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5화 〉 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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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비빅! 덜컥.
“하아... 후...”
찐득한 숨을 내뱉은 스텔라가 힘없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씻지도 않고 침대에 앞으로 누운 그녀는, 자신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오자 차에서 있었던 지혁과의 일을 생각했다.
‘.....’
브라 끈에 거의 닿을 뻔할 정도로 쑥 들어와, 마치 먹잇감을 탐색하듯 스멀스멀 움직인 지혁의 손...
순간 닭살이 확 돋아났고, 동시에 작은 흥분까지 했다.
처음 자신의 몸을 내어준 것 같은 기분. 아직도 가슴이 너무 두근거린다.
베개에 얼굴을 거의 묻다시피 한 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약간 돌리고는 자신의 손목을 살폈다.
세화와 아델이 말해주길, 디바이스는 충전이 되고 있을 때 공명음을 낸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 공명음을 들었다. 아주 확실하게.
우웅! 하고 울려 퍼지는 소리.
흥분도에 따라서 소리의 높낮이가 달라진다고 했는데...
자신은 얼마나 흥분했던 걸까? 그것을 잘 모르겠다.
혹시 자위라도 해보면 방금 일과 비교할 수 있을까?
이러한 생각을 하던 스텔라가 깜짝 놀랐다.
“아, 아냐...!”
이런 망측한 생각을 해버리다니... 미쳤다.
지금의 자신은 정신이 헤까닥 돌아버린 상태임이 분명하다.
똑바로 누운 스텔라는 보영이 가르쳐준 복식호흡을 하여 심신을 달랬다.
그러면서 눈을 감아 지혁이 만져주었던 그 느낌을 되새기려고 노력했다.
그러기를 한참,
똑똑.
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방 문이 벌컥 열렸다.
깜짝 놀란 스텔라가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누, 누가 함부로 문 열래! 어!?”
누이의 외침에 움찔한 알렉스가 반 발자국 뒷걸음질을 쳤다.
“오, 왜 그래...? 노크했잖아.”
“있냐고 물어보는 게 먼저지! 너 다른 데서도 그래!?”
“불러도 대답이 없길래 무슨 일 생겼나 해서... 미안...”
뒷머리를 긁적이며 사과를 하는 알렉스.
평소와 같은 동생에게 과한 화를 내었음을 자각한 스텔라는 자신의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냐... 왜? 배고파? 밥 차려줘?”
“괜찮아. 내가 차려먹을게. 근데 누나, 무슨 일 있었어? 왜 이렇게 예민해?”
“그, 그냥 피곤해서 그래. 잠깐만...”
스텔라가 코를 킁킁거렸다.
거실에서 들어온 블랙체리 향에 술냄새가 섞여 들어왔기 때문.
미간을 좁힌 그녀가 알렉스를 추궁했다.
“너 술마셨냐?”
“조금... 친구들이랑은 아니고, 알바 사장님이랑 같이 마셨어.”
사장님이라... 학생들과 어울리지만 않았다면 풀어주는 것도 괜찮을까?
먼저 솔직하게 말하고 들어오는 것으로 보아, 사장님이란 사람이 먼저 술을 권유한 모양인데...
하긴, 알렉스는 학생이라지만 나이는 성인이고, 너무 옥죄기만 하면 반발심만 생길 테니 오늘은 그냥 넘어가줘야겠다.
결정적으로 지금은 알렉스를 훈계할 기력이 없었다.
그게 가장 컸다.
“얼마나 마셨는데?”
“그냥 맥주 두 캔이랑, 사장님이 따라주신 양주 한 잔.”
“사고 안 쳤지?”
“안 쳤어. 나도 이제 정신 차려야지.”
“알았어... 그리고 조심 좀 해. 노크 하고 사람 있냐고 물어보는 게 먼저야.”
“응. 내일 뭐하냐?”
내일... 내일... 일찍 훈련하러 나가고, 훈련이 끝난 뒤엔 지혁을 만나야한다.
하지만 이걸 솔직하게 얘기할 수는 없었다.
훈련은 비스트 슬레이어와 관련된 거라 당연히 비밀로 해야 하고, 지혁을 만난다고 하면 알렉스가 노발대발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소속사에서 연습해야 돼. 넌?”
“난 그냥 친구들이랑 게임하려고.”
“알바는?”
“내일 휴무니까 사장님이랑 술 마셨지.”
“그래... 알았어. 나 이제 잘 거니까 나가줄래?”
“씻지도 않고? 어쩐지 방에 들어오니까 냄새나더라.”
