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7화 〉 선교사 아델
* * *
“하아... 하아...”
한손으로 담요를 끌어올린 채 다른 손은 시트를 짚고,
머리는 차창에 기댄 자세.
헐떡거리는 숨을 내뱉는 것으로 마무리.
겁탈이라도 당한 여인 같은 모습이지만, 표정만큼은 꽤나 상기되어있다.
“.....”
진정이 조금 되었는지 조용해진 스텔라.
방금 했던 키스의 감각을 되새기려는 듯, 입술을 오므린 채 위아래를 마구 비비고 있다.
마치 틴트를 입술 전체에 골고루 바르는 것처럼 말이다.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기도 했다.
“왜 도망가고 그래?”
“누, 누가 도망갔다고...!”
빼액 거리려는 모습이 무척 예쁘다.
힘 빠진 웃음을 내뱉은 나는 스텔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스텔라가 끙끙거리며 엉덩이를 움직이더니, 천천히 내 곁으로 다가왔다.
조심조심. 주인을 처음 만난 새끼 강아지가 탐색을 하는 것처럼 망설이던 스텔라는, 소심하게 내 검지만을 잡고 꽉 쥐었다.
얼굴은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고, 온몸을 오들오들 떠는 채였다.
“덜렁아.”
“힉!”
애칭으로 이름을 부르자 신선한 생선마냥 펄떡거리는 스텔라.
아델보다 훨씬 심한 반응이다. 앞날이 기대될 정도로.
“오, 왜?”
“돌아갈까?”
“.... 지금?”
“응. 힘들어 보이는데.”
“아, 아냐...! 하나도 안 힘들어... 힘들 게 뭐가 있다고...”
혼자 꿍얼거린 스텔라가 담요를 머리끝까지 덮어썼다.
팔이 있는 자리가 꼼지락거리는 모습을 보아, 충전량을 확인해보려고 하는 게 틀림없었다.
뒤이어 그녀의 당혹스런 목소리와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생각 외로 충전이 되지 않아서 놀란 모양이다.
짧은 키스만으로는 얼마 차지도 않는다.
아무리 애무를 곁들었다고 했다 한들, 섹스나 애무에 비해 쾌락의 양이 적으니 3퍼센트 정도 충전되었을 것이었다.
“미치겠네...”
툭툭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손톱을 깨무는 건가? 충전량을 보고 초조해진 것 같다.
스텔라가 덮은 담요를 내린 나는, 그녀가 거의 경기를 일으키듯 놀라자 인자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진정해. 손톱 깨물지 말고.”
“.....”
“고민이 있으면 같이 공유해야지, 혼자만 끙끙 앓고 있으면 해결이 돼? 뭐가 문젠데 그렇게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어? 방금 내가 했던 게 마음에 안 들었어?”
“아, 아냐! 왜 그런 말을 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이 행동하잖아. 끝나자마자 도망치듯 구석으로 가고...”
“그건 오해야... 오빠랑 했던 그건 좋았어...”
“그럼 왜 그러는데?”
입으로 손톱을 가져가려다가, 내가 했던 말을 상기하고는 멈추는 스텔라.
하지만 엄지와 검지를 구부려 손톱 끝부분을 긁어댄다.
엄지손톱의 네일은 일부분이 벗겨진 상태.
저 습관은 아예 몸에 익어버렸구나.
손만 상하지 않는다면 괜찮지만, 조금 심하다 싶으면 말려야겠다.
입술을 오물거리며 망설이던 그녀의 선택은, 말을 얼버무리는 것이었다.
“아, 아무것도 아냐... 그냥... 이런 건 처음이라서...”
지금 상황이 상당히 당혹스런 듯싶다.
많이 느꼈다고 생각했는데 쥐꼬리만큼만 올랐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
그런데 덜렁아, 그거 아니?
네 입장에선 그게 많이 오른 수치라는 걸.
한 자리 숫자라 적어보이는 것뿐이지, 짧은 시간 만에 3퍼센트 이상이라면 충분히 많은 양이라고 봐도 돼.
처음으로 겪은 진한 스킨십이라서 보다 과하게 느꼈을 테지.
마치 오늘 오픈해서 손님이 확 몰린 가게처럼 말이야.
현재 스텔라의 내면에 있는 순백색의 도화지엔 먹이 하나 찍혀있다.
그리고 오늘을 기점으로 그 먹이 확 번지기 시작할 것이다.
나는 스텔라의 손을 잡아 약한 힘으로 끌어왔다.
갈대처럼 쉽게 넘어오는 가녀린 몸.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린 내가 부드럽게 말했다.
“내일 훈련은 쉴래?”
