라의 등 뒤로 가져가 브라 후크를 풀었다.
사르르 거리는 소리와 함께 풀리는 밴드.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놀란 스텔라의 눈이 번쩍 뜨였지만...
“하읏...♡”
내가 그녀의 기다랗고 얇은 목에 입술을 가져가 쪽쪽 빨아대기 시작하자, 짤막한 신음을 내뱉으며 다시금 눈을 감았다.
디바이스 충전에 관한 강박과 지금 이 야릇한 분위기에 취할 대로 취해, 날 말릴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다.
“오빠... 안 돼...”
예의상 하는 말인 거, 다 알고 있단다.
걱정하지 말고 힘 빼. 네가 창피해하지 않도록 다 벗기지는 않을게.
나는 스텔라의 쇄골부터 시작해서 목 전체를 입술로 빨아들이며, 그녀의 티셔츠 속에서 손을 놀렸다.
가장 먼저 타원형의 말랑한 밑가슴이 중지를 반긴다.
힘을 줘보니 꽤나 묵직한 것이 느껴진다.
조금만 더 과감하게 가슴 전체를 감쌀 정도로 손을 집어넣으려고 하자,
“오, 오빠아...!”
스텔라의 간절한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내가 이러는 게 흥분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부담스러운 것 같은 반응이었다.
그녀의 호소를 무시해버린 나는 검지를 튕기듯 하여 젖꼭지를 톡 건드렸다.
“히이익♡”
곧바로 튀어나오는 간드러지는 소리.
동시에 스텔라가 내 뒷머리를 꽉 잡고 뒤로 잡아당겼다.
머리카락이 뽑힐 정도로 힘을 쓰는데, 다리마저도 가만 두질 않고 내 허벅지를 감싸 조이는 걸 보니 오르가즘을 느낀 듯했다.
그나저나 젖꼭지가 제법 앙증맞다.
가슴 사이즈는 세화보다 약간 작은 정도였는데, 만지고 주물럭거리기 딱 좋았다.
“그... 만해애... 그만... 오빠... 이제 그만해...♡”
다 녹아내린 목소리로 말하면 그만둘 사람이 어디 있겠니?
바지도 이미 젖어놓고선... 설득력이 단 하나도 없잖아.
나는 스텔라의 쇄골 군데군데에 키스마크를 만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헉헉거리던 스텔라가 내 머리에 얼굴을 묻는다.
정수리에서 느껴지는 후끈한 바람.
심지어 깨물기라도 하는지 따끔하기까지 하다.
나는 오랜 시간동안, 스텔라가 가볍게 가버릴 때까지, 젖 먹던 힘을 다해 날 밀쳐내고 자신의 방으로 도망갈 때까지 애무를 계속했다.
그리고 난 쫓겨나듯 집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방으로 들어간 스텔라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나가라고 했기 때문이다.
목소리에 당황스러움이 묻어나오는 것이, 자신의 젖어버린 팬티를 확인하고 화난 척을 해서 시간을 벌 속셈이 분명했다.
왜? 스텔라의 집 화장실은 거실에만 있었으니까.
내가 눈치챌까 두려워서 이러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어쩌냐? 내 바지에 네가 흘린 애액이 약간 묻어있는데.
그래도 네 심정은 십분 이해가 가니까 말없이 나가줄게.
빠르게 샤워도 하고, 잘 닦아낸 다음 차로 오렴.
어차피 방금 일을 상상하면 다시 젖어버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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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해서 죽겠다.
지혁과의 낯뜨거운 행위 때문이 아니라, 팬티가 축축했기 때문이었다.
지혁을 쫓아내듯 내보내서 가랑이를 닦고 팬티를 갈아입었음에도, 보영의 집에 도착하니 또 다시 젖어버렸다.
자신이 이렇게나 변태였나? 어이가 없는 수준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청바지가 두꺼워서 티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보영의 집에 자신의 속옷이 몇 장 있는 것도 호재였다.
데뷔 전에 밤늦게까지 연습을 한 적이 많아서 몇 번 잔 적이 있었는데, 그때 가져다놓은 것들이었다.
