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1화 〉 너의 매니저님 #4
* * *
스텔라의 매니저 일을 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본격적으로 뮤직비디오 제작에 들어가게 된 지금, 나는 그녀와 함께 청담동의 유명한 메이크업 샵에 들른 상태였다.
소속사에선 개인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구하려고 했으나, 여러 연예인 선배들을 봐야 좋다는 채보영의 조언이 있었다.
꼭두각시 최승환으로선 채보영의 말을 안 따를 수가 없었고, 그로 인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스텔라 헤일리, 데뷔 초읽기! 디지털 싱글 Dreamer, 내일 음원 일부 공개.]
[실력파 대형 신인 등장, 가요계 지각변동 예고.]
[ABC엔터, 매일 아침 북새통. 스텔라 헤일리 목격담 다수.]
[스텔라 팬 카페 로즈마리 ‘1위는 당연지사, 데뷔 기다려지느라 미칠 지경’]
대기실에서 하루하루 쏟아지는 기사들을 읽어 내려가던 나는,
“스텔라 헤일리 매니저님이시죠?”
메이크업 샵 직원의 물음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스텔라 메이크업 다 끝났나요?”
“아뇨. 기다리시느라 지루할 것 같아서, 커피라도 드리려구요. 아메리카노인데 괜찮죠?”
눈빛에 날 향한 호감이 가득하다.
역시 외모지상주의가 만연한 세상에선 잘생기고 봐야 돼.
가만히만 있어도 떡고물이 떨어지잖아.
예쁘장한 컵받침을 받아든 내가 방긋 웃었다.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매니저 일은 얼마나 하셨어요?”
“이제 일주일 정도 됐어요.”
“아 진짜? 힘들지는 않아요?”
“아직까진 그렇게 안 바빠서 괜찮네요.”
“그렇구나...”
말끝을 흐린 직원이 눈을 여러 차례 깜박거렸다.
할 말을 찾는 듯한 모습.
속내가 다 보여서 웃기다.
내게 호감을 가졌다면 스텔라에게 더욱 잘 대해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냥 악의를 집어넣는다면 일이 쉬워지긴 할 테지만...
스텔라가 변신하기 전까지는 지양하도록 하자.
로사리오가 마지막 남은 아이테르에 뭔 수를 써뒀을 지도 모르니까.
어쨌든 저 여자가 그냥 직원이라면 여기서 끝냈겠지만... 나잇대가 20대 중후반처럼 보인다.
네일도 화려하고, 얼굴형과 인상에 맞게 화장도 잘 먹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것 같은데, 앞으로 자주 볼 게 뻔하니 이미지 관리를 해야겠다.
일개 매니저가 까부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뭐 어떠한가.
나한테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 서글서글한 태도로 다가가면 좋으면 좋았지 나쁘진 않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깝쳐서도 안 된다.
이 직원은 숱한 남자연예인을 지척에서 보아왔다.
눈이 상당히 높을 텐데, 내게 호감을 표시하는 이유는 잘생겨서인 것도 있겠지만, 연예계에서 가장 밑바닥 직책이라 할 수 있는 매니저라서다.
심하게 말하면 제 입맛대로 다룰 수 있는 어린 영계가 필요한 것이었기에, 조절해서 까불어야한다.
적당히 썸을 타는 척하다가, 나중에 질투한 스텔라의 손에 죽거나 심하게 다치도록 만들어볼까?
아니면 그냥 이용만 해먹다가 버릴까?
즐거운 고민을 한 나는 커피를 홀짝였다.
“혹시 여기 선생님이세요?”
“맞아요. 어떻게 아셨지?”
“화장 보고 짐작해봤어요. 말투도 여유로우셔서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는데, 맞았네요.”
“눈썰미 좋네요. 이지안이라고 해요. 여기 팀장.”
“송지혁입니다.”
“몇 살?”
“스물둘이요.”
이지안의 눈이 반짝였다.
