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3화 〉 데뷔 준비 #2
* * *
“왔어?”
만면에 심보가 가득한 미소를 짓고 있는 최승환.
어제 선공개된 티저 조회수가 하루만에 700만을 돌파했기에 희희낙락해하고 있는 거다.
700만, 웬만한 S급 아이돌보다도 많은 수치.
그저 검은 배경에 초반부와 후반부 클라이막스 부분의 가사를 편집해서 올린 것뿐인데, 현실의 기대감을 반영이라도 하듯 어마어마한 조회수를 이끌어냈다.
20초짜리의 짧은 티저인데도 관심도가 장난이 아니다.
스텔라의 신곡 Dreamer는 꿈을 좇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곡이었다.
자신이 힘들 때 겪었던 일들을 가사에 녹였고, 초반부엔 슬픔, 후반부엔 희망적인 음을 주어 전체적으로 애환이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이런 곡은 가사가 서정적이게 될 수밖에 없었다.
아직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된 스텔라로서는 그런 느낌을 한국어로 표현하는 게 힘들었지만, 보영이 붙었기에 해결할 수 있었다.
완성된 노래를 미리 들어본 나는 이게 히트를 칠 거라고 확신했다.
뛰어난 작사, 작곡 실력을 가진 보영과 스텔라가 이미지에 걸맞은 엄청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평론가들의 평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일반 대중들에게는 큰 사랑을 받을 것임이 틀림없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고개를 꾸벅 숙이는 스텔라.
마치 귀여운 새끼 강아지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스텔라를 쳐다본 최승환이 말했다.
“우리 스텔라, 오늘부터 촬영 들어가는데 힘내서 하자. 화이팅! 오케이?”
누가 우리 스텔라야.
선 넘으면 뒤진다.
“네, 열심히 할게요!”
좋다고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는 스텔라였다.
호탕한 웃음을 터뜨린 최승환이 내 등을 툭 쳤다.
“지혁이는 촬영장에 조금 늦어도 되니까 운전 조심해서 하고. 알았지?”
약속시간보다 훨씬 일찍 가라고 할 땐 언제고... 대박 조짐이 보이니까 이러는 거 봐라.
물론 농담이겠지만, 진담이 조금 섞여있겠지.
“예, 10분 뒤에 메이크업 샵으로 출발하겠습니다.”
“그래. 도착하면 보고하고.”
알겠다고 대답한 나는, 스텔라에게 화장실 갈 거면 지금 가라고 말해놓은 뒤 소속사를 나왔다.
아까 군집했던 팬들은 소속사로 들어가는 스텔라의 손인사를 받은 이후 대부분 해산한지 오래.
현재 남아있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스케줄을 나가는 스텔라를 볼 심산이겠지만, 난 그들의 바람을 무참히 깨뜨려주기로 했다.
인도를 넘는 것도 감수하고 소속사 입구에 차를 딱 붙여서 댄 다음, 뒷좌석 문을 활짝 열어놓자 멀찍이서 대기하고 있던 팬들의 원성이 들린다.
‘재수 없다.’, ‘짜증난다.’, ‘일부러 저런다.’ 같은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어차피 스텔라는 인사를 해주겠지만, 저들의 기분이 단 한순간이라도 구려진다면 만족한다.
“뭐야...? 왜 차를 이렇게 대놨어?”
밖으로 나온 스텔라의 황당함이 가득 담긴 물음.
대수롭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인 내가 대답했다.
“그냥. 너 편하라고. 출발하자.”
“잠깐만... 팬들한테 인사 좀 하고.”
예상대로, 스텔라가 차량을 빠져나오더니 대기하고 있는 팬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심지어는 가슴에 손을 얹고 상체를 45도 각도로 숙이며 공손하게 인사를 하기까지 했다.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진 소속사 앞.
팬들의 꽥꽥거리는 소리가 시끄럽지도 않은 건지, 스텔라는 밝은 표정을 유지하며 팬서비스를 해주었다.
