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5화 〉 염탐꾼 스텔라 #2
* * *
연수가 내 뉴스를 본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어떠한 경로로 내 소식을 접하게 됐는지는 모른다.
스텔라의 스승인 보영이 같은 소속사여서 찾아보다가 발견한 것일 수도 있고, 다른 경로로 발견했을 수도 있다.
뭐가 됐든지 간에, 연수의 반응은 내게 있어서 호재였다.
아까 차에서 보여준 스텔라의 반응만 봐도 답이 나왔다.
읽지 않은 상태로 떡밥을 던져주니 제대로 물었고, 효과는 발군.
중간중간에 날 살피는 스텔라가 그 증거였다.
촬영을 할 땐 프로답게 임했지만, 쉬는 시간만 되면 날 의식하여 자꾸 흘깃거리고 있었다.
내가 휴대폰을 하는지 안 하는지 확인해보려는 행동.
정확히 말하자면 연수에게 어떠한 답장을 보내는지 궁금해서 저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완벽하다.’
알렉스를 향한 마수도 잘 뻗쳐나가고 있고, 지금 이 스텔라의 반응도 좋고...
지금 당장 화장실로 달려가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을 정도다.
나는 스텔라가 볼 수 있게끔, 의도적이게 보이지는 않게끔 하여 휴대폰을 확인했다.
[답장 안 해? 최아람 씨가 출장 갔다고 했는데 그거 거짓말이었냐?]
텍스트 안에 분노가 담겨있다.
감히 소모품 주제에 따지고 들다니... 주제를 넘어도 한참 넘었구나.
[아니, 출장은 다녀왔는데.]
[매니저는 왜 하는데?]
[그냥.]
[그냥 매니저를 한다고? 말이 돼? 너 스텔라 헤일리랑 무슨 커넥션 같은 거 있어?]
당연히 있지. 운명의 연결고리가.
[시끄럽고, 사진이나 하나 보내봐.]
[무슨 사진?]
[알몸사진. 다리 벌어져있으면 더 좋고.]
[미친놈 아니야? 꺼져. 당분간 연락하지 마.]
연수야, 그건 네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너 자꾸 이렇게 기어오르면 세화한테 죽이라고 한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그 뜻에 따라주지.
나랑 마음이 통했으니까.
“뭐하는데 휴대폰만 붙잡고 있어?”
어느 샌가 다가온 스텔라의 물음이었다.
좋다, 좋아... 그렇게 계속 의식해라.
“친구랑 톡.”
“오빠 친구 없잖아.”
약간 놀리듯 말하며 떠보는구나.
기술이 별로다.
“누가 그래?”
“그냥... 그럴 것 같았는데... 아니야?”
“많지는 않지만 있긴 있지.”
여기선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것보단, 거짓말을 섞은 진실을 말해주는 것이 낫다.
약간 초조해하고 있는, 그리고 자신의 그러한 감정을 숨기려고 하고 있는 스텔라에게, 내가 말을 이었다.
“대학 동기가 한 명 있는데, 연예인이야. 꽤 친해. 근데 어디서 내 기사를 봤는지, 나더러 그만두고 자기 매니저를 하라네?”
“그, 그래...? 매니저를 하래?”
모르는 척하는 모습이 웃기다.
“응. 근데 난 네 매니저잖아. 그래서 싫다고 했어.”
스텔라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아, 안 물어봤는데?”
우리 덜렁이... 연기 잘하는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까 그것도 아니네?
그렇게 좋아요?
피식 실소를 터뜨린 내가 말했다.
“뭐하는데 휴대폰만 붙잡고 있냐고 물어봐서 대답한 것뿐이야.”
“알아. 근데 그분 진짜 매너 없다... 오빠가 자발적으로 그만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말하면 실례인가?”
“아냐. 나도 너랑 같은 생각이라 단호하게 거절했어.”
“그랬어? 잘했네?”
내 등을 툭툭 두드리는 스텔라.
마치 대소변을 가린 강아지에게 칭찬을 하는 것 같다.
대견한 눈으로 날 바라보던 그녀가 말했다.
“오빠. 이제부터 아침은 베이컨 들어간 거 말고 다른 걸로 주라.”
“질려?”
“응.”
“뭘로 갖다 줄까?”
“커피만 있으면 아무거나 괜찮아.”
“너 저번에 카페인에 민감하다고 했잖아. 그런 애가 커피 마시면 생활패턴 꼬여. 커피는 빼자.”