“스물둘? 20대 중반은 될 줄 알았는데 어리네요.”
“제가 조금 노안이라... 선생님은 몇 살이세요?”
“난 스물일곱. 나이 많죠?”
응, 많아.
보지는 잘 벌어지냐? 질압은 어때? 검사는 꾸준히 받고 있어?
라고 묻고 싶다.
“아닙니다. 스텔라 잘 부탁드릴게요.”
예의 바르게 상체를 꾸벅 숙이는 내게, 이지안이 깔깔거리며 말한다.
“너무 그렇게 굳어있을 필요 없어요. 잘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나온 솔로가수라서 엄청 바빠지겠다... 나갈 때 명함 가져가요. 스텔라 담당 선생님 휴무 땐 내가 맡아줄게요. 나 보영이도 메이크업 맡아줬었어.”
보영은 데뷔 초창기 때 잠깐 여기 왔다가, 이후엔 개인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뒀다.
오래 지난 일을 아직도 우려먹는 걸 보면 그게 어지간히 자랑스러웠나보다.
보영의 네임벨류가 워낙 커서 자랑할 만도 하지만 말이다.
“진짜요? 감사합니다.”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던 나는, 휴대폰에 진동이 울리자 화면을 보았다.
스텔라의 전화. 메이크업이 다 끝나가나 보다.
“저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스텔라 잡지 촬영이랑 인터뷰가 있어서요.”
“응, 고생해요.”
**
뒷좌석 문을 열고 샵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던 나는, 스텔라가 나오자 잠깐 정신이 멍해졌다.
메이크업을 마치고 나온 그녀가 너무나도 아름다웠기 때문.
앞머리가 광대뼈를 살짝 가릴 정도로 웨이브가 먹은 헤어스타일은 차치하고서라도, 광택을 죽인 분홍색 입술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기다란 속눈썹이 완만한 곡선으로 휘어진 것도, 선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내려간 아이라인도 모두 마음에 든다.
내 이런 반응을 본 스텔라가 입가를 가리며 웃더니 묻는다.
“어때? 괜찮아?”
일주일간 제법 많이 가까워진 우린 서로 말을 편하게 하는 상태였다.
이틀 전 그녀가 수줍게 ‘밥 먹었어?’라는 말을 했을 땐 정말 세상을 다 가진 줄 알았다.
표정관리를 하느라 힘겨웠던 게 아직도 생각날 정도다.
고개를 미세하게 흔들어 정신을 차린 내가 말했다.
“제대로 됐네. 얼른 가자. 늦겠다.”
“왜? 시간 촉박해?”
“촉박한 건 아닌데 빠듯해.”
“똑같은 말 아닌가?”
“그렇다고 치자. 넌 신인이니까 시간약속은 칼같이 지켜줘야 돼.”
빨리 타라는 말을 돌려서 하자, 스텔라가 재빨리 조수석에 타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제지하자 의아스런 표정을 짓는다.
“왜?”
“오늘은 무조건 뒷좌석에 타. 햇빛 때문에 화장 번지면 안 돼.”
“선팅 잘 됐잖아. 그걸로는 못 막나?”
“다 막지는 못하지. 뒤에 타.”
“알았어.”
그러려니 수긍한 스텔라가 뒷좌석으로 갔다.
자연스럽게 가습기를 틀려던 그녀는, 이어지는 내 말에 손을 멈추었다.
“가습기 틀지 마. 화장 번져.”
“아니 무슨 하지 말라는 게 이렇게 많아? 독재자야? 그리고 이거 안개처럼 분사되는 거라서 화장 안 번지는데?”
“차라리 공기청정기를 틀어. 목 칼칼하면 물 마시고.”
마치 잔소리를 하는 아빠를 보는 양 날 쳐다본 그녀가 물을 마시려 했다.
하지만 또 내가 제지하자 미간을 팍 구겼다.
“또 왜?”