이미지 관리는 해야 맞지. 근데 너무 과한 거 아니니?
저러면 팬들 버릇 나빠진단 말이야.
조용히 스텔라의 뒤로 간 내가 말했다.
“이제 가자.”
“응. 근데 어떤 분이 오빠 가리키면서 뭐라고 하고 계셔. 자동차... 어쩌구 하는 것 같은데?”
“신경 쓰지 마. 마지막으로 인사하고 얼른 타.”
“알았어. 아 맞다, 보영이 언니도 간대.”
“지금? 우리 차 타고?”
“아니, 따로. 대표님이랑 희주 언니랑 같이 갈 거래. 안무 연습한 거 검사해주신다고 하셨어.”
음, 우리 능동적인 보영이.
너도 스텔라만큼은 아니지만 예뻐해줄게.
**
툭.
의자 옆에 조심스레 홍삼음료 트레이를 놔두자, 스탭들과 함께 찍은 영상을 점검해보던 카메라 감독이 흘끗 아래를 보더니 지나가는 투로 묻는다.
“식후에 먹는 건가?”
“예, 식사 끝내시고 바로 드시면 됩니다.”
“싹싹하네. 잘 마실게.”
“옙.”
현재 나는 뮤비 촬영이 잠깐 멈춘 쉬는 시간에, 촬영 팀에게 건강음료를 돌리고 있는 중이었다.
대화를 나누거나 일을 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조용하게 말이다.
과유불급이라고, 괜히 잘 보이겠답시고 뭘 바리바리 싸서 갖다 바치는 건 오히려 이미지에 마이너스 요소가 된다.
지금처럼 조용히 건강음료를 놔두면 알아서 잘 처먹을 거다.
이들은 내 행동이 계산된 행동이라는 걸 잘 알고 있겠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스텔라의 이미지가 좋아졌으면 좋아졌지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렇게 여러 스탭들의 옆에 음료를 놓아둔 나는, 보영을 비롯한 소속사 임직원들과 밥을 먹고 있던 스텔라가 날 흘끗거리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적잖이 감동했어? 그러면 된 거야.
“적당한 선에서 잘하고 있네? 시키지도 않은 일도 잘하고 눈치도 빨라서 좋아. 솔직히 처음엔 껄끄러웠는데, 잘 뽑은 것 같다 야.”
최승환이 날 칭찬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오빠가 뽑은 거 아니거든?”
“뽑은 건 나지. 추천은 네가 했고.”
보영의 타박, 최승환의 반박, 그리고 희주가 작게 웃는 소리까지...
내 처지가 실험용 쥐, 서커스 광대가 된 것 같아서 웃기다.
“대표님, 처음엔 왜 껄끄러우셨는데요?”
날카로운 스텔라의 질문.
최승환이 어버버하다가 답한다.
“경력이 전혀 없다길래... 네 매니저는 경력직으로 뽑으려고 했지. 지금까지 불편한 점은 없었어?”
심보 고약한 돼지 같으니. 입만 열면 거짓말이네.
스텔라랑 눈 맞을 것 같으니까 라고 왜 말을 못하니.
“전혀요. 저는 지혁이 오빠가 매니저라서 좋아요. 엄청 편해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오빠...! 지혁이 오빠...! 오빠도 빨리 밥 먹어...!”
최대한 시끄럽지 않게 소리를 죽인 스텔라의 부름.
무거운 물건을 드는 스탭을 도와준 나는, 그녀에게로 향하며 얼빵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
“팔은 흐느적흐느적 뻗지 말고 바짝 뻗어. 내가 뭐라고 했어?”
“포인트 살리려면 힘차게 뻗어야 한다고...”
“그걸 아는데 이런 식으로 해?”
“죄송합니다...”
“다시.”
“네!”