“다 왔어.”
주차장에 차를 댄 지혁의 말.
혼자만의 세상에 빠져있던 스텔라가 흠칫하더니 대답했다.
“.... 응...”
“잘 다녀와. 차에서 기다릴게.”
“아, 그... 오빠. 미안한데 오늘은 먼저 집에 갈래...?”
“왜?”
왜긴 왜야. 연습 끝나고 널 만나면 집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날까, 속옷이 또 젖어버릴까 불안해서 그러지.
아니, 그 전에 연습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부끄러워서 그래?”
이어지는 물음에 속눈썹을 치켜뜬 스텔라가 지혁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다른 건 다 재껴두고 열 받는 게 뭔지 아는가?
지혁이 아주 능숙한 솜씨로 자신의 브라를 풀고, 가슴을 만졌다는 것이다.
이는 곧 지혁이 다른 여자들에게 비슷한 일을 해봤다는 뜻과도 상통했다.
물론 얼굴이 잘생기고 성격이 워낙 좋아 여자친구가 있었던 건 이상한 일이 아니겠지만...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의 몸을 만졌다고 상상해보니 기분이 무척 나빴다.
애인의 앞선 연애사는 언급하지도, 생각하지도 말아야하는 게 도리라고는 하나, 화딱지가 나는 걸 어쩌란 말인가.
“그런 게 아니라... 하... 그냥 가.”
스텔라의 새초롬한 말에, 지혁이 등받이를 내리더니 편한 자세로 누웠다.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연습 끝나면 연락해.”
“연습 오래할 거야. 한 일곱 시간은 할 생각인데... 그래도 기다릴래? 지루할 텐데?”
“매니저의 기본 소양이 대기 아니야?”
“.... 난 말했다?”
“잘 다녀와.”
태연하게 저러는 모습을 보니 더욱 성질이 뻗친다.
쟤는 이번 일이 아무렇지도 않나?
자신은 아직도 심장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려서 죽겠는데... 서럽다, 서러워.
동시에 신기하기도 했다.
이토록 화가 나는 자신에게 말이다.
예전이었다면 손만 잡아도 부끄러워선 몸 둘 바를 몰라 했을 텐데.
이를 뿌드득 간 스텔라는,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소 과하게 차 문을 열려고 했다.
그때,
“덜렁아.”
지혁이 중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신을 불렀다.
“왜...”
“사랑해.”
저 말을 듣는 순간, 스텔라는 격앙되었던 마음이 순식간에 수그러들고 봄바람이 찾아옴을 느꼈다.
왜일까? 대체 왜 무드가 하나도 없는 분위기인데 마치 결혼식장에 와있는 것처럼 감정이 요동치는 거지?
심장이 엄청 빨리 뛴다.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다.
뇌리에선 찌릿찌릿한 전류가 퍼져 전신으로 퍼지고, 손발이 줏대 없이 와들와들 떨렸으며, 가슴속이 기쁨으로 충만해진다.
저 말이 이토록 달콤하게 들려올 줄이야...
“오... 아...”
놀라선 말을 잇지 못하는 스텔라를 바라보던 지혁은, 차에서 내려 조수석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스텔라의 이마에 진한 키스를 해주었다.
음욕 같은 건 하나도 없는, 그저 애정만이 담긴 키스 말이다.
이어서 손을 꼭 붙잡아주며 마치 아빠처럼 인자하게 말했다.
“끝나면 연락해. 데려다줄게. 알았지?”
“.....”
“알았지?”
재차 물어오는 지혁.
스텔라가 벙 찐 채로 고개를 두어 번 주억거렸다.
그녀는 자신의 속옷이 젖어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어버린 상태였다.
그저 지혁이 했던 ‘사랑해’라는 말을 마음속에서 몇 번이고 되뇔 뿐.
“연습 가야지. 누나가 기다릴 텐데.”
이어지는 지혁의 말에 이성을 되찾은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오늘 연습하긴 글렀다’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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