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9화 〉 스텔라, 전격 데뷔! #4
* * *
스텔라의 집에 들어온 소감은 딱 한 줄로 정리할 수 있었다.
향기로운 꽃밭 가운데에 있는 옥수수 하나.
이게 바로 내 감상이다.
대마초는 특유의 옥수수 쩐내가 있다.
그게 지금 집 안에서 아주 약하게 풍겨져오고 있었다.
코가 그리 민감하지 않은 스텔라는 느끼지 못하고 있겠지만, 나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알렉스가 학창시절 몰래 담배를 태우듯 대마를 피웠음을 말이다.
아직 집 전체에 배이지는 않은 것으로 보아 밖에서 피우는 모양인데, 지금은 어찌 냄새를 잘 가리고 있지만 나중엔 스텔라도 눈치챌 것이다.
“어때? 아담하지?”
내 음모를 꿈에도 모르고 있는 스텔라의 물음이었다.
조리되지 않은 낙곱새 재료들을 식탁에 내려놓은 내가 대답했다.
“집 좋네. 좋은 냄새 난다.”
“오빠가 저번에 준 섬유유연제 냄새일 걸? 거실에 건조...”
말끝을 흐린 스텔라가 황급히 건조대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자신의 속옷을 거의 훔치듯 낚아채 핸드백에 마구 쑤셔 넣었다.
가족 같다고 할 땐 언제고, 그 가족에게 속옷을 보여주기에는 뻘줌한가보다.
슬슬 남자로 느끼려는 건가? 저 행동은 내겐 좋으면 좋았지 나쁘지는 않았다.
그녀를 못 본 척해준 나는 외투를 벗었다.
“이거 어디다 놔?”
“그거...? 그냥 옷걸이에 걸어놓으면 돼. 알렉스! 인사해! 지혁이 오빠 왔...”
알렉스의 방으로 보이는 문을 연 스텔라가 고개를 갸웃한다.
“아직 안 왔나보네...? 나갈 때 이불 정리 좀 하라니까...”
동생의 침대를 능숙한 솜씨로 편 스텔라가 밖으로 나와 휴대폰을 들었다.
“너 어디야? 오늘 늦는다고? 왜? 아... 알바? 같이 밥 먹으려고 했는데... 응... 응. 알았어. 끝나면 연락해.”
전화를 끊은 스텔라가 곤란한 듯 날 올려다본다.
“야간타임 알바가 안 와서 자기가 봐줘야 된다는데? 오래 걸릴지도 모른대.”
알렉스의 거짓말이 꽤나 능숙하다.
기특한 새끼... 자꾸 이렇게 업보를 쌓아주니까 감격스럽네.
그나저나 동생을 철석같이 믿는 스텔라가 안쓰럽다.
나중에 알면 배신감이 어마어마할 텐데... 그땐 내 품에 안겨서 위로를 받으렴.
“그래? 그럼 다음에 먹을까?”
“뭐래... 나 지금 엄청 배고프거든? 그냥 지금 같이 먹어. 저기 화장실이니까 손 씻고 와.”
자기 집이라고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데, 절로 웃음이 나오려고 한다.
집 구조를 보아하니 화장실은 거실에 딱 하나밖에 없는 듯했다.
이러면 나중에 여기서 음란한 짓을 하게 됐을 때, 상당히 재미있어질 것 같다.
**
“곱창은 따로 빼야지. 다 같이 섞어버리면 맛 배겨. 국자 줘봐.”
“내가 할게.”
“줘봐.”
“내가 한다니까? 오빠는 그냥 앉아있기나 해.”
손님을 맞이해준답시고 혼자 모든 일을 다 하려는 스텔라.
그녀의 손에서 국자를 빼앗다시피 한 나는, 낙지와 새우 여기저기에 섞여있는 곱창을 따로 걸러내기 시작했다.
스텔라는 방금 고집을 부렸던 것과는 달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냄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느끼고 있는 것이다.
집이라는 공간에 동생이 아닌 다른 남자를 초대했고, 단둘이 요리를 만들고 있다는 묘한 감정을.
이걸 살살 풀어 좋은 쪽으로 두근거리게끔 만들어야한다.
의견이 맞지 않아도 좁혀가면서, 그리고 함께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기쁨을 느끼게끔 할 수 있도록 친절하고 상냥하게,
스텔라의 성격을 아주 잘 안다는 듯한 뉘앙스.
이 두 가지만 해줘도 충분하다.
묵묵히 곱창을 그릇에다 죄다 걸러낸 내가 물었다.
“프라이팬 없어?”
“응...? 아... 구워먹게?”
“그래야지. 아니면 국물 조금만 덜까?”
“음... 일단은 따로 구운 다음, 다 되면 국물에 찍어먹으면 안 돼? 지금 덜어내면 싱거워질 것 같아.”
“그래도 돼. 프라이팬 줘.”
“잠깐만...”
