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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359화 (359/471)

〈 359화 〉 너의 매니저님 #2

* * *

나는 음악에 대해선 거의 모른다.

다만 현재 스텔라의 데뷔곡이 하우스 풍을 살짝 섞은 케이팝이라는 건 알겠다.

다양한 악기의 음을 섞어 발랄한 느낌을 풍겼는데, 스텔라와 더없이 어울리는 곡이라는 걸 딱 알 수 있었다.

홀로 능숙하게 준비를 끝낸 스텔라는 곧 연습 삼매경에 빠졌다.

연습실의 거대한 투명 창문을 통해 그녀를 지켜보던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기타 소리는 없네...?’

일렉 사운드는 약간 섞여있지만 통기타 소리는 없다.

계속 기타를 들고 다니길래 내 스스로 착각한 모양. 어이가 없다.

격렬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의 움직임은 보여주고 있었는데, 요즘 트렌드인 것 같았다.

“잘하지 않냐?”

뒤에서 들려오는 최승환의 상기된 목소리.

몸을 돌린 내가 수긍했다.

“잘하네요. 음색이 너무 좋아요.”

“스텔라랑 보영이, 이 둘만 있으면 우리 회사는 WW엔터보다 훨씬 큰 기획사가 될 거야. 나중에 회사가 안정되면 공개 오디션도 열어서 아이돌 연습생도 모집할 생각이고. 어떻게 생각해?”

야심이 있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이건 좀 많이 나갔잖아.

사내식당 요리사도 없는, 달랑 네 명이 끝인 자그마한 소속사가 안정되려면 얼마나 걸리겠냐?

세상만사는 생각대로 되는 법이 없는데, 꿈이 크다.

그냥 스텔라한테 집중해라. 네 역할은 그게 다야.

“전 일개 매니저일 뿐이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스스로를 낮춘 게 주효했을까?

경계심이 약간 서려있던 최승환의 눈빛에 호의가 담겼다.

아니, 호의가 아니라 낮잡아보는 기색이었다.

한국대 미래과학과에 입학할 만큼 똑똑한 놈이, 얼굴도 잘생겼고 몸마저도 좋은 놈이 고졸인 내 밑에서 일하고 있다.

저놈은 분명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열심히 배워. 난 초창기 직원들을 내팽개치는 사람 아냐.”

열심히 하면 직급을 높여주겠다는 소리였다.

허세를 부리는 모습이 참으로 가소롭다.

“예, 형님.”

최승환과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고 있던 나는, 마침 곡이 끝나 잠깐 호흡을 가다듬던 스텔라와 눈을 마주치게 되었다.

쑥스러운 듯 우물쭈물하고 있는 스텔라를 향해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엄지를 치켜세워주자, 그녀가 자그마한 웃음을 터뜨린다.

아아... 미소가 너무 아름답다.

희미하게 생기는 보조개가 안 그래도 싱그러운 스텔라를 더욱 돋보여준다.

좋다. 세화를 물들일 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다.

빨리 나한테 마음을 줬으면 좋겠다.

**

“그럼 오빠는 저 연습 끝날 때까지 계속 소속사에 계셨던 거예요?”

이번엔 뒷좌석이 아니라 조수석에 탄 스텔라의 물음.

전방을 주시하며 운전을 하던 내가 대답했다.

“계속은 아니고, 주변 지리도 익힐 겸 나갔다 왔어.”

“그게 그거 아닌가...?”

“그게 그거긴 하지.”

“심심하진 않으셨어요?”

“심심한 게 낫지. 앞으로 바빠질 텐데.”

스텔라가 자신의 입을 가렸다.

웃음을 참는 행동이었다.

“되게 솔직하시네요. 심심한 게 나아요?”

“오해한 거 같은데 미안해. 계약서까지 써놓고 대충할 생각은 없어.”

“오해 안 했어요. 믿을게요.”

차 안은 향기로운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다.

소속사에서 샤워를 마친 스텔라가 뿌린 향수였다.

청량감이 있는 냄새였는데, 플로랄 계열과 허브를 섞은 것 같았다.

시원한 쪽을 좋아하나? 방향제는 그쪽으로 고려해봐야겠다.