아무리 스승과 제자 사이라지만 스텔라가 혼나는 모습을 보는 건 마음이 아팠다.
우리 덜렁이... 오늘따라 유독 많이 깨지는 느낌인데...
살살해라 보영아. 스텔라는 윽박지르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하는 친구잖아.
중간중간 보영의 지적을 수정해가면서 안무 연습을 하고, 표정 연기도 해보고, 시놉시스를 다시 살펴보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아홉 시간이 지난 끝에, 대망의 뮤직비디오 첫 촬영은 끝이 났다.
평가는 아주 성공적.
감독과 스탭들 모두 스텔라를 마음에 들어 했으며, 연기력을 타고난 그녀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피곤해 보이는군.’
그 생각처럼 촬영을 마친 스텔라의 눈엔 피로가 가득했다.
하지만 절대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밝은 낯으로 스탭들 한 명 한 명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이미지 관리가 아니라 진짜로 고마워서, 자신의 꿈에 한 발자국 다가가게 되니 진심으로 기뻐서 저런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악의 따윈 없는 순수한 사람이 무리에 있다면 분위기가 무척 좋아진다.
사소한 것에도 고마워할 줄 알고, 다른 사람들이 진심을 느낄 만큼 마음을 그대로 전해주는 사람.
주변을 밝게 비추는 사람.
스텔라가 그런 존재였다.
“수고 많았어.”
“응.”
스텔라에게 시원한 물을 갖다 준 나는, 그녀가 빨대로 조신하게 물을 빨아들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스텔라에겐 천만다행이게도, 애초에 촬영에 관한 것들을 전부 구상해놓은 상황이라서 촬영 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는다고 했다.
3일만 빡세게 촬영하면 나머지는 편집의 영역이라 스텔라에게 꿀 같은 휴식시간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늘 고생했고, 스텔라는 내 차 타고 승환이 오빠랑 돌아가자. 지혁이는 희주 데려다주고.”
나와 스텔라에게 다가온 보영의 지시.
스텔라가 큰 눈을 끔벅거리며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가 보영이 의아해할 때쯤, 틴트가 묻어있는 자신의 입술을 핥더니 말했다.
“언니, 저 지혁이 오빠 차 타면 안 될까요?”
“왜?”
“그... 거기가 좌석이 편해서요. 잠깐이라도 눈 붙이고 싶어서...”
“내일 촬영 때문에 상의할 게 있어서 그런 건데... 그렇게 피곤해?”
“네, 조금 피곤해요.”
평소의 스텔라는 보영에겐 무조건 예스라 답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자신의 소신을 그대로 밀고 나가고 있었다.
스텔라가 눈치채지 못하게 나와 눈을 마주친 보영이 말했다.
“그래...? 그럼 내일 회의 때 상의하자.”
“네, 언니. 감사합니다.”
스텔라가 왜 굳이 고집을 부려가면서까지 내 차를 타겠다고 했을까.
이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답이 나왔다.
스텔라는 일주일이 약간 넘는 시간동안, 상당한 시간을 밴 안에 있었다.
나와 밴을 무척 편하게 생각했고, 밴에 각종 개인용품들까지 넣어놓은 상태다.
쉽게 말해 제 2의 보금자리라고 할만 했다.
그런 자신의 보금자리에 3자가 끼어드는 것이 싫은 거다.
물론 피곤하니 눈을 붙이려는 것도 이유가 될 수는 있겠지만, 상기한 이유가 고집을 부리는데 더 큰 요소를 차지했을 터였다.
듬직한 오빠, 아빠 같은 내가 있는 것도 결정에 한 축을 차지했을 테지.
스텔라에게 패딩을 거의 입혀주다시피 한 나는, 그녀를 차로 데리고 갔다.
자연스레 조수석에 타려던 그녀는,
“피곤하다며? 눈 붙여야지.”
내 말을 듣자 멈칫했다.
