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8화 〉 구원,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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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따란 공간, 빨갛고 어두운 조명.
중앙 가운데 벽엔 음문의 일부를 떼어내고 어레인지한 교의 심볼이 있었고, 그 앞엔 짙은 색의 목재 주례대가 자리하고 있다.
각각 다섯 개의 4인용 벤치가 좌우로 늘어서있는 게 끝인, 돈을 찍어 바른 타 종교의 성당 내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검소한 공간.
끽해봐야 쉰 명 정도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고, 주례를 보는 자와 신도들 사이의 거리가 무척 가깝게 느껴지기까지 하다.
종합하자면 음침했다. 그것도 무척이나.
이곳은 임시신전 지하에 아주 은밀하게 자리하고 있는, 새로이 만든 예배당이었다.
창문 하나 없는 답답해 보이는 그 공간을 둘러본 나는, 다리 노출이 약간 있는 검은색 수녀복을 입은 아델이 들어오자 방긋 웃었다.
“예쁘네요. 헌데 등장도 안 하실 거면서 굳이 갈아입을 필요가 있었나요?”
“저희의 신전에 왔으면 그에 걸맞은 복식으로 갈아입는 것이 예의지요.”
“맞는 말씀입니다.”
“지혁 씨도 멋져요. 누가 봐도 교주라고 생각할 거예요.”
나는 지금 온통 시꺼먼 사제복을 입고 있었다.
다른 무늬가 없었기에 대례복만큼 화려해보이진 않았지만, 거동이 제법 불편했다.
의복에 주름이 진 부근을 손으로 펴주던 아델이 설명했다.
“새로이 입교한 신도들 세 명의 직업은 각각 대학생, 직장인, 그리고 그... 문신을 그려주는 직업 이름이 무엇이었지요? 들었는데 깜박했네요.”
“타투이스트요?”
“네, 그거에요.”
앞선 두 명은 그렇다 치겠는데, 타투이스트가 꽤나 신선했다.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아델을 바라본 내가 말했다.
“굳이 타투이스트를 입교시킨 이유가 있나요?”
“순전히 우연이에요. 하지만 좋은 생각이 났지요.”
“신도들에게 문신을 새길 심산이로군요.”
“맞아요. 예배당에 있는 저희 교의 상징과 똑같은 문신을 새겨줄 거예요. 나중에 신도들의 수가 많아지면 서로 알아볼 표식은 있어야지요. 소속감도 키워줄 겸 말이에요.”
“그렇습니까?”
“하찮은 인간에게 지혁 씨와 저희 자매들만의 성흔을 새기긴 탐탁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 아닌데다 디자인이 다르니까 좋게좋게 넘어가기로 했어요.”
그런 자비마저 베풀어주다니... 우리 아델, 다 컸구나.
“장하네요.”
“그렇지요? 참, 저희 교 이름은 대외적으로는 구원진리교에요.”
“그렇게 명명한 이유가 있나요?”
“명명하진 않았어요. 타이라트교는 신도들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모두 바칠 준비가 되었을 때 알려줄 거예요. 구원진리교가 지구인에게 접근하기 쉬울 테니, 위장용으로 그렇게 정했어요.”
그냥 흔한 사이비 종교 이름 같다.
하지만 타이라트교라는 이름보다 지구인들에게 접근하기 쉽다는 데엔 동의한다.
접근성이 좋아야지. 암, 그렇고말고.
“무슨 교주가 자신의 종교가 돌아가는 사정도 모르나요. 섭섭합니다.”
“막내에게 홀라당 빠져선 시간을 보내고 계시니까, 지혁 씨가 가장 아끼는 아내인 제가 알아서 내조를 할 수밖에 없지요.”
“저는 다섯 사람을 똑같이 아낍니다.”
“네, 네. 알겠어요.”
내 말을 한 귀로 흘려듣는 아델.
오늘은 기특한 일을 했으니까 그냥 넘어가주자.
“절 기다리고 있는 세 신도들은 본교의 진정한 이름을 아나요?”
“물론이에요.”
“그렇다면 몸과 마음을 다 바칠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로군요.”
“이미 바치겠다고 맹세를 했다니까요? 그리고 벌써부터 음란한 생각을 하면 어떡하지요? 체통을 지키셔요. 정 하고 싶으시다면 전례가 끝난 후에 따로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옳다고 봐요.”
아델은 자신이 인정한 자매 외에, 다른 사람이 나와 성적인 행위를 하는 것에 예민하다.
헌데 지금은 그냥 넘어가주려고 하고 있다.
나는 기꺼운 표정으로 아델을 내려다보았다.
“지금 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그러신가요? 어쨌든 저들과의 음란한 행위 후에는 몸을 깨끗이 씻어주셔요.”