“그런가...? 그럼 오빠가 봐서 괜찮은 걸로 줘.”
모든 행동엔 의미가 있다.
스텔라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있었지만, 아침은 뭘 먹느냐에 따라 하루의 입맛이 정해지는 중요한 시간이다.
그런 아침의 선택권을 내게 줬다는 건 신용도가 더욱 크게 상승했다는 뜻과도 상통했다.
“알았어. 보영이 누나가 너 찾는 거 같은데?”
“그걸 어떻게 알아?”
“저기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잖아.”
그녀의 어깨너머 멀찍이 있는 보영을 가리키자, 스텔라의 고개가 엄청난 속도로 돌아갔다.
보영을 발견한 스텔라가 내게 손을 흔들더니 후다닥 달려갔다.
어제 안무를 조금 틀린 걸 마음에 담아두고 있나보다.
총총걸음으로 멀어지는 그녀를 바라보던 나는 옆에 놓인 음료수 박스를 들었다.
오늘도 우리 덜렁이를 위해서 뛰어야지.
**
요즘 자동차들은 전부 잘 나온다.
내부에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사람의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고요하다.
지금이 그랬다.
담요를 덮고 잠에 빠진 스텔라의 새근거리는 소리가, 운전을 하고 있는 내 귀를 간질인다.
굳게 닫힌 입술, 완만하게 휘어진 기다란 속눈썹, 숨을 쉴 때마다 미세하게 움직이는 자그마한 콧망울...
메이크업 샵에서 받은 화장 또한 스텔라가 갖고 있는 청순한 이미지에 완벽하게 어우러져 외모를 한 층 더 돋보이게 한다.
너무 귀엽고 예쁘다. 뭐 하나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없다.
룸미러를 통해 스텔라를 엿보며 그녀의 집까지 도착한 나는,
“다 왔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스텔라를 깨웠다.
그러자 몸을 뒤척인 스텔라가 내가 사둔 베개에 얼굴을 묻으며 말한다.
“5분만...”
오늘의 스텔라는 어제보다 훨씬 피곤해하고 있었다.
어제의 피로가 전부 풀리지도 않은 상황에서, 촬영은 늦게 끝났지... 보영에게 또 호되게 깨졌지...
이 외에도 잡다한... 예를 들자면 내 휴대폰에 신경을 쓰거나 했던 것들까지 포함한다면 상당한 심력을 소모했을 터였다.
“침대에서 자는 게 낫지 않을까?”
“움직이기 싫어... 딱 5분만...”
나도 여기서 너랑 함께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단다.
근데 내일 아침 준비도 해야 하고, 음모도 꾸며야 해서 바쁘단 말이야.
차에서 내린 나는 뒷좌석 문을 확 열었다.
겨울의 찬바람이 따스한 온기를 밀어낸 탓일까?
스텔라가 자신의 아담한 몸을 잔뜩 웅크렸다.
“오빠...! 5분만 잔다니까...!”
“집에서 씻고 자. 거기가 더 편해. 손 내밀어.”
“아 진짜아...!”
짜증이 약간 섞인 앙탈을 부린 스텔라.
내가 내민 손을 맞잡은 그녀의 상체가 천천히 일으켜 세워졌다.
부스스한 눈을 비빈 그녀에게, 내가 당부했다.
“샤워는 안 하더라도 화장은 꼭 지우고 자. 피부 상해. 알았어?”
“응...”
“뭐라고?”
“화장 꼭 지우고 자라구...”
“그래. 이거 마셔.”
그물망에 넣어져있는 모과차를 꺼내 뚜껑을 따고 내밀자, 스텔라가 순순히 병을 받아들이더니 차를 들이켰다.
특유의 떫고 단 맛에 스텔라의 어여쁜 얼굴이 찌푸려진다.
터져 나오려는 아빠미소를 간신히 참아낸 나는, 사탕까지 까준 후 스텔라를 부축해 차에서 내리도록 했다.
잠깐 비틀거리다가 중심을 잡은 그녀가 사탕을 한쪽 볼에 몰아넣고 고개를 꾸벅 숙인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떡 하나 지지 않은 머리카락이 앞으로 사르르 내려간다.
아직 채 지워지지 않은 샴푸냄새가 솔솔 올라오고 있다.
정리해주고 싶다.
유혹을 참은 나는 기타가방을 꺼내 스텔라의 어깨에 매어주었다.