“.... 나 훈련해서 빨리 적응해야 되는데...”
“조급해하지 마. 세화한테 말해놓을 테니까 내 말대로 하자.”
“안 되는데... 유리아 선배님한테 혼났다고 했잖아... 훈련을 조금밖에 못해서...”
“지각만 안 했어도 훈련시간 가지고 뭐라 하진 않았을 거야.”
“그... 런가...?”
스텔라의 낯빛이 약간 평온하게 돌아왔다.
“당연하지. 우린 널 빨리 가르칠 생각이 없다고 말했잖아. 빨리 마물을 상대하라고 등을 떠밀 생각 같은 건 전혀 없어. 내일은 푹 쉬자.”
“또 푹 쉬라고...? 나 혼자 뭐해...”
“누가 혼자 쉬래? 나랑 같이 쉬어.”
“그래...? 오빠 본부에 안 가봐도 돼?”
“상관없어.”
“뭐할 건데...?”
뭘 하긴. 오늘보다 더한 일을 해야지.
또 다시 손톱을 물어뜯으려는 스텔라의 손을 낚아챈 내가 말했다.
“뭐하고 싶은데?”
‘아무거나’라고 대답할 거지?
너 지금 내일 일정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잖아.
“아, 아무거나...”
저 봐라.
노래를 부를 땐 중견가수 뺨 때릴 정도로 태연한데, 애가 왜 이렇게 소심해졌냐.
첫키스가 그렇게나 긴장됐나? 심장이 엄청난 속도로 뛰고 있을 것 같다.
그래도 딱히 걱정은 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스킨십에 자연스러워질 테니까.
우웅!
인자한 눈빛으로 스텔라를 쳐다보고 있는데, 휴대폰에 메시지가 왔다.
“잠깐만.”
양해를 구한 나는 휴대폰을 높게 들었다.
스텔라가 확인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지혁 씨! 큰일 났어요!]
아델의 톡이 와있다.
저 톡은 행여나 스텔라가 내용을 엿볼까 우려하여 거짓으로 보낸 내용이다.
그녀는 지금 내가 스텔라를 만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만약 정말로 큰일이 났다면 톡이 아닌 전화를 했겠지.
누가 연락했는지 궁금했을까? 스텔라가 고개를 빼꼼 내밀더니 휴대폰을 엿보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휴대폰을 높게 들고 있어 미수에 그쳤다.
안달이 난 듯 발을 동동 구른 그녀가 묻는다.
“누구야?
“보영이 누나.”
“뭐라고 하시는데?”
“내일 너 데리고 오라는데... 뭐라고 보낼까?”
스텔라의 눈빛이 진중해지면서, 떨리던 몸이 멎는다.
“나 연습할래. 그... 리프레쉬가 필요해.”
가수와 관련된 일엔 야무지구나.
그래, 그렇게 해라.
보영이한테 따로 연락해둬야겠다.
“알았어.”
태연스레 거짓말을 한 나는 휴대폰을 집어넣고 말했다.
“들어가자. 늦었다.”
그 말에 스텔라가 디바이스에 내장된 시간을 확인했다.
늦은 시간임을 확인한 그녀가 힘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응...”
늦게 일어났으니 잠도 해가 떠오를 때쯤에야 들겠지?
오늘 받았던 그 느낌, 분위기... 절대 잊지 마라.
자동차는 스텔라의 집 근처에 있었다.
5분도 채 안 돼서 빌라 앞에 도착해 뒷좌석 문을 여니, 스텔라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차에서 내려왔다.
“고마워, 오빠... 얼른 가봐.”
“집 앞까지 데려다줄게.”
“괜찮은데...”
“비틀거리면서 뭐가 괜찮다고 그러는 거야? 잔말 말고 이리와.”
배시시 웃는 스텔라.
대답이 마음에 들었나보다.
은근히 여우같은 구석이 있다는 말이지.
현관문 앞까지 스텔라를 부축한 나는, 마지막으로 그녀의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스텔라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가만히 서선 내게 손을 흔들었다.
보아하니 내가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톡을 보내겠구나 싶었다.
공동현관으로 나온 나는, 그제야 아델에게 답장을 보냈다.
[스텔라는 지금 집에 보냈습니다.]
[다행이군요. 제 센스에 감동한 지혁 씨의 표정이 눈에 그려지네요. 저희 둘만의 신전으로 와주셔요.]
[지금요?]
[네. (··)]
좋은 소식을 들고 왔나보다. 밝은 이모티콘을 보내는 걸 보면.
[금방 가죠.]
**
“흠흠... 냄새가 나네요. 막내가 사용하는 향수냄새에요.”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코를 킁킁거린 아델의 말이었다.
