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0화 〉 미운 오리
* * *
보통 신인 가수들은 얼굴과 이름을 알릴 곳이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바쁜 것과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모든 음악방송에 참여하려고 한다.
하지만 스텔라는 달랐다.
보영의 안배로 대망의 날인 오늘만 딱 고생하면, 내일부터는 꽤나 한산했다.
물론 예능, 광고 등 여러 방송에 출연이 예정되어있긴 했다.
하지만 신인 아이돌처럼 살인적인 스케줄은 절대 아니었다.
왜? 이미 보영의 제자, 예쁜 얼굴, 엄청난 가창력 등으로 화제를 잔뜩 모았으니까.
굳이 개고생을 하면서까지 이름을 알릴 필요가 없었다.
편애한다고 안 좋게 보거나, 신인임에도 생방은커녕 사전녹화만 하는 스텔라에게 질투하는 연예인들이 있기야 하겠지만, 뭐 어떠한가.
어차피 세상은 능력주의인데.
꼬우면 보영 같은... 한국에서 수위를 다투는 셀럽을 권속으로 만들든가.
아직 해가 채 뜨기도 전인 새벽 두 시.
방송국에 도착한 스텔라는, 침을 꼴깍 삼키며 자고 있는 알렉스를 깨웠다.
“알렉스, 일어나.”
“아... 씨...”
자신의 현재 감정을 표현한 감탄사를 터뜨린 알렉스가 준비된 모자와 마스크를 썼다.
스텔라의 동생임을 숨기고 싶어 하는 행동이었다.
혹시나 들킬 상황에 대비하는 듯한데, 슬슬 조직에 소속감을 가지고 있음에도 누이에게만큼은 누를 끼치지 않으려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러니까 빨리 망가뜨려주자.
“나 뭐하면 돼요?”
피곤이 가득한 알렉스의 물음.
벌써부터 속속들이 모이기 시작하는 여러 가수의 팬들을 지나 주차장으로 향한 내가 대답했다.
“일단은 희주 누나 만나서, 트렁크에 있는 팬들 선물 옮겨주면 돼.”
“희주 누나는 또 누군데요...”
“소속사 직원이야. 소개해줄게.”
“하... 네.”
알렉스가 자꾸 한숨을 내쉬었다.
꼭두새벽부터 나와 짜증이 솟구친 모양.
내 눈치를 살피던 스텔라가 알렉스를 나무랐다.
“야... 도와주는 건 정말 고마운데... 짜증 좀 안 내면 안 돼? 사전녹화라서 늦게 끝나지는 않을 거야.”
기대감으로 두근두근해진 스텔라의 심정을 순식간에 가라앉히는 것도 능력이었다.
알렉스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알았어.”
“조금 이따가 대표님도 오실 텐데, 또 이런 식으로 하면...”
“알았다고... 미안해.”
“나한테 미안할 게 아니라, 오빠한테 해야지.”
“형, 죄송해요.”
억지로라도 사과는 하네. 누나 말은 잘 듣는 착한 녀석.
차를 잘 대어놓은 내가 대답했다.
“괜찮아.”
**
대기실 복도엔 여러 소속사의 직원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스텔라 외에도 사전녹화 촬영이 있는 가수들이 더러 있었는데, 그들을 본 스텔라는 잔뜩 긴장한 표정인 채였다.
활동하고 있는 동료 가수들을 보는 건 메이크업 샵을 제외하고 처음이라 주눅이 든 모양이었다.
애써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킨 그녀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가수들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스텔라 헤일리입니다!”
과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적당한 인사였다.
그나저나 선배님이라...
변신을 하고 나서 세화를 비롯한 아내들을 만나면 꼬박꼬박 저 호칭을 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현재 막내 포지션인 아델이 무척 좋아할 듯싶은데, 보면 알겠지.
한 명 한 명에게 공손한 예를 갖추고 다니는 스텔라.
다른 가수들이 웃는 낯으로 그녀를 반겼다.
“데뷔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적어도 면전에서 안 좋은 말을 하는 사람들은 전혀 없다고 봐도 좋았다.
다른 곳보다 이미지 관리를 더욱 잘해야 하는 연예계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고, 스텔라의 뒤에 보영이라는 거물이 있어서이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플라워가든입니다!”
이구동성으로 힘차게 인사를 하는 5인조 여자 아이돌도 있었다.
플라워가든이라... 그룹 이름이 별로다.
요새 꽤나 인기를 모으는 아이돌인 건 잘 알고 있다.
TV 채널을 돌리다가 본 적도 있었고.
이번에 컴백한 건가? 실제로 보니 얼굴도 더 작고 몸매도 좋고... 눈이 즐겁다.
알렉스 또한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플라워가든 멤버를 하나하나 자세히 바라보고 있었다.