“지, 진짜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코를 킁킁거려보는 스텔라.
빵 터진 알렉스가 말했다.
“뻥이야. 냄새 안 나. 그리고 누나.”
“응?”
“힘내라. 잘 자고.”
힘내라는 말이 낯부끄러웠는지, 알렉스가 빠르게 문을 닫았다.
오랜만에 듣는 동생의 격려에 벙 찐 스텔라가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오늘 좋은 일 있었나...?’
사장님이 귀에 피가 나도록 칭찬을 해준 건가?
아니면 여자친구라도 생긴 건가?
뭐가 됐든 친동생의 응원은 굉장한 힘이 났다.
입가에 미소를 띠운 채로 다시 누운 스텔라는, 자신의 코에 섞여 들어오는 기이한 냄새에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 방 안에 은은하게 남아있는 술 냄새,
거기 슬쩍 섞여있는 불쾌한 향은 뭘까.
익숙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방향제랑 섞여서 지독한 냄새가 나는 건가 싶다.
‘아, 몰라...!’
오늘 큰일을 겪어 예민해져서 그렇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그것보단 내일 지혁을 만나면 어떻게 행동해야할지가 더 걱정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할 수는 없었다.
보기만 해도 얼굴이 빨개질 게 분명하니까.
그러면 아예 혼을 낼까? 왜 허락 없이 그랬냐고?
아니, 그러려면 지혁이 만진 순간 그 자리에서 혼을 냈어야지, 이러면 뒤끝밖에는 안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가장 최선일까?
‘미치겠네...’
온갖 방법을 상상만 해보던 스텔라는, 결국 답을 찾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
[세계연합, 비스트 슬레이어 본부에 질투?]
[세계연합은 최근, 차세대 비스트 슬레이어에 관한 연구를 공공연히 해왔다.
연합은 본부의 지휘가 아닌 연합의 지휘를 받는 영웅이 필요하다며, 모든 비스트 슬레이어들이 본부 소속이라면 사적인 임무에도 투입이 될 수 있다며 크나큰 유감을 표했다.
또한…….
비스트 슬레이어들이 연합국의 관리를 받도록 하여, 엄선된 인재들의 케어 아래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힘을 써야한다는 것이 연합의 의견이다.]
인터넷 기사를 읽고 있던 나는 저도 모르게 비웃음을 흘렸다.
“요즘 조용하다 했다. 같잖은 것들...”
그러자 무감정한 표정으로 운전석 옆에 시립해있던 최아람이 사족을 붙였다.
“현재 여론을 장악했는지 이런 기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신문은 물론이고 인터넷도 똑같아요.”
“인간들 반응은 어떤데?”
“사적인 임무에 이용할 수 있다는 얘기에 큰 공감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왕비님들께선 국가 소속이 아니다보니... 일말의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이를 이용해 여론전을 펼치려는 세계연합이나, 홀라당 낚이는 무지몽매한 일반인들이나 똑같다.
역시 세상이 평화로우면 온갖 세력들이 미쳐 날뛰는 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이로구나.
곧 이 마왕님께서 청소해주마.
“마르셀라 님께 말씀드릴까요?”
“됐어. 이미 파악하고 있을 거야. 아람이 너는 이것보단 중소 아이돌 기획사로 발 좀 넓혀봐. 마르셀라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지?”
“알고 있습니다.”
“좋아, 같이 일해.”
“WW엔터와는 이만 작별할까요?”
“연수도 적당히 컸으니까... 정리해.”
“알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인 최아람이 내가 내민 신문을 받아들고는 또각거리는 소리를 내며 멀어졌다.
스텔라의 집 앞까지 차를 몰고 간 나는, 그녀가 밖에 나와 있자 재빨리 조수석 문을 열었다.
“마스크 써야지 왜 그러고 있어?”
만나자마자 타박을 하니, 스텔라가 투정을 부렸다.
“모자 썼잖아.”
“모자로 얼굴이 다 가려지냐?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어떡하려고?”
“뭐 어때. 어차피 스케줄 가는 줄 알 텐데...”
“세상 참 낙관적으로 산다. 빨리 타.”
“.....”
입술을 삐죽 내민 스텔라는 뒷좌석 문을 열고 거기 올라타버렸다.
삐쳐서 반항을 하는 것이다.
피식한 내가 물었다.
“이럴 거야?”
“뭐. 왜.”
“왜 화났는데?”
“.... 알아본 사람도 없었는데 다짜고짜 혼부터 내니까 그렇지. 만약 사람들 많았으면 내가 먼저 마스크를 썼을 거야. 훈련도 막 끝내서 힘든 상태인데...”