매니저 역할에 충실하면서 사소한 것들부터 공감대를 형성하자.

신호가 걸린 틈을 탄 나는, 보온 기능이 비치된 컵 홀더에 놓인 유리병을 꺼냈다.

그리고 그것의 뚜껑을 따서 스텔라의 앞에 내밀었다.

“마실래?”

“이게 뭐에요?”

“모과차. 목에 좋은 거야.”

“아 진짜요? 감사합니다.”

반색한 스텔라가 두 손으로 공손히 병을 받았다.

그것을 한 모금 들이켠 그녀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뭔가 떫은데 달아요...”

“꿀이 들어가긴 했는데, 맛없으면 반 정도만 마셔.”

“아니에요.”

말을 마친 스텔라가 입가에 갖다 댄 병을 높이 세웠다.

순식간에 사라져 없어지는 모과차.

인상을 약간 구긴 채로 원샷을 마친 그녀가 자신의 입술에 묻어있는 잔여 액체를 혀로 핥는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무척 요염하다고 생각한 내가 글러브 박스를 가리켰다.

“저 안에 사탕 있거든? 꺼내서 먹어.”

내 말대로 한 스텔라가 딸기맛 사탕을 꺼내 입속에 집어넣었다.

사탕을 볼 한 쪽에 몰아놓은 그녀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보영이 누나가 목 관리하라고 안 해? 가수는 목이 생명이잖아.”

“그냥 물 많이 마시라고... 제일 좋대요.”

그럼 화장실에 자주 가겠네?

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조심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가며 목동 빌라촌에 도착한 나는 스텔라를 바라보았다.

“오늘 수고했고, 내일 오후에 데리러 올게.”

“수고는 오빠가 하셨죠. 내일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조수석 문을 열고 내린 스텔라가 내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입력하려던 그녀는, 내가 차에서 내리자 고개를 갸웃했다.

왜 내리냐고 묻는 것 같은 눈.

말없이 뒷좌석 문을 연 나는 기타가방을 꺼내 스텔라에게 내밀었다.

그리고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타 챙겨야지.”

“아... 맞다...”

겸연쩍은 듯 배시시 웃은 그녀가 가방을 받아들어, 자신의 어깨에 멨다.

“제가 좀 덜렁거리죠...? 원래는 안 이래요.”

덜렁거리는 애들이 항상 원래는 안 그런다고 하더라.

그래서 좋은 거야.

내가 더 많이 챙겨줄 수 있잖아.

너그럽게 웃은 내가 말했다.

“괜찮아. 들어가. 내일 보자.”

“네, 오빠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스텔라와 헤어진 나는 집으로 돌아가려다가, 대형마트로 방향을 잡았다.

스텔라의 편의를 위한 물건들을 사기 위해서였다.

가습기, 공기청정기, 담요, 안대, 귀마개, 차량용 충전기, 청량한 냄새가 나는 방향제...

살 게 너무 많다.

@@

샤워를 마친 스텔라는,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닦아내며 화장대에 앉았다.

“아, 아.”

잠깐 발성을 점검해본 그녀는 피부톤에 맞는 기초화장을 끝마치고 눈을 두어 번 끔벅였다.

미국에서 보영의 눈에 들어 여기까지 온 것부터 시작해서, 그녀의 제자가 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곧 데뷔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가수.

어찌나 되고 싶었던가.

자신이 작곡한 노래가 대중에게 공개된다는 것이 무척 신기했고, 영광스러웠다.

자그마한 소속사의 대표도 자신을 믿어주고 있고... 보영이 믿음직한 매니저까지 붙여줬다.

송지혁, 22세, 보영의 고등학교 후배고, 그녀의 추천으로 인해 입사한 사람.

솔직하고 과묵했으며, 무척 잘생긴 호감형 얼굴을 하고 있었다.

후자는 중요한 게 아니지만, 솔직히 눈이 즐거웠다.

섬세한 구석이 다분해서, 매사에 한 가지씩 빠뜨릴 정도로 덜렁한 구석이 있는 자신과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이 모든 건 다 차치하고서라도 ‘매니저’라는 단어에서 오는 울림이 컸다.

하루 종일 오로지 자신만을 케어해주는 사람, 무엇이든지 들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자신에게 붙었다. 이제야 실감이 난다. 자신이 가수, 연예인이라는 게.