“찬바람 맞으니까 잠이 확 깨서... 나중에 졸리면 조수석에서 잘게.”
“그냥 뒤에 타지? 좌석 펴줄 테니까 누워서 자.”
“졸리면 뒷좌석으로 옮겨 가도 되잖아.”
곧바로 뒤에 탈 줄 알았는데, 예상외의 반응이다.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 건가? 아주 약간만이라도 남자로 보는 거야?
아니, 속단하지 말자. 괜히 들뜬 마음에 조급해지면 안 된다.
꾸준히 내가 할 일을 하면, 스텔라의 마음은 역풍을 맞은 갈대처럼 내 쪽으로 움직일 것이다.
“알았어, 그렇게 해.”
배시시 웃은 스텔라가 조수석에 타더니 안전벨트를 맸다.
그리고는 의자를 뒤로 밀며 휴대폰을 하기 시작했다.
운전석에 타서 차에 시동을 건 나는, 곧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그렇게 한산하고 어둑한 경기도 외곽에서 벗어나고 있는데, 스텔라가 돌연 이런 말을 해왔다.
“오빠, 우리 소속사 진짜 가족 같지 않아?”
가족이라... 가좆이겠지.
네 가족은 오직 나, 그리고 이블 발키리들밖에는 없단다.
“응. 분위기 좋네.”
“보영이 언니가 활동 시작하면 소속사 규모가 커지겠지?”
“아마도?”
“난 이대로가 좋은데... 너무 욕심인가?”
“당분간은 이대로 가겠지. 대표님도 너한테 집중한다고 하셨으니까.”
“오빠는 계속 내 매니저 할 거지? 안 그만둘 거지?”
잠깐 헤어짐이 있기야 하겠지만, 그땐 네가 날 잡으면 돼.
그러면 같이 있을 거란다.
“일단은.”
“뭐야? 그 애매모호한 대답은?”
“나도 현생이 있잖아. 아예 매니저로 진로를 정한 게 아니니까...”
“안 돼. 그냥 내 매니저 해. 나 은퇴할 때 놓아줄게.”
“우리 만난 지 열흘도 안 됐어. 너무 섣부른 거 아니야?”
“열흘밖에 안 됐는데 이럴 정도로 오빠가 좋다는 거지. 나 오빠랑 오래 가고 싶어.”
고백이 아니라 그냥 진짜 내가 매니저를 하는 게 좋다는 의미에서 한 말임을 잘 알면서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근데 너 다른 사람들한테도 이렇게 오해할만한 말을 하고 그러니?
그러지 마라. 다 죽인다.
“이만 누워서 자. 내일 일찍 일어나야 되잖아.”
“계속 내 매니저 하겠다고 하면 잘게.”
“생각해볼게.”
“아 싫어. 생각 말고 네, 아니오로 대답해줘.”
좀 골려줘야겠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볼게.”
“네, 아니오로 하라니까?”
“‘긍정적’이라고 했잖아. ‘네’라는 대답에 가깝다는 뜻이지. 이걸로 만족해라.”
“참내... 어이가 없어서...”
약간 삐친 듯한 스텔라가 고개를 홱 돌렸다.
동생 앞에서는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나에겐 의지하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기껍다.
아빠에게 칭얼거리는 것 마냥 투정을 부리는 모습도 귀엽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여의고 동생을 챙기느라 일찍 철이 든 네가 언제 또 이런 행동을 해보겠니.
최승환은 대표라서 예의를 지켜야하지, 보영도 스승의 입장이니 선을 넘지 말아야 하지...
천희주는 어른스럽지 못하지, 알렉스는 철이 없지...
다른 사람들에게 한두 가지씩 하자가 있는 상황에서, 네 결핍되어있는가족애를 채워줄 사람은 오직 나밖엔 없단다.
그러니까 네 진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나한테만큼은 편하게 대해도 좋아.
그러다 나한테 사랑이라는 감정을 품으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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