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375화 (375/471)

〈 375화 〉 비스트 슬레이어 로제 #2

* * *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들어갈게요!”

피곤할만한데도 활기차게 인사를 하는 스텔라.

억지로 인사를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케어해주어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것이 티가 났다.

그렇기에 숱한 신인 연예인들을 많이 만나보았을 그들 또한 진심으로 스텔라를 대해주었다.

나는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예의 바른 모습을 보이는 스텔라를 보며 뿌듯함을 감출 수 없었다.

저런 착한 사람이 타락하는 과정... 그게 무척 꼴리거든.

그리고 그 출발점은 내일부터다.

양손에 스텔라의 팬들이 보낸 온갖 간식 봉지를 든 나는, 스텔라가 어깨를 톡톡 치자 고개를 돌렸다.

“왜.”

“힘들지 않아? 내가 하나 들게.”

“무거워. 괜히 힘 빼지 마.”

“나 힘센데? 이거 봐.”

자신의 한쪽 팔을 들어 올리며 힘을 빡 주는 스텔라였다.

뽀얀 팔 상박의 근육이 수축되며 희미한 라인이 생긴다.

누가 봐도 가녀리다고 생각할만한 모습.

코웃음을 친 내가 말했다.

“추우니까 패딩이나 입어.”

“응.”

흐느적흐느적 거리다가 팔을 넣어야할 소매를 찾지 못하는 그녀.

이렇게나 덜렁거리는데 어떻게 알렉스를 챙겼을까?

미스터리하다.

봉지를 바닥에 조심스레 내려놓은 나는 스텔라의 수발을 들어주었다.

그러자 스텔라가 배시시 웃으며 날 쳐다본다.

바깥에 나온 지 얼마 안 되었음에도, 날카로운 칼바람으로 인해 추웠는지 코끝이 빨개져있다.

양 입가에 자그마하게 생긴 보조개마저도 탐스럽다.

“왜 그렇게 봐?”

그렇게 보는 게 뭔데.

너 지금 나 일부러 유혹하고 있지?

여우같은 것...! 아델이 아주 좋아하겠어.

조수석 문을 연 나는 말없이 스텔라에게 눈짓했다.

뒷좌석이 아니어서 좋은 걸까?

방글방글한 표정을 지은 그녀가 잽싸게 차에 탄다.

내가 운전석에 탈 때까지 기다리던 그녀가 말했다.

“유통기한 긴 건 오빠 집에 가져갈래?”

“안 먹을 거면 알렉스 주지 왜.”

“걘 하루하루 살 찐 상태로 와. 편의점 사장님께서 폐기되는 도시락 같은 걸 많이 주신다나봐. 다이어트 시켜야 돼.”

술은 누나 눈치가 보인다고 자제하긴 하지만, 맨날 고급 안주를 처먹는데 살이 안 찔 수가 없지.

“다 가져가고 간식으로 먹든가 해.”

“그냥 아침으로 먹을까? 오빠 매일 내 아침 만들어주는 거 귀찮잖아.”

“하나도 안 귀찮아.”

만족스런 대답을 들어서였는지, 스텔라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녀에게 모과차를 내민 내가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푹 쉬고, 내일 행사니까 목 컨디션 조절 잘해.”

“알았어.”

진짜로 푹 쉬어라.

내일, 그리고 최소한 모레까지는 네 정신이 쏙 빠지는 날일 테니까.

**

스텔라는 신인이지만 다른 가수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유명세를 얻었다.

보영의 제자로 첫 스타트를 끊었고, 실력이 무척 뛰어난 것으로 모든 우려를 불식시켰다.

여기서 인성이 좋은 건 덤.

현재 웬만한 아이돌보다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 스텔라였다.

부르는 곳도 많았고, 행사는 대학 축제... 그것도 높은 페이를 주는 곳에만 가도 되는 상황.

막말로 한 곡만 부르고 내려온다 해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불만을 갖지 못할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바다냄새가 물씬 풍기는 행사존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자신의 데뷔곡은 물론 보영의 곡을 어레인지해서 무려 다섯 곡이나.

