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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372화 (372/471)

〈 372화 〉 구원투수

* * *

[스텔라 매니저 친구 왜 이렇게 싸가지가 없나요? 면전에다가 말 많다고 나무라던데.]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있잖아요. 매니저도 안 좋은 말 몇 번 나오던데...]

[스텔라만 안타깝게 됐네요.]

“어떡하냐...”

팬 카페를 보고 있던 천희주의 한탄.

그녀의 뒤에서 어제 있었던 일의 반응을 살펴보던 최승환이 물었다.

“지혁이한테 안 좋은 말 나왔다는 게 뭔 소리야?”

“그... 소속사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팬들이, 지혁이가 스텔라를 태우면서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욕했던 적이 있어요.”

“아... 대충 뭔지 이해가 가네. 몇 번?”

“두 번? 세 번 정도요. 그리고 고의가 아니라...”

“알아. 그냥 태운 건데 괜히 확대해석해서 욕한 거겠지. 겨우 그런 거 가지고 과잉으로 반응하는 건 시간이 지나도 똑같구만... 골치다, 골치야...”

고의 맞는데... 알아서 북 치고 장구 치고 잘한다.

인상이 좋고 일을 잘하니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날 커버쳐주는구나.

두 사람의 뒤에 있던 나는, 스텔라가 손톱을 깨작깨작 물어뜯는 것을 보았다.

불안해하고 있다는 방증.

아침에 차에 탈 때도 우울한 표정이었는데, 팬 카페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니 큰 죄책감을 느끼고 있나보다.

그런 그녀를 향해 괜찮다는 듯 웃어준 내가 화제를 돌렸다.

“이런 거 말고, 스텔라 성적이나 좀 봐요.”

“방금 봤는데 또 봐?”

당연하다는 듯 말을 하는 최승환의 눈은 충혈 되어있었다.

어제 음원 성적과 뉴스를 체크하느라고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것이다.

고개를 천천히 주억거리고 있는 내 등을, 위로 차원에서 툭 두드린 최승환이 말했다.

“너무 심란해하지 마라.”

“전 아무렇지도 않아요.”

“세상에 욕먹고 괜찮은 사람 없다. 괜찮은 것 같다가도 나중엔 자꾸 생각날 거야. 넌 오늘부로 인터넷 기사 같은 거 보지 마.”

난 사람이 아니라서 괜찮다고 이 돼지새꺄.

매니저 선배인 척 친근하게 다가오지 마.

평소처럼 심보 고약한 악덕사장마냥 굴라고.

“알겠습니다.”

“여기 삼삼오오 모여 있지들 말고, 지혁이랑 스텔라 너흰 스케줄 가기 전까지 저기 탕비실에서 간식이나 먹으면서 쉬어. 스텔라는 많이 먹으면 살찌니까 적당히... 커피만 한 잔 하든가.”

쿨한 척하는 최승환을 뒤로 탕비실에 간 나는, 뒤따라온 스텔라에게 방긋 웃어주었다.

“커피 마실래?”

“아, 응...”

“과자는? 캐러멜 맛 나는 거 줘?”

“오빠 괜찮아? 내가 팬 카페에 직접 글 올릴까?”

대답은 안 하고 반문을 하는 스텔라였다.

내가 충격을 받았을 거라 생각하는 모양.

어깨를 으쓱인 나는 커피머신을 작동시키며 대답했다.

“아무렇지도 않다니까. 지금은 네 일에만 집중하자. 1위 축하해.”

“아침에 세 번 말했잖아.”

“네 번 하면 또 어때.”

내 농담에 가벼운 실소를 터뜨린 스텔라가 커피를 받아들고 소파에 앉았다.

“오늘 스케줄 뭐야?”

“오후에 예능 촬영 회의 들어가면 돼.”

“알았어. 메이크업 받을 필요는 없겠네?”

이지안을 신경 쓰는구나.

질투를 더욱 유발하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오늘은 네 동경심을 키워주는 날이란다.

이지안은 언제든 필요한 순간에 이용해먹고 버리면 돼.

“딱히 없어.”

무미건조한 답에 안도하는 스텔라.

큼큼거리며 목을 가다듬은 그녀가 커피를 홀짝였다.

그러더니 내게 당부를 했다.

“조금 있으면 알렉스 올 건데 괜찮다고 해주지 마. 버릇 나빠져.”

“그럼 뭐라고 해?”

“경솔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뭐 이런 말들 있잖아.”

혼내라는 소리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나는 스텔라의 옆으로 갔다.

이후 그녀의 뒷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사르르 넘어가는 머릿결 느낌이 너무 좋다.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이 파고들 때마다 온 신경에서 부드럽다는 신호를 보내온다.

목과 어깨가 이어지는 새하얀 피부가 탐스럽다.