억울함을 토로하는 스텔라의 눈 밑은 퀭했다.
역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구나.
얕은 한숨을 내쉰 나는 스텔라의 옆으로 갔다.
이후 리모컨으로 차의 모든 문을 닫고, 그녀에게 담요를 덮어주며 말했다.
“미안해.”
“.....”
순식간에 풀리는 스텔라의 표정.
담요를 끌어당겨 턱밑까지 덮어쓴 그녀의 고개가 살살 흔들렸다.
“나도 화내서 미안해...”
“아냐. 지금 정신없지? 여기서 한숨 자.”
“난 괜찮은데?”
“다크서클이 광대까지 내려왔잖아. 잠도 제대로 못 잔 것 같은데, 그냥 쉬어.”
찔끔한 그녀가 핑계를 댔다.
“무, 뭐래... 잘 잤는데? 늦잠까지 자서 유리아 선배님한테 혼날 뻔했는데?”
“오늘은 유리아 씨가 훈련시켜줬어? 전화해서 확인해볼까?”
“선배님도 개인사가 있는데 그렇게 막 전화하면 안 되지...! 하지 마.”
“그럼 얌전히 누워.”
“.... 응.”
결국 자포자기한 스텔라는 자연스럽게 내 무릎에 머리를 댔다.
날 어떻게 대해야할지 고민이 많았을 텐데, 나름 자연스럽게 흘러가서 안도하고 있는 것이 다 보인다.
큼지막한 눈을 끔벅거린 그녀가 날 불렀다.
“오빠.”
“왜.”
“있잖아... 나 오늘 선배님한테 혼났어.”
“실수라도 했어?”
“아니... 훈련을 조금밖에 못했거든.”
에너지가 바닥났구나. 그럴 줄 알았다.
어제 있었던 행위로는 1퍼센트조차도 채우지 못했을 테지?
그에 따라 마음도 조급해졌을 테고... 이해한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내게, 스텔라가 말을 이었다.
“내가 왜 혼난 줄 알아?”
여기서 모른 척하는 건 답이 아니다.
지금은 기회주의적인 면모를 보여주어선 안 된다.
“디바이스 에너지 때문이지?”
“맞아. 엄청 뭐라고 하셨어. 비스트 슬레이어로서의 자각이 있는 거냐면서... 맞는 말씀이지만 억울한 점도 있어. 디바이스가 그런 식으로 충전될 줄 내가 알았겠냐고...”
내가 그 덕을 많이 봤단다.
그래서 네 마음엔 공감을 못해주겠네?
신나서 춤을 추고 싶지, 불만은 전혀 없어.
“아이테르가 충전을 강요하는 것 같아?”
“그건 아냐. 변신한 걸 후회하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해볼 생각도 그대로야. 그냥 이런 아쉬움이 있다고 말하는 거야.”
지금은 충전량에 집착할 때이긴 하지.
하지만 맛 들리기 시작하면 걱정거리가 싹 사라질 테니, 그때까지만 참자 우리 덜렁아.
“오빠.”
“응.”
“이제 난 어떡해야 돼? 이세화 선배님한테 여쭤볼까?”
나는 말없이 손을 뻗었다.
자신의 가슴 위에 꼭 모아진 손, 그 위에 포개지는 내 손.
이 상태에서 마치 아이를 잠재우듯 일정한 리듬으로 천천히 두드리자, 스텔라의 고개가 내가 볼 수 없는 방향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하품을 한 그녀가 다시금 날 올려다보았다.
“대답해봐. 난 어떻게 해야 될까?”
답은 너도 알고 있잖아.
그러면서 왜 물어보는데?
나는 스텔라의 자그마한 얼굴을 양손으로 조심스레 감쌌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구부려, 그녀의 뽀얀 피부를 살살 간지럽혔다.
뺨, 턱, 그리고 목.
내 손길이 닿을 때마다 스텔라의 다리가 잠자리를 뒤척이듯 움직였다.
이불 밖으로 툭 튀어나온 양말을 보니, 끄트머리가 약간 오므려져있다.
얼굴은 어제처럼 새빨개진 상태였다.
여기서 손을 우뚝 멈추자, 스텔라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 계속해...”
“언제까지?”
“나... 잘 때까지... 오빠가 이렇게 해주는 거 좋아...”
모처럼 용기를 냈구나. 장하다.
그래, 그렇게 중독되어가면 돼.
스텔라를 내려다보며 부드럽게 웃은 내가 대답했다.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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