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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358화 (358/471)

〈 358화 〉 너의 매니저님

* * *

“메릴... TV 그만보구 나랑 놀자아...”

오피스텔로 돌아온 나는, 메릴에게 칭얼거리는 아델을 보고 빵 터져버리고 말았다.

입을 헤 벌린 채로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메릴의 살랑거리는 꼬리를 잡고 마구 흔들어대는 그녀.

누가 어린애인지 모르겠다.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서니, 메릴이 고개를 돌린다.

“마왕님!”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소리를 지른 메릴은 우다다다 달려와 한손을 들었다.

조막만한 손에 쥐어져있는 박하사탕.

포장지의 구김이 제법 심한 것으로 보아 오랜 시간을 쥐고 있었던 것 같았다.

쪼그려 앉아 그녀와 눈높이를 맞춘 내가 물었다.

“나 주는 거야?”

“네! 사탕 마시써요! 찌구 조아요!”

“지구가 좋아?”

“네에에! 여기서 살래!”

이러면 마음 약해지는데.

인류는 멸망시키지 말고, 마물들이랑 조화롭게 살아가도록 할까?

마물들에게 평소엔 지구의 생명체들을 먹도록 하다가, 특식으로 인간들을 내어주면 좋아할 것 같기도 하다.

사탕을 받아든 나는 그 자리에서 까먹었다.

짭짭거리는 소리까지 들려주자, 메릴이 헤실헤실 웃더니 다시 TV 앞으로 달려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린이용 만화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지구의 꼬맹이다.

“지혁 씨! 대체 무슨 짓을 하셨길래 메릴이 지혁 씨를 따르지요?”

성큼성큼 다가와선 가슴을 쭉 내미는 아델.

나는 손을 뻗으려는 충동을 간신히 참아냈다.

메릴의 정서에 좋지 않으니까, 야한 짓은 다른 집에서 하던가 해야지.

“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

“그럴 리가 없어요. 메릴은 아까부터 두 시간이 넘도록 TV 앞에만 앉아있었다구요!”

“제가 좋나보죠.”

“그럼 저는요? 메릴이 절 싫어한다는 뜻인가요?”

“글쎄요... 오늘 메릴과 함께 나갔던 걸로 아는데, 너무 붙어있어서 싫증이 난 게 아닐지...? 그나저나 손톱 예쁘네요.”

아델의 손톱은 이블 발키리로 변신했을 때의 머리카락과 같은 자주색이었다.

아델은 밝은 색이 어울리는데 조금 아쉽긴 하다.

자신의 다섯 손가락을 쫙 편 아델이 내게 손등을 보여준다.

“그렇지요? 뭔가 어른스럽지 않나요?”

“그...”

덜컥.

그러려니 한 내가 대답을 해주려는 찰나, 방문이 열리더니 실비아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나와 눈인사를 나눈 그녀가 아델을 나무랐다.

“아델, 제발 조용히 좀 해. 나 유리아랑 드라마 본다고 했잖아.”

“볼륨을 높이셔요.”

“미치겠네 진짜...”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실비아가 내게 묻는다.

“주인... 아니, 너도 같이 볼래?”

황급히 말을 낮추는 실비아.

주인님이라는 호칭을 쓴지 얼마 안 됐음에도 이미 입에 붙었나보다.

“아냐. 유리아랑 재미있게 봐. 세화는?”

“세화는 대학 동기들 만난다고 잠깐 나갔어. 넌? 스텔라 만났어?”

“만났어.”

아델의 귀가 메릴마냥 쫑긋했다.

스텔라를 먼발치에서 한 번 본 적 있던 실비아 또한 굉장한 흥미를 보였다.

“어때?”

“예쁘고 착해. 좋은 가족이 될 거야.”

우우웅­!

마침 스텔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녀에게 문자가 온다.

양반은 못되는구나.

[지혁이 오빠, 스텔라 헤일리에요. 잘 부탁드려요. 댁엔 잘 들어가셨나요? 저희 집 주소는…….]

[음식은 다 잘 먹는데, 아침은 웬만해선 베이컨이 들어간 음식이었으면 좋겠어요. 알러지는 지금까진 딱히 없었고…….]