이는 스텔라의 의도였다.

특별대우는 받기 싫다며, 신인 때부터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며 스스로 이곳에 오길 자처했다.

성격이 나쁜 타 가수들은 속 편한 생각이라며 스텔라를 헐뜯을 테지만 뭐...

소수인 그들에게 신경을 쓰는 것보단 팬들 관리를 하는 게 훨씬 이득이니 상관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스텔라가 온다고 하니, 가족단위가 대부분인 이곳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유입됐다.

이로 인해 축제가 매우 활기를 띠고 있었는데, 스텔라의 선한 마음씨가 지역에 좋은 영향을 끼친 듯했다.

행사비도 얼마 안 되는... 소속사의 입장에선 손해가 큰 행사였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스텔라의 인지도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선순환이란 게 이런 거지.

내가 보기엔 조금 불편하긴 하다만.

무대를 마친 스텔라는 팬사인회는 물론, 팬들과 사진도 찍고 대게도 먹어보고 하며 짧게 축제를 즐겼다.

보안요원들이 많아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스텔라에게 달려드는 년놈들 때문에 골치가 아파질 뻔했으니까.

‘성숙하긴 개뿔.’

팬카페에 성숙한 팬 문화를 보여주자던 글에 어마어마한 공감이 찍혔는데, 그게 무색해질 정도다.

나는 포장마차에 앉아 게딱지 비빔밥을 맛있게 먹고 있는 스텔라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제 돌아가자.”

“벌써?”

“너 여기 세 시간 있었어.”

“내일 스케줄도 없잖아. 여기서 조금만 더 있다가 가면 안 돼?”

“대표님께서도 돌아오라고 난리야. 보안업체랑 계약한 시간도 다 찼어.”

“그래...?”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을 지은 스텔라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푸근한 아줌마가 바리바리 싸주는 선물을 받아든 그녀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작별인사를 하고는 날 뒤따랐다.

얌전히 차에 탄 스텔라가 지나가듯 말했다.

“오빠는 일하느라 축제도 제대로 못 즐겼지? 미안해.”

우리 덜렁이는 어쩜 이리도 마음씨가 고울까?

예뻐 죽겠다.

차를 출발시킨 내가 대답했다.

“아냐.”

간결한 답에 조금 서운한 건지, 축제의 활기에 영향을 받아 올라가있었던 스텔라의 텐션이 약간 내려갔다.

해안도로 곳곳에 있는 가로등의 불빛에 힘입어 야경을 바라보던 그녀가 감탄했다.

“진짜 예쁘다... 바다는 오랜만에 오는 것 같아. 한국에 온 뒤로는 처음이야.”

“다음에 둘이서 같이 오자.”

‘둘이서’라는 말이 나올 때, 스텔라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너도 아델처럼 알기 쉬워서 좋단 말이지.

말없이 날 빤히 바라보던 그녀가 다시금 활기차진 목소리로 말했다.

“응. 아, 맞다... 아주머니가 대게 싸주셨는데 먹을래?”

“나 운전하고 있잖아.”

“내가 까줄게. 잠깐만...”

양손에 위생장갑을 낀 그녀는 의욕적으로 게의 다리를 까기 시작했다.

조용한 주변, 바람도 거세지 않아 평화로운 바다...

희희낙락한 스텔라의 모습...

지금이 딱 타이밍이라고 본다.

스텔라의 안전벨트가 꽉 매어진 것을 확인한 나는, 몰래 마르셀라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렇게 스텔라가 내 입으로 게살 한 조각을 내밀려고 할 때,

위이이이이잉­! 위이이이이잉­!

얼마 전에 들었던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도처에 울려 퍼졌다.

[경고, 이블리언 게이지가 감지되었습니다. 시민 여러분들께서는…….]

뜬금없는 변고에 화들짝 놀란 스텔라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무, 뭐야...? 괴물이야...?”

촤아아악­!

동시에 잠잠하던 바다에서 어마어마한 소용돌이가 일더니, 마치 블루홀처럼 거대한 구멍이 생겨났다.