저길 살살 긁어주다가, 슬쩍 손을 뻗어 쇄골을 만지작거리고 싶다.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킨 나는, 머리에 완전히 힘을 푼 스텔라가 나른한 숨을 내쉬자 정신을 차렸다.

“하아아...”

저 소리가 야하게 들리는 건 착각인가?

잠깐 그녀의 두피를 마사지해주던 내가 말했다.

“네가 혼내줬다면서. 따끔하게.”

“.... 그랬긴 했는데...”

“그럼 됐잖아. 알렉스도 충분히 알아들었을 거야.”

“그래도 형이 된 입장인데, 한 마디 해주는 게...”

“글쎄. 알렉스와 나는 친형제도 아닐 뿐더러, 몇 번 만나보지도 못했고 친하지도 않아. 이런 상황에서 뭐라고 하면 반발심만 불러일으킬 걸?”

“선 긋는 것처럼 들리는데? 맞아?”

형 노릇? 하고 싶지도 않은데 당연히 선 그어야지.

나는 스텔라의 뒷목과 어깨를 약하게 툭툭 쳐주었다.

“오해하지 마.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어.”

“응...”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소속사 입구가 꽤나 소란스럽다.

최승환이 호탕한 목소리로 괜찮다고 지껄이는 걸 보니, 알렉스가 온 듯싶다.

몰래 스텔라의 표정을 살펴보니 굳어있었다.

데뷔한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은 상황이고, 1위까지 순식간에 차지했다.

그럼에도 정색을 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알렉스의 행동에 화가 났다는 뜻이다.

속으로 만세를 부른 나는 더 이상의 터치는 그만두고 탕비실 밖으로 나갔다.

**

알렉스와 나는 소속사 건물 옥상에서 따로 만났다.

그는 자신의 패딩 주머니에 손을 넣고 꼼지락거리고 있었는데, 얼굴에서 아까워하는 티가 확 났다.

그로 볼 때 놈의 주머니에 있는 건 돈이었다.

“형, 20만원 꿨던 거 갚을게요. 20만원 딱 맞췄어요. 대표님이 알바비로 준 거예요.”

예상대로, 손을 뺀 놈에겐 흰색 봉투가 들려있었다.

어제 일당으로 최승환에게 받은 것 같은데... 우연의 일치인지 빌려주었던 돈과 딱 맞았구나.

20만원. 시급으로 따지자면 2만원 정도 되나?

스텔라 동생이라고 나름 잘 챙겨주었나보다.

근데 돈은 왜 갚냐?

갚지 마! 그래야 스텔라에게 할 말이 더욱 많아지지!

태연스레 봉투를 받아든 내가 말했다.

“고맙다.”

돈을 갚는다는 당연한 일을 하였음에도, 감사를 표해야하는 쪽은 알렉스임에도 오히려 내가 고맙다고 말했다.

이런 것 하나하나가 호구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는 거다.

다시금 주머니에 손을 넣은 알렉스가 고개를 까딱거리지도 않은 채 내게 사과를 했다.

“그리고 어제 진짜 죄송해요. 제가 괜히 민폐 끼쳐서...”

목소리만 들어보면 죽을죄를 지은 죄인이었다.

하지만 얼굴까지 보면, 억지로 사과를 하고 있다는 티가 났다.

마치 네가 나서서 화를 자초한 건데, 내가 왜 사과를 하고 있냐는 듯했다.

그래도 천지분간이 제대로 안 되는 놈치고는 내게 약간이나마 미안해하고 있었다.

이건 알렉스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선의가 발현된 것이겠지.

난 여느 때처럼 호구 같은 태도로 알렉스를 위로했다.

“괜찮아. 너무 신경 쓰지 마.”

“네... 누나 이미지 깎이지 않게 해주신 거 진짜 감사합니다.”

이번엔 완전한 진심이 보인다.

역시 누나만큼은 격하게 아끼는 놈답다.

“그래. 이제 알바 가지?”

“네. 편의점요.”

요즘 편의점에선 마약도 같이 파나보지?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쑥 들어갔다.

나는 알렉스에게 받은 봉투를 내밀었다.

“날도 추운데 수고한다. 이거 너 다시 쓰고, 여유 되면 갚아도 돼.”

“아뇨. 괜찮아요.”

받지 않는다고? 너무 퍼줘도 문제라니까.

봉투를 품에 넣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바쁜데 얼른 가봐. 오늘 고생했다.”

“형도 고생하세요.”

말만 던지고 쌩하니 옥상을 내려가는 놈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준비됐어요. 말씀만 하시면 내보내겠습니다.]

마르셀라의 문자를 확인하고 옥상 문을 열었다.

**

서울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길.

소속사에서보다 안색이 밝은 스텔라와 함께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운전을 하던 나는 슬쩍 주변 풍경을 보았다.

‘적당하다.’