‘엄청 힘들다던데...’

매니저가 3D업종의 대표 격으로 꼽히는 직업이라는 건 잘 알고 있다.

몇 달을 버티지도 못하고 그만두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는데... 지혁도 그러려나?

지혁은 매니저를 처음 해본다는데, 같이 경력을 쌓아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었다.

무엇보다 자신은 지혁이 마음에 들었다. 대화를 좀 나누어봤는데 책임감이 있는 사람 같았다.

물론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더 지켜봐야겠지만 현재까진 느낌이 좋았다.

그러니 그만 두지 못하도록 잘 대해줘야겠다.

삑! 삑삑!

현관문에서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소리가 났다.

퍼뜩 정신을 차린 스텔라가 시간을 보았다.

오후 10시, 꽤나 늦은 시간.

구슬픈 표정을 지은 스텔라가 재빨리 방을 나가 현관문 앞에 섰다.

덜컥.

문이 열리면서 알렉스가 들어왔다.

확! 하고 풍겨져오는 담배냄새... 또 불량한 학생들과 어울린 모양이었다.

“뭐야, 언제 왔어?”

태연스럽게 신발을 벗으며 저리 물어오는 알렉스.

팔짱을 낀 스텔라가 물었다.

“어디 갔다 와?”

“친구들이랑 논다고 말했잖아. PC방에서 게임했어. 늦어서 미안.”

“오후에 전화했었는데 왜 안 받았어? 담배냄새는 왜 이렇게 심해? 또 담배 피웠지?”

“전화 온 줄 몰랐고, 담배는 피웠어.”

“그걸 왜 그렇게 당당하게 말해?”

“누나, 나 성인이야.”

“그래도 학생신분이잖아. 다른 학생들보다 나이도 한 살 더 많은데, 네가 모범을...”

“알았어, 알았다고.”

웃는 낯으로 스텔라의 팔을 툭툭 두드린 알렉스가 냉장고로 가 물을 꺼냈다.

생수병에 입을 대고 벌컥벌컥 들이켜는 동생의 모습을 보던 스텔라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땐 얌전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몇 개월이 지나고 적응을 마치자마자 학교폭력 전화도 오고... 항의가 장난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조금 누그러지긴 했지만, 미국에 있을 땐 저런 반사회적 행동 같은 건 하지도 않았는데 무척 걱정이었다.

호되게 꾸짖은 적이 있긴 했지만, 그때마다 진심으로 잘못했다고 사정사정해놓곤 다시 또 사고를 친다.

근데 또 자신에게는 반항하지 않고 얌전한 모습을 보여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보영언니가 수습해주시는 것도 한계가 있을 텐데...’

날을 잡고 칼을 확 빼들어야 하는데... 자신이 잘 챙겨주지 못해 동생이 저리 된 것 같아서 책임을 전가하는 느낌이라 모질게 굴질 못하겠다.

또한 자신은 동생과 관련된 일엔 마음이 무척 약해진다.

이래선 안 되는데 어쩔 수가 없다.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혈육이라서.

“왜 자꾸 그렇게 봐? 물 먹다 질식하겠네. 내가 사고를 친 것도 아니잖아.”

“담배는 사고 아니야?”

“교복 입고 핀 것도 아닌데 왜 그래 자꾸.”

“제발 끊어라... 진짜 경고한다 너...”

“아... 잔소리 진짜... 알았어. 나 용돈이나 좀 주라.”

“안 돼. 이제 돈 없어.”

“왜? 채보영이 안 줘?”

스텔라가 이마를 딱 짚었다.

“채보영이 아니라 보영이 누나라고 해야지.”

“밖에선 그러고 다니는데?”

“안에서도 그러고 다녀.”

“난 한국식 위계 호칭에 적응을 못하겠어. 그리고 둘만 있을 땐 한국어 좀 안 쓰면 안 되냐?”

“한국에서 살게 됐으니까 싫어도 적응해. 다시 말해봐.”

입맛을 찹찹 다신 알렉스가 숨을 길게 내뱉었다.

그리고는 자포자기한 투로 말했다.

“보영이 누나가 안 줘?”