“빨대 끼워야지. 입술 연해지면 안 돼.”
“.... 네에...”
너는 덜렁이라서 내가 하나하나 다 해줘야 돼.
자포자기한 채로 늘어지는 대답을 한 스텔라에게 빨대를 건넨 나는 자동차를 출발시켰다.
**
안 늦었지?
“한 시간 일찍 도착했습니다.”
좋아. 스텔라는? 인터뷰 중이야?
“아뇨, 촬영 중이에요.”
알았어. 잘 지켜봐.
“예, 형님.”
최승환과의 전화를 마친 나는 한창 사진촬영을 하고 있는 스텔라를 바라보았다.
다채로운 표정과 포즈를 지으며 사진작가의 마음을 녹여내고 있는 그녀.
오케이 사인이 자꾸 터져 나오고, 좋다거나 예쁘다고 감탄하는 소리까지 들려온다.
‘타고났네.’
만능 엔터테이너의 자질이 보인다. 실제로 최승환도 스텔라를 그렇게 보고 있었다.
걱정스러운 건 너무 빠른 스텝 업인데... 보영이 잘 커버해줄 테니 걱정거리는 없다.
제법 빠른 시간 안에 첫 번째 촬영을 마친 스텔라는, 촬영 감독부터 시작해서 모든 스탭들에게 공손히 인사를 한 뒤에서야 내게 다가왔다.
또각거리는 구두소리를 내며 걸어온 그녀가 묻는다.
“기다리느라 힘들지 않아?”
“하나도 안 힘들어. 물 마실래?”
“응.”
물을 받은 스텔라가 빨대에 입을 가져다댔다.
턱을 약간 아래로 빼고, 입술을 빼꼼 내민 채로 물을 빨아들이는 스텔라.
그 모습이 정말 예뻐서 순간 이성을 잃을 뻔했다.
그녀의 도톰한 귓볼에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단아한 귀걸이가 시선을 빼앗으려고 노력해보았지만 허사.
지금 내 눈엔 예쁘게 물을 마시는 스텔라밖엔 보이지 않았다.
“오빠가 보기엔 어떤 것 같아?”
물을 마신 스텔라의 물음에 이성이 돌아온 내가 되물었다.
“뭐가? 촬영?”
“응.”
“잘하던데?”
“그게 끝이야?”
당연히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가면서 널 칭찬해주고 싶지.
이런 내 마음도 몰라주고... 실망이다.
나는 따로 가져온 이동식 행거를 툭툭 건드렸다.
“옷부터 갈아입어. 협찬이니까 망가뜨리지 말고.”
“알았어.근데 협찬한 옷이 찢어지면 어떻게 돼?”
엉뚱한 질문을 하는 게 귀엽다.
“대표님이 물겠지. 그리고 인터뷰할 때 옷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간단하게라도 한 마디 해줘. 협찬 받은 건데 정말 예쁘다... 내 이미지에 잘 맞는 옷 같다... 뭐 이런 식으로.”
“왜?”
“그래야 다음에도 또 협찬 들어오지.”
“아...! 그러네?”
“갈아입기 전에 착장사진도 많이 찍어놔. 나중에 네 SNS가 개설되면 거기 올릴 거니까.”
“그, 그렇게까지 해야 돼? 나 셀카 같은 건 잘 못 찍는데... 그럼 오빠가 찍어주라.”
“셀카여야 자발적으로 옷이 마음에 들어서... 라는 느낌을 줄 수가 있잖아.”
“그런가...? 알았어... 열심히 찍어볼게.”
가수로서 노래만 부르고 싶은데 이러니까 힘들지?
보영이처럼 되고 싶으면 힘들어도 해야 된단다.
옷을 갈아입은 스텔라는 곧 두 번째 촬영에 들어갔다.
그렇게 인터뷰까지 마치니, 오후 열 시 가까이 되었다.
촬영은 빨리 끝났지만 인터뷰에서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서였다.