“너도 수고했어. 얼른 들어가.”
“응. 내일...”
작별인사를 하려던 스텔라가 흠칫했다.
“누나! 스텔라 누나!”
교복을 입은 한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침착하게 스텔라의 앞을 가로막고, 휴대폰 카메라로 우릴 찍으며 접근하는 남자의 팔을 잡아 그대로 비틀었다.
“끄아아아!! 뭐에요!”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한쪽 무릎을 꿇는 남자.
나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남자의 휴대폰을 홱 낚아챘다.
이후 남자의 얼굴에 휴대폰을 내밀며 말했다.
“비밀번호 풀고 영상 삭제해주세요.”
“이거 폭행이야! 경찰에 신고... 아아아악! 잠깐만...!”
“저희가 먼저 스토킹, 사생활 침해로 신고할까요?”
“스, 스토킹이라뇨...! 전 팬심으로 접근한 거라서 스토킹 아니거든요!?”
“당사자 허락도 안 받고 몰래 찍은 건 어떻게 설명할 건데요? 그리고 여기에서 계속 대기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경찰한테 CCTV 한 번 보자고 해봐요?”
“.....”
남자가 입을 꾹 다물었다.
늦은 밤, 동의 없는 촬영, 집 근처에서 대기.
누구라도 의심할만한 상황이었기에 할 말이 없어진 것이다.
“기자에요?”
“기자 아니에요...! 그냥 팬이라고요...! 근데 좀 놔주고 얘기하면 안 돼요?”
“사생질하는 게 무슨 팬이야. 이거 범죄인 거 알죠?”
“.... 사생질 아닌데...”
“일단 경찰서 가서 들어보죠. 판단은 거기서 해주겠지.”
“조,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바로 꼬랑지를 내리는 남자.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나는 스텔라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뜬 채였다.
잠이 확 깬 모양. 몸도 굳어선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손짓한 내가 말했다.
“먼저 들어가.”
그제야 정신을 차린 스텔라가 조심스레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남자를 놓아주라는 듯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오빠... 거기까지만 해...”
“이거 좋게 넘어가면 안 돼. 또 이럴 가능성이 커.”
“한 번만 더 이러면 그때 신고하자. 저... 다시는 안 그런다고 하셨죠?”
스텔라의 친절한 물음.
계속 무릎을 꿇고 있던 남자가 냅다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절대 안 그럴게요...! 누나가 너무 좋아서... 팬심에 그랬어요...!”
“학생이에요? 입고 계신 거 교복이죠?”
“맞아요... 효선고등학교 다녀요... 아...! 아저씨...! 형! 아프다고요...!”
네게 칭얼대는 남자의 눈에선 눈물이 찔끔 흐르고 있었다.
강제로 그를 일으켜 세운 내가 교복 가슴께에 있는 이름을 살폈다.
“김지석? 학생증 꺼내봐.”
“형이 팔 잡고 있는데 어떻게 꺼내요...”
“한손으로 꺼내.”
“경찰도 아니면서 무슨...”
투덜거린 김지석이 자신의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내밀었다.
지갑 속 학생증과 일치하는 얼굴과 이름.
확인을 마친 나는 김지석을 놓아주며 인상을 팍 구겼다.
“나이도 어린놈이 언제 적 짓거리를 하고 있어? 이거 엄청 심각한 범죄로 격상된 지 오래니까 소년원 가기 싫으면 하지 마. 팬질 할 거면 부모님 속 타들어가게 하지 말고 건전하게 해.”
“.... 네...”
“이번만 넘어가준다. 앞으로도 이러면 무조건 신고할 거야. 알았냐?”
“죄송합니다...”
“영상 지워.”
남자는 내 눈앞에서 스텔라가 촬영된 동영상을 삭제했다.
다른 파일이 있는지, 휴지통이 비워졌는지까지 꼼꼼히 확인해본 내가 남자의 팔을 밀었다.
“집에 가. 신곡 나오면 스트리밍 꼭 하고.”
“네, 형...”
“누가 네 형이야. 빨리 안 가?”
“갈게요... 간다고...!”
팔을 부여잡고 천천히 멀어지던 김지석이 돌연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날 향해 가운데손가락을 들어 올리더니, 꽁지가 빠져라 도망갔다.
학생다운 패기.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헛웃음을 켜며 스텔라를 바라보았다.