“이제부턴 내가 직접 벌어야 된대. 생활비만 최소한으로 지원해주시고 계셔.”

“갑자기 왜 그런 짓을 해?”

“자립심을 키워주시려나 보지. 어쨌든 돈 쓰고 싶으면 일해서 벌어. 방학이니까 알바라도 해.”

“개학까지 한 달도 안 남았는데 뭔 알바야... 아 됐어. 그냥 주지 마.”

손을 휘휘 저은 알렉스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거실에 혼자 남게 된 스텔라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알렉스는 스무 살 성인이라지만 아직 학생이다.

미국에선 한 명도 없던 친구를 많이 사귀기도 해서 한창 돈을 쓰고 싶을 때일 텐데...

돈이 없다면 예전처럼 폭력으로 동급생들을 갈취하려들지도 모른다.

결국 안방으로 들어간 스텔라는 자신의 지갑을 뒤적거려 지폐 한 장을 빼냈다.

그리고는 알렉스의 방 문에 노크를 하고 들어갔다.

웃통을 벗고 씻을 준비를 하고 있는 자신의 동생이 의아한 눈빛으로 묻는다.

“뭔데?”

그런 그에게 오만 원짜리 지폐를 내민 스텔라가 말했다.

“아껴 써라... 며칠 만에 다 쓰고 또 달라하면 진짜 죽는다...”

그에 알렉스의 얼굴이 대번에 환해졌다.

두 손으로 돈을 받은 알렉스가 상체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아껴 쓸게요.”

극도로 공손한 모습을 보여주는 알렉스.

순식간에 바뀐 태도에 어이가 없어진 스텔라가 헛웃음을 켰다.

“아껴 쓰라고 했다?”

“알았다니까... 얼른 나가. 나 샤워하게.”

혀를 끌끌 찬 스텔라는, 동생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주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휴대폰을 보니 문자가 하나 와있었다.

매니저인 지혁의 메시지였다.

[내일은 오후까지 푹 쉬고, 3시까지 나와 있을래?]

3시까지라... 뭔가 아쉽다.

데뷔를 코앞에 두어서 연습을 해야 하는데... 집에서라도 조심하며 해야겠다.

그리 마음먹은 스텔라가 답장을 보내려는 순간,

[따로 연습하고 싶으면 오전에 픽업 갈게.]

지혁의 메시지가 이어서 도착했다.

자신의 마음을 읽어낸 듯한 문자에, 스텔라의 표정이 환해졌다.

하지만 앞으로 힘들어질 텐데, 데뷔 전까지만이라도 매니저를 쉬게 해주고 싶었다.

[아니에요. 연습은 할 건데 오빠는 푹 쉬세요. 저 혼자 가도 돼요.]

[너 그냥 나가면 알아보는 사람도 꽤 있지 않아? 괜히 문제 생길 수도 있으니까 데리러 갈게. 몇 시가 좋아?]

그건 그랬다.

고작 미니 콘서트의 게스트로 나와서 한 곡만 불렀을 뿐인데, 유명해졌는지 알아보는 사람이 있긴 했다.

뒤에서 채보영 제자라고 수근거리거나, 같이 사진을 찍어 달라거나 사인을 해달라며 오는 사람도 몇 명 있었다.

하지만 귀찮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알아봐주어 고마웠다.

[무슨 문제가 생겨요?]

[스토킹 같은 거. 보영이 누나가 그러는데, 예비 사생팬이 너한테 달라붙으면 골치 아파진대.]

아... 그렇구나.

지금까진 그런 기색을 느끼지 못했지만, 한창 스토커한테 시달린 전적이 있었던 보영이 한 말이었으니 잘 따라야겠다.

[그러면 10시에 데리러 와주실 수 있어요?]

[당연하지. 시간 맞춰서 갈게.]

[감사합니다.]

[아냐. 내일 보자.]

[네, 쉬세요.]

문자를 마친 스텔라는 괜히 풋풋해진 기분이 들었다.

이제 곧 그토록 꿈에 그리던 데뷔를 한다.

대한민국의 국민여동생이자 음원만 냈다 하면 1위를 싹쓸이하는 보영.

스승인 그녀처럼 되는 게 첫 번째 목표이니,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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