문제가 생긴 건 아니었다. 스텔라는 신인 가수로서 무난한, 아주 정석적인 인터뷰를 했다.
최승환이 선을 넘는 질문을 할 경우 제지하라는데, 그럴 필요조차 없었다.
잡지사가 인터뷰를 어떻게 편집하느냐에 따라 전달되는 뜻이 달라지겠지만...
데뷔 전임에도 메인 커버를 장식할 정도니 잘 해줄 터였다.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스텔라와 사이좋게 잡지사 직원들을 향해 작별인사를 마친 나는, 약간 피곤해하는 그녀를 뒷좌석에 태우고 서울로 향했다.
그러다 전화가 온 스텔라가 동생과 대화를 나누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왜? 나? 인터뷰 끝내고 돌아가려고. 한 열한 시쯤 도착할 것 같은데? 응... 용돈? 이틀 전에도 이만 원 줬잖아. 어제도 달라더니... 대체 뭘 하는데 그렇게 헤프게 써?”
누나 속을 마구 썩이는구나.
스텔라의 첫 정산일은 아직 한참 남았다.
보영의 돈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텐데, 그마저도 거의 끊기다시피 한 수준이었으니 급하겠지.
이제 슬슬 알렉스를 음지로 끌어들일 때가 됐다.
처음엔 가벼운 경범죄부터 저지르게 만들자.
“아껴 써야 된다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너 자꾸 이럴래? 뭐? 여자친구 때문에? 없는 거 다 아는데 거짓말하지 마. 알렉스, 알렉스! 와... 얘 지금 그냥 끊은 거야?”
기가 찬 듯 헛웃음을 켠 스텔라가 알렉스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받지 않았는지, 이내 다시 휴대폰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미치겠네 진짜... 정 돈이 필요하면 알바라도 하든가...”
혼자 그리 중얼거린 스텔라가 새 생수의 뚜껑을 따고 들이키려고 한다.
룸미러를 통해 그 장면을 본 내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빨대.”
“지금 촬영 끝났잖아.”
“버릇 들여야지.”
“너무한 거 아니야...?”
말은 저렇게 하고 있어도 스텔라의 근심어린 표정은 많이 해소된 상태였다.
내가 이렇게 챙겨주는 걸 은근히 편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
철없는 동생 뒤치다꺼리를 해주다가, 받는 입장이 되어보니까 어때?
나쁘지 않지?
미리 보관해두었던 모과차를 꺼낸 나는, 그것을 뒤로 내밀었다.
“마셔.”
이제는 내게 상당부분 적응한 스텔라가 모과차를 받았다.
그리고는 장난기 어린 투로 말했다.
“네, 엄마. 이것도 빨대로 마셔?”
“이건 그냥 마셔도 돼.”
“왜? 이건 특별해서?”
정확하단다.
모과차는 너와 나만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음료이자, 일과를 기억 속에 각인시키는 물건이지.
“빨대로 조금씩 마시면 맛없잖아.”
“난 맛있는데?”
“그러면 빨대 쓰던가.”
“싫어. 그냥 마실래.”
그래, 그렇게 장난도 치면서 내게 의지해라.
과장 좀 보태서, 넌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할 정도는 되어야 해.
매니저를 그만둔다고 하면 죽어도 안 된다고 날 붙잡기까지 해야 해.
그러니까 얌전히 사육 당했으면 좋겠어. 내가 많이 챙겨줄게.
말없이 운전에 집중하던 나는, 차를 전부 마신 스텔라의 물음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이제 가습기 틀어도 돼?”
“틀고 한숨 자. 차 막힌다.”
“응.”
내가 산 목베개를 자연스럽게 걸친 스텔라가 가습기를 틀더니 곧 눈을 감았다.
평소였다면 나와 대화를 나누려고 했을 텐데, 공식적인 건 아니지만 첫 스케줄이라서 심적으로 많이 피곤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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