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8화 〉 스텔라, 전격 데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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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를 사흘 앞둔 스텔라의 스케줄은 무탈하게 흘러갔다.
촬영 날로부터 또 일주일가량이 지난 지금, 본격적으로 신곡 홍보에 들어간 스텔라와 나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달콤한 저녁이 되길 기원합니다. ‘오늘의 퇴근길 라디오’ MC, 양희훈입니다. 오늘은 현 대한민국 가요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분과 함께하겠습니다. 연예뉴스 어딜 가든 이분의 뉴스뿐이죠? 방금 들으셨던 오프닝 곡의 주인공, 스텔라 헤일리입니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퇴근길 라디오 청취자 여러분! ABC엔터 소속 스텔라 헤일리라고 합니다!
어우... 한국어를 굉장히 잘하시네요. 스텔라 씨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한국인이라고 착각하실 수도 있겠어요.
감사합니다! 열심히 공부했어요!
침착함과 발랄함의 조화. 나쁘지 않다.
MC의 표정도 환하고, 스텔라의 목소리는 라디오 특유의 고요한 분위기와 더없이 어울린다.
걱정할 부분은 전혀 없는 듯싶다.
팔짱을 낀 채 스텔라와 MC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최승환에게서 전화가 오자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댔다.
“예, 형님. 지금 라디오 듣고 계십니까?”
어. 대본 컨펌한 거에서 바뀐 부분 없지?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이 안 되게 생겼냐? 대형 라디오 방송 섭외인데... 어쨌든 네가 잘 지켜봐라. 믿는다.
“예.”
지금 우린 한 대형 방송사 라디오 방송국에서 섭외를 받아 방송국에 온 상태였다.
데뷔곡도 나오지 않은 가수임에도 메이저, 게다가 황금시간대에 편성된 라디오의 게스트로 출연.
스텔라의 영향력이 얼마나 되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외에도 데뷔 후 각종 예능 오프닝과 마지막 광고시간 때 15초 타이업,
음악방송 후순위는 물론이고 단독촬영 등...
이런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스텔라를 위한 프로모션이 굉장히 많았다.
예능 섭외도 하루에 몇 건씩 오는 수준.
스텔라는 데뷔만 하면 앞길이 탄탄대로였다.
첫 뮤직비디오 촬영이 굉장히 힘드셨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겪어보니까 어떠셨나요?
쪼오끔 많이 힘들었어요.
하하하! 쪼오끔 많이?
네, 쪼오끔에서 많이... 농담이구요. 모두 잘 대해주셔서 무리 없이 끝낼 수 있었어요. 촬영 감독님이랑, 촬영장 스탭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스텔라의 쾌활한 목소리를 듣다 보면 감정이 전해진다.
전파를 통한 목소리라지만, 촬영을 했던 년놈들이 만약 지금 라디오를 듣고 있다면 그녀의 진심을 알 것이다.
이러니까 빠돌이가 된 것 같은데... 자중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많은 팬분들이 기대하는 뮤직비디오는 지금 완성된 상태죠?
네!
처음 봤을 때 심정이 어땠나요? 두근두근 거리고 그랬어요?
두근두근하기보다는 엄청 긴장했어요. 땀이 막... 뭐라고 해야 되지? 땀을 엄청 많이 흘릴 때 쓰는 표현 있잖아요. 그게 뭐였죠?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아! 그거 맞아요! 땀이 비 오듯 쏟아지면서 심장이 벌렁벌렁... 하아... 또 생각하니까 긴장되네요.
무난하게 흘러가는 대화.
투명한 녹음실의 창문을 통해 스텔라와 눈을 마주친 나는, 그녀에게 잘하고 있다는 뜻으로 엄지를 치켜세워주었다.
무대 공포증이 있으신 건 아닌가요?
그건 절대 아니에요. 그냥 제 기념비적인 첫 뮤직비디오가 나와서 기대감에 긴장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단호하시네요. 농담이었습니다. 채보영 씨의 미니 콘서트에 게스트로 나왔던 걸 생각하면 당연히 없겠죠.
데뷔일이 앞당겨진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대부분의 팬들은 기대하고 있긴 하지만, 몇몇 사람들 중에선 소속사가 너무 급한 거 아니냐고 우려를 표하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엄밀히 말하자면 데뷔일이 앞당겨진 건 아니구요. 편집 팀 덕분에 뮤직비디오가 예상외로 빨리 나와서 일정이 당겨진 것뿐이에요.
그게 데뷔일이 앞당겨진 거 아닌가요?
그런가...?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 무식해요...
순식간에 시무룩해져선 사과를 하는 스텔라.
빵 터진 MC가 열심히 그녀를 달래주었다.
이어서 신곡에 대한 소개를 한 뒤 클라이맥스 부분을 짧게 부르고, 팬들이 물어보고 싶은 주제에 대한 질의응답이 오갔다.