덩치도 꽤 있는 놈이 마스크와 모자를 쓴 채 노려보듯 보니 무섭다.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하고 다니는 스텔라에게 가까이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대기실에 들어가서 눈 붙여.”
“나 안 졸린데?”
“리허설 딱 한 번 하고 바로 사전녹화 들어갈 거니까, 컨디션 조절하려면 쪽잠이라도 자둬야 돼.”
“그럼 나 담요 줘.”
“대기실에 있어.”
“그거 말고...”
차 안에서 쓰는, 내가 사준 자신의 전용 담요를 달라는 뜻이었다.
이런 어리광... 너무 좋다.
“내 백팩 열어보면 네가 쓰던 거 있으니까, 들어가서 알렉스랑 같이 있어. 조금 있으면 메이크업 선생님 한 분 출장 오실 거고, 리허설 끝나면 메이크업 받아.”
“누군데? 이지안 쌤이야?”
네가 이지안을 탐탁찮게 생각하는 건 잘 안단다.
오늘 같은 날에 네 기분을 초칠 수 있는 그녀를 부르는 건 안 되지.
“아냐.”
스텔라의 눈빛에 안도감이 담겼다.
“알았어. 근데 오빠 왜 어디 가는 것처럼 말해? 나랑 같이 있어야 되잖아.”
“잠깐 희주 누나 도와주러 다녀올 건데, 혹시나 엇갈릴 수 있으니까 미리 말해주는 거야. 금방 올 테니까 자고 있어. 얼른.”
“응.”
**
복부에 큼지막하게 붙은 자신의 이름표를 몇 번이나 만지작거린 스텔라.
마이크를 잡은 그녀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먼 거리에서도 보일 정도다.
어마어마하게 긴장했다는 뜻.
보영의 미니 콘서트에서 카메오 출연을 했을 땐 저런 모습이 전혀 없었는데, 공식적인 데뷔를 앞둬서 겁을 집어먹은 건가 싶다.
리허설임에도 이 정도라면 팬들이 출입할 수 있는 사전녹화 땐 어떨지 걱정된다.
물론 사전녹화이니만큼 무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촬영이 가능하지만, 다른 가수들도 있는 만큼 무한대로 찍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계속 이러면 한 소리 들을 수도 있겠는데...
라고 생각하던 나는, 그녀가 무대에 서서 호흡을 고르기 시작하자 걱정이 기우였음을 확신했다.
가수들이 앉아있는 관객석을 쳐다본 스텔라의 몸이 풀렸기 때문이다.
실전에 들어가니 본능적으로 침착함을 되찾은 거다.
둥!
오늘 저녁에 방송과 인터넷에 공개될 신곡의 인트로가 들려오자, 스텔라가 살살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무대 옆을 흘깃거리며 나와 눈을 맞춘 그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잔잔한 인트로를 들으며 집중하던 그녀는, 음악이 1절 초입에 들어서자 마이크에 입을 가져갔다.
방황하고 있는 그대여...♬
이어지는 스텔라의 라이브는 모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귀가 청소된다고 느낄 정도로 깨끗한 목소리로 무대 안은 물론 바깥까지 압도하는 그녀.
좋은 음향시설 덕에 평소보다 더 청아하게 들린다.
관객석에 앉아 잡담을 나누던 가수들도, 시큰둥한 얼굴로 휴대폰만 만지작거리고 있던 알렉스도 첫 음절을 듣자마자 스텔라에게 집중했다.
음색에 한 번 놀라고, 후반부 클라이맥스 포인트 부분에서 놀라고, 능숙한 마무리 솜씨에 또 놀라고...
아련하고 몽환적인 음색으로 모두의 이목을 자신에게로 끌어들인 스텔라는, 평온하게 리허설 라이브를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리고는 내 곁으로 다가와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어땠어?”
격려차 스텔라의 등을 약하게 두드려준 내가 말했다.
“잘했어. 목 잘 풀렸더라. 이따 녹화 들어가면 카메라랑 컨택도 해봐. 다른 가수들 때문에 찍는 횟수가 한정되어있어서 최대한 잘 따야 돼. 알았지?”
“응.”
순순히 대답한 스텔라가 이번엔 알렉스를 바라보았다.
“야. 마스크 좀 벗으면 안 되냐? 안 답답해?”
“.... 뭐래... 신경 꺼.”
“나 잘했지?”
“별로던데.”
솔직하지 못하기는... 쯔쯔...
나는 어이없어하는 스텔라를 데리고 대기실로 복귀했고, 리허설 모니터링을 함께 끝냈다.
이후 사전녹화 차례가 되자 곧바로 사전녹화에 들어갔다.
사전녹화는 그다지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었다.
