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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357화 (357/471)

〈 357화 〉 스텔라 헤일리 #2

* * *

보영과 함께 사장실 안으로 들어간 나는 최승환을 보았다.

놈은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평범한 얼굴, 평범한 몸매, 심지어는 헤어스타일까지 평범하다.

스탠다드의 정석. 말투마저도 평범할 것 같다.

다만 자신의 현 직책을 자랑하고 싶었는지, 책상 위에 [대표이사 최승환]이라고 적힌... 어마어마하게 비싸 보이는 명패를 놓아둔 상태였다.

야심은 조금이나마 있는 모양이구나.

최승환을 향해 씨익 웃은 내가 공손한 투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송지혁이라고 합니다.”

“최승환이야. 잘생겼네...?”

껄끄러워하고 있다.

진성 팬층이 있는 연예인의 매니저는 최승환처럼 평범한 쪽을 무척 선호한다고 했다.

하루 종일 매니저와 함께 붙어있는 연예인의 특성상, 매니저에게 정을 주게 되어있다.

매니저가 잘생기거나 예쁘면 연예인과 눈이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만약 그게 소문이라도 나면 이미지에 타격이 크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나이는?”

“스물두 살입니다. 얼마 전에 전역했어요.”

나이를 스텔라보다 한 살 많게 책정한 건 이유가 있었다.

군필인 척하려고, 그리고 오빠라는 호칭을 듣고 싶으니까다.

나중에 스텔라가 본부로 들어오면 눈치챌 가능성이 높아지겠지만 뭐...

그건 그때 가서 적당히 둘러대면 된다.

거짓말 속에 진실을 조금 섞어놓아야 한다.

그래야 스텔라를 변신시킬 때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지.

송지혁의 모든 인생은 거짓이긴 하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다.

내 조작된 이력서를 주의 깊게 살펴보던 최승환이 눈을 빛냈다.

“한국대 미래과학과? 유망한 곳에 다니는데 왜 휴학했대?”

“돈이 궁해서요.”

“돈...? 너 매니저가 박봉인 건 알아? 미안한 말이지만 우리 회사가 지금 일이 많이 없어서... 많은 돈은 못 줘.”

“보영이 누나가 따로 챙겨주신다고 하셔서요.”

최승환이 보영을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다시 날 돌아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뭐... 솔직한 건 좋네. 근데 난 왜 널 모르지?”

“예?”

“아, 다른 게 아니라... 난 보영이 매니저로 5년간 지냈어. 그래서 보영이 주변 사람들은 대충이라도 다 알고 있거든. 네 이름은 오늘 처음 들어봐서 그래.”

그 물음에 대답한 건 보영이었다.

“오빠가 무슨 내 주변 사람들을 다 알아? 오버하지 마.”

“웬만한 사람들은 알잖아.”

“그건 가족들이나 연예인들 얘기지. 오빠 내 친구들 이름 알아?”

“알지 왜 몰라? 소영이, 혜은이...”

“혜은이가 아니라 은혜야.”

“그래, 은혜... 잠깐 헷갈렸어.”

“예전에도 혜은이라고 하더니만 헷갈리긴 무슨...”

최승환의 시선이 내 쪽으로 잠깐 향했다.

내가 있는 앞에서 꼽을 받으니 서운한 듯했다.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은 최승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스텔라 매니저는 경력이 있는 사람으로 뽑으려 했는데...”

“요새 경력 있는 로드매니저가 어디 있어? 구인난이잖아. 얘 진짜 괜찮은 애니까 같이 하자. 원래 나도 지혁이랑 일하려고 했는데, 나이랑 군대 때문에 못 뽑았던 거야.”

“말 되게 서운하게 한다? 그럼 나는? 낙동강 오리알이야 뭐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난 오빠 없으면 안 되는 거 알잖아. 어쨌든 뽑아줄 거지?”

“음...”

머리를 벅벅 긁은 최승환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손을 내밀었다.

“보영이가 아는 동생이라니까 믿고 맡겨본다?”

자기주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여론... 아니, 강자의 의견에 편승하는 모습.

꼭두각시의 전형이다. 완벽한 바지사장의 자격을 갖췄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최승환의 손을 맞잡은 내가 씨익 웃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스텔라는 봤어?”

“보영이 누나한테 제의받자마자 찾아봤어요.”

“원래는 몰랐다는 소리야? 나름 유명할 텐데... 연예계 쪽에 관심이 별로 없나보네?”

“바쁘게 살아와서요. 돈 버느라고...”