다 잘 먹는다고 하기엔 너무 성의 없어 보이고, 그렇다고 상세히 말하자니 깐깐해 보일까봐 저렇게 쓴 티가 팍팍 났다.

딱 봐도 느껴질 정도. 근데 그놈의 잘 부탁드린다는 말 좀 그만하면 안 되겠니?

내 곁에 딱 달라붙어 휴대폰을 엿보던 아델이 말한다.

“예의가 없는 계집이로군요. 교육이 필요하겠어요.”

그에 내 어깨에 턱을 괴고 있던 실비아가 반박했다.

“어딜 봐서 예의가 없는데?”

“음험한 기운이 느껴져요.”

“그냥 트집 잡고 싶은 게 아니라?”

“제 말을 못 믿으시는 건가요?”

“믿을만하게 말해야 믿지...”

“뭐라구요!?”

욱한 아델이 실비아의 허리를 꼬집으려고 손을 뻗었다.

하지만 날랜 실비아가 재빨리 피하자 허공만을 갈랐다.

나는 내 주위를 뱅뱅 돌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헛웃음을 켰다.

“흐아아아앙!”

그러다 갑작스레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메릴을 쳐다보았다.

“메릴! 왜 울고 그래? 언니가 시끄러웠어? 미안해... 뚝!”

순식간에 달려가 메릴을 안아드는 아델.

역동적으로 꼬리를 움직이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던 메릴이 손가락으로 TV를 가리켰다.

“나쁜이가 때려써요! 허어어엉!”

“나쁜이?”

“나쁜이가 예쁜이 때려쩌요!”

뭔가 싶어서 사태를 파악해보니, 어린이용 만화에 나오는 악역이 주인공의 딱밤을 때려서 운 것 같았다.

아델 또한 그것을 알아차리고는 메릴을 달랬다.

“우리 메릴... 착하지? 언니가 나쁜이 때찌해줄게요. 자, 코 풀자. 킁 하셔요.”

“크으으응!”

집이 제법 활기차졌다.

좁아진 느낌도 드는데... 여기서 박사와 마르셀라까지 온다면 조금 답답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임시신전으로 쓰던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가야하나?

힘없는 웃음을 터뜨린 나는 스텔라에게 답장을 보냈다.

[확인했어. 내일 보자.]

**

“옷 좀 대충 입으면 안 되냐?”

날 빤히 쳐다보던 최승환의 황당한 말.

막 근로계약서에 사인을 마친 내가 고개를 들었다.

“예...?”

“아니다, 넘어가. 사인 끝냈어?”

“끝냈습니다.”

“오케이. 이건 밴 열쇠고, 이건 법인카드.”

잘그락거리는 열쇠와 카드를 내 앞에 내민 최승환이 말을 이었다.

“오늘부터 스텔라 활동에 필요한 것들은 이걸로 결제해. 영수증 꼭 받아오고.”

“예, 대표님.”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 쥐꼬리만 한 소속사에서 뭔 대표님이야. 가족같이 가자. 열심히 해서 우리 둘... 아니, 보영이랑 스텔라까지 넷이서 크게 한 번 키워보자고.”

그럴 거면 명패부터 치우던가.

뽐은 내고 싶은데 겸손한 척, 착한 척은 하고 싶고... 하나만 해라.

근데 누가 네 가족이야? 그건 넘어가기 힘든데.

넌 죽음 확정이다.

“예, 형님.”

“형님은 딱딱해 보이지 않냐?”

말은 저렇게 하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띠우고 있다.

“좋기만 한데요.”

“갓 전역해서 그런가? 군기가 살아있네. 어쨌든 오늘부터 뮤비 제작 들어가거든? 콘티랑 장소는 다 준비돼서 조만간 촬영 시작할 거야. 지금 스텔라 데리고 연습실로 올래?”

“보영이 누나가 자기 집에서 연습시킨다는데요?”

대표지만 보영의 말을 잘 따르는 꼭두각시.

이런 사람을 빡치게 하는 일은 간단하다.

최승환의 말보다, 보영의 말을 우선시하는 경향을 보여주면 된다.

틈만 나면 보영이 뭐 하라고 했다... 이러라는 게 아니라, 적당히 알랑방귀도 뀌어주면서, 시간을 들여 열등감을 갖도록 하면 끝이다.

