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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377화 (377/471)

〈 377화 〉 새로운 이름

* * *

내가 본부의 사람이라는 것을 계속 비밀로 한다면, 나중에 밝혀졌을 때 스텔라는 큰 실망을 할 것이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거짓말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기 전에 먼저 패를 까는 게 맞았다.

물론 지금도 내게 서운해 하겠지만, 관계가 깊어진 후에 들통이 나는 것보단 훨씬 낫다고 본다.

삐빅­! 푸쉬익­!

[치료가 완료되었습니다.]

의료기기에서 나온 나는 부러졌던 팔을 움직여보았다.

뼈는 다 붙긴 했지만 약간 시큰거리는 감이 있다.

오늘부로 스텔라의 아이테르에 악의를 넣을 때까지 마기의 사용을 지양해야하는데, 부상을 입는 건 웬만해선 피해야겠다.

보영과도 웬만하면 마주치게 하지 말아야지.

베드에서 나온 나는 성능 좋은 의료기기를 사랑스런 손으로 쓰다듬었다.

앞으로 자주 이용하게 될지도 모를 텐데, 막 굴리면 안 되잖은가.

지이잉­!

의료실 문이 열리며 스텔라가 들어온다.

홀을 슬쩍 보니 모두가 모여 있었는데, 표정을 보아하니 스텔라에게 사정을 대략적으로나마 설명해준 것 같았다.

그녀는 지금 모두가 자신을 속이게 될 거라고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고 있겠지.

현재 스텔라는 옷을 갈아입은 상태였다.

펑퍼짐한 원피스. 세화가 집에서 편하게 입는 옷이다.

슬쩍 스텔라의 어깨너머를 보니 아델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손엔 딸기우유가 한가득이었는데, 막내인 스텔라에게 주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질투할 것 같았는데, 저 반응은 스텔라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

꽤나 의외다.

미안함이 담긴 미소를 지은 나는, 교조증이라도 있는 사람마냥 손톱을 물어뜯으려고 하는 스텔라를 만류했다.

“손톱 짧아져. 뜯지 마.”

그러자 스텔라가 황급히 손을 내리더니 묻는다.

“오빠... 괜찮아? 팔은 어때...?”

질문이 산더미일 텐데도 안부를 먼저 묻는 모습이 기껍다.

의료실 문을 닫고 보란 듯이 다쳤던 팔을 들어 올린 내가 대답했다.

“멀쩡해. 넌? 괜찮아?”

“나... 숨을 못 쉬겠어...”

온갖 의미가 함축된 말이었다.

그만큼 혼란스럽다는 뜻.

앞날도 걱정되고, 소속사나 보영, 그리고 동생도 신경이 쓰이겠지.

“심호흡해봐. 천천히.”

“후우... 하아... 후우...”

매번 느끼는 거지만, 우리 덜렁이는 내 말을 아주 잘 듣는다.

가슴께에 손을 올리며 호흡을 고르던 그녀.

진정이 조금 되었을까? 그녀의 눈빛에 원망의 감정이 약간 담겼다.

“서, 선배님들한테 이야기 들었어. 나, 나한테 의도적으로 접근한 거지...?”

선배님이라... 그래서 아델이 좋아했던 거구나.

잠자코 고개를 주억거린 내가 순순히 실토했다.

“맞아.”

“난 이제... 어떻게 해...? 설명을 듣긴 했는데 뭐가 뭔지 전혀 모르겠어... 머리가 아파.”

지금 반응으로 보아 아직 디바이스의 충전방법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이걸 알면 까무러칠 정도로 놀라겠지.

스텔라의 팔을 조심스레 잡아당긴 나는, 그녀를 의료기기 베드에 앉혔다.

“넌 평소대로 생활하면 돼.”

“어떻게 평소대로 생활해? 난 이미...”

말끝을 흐린 스텔라는 디바이스가 채워진 자신의 오른쪽 손목을 부여잡았다.

영웅으로서의 사명을 알게 되었다는 행동이었다.

그녀의 옆에 걸터앉은 내가 말했다.