“그건 마음에 드네. 보영이한테 들었겠지만, 괜히 사심 같은 거 품으면 안 된다? 그럼 바로 아웃이야.”

아니, 마음껏 품을 거다.

사심뿐이랴? 밴 안은 물론이고 스텔라의 집에서도 물고 빨고 다 할 거야.

연예계는 동물의 왕국이라던데, 내가 보호해줘야 맞지 않겠냐.

“당연합니다.”

“매니저가 하는 일은 알아?”

“로드매니저는 운전이 대부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연예인 케어도 하고, 계약된 경호업체나 방송 출연이 있으면 관계자랑 컨택도 하고...”

“그래, 뭐... 우리 소속사는 지금 규모가 작은 상태라서, 그런 거 외에도 이것저것 할 일이 많을 거거든? 우리 오래 같이 가보자. 법인카드랑 차키는 내일 근로계약서 준비하면서 줄게. 운전 잘하지?”

“잘합니다.”

“좋아, 난 보영이랑 할 얘기가 있으니까 탕비실에서 잠깐 쉬고 있어. 밥은 먹었어? 햄버거라도 시켜줄까?”

심성은 착하네. 죽이고 싶게.

“먹고 왔습니다. 나가있을게요.”

“그래.”

**

“지금 공동현관 앞에 도착했대요.”

휴대폰을 내려놓은 보영의 말이었다.

드디어 만나는구나.

마계 일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만났다면 꽤 찝찝했을 텐데, 전부 해결하고 온 직후라 시원하기만 하다.

설렌다. 하지만 침착해야한다.

첫 이미지는 그냥 업무상 관계. 이 정도가 딱 좋다.

보영과 함께 현관으로 간 나는, 살짝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스텔라가 올라오길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딩­동­!

거실 전체에 경쾌한 벨소리가 울렸다.

날 한 차례 흘끔거린 보영이 현관문으로 가 문을 연다.

덜컥!

“언니! 안녕하...”

싱그러운 목소리로 보영에게 인사를 건네던 스텔라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한다.

콘서트에서 봤을 때처럼 기다란 밝은 갈색머리를 한쪽 어깨 아래로 내려뜨린 그녀.

순함이 그대로 전해져오는 하늘색 눈망울을 동그랗게 뜬 스텔라 헤일리가, 양 어깨에 멘 기타가방끈을 고쳐 잡는다.

이후 자신의 오똑한 코를 한 차례 긁고는 고개를 꾸벅 숙인다.

“안녕하세요...?”

인사성이 밝다.

그녀의 귓볼에 남은 귀걸이 자국을 흘깃거린 나는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송지혁입니다.”

“스텔라 헤일리에요...”

스텔라와 악수를 나눈 나는 온몸에 짜릿한 전류가 흐름을 느꼈다.

잘 관리된 손가락이 정말 예쁘다.

내 손에 쏙 들어오면서도 길어 보이는 느낌.

추운 날 장갑도 없이 와서인지 손에 냉기마저도 가득하다.

그녀의 손을 두어 차례 흔든 내가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아... 네, 저도 잘 부탁드려요.”

악수를 마친 스텔라는 이게 무슨 일이냐는 눈빛으로 보영을 쳐다보았다.

가짜 미소를 짓고 있던 보영이 내 등에 손을 대고는 설명했다.

“지혁이는 내 아는 동생이고, 앞으로 네 매니저로 일할 거야. 너보다 한 살 많아.”

“매, 매니저요...?”

“응. 왜? 싫어?”

“아뇨아뇨... 싫은 게 아니라... 너무 갑작스러워서...”

“너도 이제 슬슬 데뷔 준비해야지.”

그 말에 스텔라의 안 그래도 큰 눈이 더욱 크게 뜨였다.

순간 눈가를 핥고 싶다는 생각을 해버렸다.

도톰한 입술은 또 어찌나 탐스러운지... 분홍빛으로 빛나는 것이 하얀 피부톤과 어우러져 감탄을 자아낸다.

당장 달려들어 덮치고 싶을 정도다.

“데뷔요...? 제가요?”

“조금만 기다리라고 계속 언질 줬었잖아. 기억 안 나?”

“나요... 나는데...”

기쁜 걸까? 아니면 긴장한 걸까?

스텔라가 자신의 가슴을 쿵쿵 두드렸다.

“언니... 저 잠깐 화장실 좀 들렀다 와도 돼요?”

거실 안이 환해질 듯한 아리따운 미소를 보니, 둘 다라고 생각된다.

보영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와.”