이게 쌓이고 쌓이면 터지는 거고, 스텔라 앞에서 대판 싸우면 금상첨화.

굳이 한낱 바지사장에게 이러는 건 시간낭비긴 하지만, 뭐 어쩌랴? 재미있는데.

“그래...?”

“일단 여기가 더 가깝기도 하니까, 연습실로 데리고 올게요.”

난 널 존중해주면서, 보영이도 편하게 대한다.

지금처럼 최승환은 절대 하지 못할 일을 난 간단하게 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겨주면 된다.

“그러냐? 그럼 그렇게 할래?”

“예. 다녀올게요.”

**

내가 받은 밴은 최신식의 검은색 9인승 RV였다.

일반적인 ‘연예인 차’ 하면 바로 생각나는 차량.

전체적으로 마음에 들긴 하지만, 특히나 좋은 건 선팅이 워낙 잘 되어있다는 점.

커튼까지 있어 밖에서 안을 전혀 볼 수 없게 되어있었다.

연예인 보호차원이겠지만, 내겐 안에서 일어날 밀회를 가려줄 가림막으로 보였다.

이 안에서 일어날 음흉한 일들을 생각하니 아래가 빳빳해진다.

자동주행모드도 있고... 아주 훌륭하다.

꼼꼼하게 차량을 점검한 나는 스텔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오빠.

아아... 자꾸 들으니까 중독성이 심하다.

더 불러주련?

“안녕. 오늘 연습 있지?”

­네, 보영이 언니 집에서요.

“대표님이 연습실로 오래. 지금 데리러 갈게.”

­아 진짜요? 알겠습니다.

“밥은 먹었어?”

­방금 동생이랑 먹었어요. 오빠는요? 안 드셨으면 제가 집에 있는 음식 좀 싸드릴까요?

착하다. 심성이 너무 곧다.

빨리 물들이고 싶어서 미치겠다.

“나도 방금 먹었어. 한 30분 뒤에 도착하니까 준비해놓을래? 차는 검은색 RV야.”

­네, 오빠. 조심히 오세요.

차를 몰고 스텔라가 알려준 주소로 간 나는, 그녀와 알렉스가 살고 있는 빌라를 보았다.

금싸라기 땅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격대가 꽤 나가는, 목동 근처에 있는 빌라촌.

거기에서 가장 깨끗한 집이다. 주변도 깨끗해서 환경이 좋았다.

입구에 차를 대어놓은 나는 스텔라에게 다시 전화를 걸려고 했다.

그때, 공동현관이 열리더니 짧은 금발머리를 한 덩치 큰 남자가 나와 조수석 유리에 손을 대고 안을 살펴보았다.

나는 저 남자의 얼굴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미니콘서트에서 X밴드를 입고 무대 근처에 서있었던 스텔라의 동생, 알렉산더 헤일리였다.

‘잘생겼네.’

그때도 느꼈지만 남자답게 잘생겼다.

근육도 꽤 있어 마초스러운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모습이 퍽 사나워 보였는데, 곧 뒈질 놈이라 그런지 가소롭기만 했다.

차에서 내린 내가 알렉스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가며 말했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알렉스의 시선이 내 온몸을 훑는 게 느껴진다.

자신보다 약간 더 큰 몸집, 그리고 근육을 보고 위압감이 느껴졌을까?

한 발 물러선 그가 물었다.

“스텔라 헤일리 매니저 아니에요? 누나가 곧 온다고 했는데.”

스텔라만큼은 아니지만 능숙한 한국어가 들린다.

배움이 꽤나 깊구나. 의외다.

“누구시죠?”

“스텔라 동생요.”

나는 알렉스를 고삐 풀린 망아지로 키울 예정이었다.

날 막대하도록 만들어서, 날 사랑하게 된 스텔라가 점점 선을 넘는 동생을 증오하게끔 만들 거다.

그러려면 기세를 잡는 건 좋지 않다.

적당히 친구처럼 지내되, 약간 일진 무리에 끼어든 물주처럼 느껴지도록 하는 게 베스트였다.

“아... 네가 알렉산더 헤일리구나? 보영이 누나한테 얘기 들었다.”