수납장을 연 스텔라가 더듬더듬 팔을 뻗어 프라이팬을 꺼내 가스레인지에 올려놓는다.
라면사리를 까고 있던 나는, 스텔라가 뒤집개로 곱창을 구우려고 하자 피식했다.
그러자 스텔라가 자신의 큼지막한 눈망울을 데굴 굴리며 날 바라본다.
“왜 웃어?”
“그냥. 기름 튀면 흉터 생길지도 모르니까 구우는 건 내가 할게. 넌 전골만 봐.”
“내가 해도 되는데... 나 긴팔 입었어.”
“장갑은 없어서 손은 맨손이잖아. 그리고 너 뜨거운 거 묻으면 오버할 게 뻔한데, 그냥 하나하나씩 맡아서 하자.”
“뭐래... 오버 안 하거든?”
말은 그렇게 해놓고 얌전히 뒤집개를 내게 넘기는 스텔라였다.
얼굴이 약간 상기되어 보이는데, 기뻐하고 있지만 표내지 않으려는 게 눈에 보인다.
맨날 혼자 밥 하느라 외로웠지?
이젠 심심할 때마다 나 불러라.
우여곡절 끝에 낙곱새를 완성한 우린, 식탁에 나란히 앉아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사사로운 대화도 하고, 재미없는 개그에 빵 터지기도 하고, 데뷔를 앞둔 스텔라를 격려해주기도 한 나는, 맥주로 인해 얼굴이 살짝 달아오른 스텔라를 보며 확신에 찼다.
오늘 이후로 우리 관계는 한 단계 발전한다.
분명히 썸을 타는 것 같긴 한데, 고백을 하면 받아주지 않을 듯한 느낌.
애매모호하면서도 달달한 느낌.
싱숭생숭 그 자체.
이정도로 변화할 것이다.
음식을 다 먹은 나는, 설거지만큼은 자기가 하겠다며 한사코 만류하는 스텔라를 보며 당부했다.
“알았어. 내일 도착하기 5분 전에 연락할 테니까 시간 맞춰서 나와. 늦잠 자면 혼날 줄 알아.”
“내가 시간 약속 어긴 적 있어?”
“맥주 마셨잖아.”
“고작 한 캔이야. 나 안 취했어.”
알코올 분해가 잘 되는 체질이 있고, 안 되는 체질이 있다.
스텔라는 후자였다.
고작 355ml짜리 맥주를 마셨다고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 상태.
마치 성질은 났는데 화를 낼 줄 모르는 사람을 마주하는 것 같아 웃겼다.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 갈게.”
“운전 조심해서 해. 도착하면 연락하구.”
연락하기 전에 네가 뻗을 것 같은데.
속이 어떤지는 몰라도 겉모습만큼은 곤드레만드레 그 자체야.
스텔라의 머리를 헝클어뜨려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나는, 현관문을 열고 복도를 거닐었다.
뒤에서 스텔라의 시선이 느껴지는 건 착각인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까지 내려온 나는, 공동현관에서 삐딱한 자세로 들어오는 알렉스와 마주쳤다.
날 보고 눈을 크게 뜬 놈이 묻는다.
“지혁이 형? 여기서 뭐해요?”
여자 향수냄새가 진득하게 배어있다.
룸싸롱에서 신나게 놀고 왔다는 증거.
양주 냄새 또한 조금 났다. 다만 스텔라와는 다르게 티가 나지 않았다.
“너희 집에서 밥 먹고 이제 가려고. 잘 지냈어? 알바는 잘 끝났고?”
“아... 누나가 전화했을 때 집에 있었어요?”
“응. 너랑 같이 낙곱새 먹으려고 했는데, 알바 연장한다고 해서 둘이 먹었어.”
“그래요? 다행이네.”
다행이라?
알렉스의 표정이 약간 풀어진 것으로 보아, 누나 혼자 밥을 먹은 게 마음에 걸렸는데 내가 와서 같이 먹어주니 그나마 안심한 듯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누나에게만큼은 진심인 동생이구나.
진정 누나를 위한다면 당장 내 목에 칼을 꽂아야하는데... 아쉽게 됐다.
“근데 형, 저번에 빌린 돈은 나중에 갚을게요. 지금 여기저기서 빌린데 먼저 갚느라고...”
입만 열면 거짓말이니! 혼쭐나려고!
나는 전형적인 호구의 대답을 해주기로 했다.
“괜찮아. 천천히 갚아도 돼.”
“네. 형 근데 내 방에 들어가거나 한 건 아니죠?”
“거실에만 있었어. 늦었으니까 이만 간다. 알바 수고했고, 너네 누나 데뷔 얼마 안 남았으니까 집에서는 푹 쉬게 해줘.”
“뭐래... 왜 내가 누나를 괴롭히는 것처럼 말해요?”
발끈하는 알렉스.
음음... 싸가지가 많이 없어졌구나.