하늘도 맑고,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 시각적인 효과를 크게 높여줄 것 같았다.

나는 스텔라가 조잘조잘 떠드는 틈을 타 마르셀라에게 신호를 보냈다.

비스트 슬레이어가 마물을 도륙하는 장면을 보여줄 땐 화려한 연출이 중요했다.

그러기 위해선 마천루가 즐비한 도심에 있을 때 출몰시키는 건 지양해야했다.

피해도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되도록이면 사람들이 많이 없는 서울과 경기의 경계선에 내보내는 것이 좋았다.

또한 출몰하자마자 없애야지, 그렇지 않고 마물이 건물이나 인명피해를 내도록 한다면 스텔라는 크게 우울해할 것이다.

내면이 선 그 자체인 그녀로선, 자신의 주변에서 피해가 일어난다면 침울해져선 컨디션 조절에 차질이 있겠지.

게다가 나와 한창 꽁냥거릴 때 우울해하면 안 되니, 이블리언 탐색기에 경고음이 울려 퍼지고, 포탈에서 마물이 나타나려고 할 때에 맞춰 세화를 출동시키는 게 좋다.

“그래서 내가 그랬지. 너 다시 한 번만 담배피우면 통금 걸어버릴 거라고.”

어제 알렉스를 혼냈던 경위를 상세히 설명하던 스텔라.

그녀가 돌연 뚱한 표정을 짓더니 날 불렀다.

“오빠.”

“.... 응?”

“나한테 집중해야지. 말하고 있잖아.”

“나는 운전하고 있는데?”

“자동운행모드로 바꾸면 안 돼? 시간도 널널한데 급하게 갈 필요 있어?”

“이왕이면 일찍 가는 게 좋지.”

“진짜 웃긴다... 예전엔 운전하면서도 잘 받아주더니...”

나는 사탕을 하나 까서 칭얼거리고 있는 스텔라의 입가에 가져다댔다.

그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입으로 받아먹은 그녀가 뺨을 오물거리며 묻는다.

“옥상에서 알렉스랑 무슨 대화 나눴어? 걔가 또 예의 없게 굴었어?”

“그런 건 전혀 없었어. 다짜고짜 사과하길래 괜찮다고 했지.”

“내가 괜찮다고 하지 말랬잖아.”

“진짜 괜찮았으니까 괜찮다고 말하지...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 이제 알렉스 얘기는 그만하자. 넌 예능 걱정이나...”

위이이이이잉­! 위이이이이잉­!

갑작세르 공습 경보음마냥 크게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

당황한 스텔라가 눈을 부릅떴다.

“어...?”

이어서 침착한 여성의 목소리가 주변을 메아리로 가득 메웠다.

[경고, 이블리언 게이지가 감지되었습니다. 시민 여러분들께서는 조속히 지하 벙커로 대피해주시길 바랍니다. 경고, 이블리언 게이지가…….]

나는 곧바로 도처에 산재한 벙커를 향해 핸들을 꺾었다.

그와 동시에 푸르른 하늘이 순식간에 먹으로 뒤덮이더니 주변이 흐려졌다.

이어서 거대한 마물의 아가리가 구름 사이로 나타나고, 특유의 흉측한 아가리를 벌리며 검은 연기를 뿜어내었다.

“오빠... 저거... 괴물...”

스텔라의 목소리는 상당히 떨리고 있었다.

겁을 집어먹은 것이다.

일상이 되어버린 마물들의 출현이지만, 지척이라고 할 수 있는 경기도에 S급 마물이 나타났으니 피부에 직접 와 닿는 공포심이 크겠지.

나는 가까운 벙커로 향하며 한손을 뻗어 스텔라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괜찮아. 벙커에 다 도착했어.”

침착한 내 말투와 손길에 안정이 된 걸까?

스텔라의 떨림이 일부 멎었다.

그와 동시에 저 멀리서 번쩍! 하는 빛이 일어나더니, 푸른 섬광이 어둠을 밀어내며 마물의 아가리를 향해 쏘아졌다.

마치 거대한 혜성이 대기권으로 끌려들어가 연소되는 것 같은 장면.

경악한 스텔라가 하늘을 가리켰다.

“하, 하늘색 빛...! 레오나... 레오나다...!”

방금까지 무서워했던 것과는 달리, 스텔라의 눈빛엔 희망과 동경이 가득했다.

아무리 세화가 구원하러 나타났다지만, 마물을 목전에서 보았음에도 침착함을 되찾는 속도가 빠르다.

역시 넌 천성이 영웅이야.

무기도 곧 완성되는데, 얼른 변신시키고 싶어 미치겠다.

그나저나 이 정도 연출이면 기대이상인데...

뭔가 지구의 종말을 막는 영웅의 고고한 모습 같아서 아주 만족스럽다.

실상은 정반대지만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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