만면에 순진한 미소를 지으며 알렉스에게 손을 내밀자, 놈의 경계어린 눈빛이 순식간에 깔보는 눈빛으로 일변한다.

학교생활에 어지간히 물들었구나. 계도하기가 꽤나 힘들겠다.

계도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내 손을 잡은 알렉스가 가볍게 악수를 했다.

“알렉스라고 불러요. 형은 송지혁이죠?”

“너네 누나한테 들었어?”

“네.”

알렉스는 곧 자신의 패딩 주머니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담배를 찾는 건가?

잠깐 그러고 있던 알렉스가 내 눈치를 슬쩍 보더니 말했다.

“친구들 만나기로 해서 이만 가볼게요. 우리 누나 잘 부탁해요.”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있었지만, 예상외로 예의가 바르다.

이러면 안 되는데... 짜증나게.

애써 웃음을 지은 내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근데 형.”

“응?”

“오천 원만 줄 수 있어요? 나중에 갚을게.”

그래, 이래야지.

말은 부탁하는 것처럼 해놓고 빨리 내놓으라는 듯 손을 내미는 저 모습... 아주좋단다.

은근슬쩍 반말을 섞는 것도 좋아.

잠깐 당황스런 연기를 한 나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알렉스가 볼 수 있게끔 벌렸다.

수북하진 않지만 적당히 있는 지폐.

그것을 본 알렉스의 눈빛에 탐욕이 약간 일었다.

모아둔 돈이 전혀 없구나. 현재 용돈이 딱 끊겨서 약간 궁할 때다.

거기서 오천 원짜리 지폐를 꺼내려던 내가 물었다.

“스텔라가 용돈 안 줘?”

“네.”

“그래...?”

고개를 한 차례 갸웃한 나는, 만 원짜리 지폐 세 장을 꺼내 알렉스에게 내밀었다.

“일단 이거 써.”

그러자 잽싸게 지폐를 받아든 알렉스가 고개를 까딱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갚을게요.”

갚겠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서 진짜 갚는 사람은 별로 없단다.

정직한 사람이야 갚겠지만, 지금의 넌 그런 사람이 아니잖니.

안 갚을 걸 뻔히 아는데 갚겠다고 말하는 게 보기 좋지는 않구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인 나는, 알렉스가 점점 멀어질 때쯤 공동현관으로 눈을 돌렸다.

스텔라가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활기찬 인사를 하는 그녀.

박시한 흰색 맨투맨에 어디 브랜드인지 모를 보세 패딩이 꽤나 어울린다.

이번엔 진심어린 미소가 튀어나온 나는 뒷좌석 문을 열었다.

“안녕.”

“오빠 혹시 제 동생 봤어요?”

“알렉스 맞지? 인사 나눴어.”

“걔가 뭐라고 안 했어요?”

불안한가보다. 알렉스가 말실수를 했을까봐.

“그냥 인사만 하고 헤어졌어. 일단 타.”

“그래요...? 아, 저 앞좌석에 탈게요.”

“멀미해?”

“그건 아닌데... 오빠 심심하실까봐...”

가수가 편해야지 내가 편하면 되겠니?

난 노예라고, 머슴이야.

“그냥 뒤에 타. 앞좌석 제대로 안 치워놨어.”

“제가 치우면 돼요. 뒷좌석에 기타만 좀 놓을게요. 잠시만요...”

좋은 의미의 고집이 꽤나 강하다.

“그거 4열에 놔야 돼. 도와줄게.”

“제가 해도 괜찮...”

텅!

제법 큰 소리가 들려온다.

높이를 생각하지 않고 기타 가방을 든 스텔라가 자동차의 루프 모서리에 기타를 부딪쳤기 때문이다.

어제도 느꼈지만, 덜렁거리는 게 마치 아델 같다.

“엄마야...”

저 감탄사도 아델이랑 비슷하다.

옛날에 아델이 팝콘을 쏟았을 때 뭐랬더라... ‘흐엄마야...’ 라고 했었나?

아델보단 훨씬 침착하긴 한데... 앞으로가 재미있어질 것 같다.

실소를 터뜨린 나는 스탈라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내가 할게.”

“아... 네... 감사합니다...”

얼굴이 약간 빨개진 스텔라는, 고집을 접고 순순히 내게 기타를 넘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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