“혼란스럽지? 미안한데 잠깐만 기다려줄래? 대표님한테 연락해야 해서... 네가 하진 않았지?”

“할 겨를이 없었어. 근데 오빠는 지금 그게 중요해...?”

“중요하지. 지금 걱정하고 계실 텐데.”

“어, 어차피...! 이젠 그만둘 거잖아...”

서운함에 버럭 소리를 지르려다가 다시 목소리를 낮추는 스텔라였다.

그건 나중에, 우리 관계가 여기서 더 깊어지면 던질 떡밥이란다.

아직은 네가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 날 붙잡을 정도까진 아니잖아.

“그만 안 둬. 매니저 일은 계속할 거야.”

스텔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눈을 큼지막하게 뜬 그녀가 반신반의한 투로 날 떠본다.

“진짜...? 박사님께서 오빠 여기서 엄청 바쁘다고 그러시던데...”

“처음엔 바빴어. 지금은 본부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서 괜찮아. 사람들은 만나보니까 어때? 괜찮아?”

“응... 모두 좋은 분들이셔. 아델라인 선배님이 특히나 잘 챙겨주셨고... 그런데 있잖아... 그거 말했어?”

“뭘?”

“그 저번에... 비스트 슬레이어들 중에서 누가 제일 좋다고 말했던 거...”

말할 리가 있겠니. 아델이 노발대발할 게 뻔한데.

헛웃음을 켠 내가 대답했다.

“나만 알고 있어.”

그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스텔라가 당부했다.

“무조건,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해... 알았어?”

“왜? 여기 오고 나니까 뻘줌해? 신경 쓰여?”

“아 오빠...!”

삐쳤는지 팔을 확 내리는 모습이 귀엽다.

“알았어. 말 안 할게. 할 생각도 없었어. 일단 대표님한테 전화부터 할 테니까 잠깐 있을래?”

그 말에 고개를 주억거린 스텔라가 내 팔 이곳저곳을 만져보았다.

“부, 분명히 뼈가... 막 튀어나왔었는데... 이거 진짜 좋다...”

그러면서 의료기기와 내 팔을 번갈아 바라보는 그녀.

좋다는 건 의료기기를 말함이겠지.

그러려니 한 나는 보관함에 놓여있는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켜보았다.

부재중 전화가 서른 통이 넘는 건 물론, 문자까지 백 통이 넘는다.

죄다 최승환, 천희주의 연락이었다.

다행인 건 전부 몇 시간 전에 걸려온 전화들.

보영이 알아서 최승환의 걱정을 덜어준 것 같았다.

스텔라를 흘끗 바라본 나는 곧장 최승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루루 거리는 신호음이 채 한 번 지나가기도 전에,

­여보세요! 야! 송지혁!

최승환이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가 어찌나 컸는지 스텔라가 듣고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

경상만 입었고, 치료가 잘 끝났다고 둘러대면 되겠지.

눈빛으로 스텔라를 안심시켜준 나는 핑계거리를 쏟아냈다.

@@

“막내야! 막내야!”

뒤에서 귀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혁과 함께 연구실을 나가던 스텔라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델라인이 큼지막한 비닐봉투를 든 채 달려오고 있다.

아델은 상상했던 이미지와는 다르게, 자신을 만나자마자 뛸 듯이 기뻐하던 사람이었다.

먼저 다가와선 친근하게 굴었고, 세화를 제외한 나머지 비스트 슬레이어를 소개시켜주기까지 했다.

제니퍼 캐시 박사를 소개할 땐 무서웠는지 우물쭈물하긴 했지만, 자신을 가장 먼저 챙겨주었다.

그리고 자신은 아델 덕분에 혼란스럽던 마음을 빠르게 추스를 수 있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좋긴 했다.

하지만 세화는 리더 포스를 풍겨서 약간 엄하게 느껴졌고, 유리아와 실비아, 그리고 박사는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접근하기가 무서웠다.

아델의 붙임성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멍하니 연구실에 앉아있었을 터였다.