어깨를 으쓱한 내가 대답했다.
“그야 스텔라와 같이 있었으니까요.”
“알아요. 막내의 옷을 강제로 벗기고 지혁 씨의 대물을 집어넣으셨겠지요? 아니면 비명을 지르는 막내의 입을 막고 가슴을 우악스럽게 잡으셨나요?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 착한 막내의 엉덩이를 마구 때린 뒤, 뒤에서 겁간하셨나요?”
“그게 아델의 판타지인가보네요? 나중에 원하는 대로 해드리겠습니다. 세화와 유리아, 실비아를 시켜 아델의 몸을 꽁꽁 결박시킨 뒤, 채찍으로 상체를 마구 때리도록 시킬 겁니다. 그 다음 다리를 활짝 열고 그 사이에...”
물러서지 않고 아델의 농담을 받아치자, 그녀의 입이 쩍 벌어졌다.
내 입에서부터 튀어나온 원초적인 단어들에 안절부절 못하던 아델이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지, 지혁 씨...! 그만...! 제가 지혁 씨에게 선물을 가져왔어요!”
“뭔가요?”
“저희의 새로운 신도들이요. 세 명인데, 아주 참해요.”
세뇌가 완료됐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임시신전으로 불렀을 때 대충 예상은 했다.
다른 인간들이었다면 ‘노예’나 ‘잡것’, 혹은 ‘소모품’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텐데... 자신을 믿는 인간들에겐 관대한 편이란 말이지.
“그렇습니까?”
“으응...? 감상은 그게 끝이신가요?”
“그야... 제 힘이 강해지지 않았으니까요. 아델이 그랬잖습니까. 신도들이 저흴 믿게 되면, 제게 신기가 들어올 거라고. 저는 지금 평소와 같습니다만...”
“지혁 씨...! 너무 급해요! 고작 세 명의 신도들이 들어왔을 뿐이에요! 심지어 지구의 약한 인간들이요. 그런 인간들 세 명의 신앙심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런가? 말이 되긴 하는 것 같은데...
“알겠습니다. 전도는 어떤 방법을 사용하셨는지?”
자신의 입을 가리고는 음흉한 웃음을 터뜨리는 아델.
콧대를 세운 그녀가 답했다.
“후후... 생활이 힘든 자들을 골라 대학 장학금을 지급하거나, 자금을 빌려주거나, 어려운 일을 해결해준다거나 하며 교리를 가르쳤지요. 지구의 사이비 종교들이 흔히 사용하는 수법이에요.”
“그럼 무신론자를 신도로 만들었다는 얘긴가요?”
“네.”
“기존에 작업하던 지구의 종교를 믿는 인간들은요?”
“그 사람들은 뼛속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신앙심을 갖고 있어요. 배교를 하도록 만드는 건 쉽지 않지요.”
“그녀들을 놓아줄 생각이십니까?”
“일단은 교리를 약간 비틀어서 가르치고 있긴 해요. 하지만 쉽지 않다고 생각되면 그냥 쓱싹할 생각이에요.”
딱 붙인 손가락을 목에다 대고 왔다 갔다 거리는 아델이었다.
이토록 잔인하게 변해버리다니... 마왕님은 기뻐서 눈물이 나오려고 하네?
어쨌거나 이쪽은 아델이 전문가니까 믿고 맡겨보자.
“알겠습니다. 새로운 신도들은 어디 있죠?”
“지하 기도실에서 열심히 기도를 드리고 있어요. 교주인 지혁 씨가 할 일은, 그들에게 신의 힘을 보여주시는 것이에요.”
“신의 힘? 저한테 신의 힘이 있었나요?”
“아이 참...! 척하면 척 몰라요?”
잠깐 고민하던 나는 아델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상처의 재생이나, 마력으로 물건을 옮기는 염동력 같은 것을 보여주라는 얘기다.
괜찮은 방법 같기는 했다.
사기꾼의 거짓말로도 신앙을 가지는 인간들이 수두룩한 판에, 그런 초자연적인 일을 현실에서 보여준다면 믿지 않고는 못 배기겠지.
나는 아델을 앞으로 번쩍 안아들고, 한쪽 팔을 그녀의 엉덩이 아래에 받쳤다.
그리고는 남은 손으로 그녀의 앞머리를 잘 정돈해주었다.
“이해했습니다.”
자연스레 내 허리에 자신의 다리를 감은 아델이 답했다.
“지혁 씨의 기뻐하는 얼굴을 상상하니 기쁘네요. 참하고 젊은 처녀들인 만큼, 막 대하지는 마셔요.”
“우리의 원대한 계획에 소중한 밑거름이 될 신도들인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지하실로 가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