“물론이죠. 한낱 인간과 부대낀 제 몸을 아델과 닿게 할 순 없으니까요.”
“제 의중을 알아차리셨군요. 역시 지혁 씨에요.”
저리 말하며 눈을 감고 입술을 내미는 아델.
얼른 뽀뽀를 해달라는 듯 오물거리기까지 한다.
뻗대는 모습이 오늘따라 더 귀엽게 느껴진다.
평소였다면 아델이 먼저 사정사정하도록 조련을 했겠지만, 오늘은 만족스럽기 그지없는 성과를 올렸으니까 원하는 대로 해주자.
아델과 키를 맞춘 나는, 쪽 소리가 나도록 그녀에게 키스를 해주었다.
그러자 입이 헤벌쭉해진 아델이 눈을 뜬다.
“흐헤...”
순진한 웃음소리를 들으니 예전 아델의 모습이 생각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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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고 답답한 통로를 지나니 눈앞에 가로 폭이 좁은 문이 보인다.
그 앞에 선 유세라가 날 돌아보며 묻는다.
“문을 열고 들어가시면 송혜윤 신도를 비롯한 새로운 자매들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전례 후에 따로 자리를 마련할까요?”
“나중에 결정하지. 신도들의 숙소는?”
“임시신전 옆의 단독주택을 매입한 상태입니다. 오늘부터 합숙할 예정입니다.”
합숙은 감시와 교리를 가르치기 용이한 방법 중 하나다.
노파심에 물어본 건데 준비가 잘 되어가고 있구나.
보통 자금력이 달리는 곳에선 시골구석의 컨테이너에 사람들을 몰아넣고는 하지만, 우린 다르지.
마르지 않는 자금을 활용해 신도 수를 불릴 것이다.
“신도의 가족들은? 반대가 심하지 않던가?”
“가족들과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들로 골라 포교활동을 하였습니다. 문제는 없다고 자신합니다.”
그래, 그런 쪽이 접근하기가 편하지.
똑똑한 사람이든 무지몽매한 사람이든, 결핍으로 인해 비어버린 마음을 채워주다 보면 믿음을 받게 되어있다.
홀로 해결하기 힘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상태에서, 그 일을 해결해준 사람에게 고마워하는 건 정상인이라면 당연한 수순.
심지어는 나쁜 짓으로 해결한 게 아니라, 서로에게 좋은 방법으로 처리했다.
재산을 착취하는 것도 아니고 사회를 병폐하게 만드는 것도 아닌, 진심인 척 다가가 포교 대상자의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주었다.
그러니 신도들은 우리 교에 신뢰를 가졌겠지.
여기서 시간을 들여 교묘하게 수정된 교리를 머릿속에 주입하고, 신뢰가 믿음으로 바뀌면 그 믿음을 마음속 깊이 동조하게끔 만들어 크기를 불린다.
그리고 그 커진 믿음은 숭배가 되어, 자기 자신으로 하여금 나에게 모든 것을 바치도록 만든다.
아주 훌륭하지 않을 수가 없다.
“친가족보다도 더 진한 피를 가지고 있는 자매라 생각하고 잘 대해주어라.”
“네, 교주님.”
“들어가지.”
고개를 꾸벅 숙인 유세라가 아주 천천히 문고리를 돌리더니, 문을 열고 옆으로 딱 붙었다.
그녀에게 씨익 웃어준 나는, 예배당처럼 빨간 조명이 내리쬐는 임시 알현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알현실에 첫 발을 내딛자, 옥좌 옆에 시립해있던 송혜윤이 근엄한 목소리로 날 소개했다.
“세상의 모든 진리를 아는 존재이시자, 창조주의 환생이시자, 저희들을 구원해주실 유일신... 송지혁 교주님이십니다.”
저건 아델이 만든 소개문구겠지? 왠지 낯부끄럽다.
천천히 알현실 중앙으로 이동한 나는, 아델이 말했던 대로 아무런 말없이 신도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속으로 놀랐다.
신도들의 얼굴은 둘째치고서라도, 입은 의복의 노출도가 상당히 심했기 때문.
그녀들은 어깨라인이 시스루로 된 칠흑빛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스커트가 무척 짧은 미니드레스 말이다.
““아...!””
얼마 지나지 않아 이구동성으로 들려오는 감탄사.
내 얼굴을 본 신도들이 터뜨린 목소리였다.
그래, 다 늙어가는 백발 성한 노인네보다는,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젊고 잘생긴 교주가 더 낫지.
처녀를 바치는데 부담감도 없을 테고.
오히려 날 향한 신앙심과 시너지를 일으켜 먼저 잡수시라고 달려들 거다.