바닷물을 순식간에 빨아들이던 그 안에서부터,

투쾅­!

파란색의 거대한 에너지가 해안도로를 향해 쏘아져, 스텔라와 내가 움직이고 있는 도로 밑 절벽을 강타했다.

콰아아아아앙­!

“꺄아아아악!”

찢어지는 듯한 스텔라의 비명소리, 순간 붕 떠버린 밴.

빙빙 도는 시야 가운데에 흩날리고 있는 게다리.

뭔가 웃긴 장면이다.

자동차가 공중에서 제비를 돌고 있는 상황.

나는 재빨리 스텔라를 살폈다.

눈을 질끈 감은 채로 손을 휘적거리고 있는 모습이 애처롭다.

조금만 기다려. 금방 구해줄 테니까.

우지끈­! 으드득­!

@@

“아... 아...!”

입을 웅얼거리던 스텔라가 인상을 구겼다.

온몸이 너무 아프다. 아파 죽을 것 같은데 공포가 전신을 잠식했는지 비명소리조차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크오오오오오!

바다 쪽에서 괴물의 포효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이 번쩍 든 스텔라는 지금 자신과 지혁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명확하게 알아차렸다.

괴물의 공격을 간접적으로 받은 거다.

쩌저적­!

도로 위의 능선에서 불길한 소리가 들린다.

산등성이가 무너지려는 모양.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지혁과 자신은 압사될 것이 뻔했다.

벨트에 꽉 고정된 자신의 몸을 움직여보았으나 요지부동.

현재 자신은 뒤집힌 차에 거꾸로 매달려있었는데, 머리에 피가 쏠리는 느낌이 너무 싫었다.

‘오빠...! 오빠...!’

급박한 상황 속에서 스텔라가 가장 먼저 찾은 사람은 지혁이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가장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눈동자를 데굴 굴린 스텔라는 운전석을 바라보았다.

이마에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지혁이 안전벨트를 풀기 위해 낑낑거리고 있다.

그의 한쪽 팔은 기상천외하게 뒤틀려있었다.

더군다나 팔꿈치 쪽에서 불길하기 그지없는 빨간색의 무언가가 뾰족하게 튀어나와있다.

‘뼈... 야...?’

부러진 뼈가 살을 뚫고 나온 건가...? 너무 잔인하다!

“오... 빠...!”

젖 먹던 힘을 다해 지혁을 부른 그녀의 시야가 점점 암전되어갔다.

이렇게 정신을 잃으면 안 되는데...

지혁이 너무나도 걱정되는데...

쿠당!

“크윽...!”

눈이 서서히 감기던 스텔라는, 옆에서 묵직한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지혁의 고통스런 신음소리가 들리자 인생 최대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다시금 옆을 흘끗거리니, 지혁이 자신을 향해 기어오고 있었다.

온몸에 유리 파편이 박히는 것도 개의치 않아한 채로 말이다.

그의 한쪽 손엔 무언가가 들려있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것 같은, 시계처럼 띠가 있는 정사각형의 물체가.

두근!

스텔라는 돌연 자신의 가슴이 좋은 쪽으로 두근거리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 내가 설레어하는 건가?

대체 왜? 지혁의 처량한 모습이 감격스러워서?

아니면 비스트 슬레이어가 올 거라 예상해서?

그도 아니면 저 정사각형 물체를 보고?

“끅...!”

이를 꽉 깨문 지혁이 고통을 참아내며 자신의 지척까지 다가왔다.

안전벨트를 풀어주려나 싶었는데, 그가 한 일은 자신의 오른쪽 손목에 정사각형 물체를 두르는 것이었다.

‘뭐... 하는... 거야...?’

지금 디지털 시계를 선물해주려는 거야?

이 상황에서? 마지막 유언 같은 건가...?

어안이 벙벙해진 스텔라가 입을 뻐끔거렸으나, 목소리는 더 이상 새어나오지 않았다.

“네가... 할 일을 해...”

그리 말한 지혁이 스텔라의 왼손을 잡아, 오른손목에 있는 물체로 가져갔다.

‘무슨... 일...?’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미안해...”