그렇게 40분가량이 지난 끝에 마무리 멘트를 할 때가 되고,
MC가 판을 깔아주자, 스텔라가 진심을 담아 준비한 멘트를 말했다.
데뷔곡 Dreamer 많이 사랑해주세요. 최승환 대표님, 그리고 보영이 언니, 희주 언니, 매니저 지혁이 오빠, 마지막으로 우리 로즈마리 여러분들... 제가 엄청 사랑해요. 저희 오래오래 가요!
내 이름을 언급할 때, 그녀가 시선을 슬쩍 돌려 나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너무 귀여워서 심장이 아프다.
**
[스텔라 헤일리, 사흘 뒤 지상파 음악방송서 데뷔! 데뷔곡 Dreamer 성적 예측.]
[로즈마리 팬 카페 회원수 40만 명 돌파, 엄청난 성장세.]
[해외 KPOP 팬들도 스텔라 헤일리에게 관심. 알음알음 알려지고 있는 그녀의 이름.]
[오늘의 퇴근길 라디오에 스텔라 헤일리 출연.]
오늘 나온 뉴스를 뿌듯한 표정으로 읽어 내려가던 나는,
[아이돌 APIX 리더 ‘스텔라 헤일리가 이상형. 목소리가 너무 좋다. 같이 곡 하나만 작업하고 싶다.’ 듀엣 구애.]
아주 거지같은 뉴스를 발견하고 인상을 팍 구겼다.
이상형, 듀엣 같은 소리하고 있네.
과장하길 좋아하는 뉴스의 특성상 걸러 읽어야할 필요가 있겠지만, 이상형이라는 말은 했을 것 같다.
그냥 넘어가기 힘들다.
나는 뉴스 링크를 첨부해 마르셀라에게 톡을 보냈다.
[이놈 뒤 캐서 스캔들 하나 크게 터뜨려봐.]
지금도 스텔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이놈은 특히나 짜증난다.
뉴스에 자기 소신을 밝히는 게 마음에 안 든다.
인기가 많은 아이돌인 것 같은데, 나락으로 보내줘야겠다.
사고사로 처리하는 게 가장 깔끔하긴 한데, 이러면 추모한다느니 뭐니 해서 스텔라의 스케줄에 영향이 갈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감옥에 보내는 것으로 만족하고 나중에 개... 아니, 마물 먹이로 줘야겠다.
“오빠, 뭐해?”
화장실에 다녀온 스텔라의 물음.
뒤를 돌아본 내가 태연스레 대답했다.
“그냥 뉴스 봐.”
“엄청 화나 보였는데... 뒤에서 살기 같은 게 느껴졌어.”
“살기는 무슨... 내가 만화 그만 보랬지?”
물기가 약간 묻은 자신의 손을 내 옷자락에 닦아낸 그녀가 말했다.
“내가 오빠 X플릭스 프로필에 보관함 하나 만들어놨거든? 같이 보자. 엄청 재밌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애니메이션이래. 지금 시즌 10까지 있어.”
“됐고, 프로필이나 새로 만들어.”
“야한 영화 봐야 되는데 나한테 들킬까봐 걱정돼서 그러지?”
장난스러운 투로 날 놀리려 하는 스텔라.
헛웃음을 켠 나는 말없이 뒷좌석 문을 열었다.
그러자 스텔라가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조수석을 열어달라는 의미였다.
“안 피곤해? 그냥 잠이나 자지?”
“뭐 맨날 자래... 이제 적응돼서 괜찮다니까?”
“정신은 멀쩡할지 몰라도...”
“몸은 피로가 누적되고 있다고? 또 또 잔소리...”
과장되게 어깨를 늘어뜨려 질렸음을 표현한 스텔라가 뒷좌석에서 담요를 꺼내더니, 조수석 문을 열고 올라탔다.
그러더니 얼른 타라는 듯 운전석 시트를 가리키며 문을 닫았다.
담요 끄트머리가 문틈에 껴있는 것도 모르는 모습이 웃기다.
꼭 하루에 한 번씩은 이렇게 덜렁거리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정말 좋다.
이런 사소한 것들에서도 내 의존도를 키울 수 있었으니까.
조수석 문을 다시 연 나는, 삐져나왔던 담요를 손으로 털어내고 스텔라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이후 운전석으로 가서 시동을 걸자, 스텔라가 상체를 수그리며 걱정스런 투로 묻는다.
“오빠 요새 잠 잘 못 자지?”
“잘 자고 있어.”
“거짓말하지 마. 다크서클이 광대까지 내려왔잖아. 눈이 나날이 퀭해지는데 잘 자긴 뭘 잘 자?”
“넌 데뷔만 신경 써. 괜히 이상한데 정신 팔리지 말고.”
“말 되게 서운하게 하네? 오빠가 이상한 데야? 내가 커피 사올게. 근처 카페 아무데나 내려줘.”
거의 코가 맞닿을 듯 가까운 스텔라의 얼굴.
향긋한 냄새가 정신을 쏙 빼놓는다.