“자매님들, 교주님께 예의를 갖추도록 하세요.”
차가운 송혜윤의 목소리가 알현실 안을 울리자, 화들짝 놀란 세 사람이 모두 양손을 이용해 치마 옆자락을 잡고 위로 들어올렸다.
““교주님을 뵙습니다.””
마치 중세의 여자 귀족이나 할 법한 예법.
그러나 그보다 훨씬 천박했다.
치마를 들어 올리는 정도가 심했던 것이다.
가장 위쪽의 대퇴사두근이 드러날 정도로 높게, 거의 팬티가 드러날 정도.
인사라고 할 수조차 없는, 야하기 짝이 없는 자세였다.
여기에 세 사람이 입은 복장이 더해져 야시시한 분위기를 더해주었다.
이건 분명 아델의 생각이었다.
내가 기뻐하라고 이런 식으로 훈련을 시킨 게 확실하다.
그리고 그녀의 그 생각은 제대로 적중했다.
아주 음탕한 분위기에다 색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예쁜 짓만 골라서 하는지 모르겠다.
아까 일도 그렇고, 우리 아델은 날 위해서라면 뭐든 할 준비가 됐다고 봐도 되겠니?
마물들에게 죽으라며 폭력을 행사하고, 마르셀라를 생체의자로 사용하던 세화가 왕비로서의 자각을 갖추게 된 것처럼, 너도 성장했다고 생각할게.
짙은 화장기가 어린 신도들의 아리따운 얼굴을 샅샅이 살펴보던 나는, 한쪽 쇄골 밑에 레터링 문신을 한 여자를 빤히 주시했다.
짙은 화장, 그리고 신체부위 군데군데에 얼핏 보이는 문신.
심지어는 허벅지 안쪽에 장미 모양까지 새겨놓았다.
아델이 말했던 타투이스트였다.
고양이 상 얼굴에 몸의 그림까지... 놀기 좋아하는 여자 같다.
헌데 처녀라니... 역시 선입견은 가져선 안 된다.
일단 저들은 흔들림 없이 날 쳐다보고 있었다.
세뇌가 아주 잘 진행되었다는 증거.
한 차례 고개를 주억거린 나는, 옥좌에 앉아 한손을 뻗었다.
그러자,
“앗...!”
타투이스트의 몸이 뻣뻣하게 굳더니, 발이 바닥에서 두둥실 떠올랐다.
아델은 뭐 자해를 한 뒤 재생시켜라, 물건을 들어 올려라 같은 주문을 했지만...
차라리 이것 한 방으로 끝내는 게 낫지.
자신의 몸이 무형의 힘에 의해 조종된다면, 내 능력을 믿지 않고는 못 배길 테니까.
요는 직접 겪어보는 게 최고라는 거다.
“아아아...!”
예상대로, 탄성을 터뜨린 두 신도의 눈빛이 초롱초롱하게 변했다.
감탄의 감탄을 거듭하던 그녀들은, 두 손을 모아 깍지를 끼고 경외심 가득한 표정을 짓기까지 했다.
그 틈을 탄 나는, 공중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타투이스트를 내 곁으로 오도록 했다.
“이름이 무엇이냐.”
“이, 이, 이... 이주연입니다... 교주님...”
말이 나오지 않을 만도 한데 목소리를 쥐어 짜내다니.
교육이 아주 잘 됐다.
한쪽 입꼬리를 올린 내가 말했다.
“가족이 된 것을 환영한다. 앞으로 잘 부탁하지.”
그에 이주연의 눈이 까뒤집히더니 눈꺼풀이 닫혔다.
기절한 것이다. 왜? 교주의 개인적인 환영인사에 감격해서.
이 정도 반응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어이가 없다.
이건 뭐 그냥 무지성 숭배잖아.
손을 휘저어 이주연을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놓자, 두 신도가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동시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송혜윤이 양팔을 가슴께 높이에서 앞으로 쭉 뻗으며 말한다.
“여러분들은 신의 선택을 받은 운명의 사도들로, 세상의 구원을 위해 힘쓰게 됩니다. 다함께 힘을 모읍시다. 썩어버린 지구촌을 교주님의 은총으로 가득 채워 정화합시다...!”
““아멘.””
경건한 목소리로 찬동의 단어를 내뱉는 두 사람.
날 포함해 고작 다섯 명이 있는 조촐한 알현실이지만, 분위기만큼은 수백 명이 있는 것보다 뜨겁게 느껴진다.
보인다. 이 세 명의 신도들로 시작된 줄기가 전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가는 것이.
로사리오도 슬슬 가시권인가? 가랑이 닦고 기다려라 이년.
날 고생시킨 만큼 순한 맛으로 능욕하지는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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