사과는 왜 하는 거지?

알 수 없는 말만을 하고 있는 지혁이 너무나도 답답하다.

뭔가 설명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는데...

라는 생각을 스텔라가 하고 있을 때,

툭. 툭.

지혁이 오른손목에 둘러진 물체를, 스텔라 자신의 손으로 두 번 두드리도록 했다.

그 순간,

번쩍­!

스텔라는 자신의 시야가 눈이 멀어버릴 듯한 백색으로 가득 차고, 고통이 순식간에 멎어버리자 눈을 부릅떴다.

전신으로 퍼지는 압도적인 힘, 차오르고 있는 정의로운 마음...

이 초자연적인 현상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툭.

그냥 당혹스러워서 몸만 살짝 뒤틀었을 뿐인데, 아까까지만 해도 꿈적 않던 안전벨트가 실타래 끊기듯 끊어진다.

지금은 천장이 되어버린 차 밑바닥을 발로 차니, 쩌엉! 하는 소리와 함께 박살이 나며 몸을 움직일 공간을 만들어낸다.

엄청난 유연성으로 몸을 뒤집고 제대로 착지한 스텔라가 자신의 전신을 쳐다보았다.

“이, 이건...”

자신이 입고 있던 파란색 원피스는 온데간데없어지고, 밑단이 나풀거리는... 금색과 흰색이 조화를 이룬 화려한 미니드레스가 입혀져 있다.

그리고 오른손엔 날이 무척이나 얇은 순백색의 검이 들려져있었는데, 날이 꽤나 팽팽했다.

하지만 유연하게도 느껴졌다. 검이 아니라 채찍인 것 같은데... 아마 맞을 듯하다.

쇄골 한가운데를 만져보니 마름모꼴의 단단한 무언가가 박혀있었다.

마치 잘 가공된 보석처럼 느껴지는데... 거기서부터 정의감은 물론 힘이 분수처럼 샘솟고 있었다.

‘아...! 지혁이 오빠...!’

퍼뜩 정신을 차린 스텔라는 가공스런 힘으로 차 밑바닥을 전부 뜯어냈다.

이후 지혁을 소중하게 안아들고 공중으로 뛰어올라, 안전해 보이는 장소에 그를 내려놓았다.

눈을 감고 있는 그.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숨을 쉬고 있는 게 확인이 된다.

안정적인 호흡이다. 그냥 기절만 한 듯싶다.

안도한 스텔라는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투쾅­!

이상하다. 가슴은 의문으로 가득 차있고 끓어오를 듯 뜨거운데, 머리는 그 어떤 때보다도 냉철하다.

자신이 이토록 침착한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다.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나중에 고민을 해봐야할 일이다.

지금은 소중한 사람을 지켜야한다는 일이,

가까운 바다에서 괴성을 내지르고 있는 악의가 가득한 괴물을 처단하는 일이,

그리고 피해를 입은 사람을 구제하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생각을 마친 스텔라는 자신의 오른손을 한 차례 튕겼다.

촤라락­!

그러자 유연하던 검이 유려하게 펼쳐지며, 날카로운 날이 있는 기다란 채찍으로 변화했다.

“와아...!”

한 차례 탄성을 터뜨린 스텔라가 눈을 가라앉히며 괴물을 쳐다보았다.

야성으로 가득해 보이는 이족보행 생명체.

크기는 일반 사람들보다 두 배는 더 컸다.

전신에 상처가 많은데, 가슴에 큼지막한 구멍이 나있는 것이 눈에 띈다.

누군가에게 공격을 당한 건가? 그래서 폭주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열심히 괴물을 분석하던 스텔라는,

“헉!”

흠칫하며 공중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멀리서부터 운명의 동료처럼 생각되어지는 익숙한 기운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운에서부터 바다처럼 넓고 깊이가 있는 방대한 힘이 느껴진다.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지금 누가 오고 있는 건지.

‘레오나...!’

그녀의 기운을 확실하게 캐치한 스텔라는, 자신이 어떠한 존재로 변신을 하였는지 완전히 자각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