지금 눈앞에 있는 자그마하고 귀여운 여자는 가만히만 있어도 주변 분위기를 밝게 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만큼 활기찼다. 아델이라는 사람은.

그런데 막내라니... 호칭이 너무 웃긴다.

아니, 아델이 부르니 웃기다고 해야 옳았다.

활짝 웃은 스텔라가 힘차게 대답했다.

“네, 선배님!”

안 그래도 방글방글한 아델의 얼굴이 만개한다.

쫄래쫄래 달려온 그녀가 스텔라의 손에 비닐봉지를 들려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딸기우유야. 하루에 세 번씩 마시도록 해!”

들어보니 꽤나 묵직하다.

안을 들여다본 스텔라가 입을 살짝 벌렸다.

어림잡아보아도 스무 개가 넘는 딸기우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걸 전부 다요...? 하루에 세 번씩 마셔도 유통기한이 지날 것 같은데...”

“그런가...? 그러면 다섯 개씩 마셔.”

아델은 약간... 좋게 말하면 순수했고, 나쁘게 말하면 바보 같았다.

하지만 후자 쪽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마 아델의 이미지가 순수함과 딱 맞아서인 듯했다.

공상 소설에나 나올 법한 행성에서 온 사람이라더니, 아델이 사는 곳이 어떠한지 괜히 궁금해지는 스텔라였다.

그러고 보니 실비아도 다른 행성에서 왔다고 했는데...

그 말을 듣고 그러려니 하며 쉽게 넘어갔었던 자신이 웃기기도 하다.

“그, 그럴게요...”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면 나한테 제일 먼저 연락해야 돼? 알았지?”

스텔라 자신의 손을 꼭 붙잡고 당부의 당부를 거듭하는 아델.

스텔라는 아델의 마음이 오롯이 전해져오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선배님!”

“음음...!”

만족스런 미소를 흘린 아델은 이번엔 지혁을 바라보았다.

“지혁 씨! 막내가 온 날인데 환영회 같은 건 하지 않으시나요?”

“환영회? 해야죠. 하긴 하는데... 오늘은 안 됩니다.”

“어째서지요?”

“스텔라는 지금 정신이 없는 상태입니다. 스스로가 누구인지 제대로 깨달을 시간도 필요하죠.”

“그럼 오늘 밤에 스텔라를 저희 집에서 재워도 되어요?”

“스텔라에겐 남동생이 있습니다. 누나가 외박하고 온다 하면 걱정할 거예요.”

“아휴... 아쉽군요... 너무 아쉬워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쉰 아델.

부드럽게 웃은 지혁이 아델에게 다가가, 그녀와 눈을 맞추었다.

“나중에 연락하라고 할게요.”

“.....”

“알았죠?”

“네에...”

어깨를 축 늘어뜨린 아델이 스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잘 가아...”

상상이상으로, 진심으로 서운해 하고 있다.

매일 알렉스를 챙겨주다가, 챙김을 받는 입장이 되니 기분이 꽤나 좋다.

막내로서 예쁨을 받고 있는 느낌.

아델의 진심이 느껴져서 마음이 더욱 안정되어간다.

그러고 보니 지혁과 아델은 동갑인데, 왜 서로 꼬박꼬박 존대를 할까?

친하지 않은 건 절대 아닌데... 특별대우라도 해주는 건가?

나중에 물어봐야겠다.

잠자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스텔라가 미안함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말했다.

“조만간 시간을 내볼게요, 선배님.”

“정말...?”

“물론이에요. 저도 선배님이랑 같이 있고 싶어요.”

이런 사탕발림이 통한 것일까?

금세 텐션이 살아난 아델이 신나는 걸음으로 돌아갔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던 스텔라가 지혁에게 토로했다.

“난 오빠가 그렇게 거짓말을 잘할 줄은 몰랐어.”

“속여서 미안해. 다짜고짜 접근하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했어.”

“아니... 이 일 말고... 대표님한테 사정을 설명할 때를 얘기하는 거야. 어떻게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그런 얘길 할 수가 있어? 사기꾼 역할로 데뷔해도 될 것 같아.”