혹시 내가 스텔라의 여우 짓에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중지를 구부린 나는 스텔라의 이마에 아주 약한 딱밤을 때렸다.
툭!
“아!”
짤막한 비명소리를 낸 스텔라가 이마를 부여잡았다.
전혀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는데 엄살을 부리는 게 깜찍하다.
차를 출발시킨 내가 지나가듯 물었다.
“알렉스는 잘 지내?”
“요즘 편의점 알바랑 게임하면서 지내. 주급으로 받는다는데... 컴퓨터 부품 같은 거 막 사더라. 돈만 헤프게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
동생이 마약 판매책인 걸 꿈에도 모른 채 언제 아팠냐는 듯 조잘거리는 그녀였다.
“그래도 기특하네.”
“기특하긴 무슨... 아직 한참 멀었어.”
띠링!
거치대에 올려놓았던 휴대폰에서 알람이 울렸다.
이지안의 톡. 그것을 본 스텔라가 고운 미간을 좁힌다.
“이지안 쌤인데... 라디오 잘 들었대. 스텔라 최고... 이러시는데?”
“알았어.”
“칭찬할 거면 나한테 해야지, 왜 오빠한테 해? 딱 봐도 관심표현이네.”
“너한테 직접 말하고 싶은데 전화번호가 없으니까 그런 거겠지. 내일 샵 가면 너한테 호들갑떨 걸? 어제도 네 팬 카페에 가입했다고 했어.”
“그건 오빠가 내 매니저 일로 바쁘니까, 대화를 이어나가려면 날 언급할 수밖에 없어서 그냥 하는 말이지... 공감대 형성 몰라? 오빠 진짜 순진하다...”
그건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인데.
넌 순진하다 못해 순수해.
너무 깨끗해. 그래서 물들이고 싶어.
나는 한손을 뻗어 스텔라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마치 동생, 딸내미를 대하듯 장난스럽게.
그러자 스텔라가 머리에 힘을 쫙 뺀다.
내 손길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해줘서 고마운데...”
“난 오빠 일 말고 데뷔만 신경 쓰라고? 또 서운하게 할래? 한 번만 더 그러면 나도 똑같이 말할 거야.”
“뭐라고 할 건데?”
“나한테 신경 쓰지 말라고.”
“매니전데 어떻게 그래. 그만두라는 거야?”
“아 오빠!”
서운하다는 티를 마구 뿜어내며 점잖게 큰소리를 내는 스텔라.
그러니까 본전도 못 건질 말을 왜 하냐?
스텔라의 머리를 대충 정리해준 내가 말했다.
“농담이야. 배고프지?”
“.... 조금.”
“저 앞에 낙곱새 가게 있는데 들러야겠다. 집에서 알렉스랑 둘이서 먹어. 너 곱창 싫어하니까 따로 포장해달라고 하자.”
“곱창은 오빠가 가져가서 먹게?”
“그래야지.”
“그러지 말고 그냥 우리 집에 와서 같이 먹을래? 어차피 내일 스케줄도 오후부터 시작이잖아.”
눈이 번쩍 뜨인다.
개인적인 공간으로의 초대. 얼마나 바라고 바랐던 일이던가.
뿌듯해서 날아갈 것만 같다.
“그럴까?”
“응. 나 라디오도 잘한 기념으로 맥주도 사자.”
“누가 잘했대?”
“나 한창 말하고 있을 때 오빠가 엄지 들었잖아. 잘했다는 거 아니야? 맞지?”
당돌한 거 봐라? 자신감이 붙은 모양이다.
“뭐... 그렇지. 근데 맥주는 안 돼. 너무 늦었어.”
“아 왜 자꾸 날 통제하려고만 해... 잘했을 땐 풀어주고 상도 줘야 정상 아니야? 강아지 키울 때도 이렇게는 안 하겠다...”
“통제는 무슨 통제야. 네가 무슨 사춘기 어린애냐? 술기운 올라가면 내일 피곤해져서 스케줄 소화하기 힘들어.”
“딱 한 캔만 마실게... 한 캔 가지고 안 취해... 응? 고작 맥주잖아...”
검지를 펴고 내 허리를 콕콕 찌르는 것이, 어지간히 마시고 싶은가보다.
한숨을 내쉰 나는 마지못한 척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았으니까 그만 찔러. 운전 집중하게.”
“진짜? 진짜 마셔도 돼?”
안색이 환해진 스텔라의 물음.
혀를 찬 내가 말했다.
“한 캔 말고 반 캔만 마셔. 대신 대표님한테는 비밀이다.”
“무조건 비밀로 할게...! 내일 늦잠도 안 잘게!”
간식을 얻은 강아지마냥 기뻐서 날뛰는 그녀.
저렇게 예쁜 표정을 짓는데 어찌 통제를 안 하고 배기겠는가.
순진한 우리 덜렁이... 넌 나한테 사육당하는 게 맞아.
그래야 이 삭막한 세상을 잘 해쳐나가지.
내가 잘 키워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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