“네, 아... 잘 부탁드립니다.”

집 안으로 들어오려다가 다시 한 번 내게 인사를 하는 그녀였다.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상체를 꾸벅 숙이니, 기타 가방의 헤드 부분이 내 이마에 닿을락 말락 한다.

아델만큼은 아니지만 너도 은근히 덤벙대는 구석이 있구나.

신발을 벗고 가지런히 놓아둔 스텔라는, 내게 또 다시 목인사를 하고는 기타 가방을 소리 나지 않게 거실 한 켠에 세워놓았다.

그리고는 발끝을 세워 화장실로 향했다.

배려심이 몸에 배어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키가 160 중후반대로 크진 않지만, 원체 비율이 좋아서인지 다리가 길쭉해 보인다.

그녀의 뒷모습을 속속들이 살핀 나는, 청바지 아래에 자리한 아기자기한 양말을 보고 웃음을 간신히 참아냈다.

복사뼈 부근에 작은 펭귄이 수놓아져있는 양말이었는데, 귀여움보다 청순함이 더 많은 스텔라에겐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껴졌다.

‘아델이 좋아하겠어.’

**

스텔라는 붙임성이 좋았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억지로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이제부터 한솥밥을 먹게 될 매니저다보니 친해지려는 것이다.

일부러 그러지 않아도 자연스레 친해질 텐데, 귀엽다.

“아... 그럼 오빠는 전역하고 바로 취업하시려는 거예요? 안 쉬시고요?”

그녀의 입에서 오빠라는 호칭이 나오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노리긴 했지만 막상 실제로 들으니 귀가 정화되는 느낌이다.

애써 태연하게 커피를 홀짝인 나는, 스텔라의 옆에 앉아있는 보영의 다리를 내 발로 톡 건드렸다.

그러자 보영이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오늘 소속사 가서 승환이 오빠랑 만났어. 너만 동의하면 바로 데뷔곡 뮤직비디오 뽑을 거고, 공개날짜 잡을 거야.”

“지, 진짜요...?”

“응. 어떡할래?”

“전 무조건 하고 싶어요.”

스텔라의 목소리는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긴장은 되긴 하지만, 도전은 마다하지 않겠다는 거다.

의지력도 충분해서 좋다. 떨어뜨리는 맛이 상당하겠어.

“뮤비는 전에 우리가 상의했던 시놉시스대로 갈 예정인데, 혹시 바꾸고 싶은 거 있어?”

“아뇨. 그대로 해주셨으면 해요.”

“알았어. 그럼 내일 승환이 오빠한테 콘티 보낼게.”

“네, 언니. 감사합니다.”

“내일부터는 스케줄대로 움직일 거야. 알렉스한테 말해놔.”

동생의 이름이 언급되자, 스텔라의 표정에 근심이 서렸다.

알만하다. 사고를 치고 다니니 걱정스러울 테지.

그러니까 따끔하게 혼을 냈어야지.

한 번만 더 사고치고 다니면 다신 안 볼 거라고, 호적에서 팔 거라고 왜 말을 못했니.

이러니까 나만 더 좋잖아.

“알겠어요.”

“목 풀고 작업실로 와. 지혁이는 이만 가보고, 내일부터 고생하자.”

훌륭한 연기력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히죽 웃었다.

“네.”

그리고는 스텔라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번호 좀 찍어줄래?”

“아, 네...!”

고운 손을 놀려 내 휴대폰에 자신의 번호를 입력한 스텔라가 직접 전화를 걸었다.

우우웅­!

진동이 울리는 걸 확인한 그녀가 내 눈치를 흘끔 보더니 말한다.

“지혁 오빠라고 저장해도 되죠?”

암, 되고말고.

제발 그렇게 저장해줘.

“마음대로 해도 돼. 나중에 연습 끝나면 집 주소도 톡으로 보내줘. 좋아하는 음식이랑 기피하는 거, 알러지 있는 것들도 알려주고.”

“음식이요?”

“이동할 때 끼니 못 챙겨먹으면 안 되거든.”

“아... 네, 오빠.”

일단 첫 단추는 잘 꿰맨 것 같다.

매니저 일은 스텔라가 변신할 때까지만이다.

타이밍을 잘 잡아야하는데, 데뷔 후라는 건 변함없다.

새로이 탄생할 국민여동생의 이중생활... 이 마왕님께서 재미있게 즐겨주도록 하마.

일어나선 또 다시 인사를 하는 스텔라를 향해 손을 흔들어준 나는 현관문을 나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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