“그러냐? 이참에 나도 오디션 한 번 봐볼까?”

그건 안 된다.

지혁이 연기 연습생으로라도 들어가게 되면, 다른 사람이 자신의 매니저를 하게 되잖은가.

지혁이 아닌 다른 사람이 차를 모는 건 싫었다.

정색을 하며 대답하려던 스텔라는, 그저 농담으로 한 얘기에 이토록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는 자신에게 어이가 없었다.

‘그만큼 내가...’

지혁을 좋아하고 있다는 건가?

지혁에게 실망해야할, 화가 나야할 현 상황에서도 그를 향한 원망이 거의 없는 것을 보면...

아마 맞을 것이다.

망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던 스텔라에게, 지혁이 말했다.

“얼른 가자. 너 데려다주고 소속사에 가봐야 돼.”

“나는 왜 안 가?”

“보고는 나 혼자만으로도 충분하잖아. 대표님도 널 걱정하고 있으니까, 오늘은 집에 들어가서 푹 쉬어. 내일 일정은 취소해달라고 해볼게.”

가수 생활에 열정이 있었지만, 오늘만큼은 휴식이 절실하긴 했다.

육체적, 정신적인 피로도가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온갖 정보가 밀려 들어와 머리도 터질 것 같았다.

오늘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집에서 푹신한 이불을 덮고 자고 싶었다.

“응... 고마워. 그런데 자동차는...? 우리 차는 뒤집혔잖아.”

“본부 거 쓰면 돼.”

“팔 치료한지 얼마 안 됐는데... 운전해도 돼?”

“괜찮아. 뼈랑 근육에 이상은 없어.”

고개를 끄덕인 스텔라는 지혁을 따라가다가 속으로 역정을 냈다.

그 징그러운 마물 때문에 자신의 두 번째 보금자리인 밴이 박살났다.

얼마나 정을 주었는데...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다.

그래도 뭐... 나쁘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자신이 본부의 제안을 승낙했듯이, 영웅으로 새로이 태어났듯이.

지혁에게 바짝 붙어 걷던 스텔라가 말했다.

“오빠.”

“응?”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난 널 믿어.”

다른 미사여구를 붙이는 것보단 저 짧은 마디가 더욱 힘이 된다.

좋아하는 지혁이 말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보영이 언니도 알아? 오빠가 본부 사람인 거.”

“누나는 전혀 몰라. 진짜로 내가 돈이 필요해서 매니저를 하는 줄 알지.”

“.... 그렇겠지...”

“계속 까보니까 거짓만 나오네. 실망시켜서 미안해.”

실망하긴 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알면 소속사 들렀다가 우리 집으로 올래?”

“오늘만큼은 그냥 쉬지?”

“본부 사람들한테 여러 일들을 듣긴 했지만, 아직 난 모르는 게 많아. 그치?”

“그렇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

“세화도 말했듯이, 지금의 넌 가수 생활에만 전념하면...”

스텔라가 고개를 가로젓는 것으로 지혁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는 나직이 말했다.

“알렉스한테 어떻게 말해야하는지도 토론해봐야 되잖아. 그치?”

지혁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표정을 보니 자신에게 무척 죄스럽긴 한가보다.

“그래 뭐... 그럼 너 내려주고, 소속사 들렀다가 다시 돌아올게.”

자기 잘못을 잘 아는 건지, 순순히 알겠다고 하는 지혁이었다.

이 일을 빌미로 며칠간 지혁을 꼼짝도 못하게 해야겠다.

그리 생각하던 스텔라는,

우웅­!

유심을 갈아끼운 새 휴대폰에 진동이 울리자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발신자는 [아델라인 선배님]이었다.

[( · · )]

이모티콘을 본 스텔라가 헙! 하고 웃음을 참아내었다.

힘내라는 뜻이 분명해 보이는데... 너무 귀엽다.

챙겨주려고 하는 아델의 마음이 여실히 드러나기도 해서 기껍고...

아무래도 자신은 본부 생활을 꽤나 잘 즐길 수 있을 듯싶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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