“놀랐지? 얼른 집에 들어가서 쉬어. 근데 왜 웃고 있어?”
그 말마따나 스텔라는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새하얀 이빨까지 드러내며 날 향해 미소 지은 그녀가 말했다.
“스트리밍 꼭 하라고 한 게 웃겨서...”
약간 순진한 사생팬을 마주한 것치고는 꽤나 의젓한 반응이다.
내가 옆에 있었기 때문인가? 그렇다고 치자.
“그냥 좋게 넘어가려고 사족 붙인 거지... 지금은 웃긴 상황이 아냐. 심각하다고.”
“알아... 미안... 대표님한테 말할까?”
“내가 내일 말할 테니까 넌 쉬는 데에만 집중해. 내일이 마지막 촬영이잖아.”
“알았어... 근데 오빠 순발력 대박이다... 나 깜짝 놀랐어... 이렇게 패대기치던데... 휴대폰은 또 어떻게 잡았대?”
내가 했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해 보려다가 삐걱거리는 스텔라였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나는 스텔라의 몸을 돌리고 그녀의 등을 천천히 떠밀었다.
“집에 가라고... 빨리 디비 자라고.”
“알았다고... 간다고... 잘 자라고...”
내 말투를 따라한 스텔라가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들어갔다.
이후 날 돌아보더니, 해맑게 웃으며 손을 마구 흔들었다.
그녀는 눈으로 내게 엄청 감격했다고 말하는 중이었다.
또 높은 점수를 땄구나. 저 눈빛이 애정으로 바뀔 날은 머지않았다.
스텔라를 보낸 나는 차에서 오랜 시간을 대기했다.
사생팬을 걱정해서가 아니었다.
김지석이 접근했을 때, 스텔라는 확실히 약간의 공포를 느꼈다.
분명히 스트레스를 받았을 테고, 혹시나 비슷한 사람이 더 있을까봐 창밖을 볼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노리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생팬이 또 있을까 우려해서 대기하고 있는 나를, 스텔라가 발견해주길 원하는 거다.
그렇게 대략 한 시간쯤 지났을 때, 휴대폰이 울리더니 스텔라에게서 톡이 왔다.
[오빠 거기서 자는 거 아니지...? 지금 집에 동생 있으니까, 내 걱정은 그만하고 오빠도 들어가서 쉬어.]
예상대로였다.
‘우리 집에서 자고 가’ 라는 말이 나왔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 아직 거기까지는 무리니까 넘어가자.
목적을 이룬 나는 답장을 하지 않고 15분을 더 대기한 후에야 차를 출발시켰다.
이후 빌라촌을 벗어나자마자 브레이크를 밟아 조수석 창문을 내렸고, 인도에서 패딩을 여미고 있는 한 여성을 향해 말했다.
“수고했어.”
거기엔 김민지로 변장한 마르셀라가 서있었다.
차로 가까이 다가온 그녀가 약간 뾰로통한 투로 말한다.
“팔을 너무 아프게 꺾으셨어요... 너무하세요...”
“우리 민지... 많이 화났나보네? 그나저나 연기 괜찮더라.”
“마왕님은 연기를 별로 못하시던데요...?”
“그건 넘어가기 힘들군.”
세화부터 박사까지 다섯 명을 속인 내 내공을 무시하는 거냐?
어깨를 으쓱인 내가 말을 이었다.
“아까 그 가운데 손가락은 뭐야?”
“그게... 연기에 몰입하다보니까... 사, 상처 받으셨어요?”
“아냐, 자연스럽고 좋았어. 근데 뭔가 진심이 느껴졌단 말이지.”
“아, 아닌데요...? 오해세요...”
“괜찮아. 혼나면 돼. 먼저 방 잡고 기다려. 차만 대놓고 갈 테니까.”
민지의 얼굴이 대번에 붉어졌다.
부끄럼이 가득한 얼굴로 알겠다고 대답한 그녀가 포탈을 타고 사라졌다.
다시 악셀을 밟아 차를 출발시킨 내가 생각했다.
‘결과가 괜찮네.’
너무 큰 공포는 느끼지 않을 만큼, 시간이 지나면 잊을 수 있을 만큼 적당한 상황,
그러나 날 향한 의존도는 크게 올라갈 만큼의 연출.
내 노림수는 이 정도였고, 오늘 아침 연수와 관련된 일까지 포함하면... 성과는 훌륭했다고 볼 수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