스텔라가 여러 대의 카메라 중 어디를 봐야할지 헷갈려했던 것이다.
오로지 스텔라만을 응원하기 위해 찾아온 팬들을 보고 쫄아버리고, 그들이 깔깔거리는 소리에 쑥스럽다는 듯 머리를 긁적인 건 덤이었다.
편집이 되기야 하겠지만, 스텔라의 순수해 보이는그림이 워낙 좋은데다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음악방송이라, 이슈몰이용으로 몇 가지를 추려 내보내긴 할 것 같았다.
이렇듯 실수를 하긴 했어도 스텔라를 나쁘게 보는 방송국 사람이나 팬들은 없다시피 했다.
오히려 솔직한 감정이 드러나서 예쁘게 봐주었고, 흩날리는 분홍색 꽃잎과 함께 본격적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을 땐 조용해져선 시선을 집중했다.
관객석에서 들려오는 큼지막한 응원소리에 보답하듯, 감정이입부터 전달까지 완벽하게 노래를 끝낸 스텔라.
조신하게 고개를 꾸벅 숙이는 것으로 녹화를 끝낸 그녀는, 이제 한시름 덜었다는 듯 혀를 쏙 빼내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데뷔이니만큼 완벽주의를 추구해서 몇 차례 다시 찍기야 하겠지만, 곤란한 일은 전혀 없을 것 같았다.
만면에 미소를 띤 채로 스텔라를 마구 칭찬하고 있는 최승환을 보니 그 생각에 확신이 더해진다.
내일 스텔라와 관련된 뉴스는 호평일색일 거다.
저녁에 공개될 뮤직비디오와 음원 또한 반응이 폭발적일 테고...
올 킬은 따 놓은 당상이겠지. 40만 로즈마리 년놈들아, 스트리밍 꼭 해라.
**
오후 2시.
녹화를 모두 끝낸 스텔라는 방송국이 특별히 제공해준 빈 소규모 홀에서 팬들과 만났다.
홀가분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쥔 스텔라가 말했다.
“우리 로즈마리 여러분, 오늘 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아직 집에 돌아가신 분들 없죠?”
네에에!
떼창이라도 할 기세로 대답하는 팬들.
뿌듯해한 스텔라가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진짜죠? 나중에 선물 나눠드릴 때 숫자 세어볼 거예요.”
하하하!
“노래를 불러드리고, 준비한 선물을 드리면서 이 자리를 마무리하려고 해요. 하지만 제가 신인이다 보니 곡이 하나밖에 없어요. 대신 스승님이신 보영이 언니한테 허락도 받았으니까, 보영이 언니 대표곡 두 곡이랑 제 신곡을 같이 들려드릴게요. 이후엔 모두에게 사인도 해드릴 거구, 저희 소속사의 맏언니인 희주 언니한테…….”
겸손한 투로 긴 이야기를 끝마친 스텔라.
그녀는 곧 녹화 때 부른 데뷔곡을 반주도 없이 부르기 시작했다.
1절씩만 불렀으나 뭐라고 하는 팬들은 단언컨대 단 한 명도 없었다.
예정에 없는 팬서비스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팬들의 마음을 훌륭하게 잡아낸 스텔라는, 나와 알렉스, 그리고 최승환의 보호 아래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기 시작했다.
정성을 들인 사인을 받고, 천희주에게 선물까지 받아가며 행복에 겨워하는 로즈마리들.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끝날 것 같았던 팬사인회였지만...
사건은 그때 터졌다.
“아 씨... 말 왜 이렇게 많아...”
알렉스가 스텔라를 향해 호들갑을 떠는 한 팬을 보며 좋지 않은 말을 중얼거렸기 때문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지금까지 눈을 뜨고 있어 졸음은 쏟아지는데,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성질이 뻗친 모양이었다.
그 소리를 들은 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래서 알렉스를 여기 데려온 거다.
무난한 데뷔 날 사고를 하나 일으키려고.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놈의 모습을 보니, 이 마왕님의 기분이 상당히 좋아지는구나.
상황을 보니 욕을 들은 사람은 스텔라, 나, 최승환, 그리고 그 팬밖에는 없었다.
알렉스의 목소리가 작았던 탓.
나는 재빨리 알렉스를 최승환에게 보내고 욕을 먹은 팬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는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사람이 모자라서 제 친구한테 도와달라고 했는데... 제 불찰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러면 다른 팬들이 욕을 먹은 팬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물어볼 테지.
그 팬은 겪었던 일을 가감 없이 말할 테고.
알렉스를 내 친구라고 거짓말을 하여, 비난의 화살을 내 쪽으로 돌리는 게 중요하다.
욕은 내가 다 얻어먹을 테니까, 스텔라 너는 나한테 사랑을 줘라.
난 그거면 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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