아주 좋아.
“그렇게 말한 적 없어.”
“우리 집안일에 신경 꺼요. 형만 누나 챙기는 줄 알아요? 나도 알아서 열심히 챙긴다고.”
“오해했다면 미안하다. 그럴 의도로 말하려는 건 아니었어.”
“예.”
퉁명스레 대답한 알렉스가 내 어깨를 스쳐지나갔다.
어깨빵은 안 하나? 아직 여린 구석이 있네.
너도 내가 키워줄게. 아주 나쁜 쪽으로.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알렉스를 불렀다.
“알렉스.”
“왜요?”
“사흘 뒤에 너네 누나 데뷔하는데, 올 거지?”
“알바 때문에 못 갈 것 같은데...”
“주말인데 빼달라고 못해? 사전녹화 때 사람이 모자라서 손이 필요해. 그냥 알바 쓰기엔 미덥지가 않아서 그래. 소속사 대표님도 네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너 누나 엄청 사랑하잖아.
그러니까 도와줘야지. 기념비적인 첫 데뷔인데.
예상대로, 잠깐 고뇌하던 알렉스에게서 긍정적인 신호가 왔다.
“뭐하면 되는데요?”
“짐 나르고,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혹시나 스텔라한테 달려드는 팬들 있으면 막아주고... 뭐 이런 거지. 일은 간단한데 시간이 오래 걸려. 도와주라. 너희 누나 첫 데뷔잖아.”
“.... 사장님한테 한 번 말해볼게요.”
아무 변명이나 지어내.
생각하기 힘들면 그냥 감기 걸렸다고 해.
뭘 지껄이든 허락해주마.
**
“지혁이 왔냐? 스텔라는?”
살이 조금 쪄가고 있는 최승환의 물음.
천희주와 함께 스케줄을 점검해보던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오셨습니까, 스텔라 지금 회의실에 있어요.”
“혼자 거기서 뭐한대?”
“사전녹화 참여 신청한 팬들 명단 따서, 손편지 쓰는 중이에요.”
“300명한테 전부? 너무 힘들지 않나?”
“저도 똑같이 말했는데, 짧게 쓸 거라서 괜찮다고 하던데요?”
“팬심 얻는 법을 아주 잘 알고 있네. 보영이도 그렇게는 안 했는데. 근데 지혁아, 잠깐만 이리 와봐라.”
부하를 부리듯 손을 까딱 하는 최승환.
고생하라는 척 천희주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준 나는, 최승환과 함께 가장 회의실 옆방으로 들어가 대화를 나누었다.
“스텔라 동생이 도와준대?”
“스텔라가 그러는데, 동생이 사장님한테 말해서 알바 뺐대요.”
“다행이네. 내가 그날 방송국 PD랑 스텔라 예능 출연 건으로 회의할 게 있거든? 방송국에 도착하자마자 만나러 갈 건데... 그때까지는 너희 둘이 고생해줘야겠다. 회의는 최대한 빨리 끝내볼게.”
“알겠습니다.”
“믿는다.”
“예, 형님.”
최승환이 내 어깨를 두드려주고는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놈의 더러운 피부가 닿았던 부분을 툭툭 턴 나는 방을 나가다가, 잠시 쉬러 나온 듯한 스텔라와 마주쳤다.
슬쩍 인포 데스크에 있는 천희주를 살펴본 스텔라가 내 옷깃을 잡고 회의실로 끌고 들어왔다.
“옆방에서 목소리 들리던데, 거기서 뭐했어?”
“대표님이랑 짧게 얘기했어.”
“무슨 얘기했는데?”
“네 데뷔 날에 관한 거야. 포스트잇은? 몇 장 썼어?”
“70장... 더 이상은 생각이 안 나서 못 쓰겠어.”
스텔라의 머리는 잔뜩 흐트러져있었다.
고민이 깊어 머리를 벅벅 긁었다는 방증.
실소를 터뜨린 나는 스텔라의 손목을 잡아당겨 그녀의 팔을 쭉 폈다.
이후 탁상에 놓인 물티슈를 뽑아, 새하얀 피부에 묻어있는 거뭇한 볼펜자국을 지워주었다.
“왜 여기까지 묻어있어? 팔목에 그림 그렸냐?”
“.... 자국 있는 줄 몰랐어.”
쑥스러워하고 있다.
오늘 아침부터 요조숙녀마냥 조신했는데... 귀여워 죽겠다.
마른 휴지로 스텔라의 팔목을 닦아내는 것으로 마무리한 나는, 올라간 그녀의 긴팔 소매를 내려주었다.
그리고는 지나가듯 말했다.
“데뷔까지 힘내자. 네가 제일 힘들겠지만 나도 열심히 도울게.”
“응...”
데뷔 이후엔 잡아놓은 마물을 한 마리 정도 풀어놔야겠다.
슬슬 변신을 위한 떡밥도 던져놓을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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