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4화 〉 영혼의 무게 #2
* * *
말파스가 구체에 들어간 이후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최소한 30분은 훌쩍 넘겼다.
현재 전황은 완전히 정리된 상황이었다.
지상의 말파스 측 마물들은 전멸.
그리고 나는 발록을 시켜 서부로 진격하라는 명을 내렸고, 서약을 하여 충심을 바치게 된 3기사를 딸려 보냈다.
중간에 잠깐 발록이 3기사들을 향해 공격을 행하긴 했지만 금세 진정되었다.
하여 온갖 소란이 일었던 이곳엔 말파스가 있는 구체, 그리고 나와 이블 발키리들뿐이었다.
카가가각!
칠판이 긁히는 소리와 함께, 구체에 기다란 상처가 났다.
마력을 모아 구체를 공격한 세화가 힘겨운 신음을 터뜨렸다.
“하아... 하아...”
거의 30분가량 쉬지도 않고 공격을 한 그녀다.
힘들지 않으면 이상한 일. 이는 아델을 제외한 다른 이블 발키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델, 너도 도와줘야지. 남들 다 일하는데 넌 왜 가만히 있어?”
여태 묵묵히 화살만을 갈겨대던 유리아의 타박.
입을 삐죽 내민 아델이 반박했다.
“언니, 저 흉물이 들어갔을 때 제 보옥으로 영혼을 가져가려 해보았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었어요. 언니도 보셨잖아요.”
“네 무기는 보옥이 아니라 힘이잖아. 무식한 힘.”
“무식하다니요...! 말씀이 지나치셔요!”
“너 그냥 힘든 거 싫으니까 그런 거지?”
찔끔하는 아델.
역시 알기 쉽다.
“아, 아니거든요?”
“메릴한테 앞으로 너랑 놀지 말라고 한다?”
“무, 뭐라구요...!?”
기가 찬 듯 헛웃음을 켜는 아델.
벙 찐 채로 유리아를 응시하던 그녀가 표독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어쩜 이렇게 유치할 수가 있지요...? 세 살짜리 어린아이 같아요!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어요!”
“맞아. 나 유치해.”
“.....”
“어떻게, 지금 말하러 가?”
“지, 지금...? 지금 이렇게 중요할 때 자리를 비우신다는 뜻인가요!? 이건 징계감이에요! 지혁 씨가 혼쭐을 내줄 거예요!”
말을 마친 아델이 날 올려다보았다.
당장 유리아를 혼내지 않고 뭐하냐는 얼굴.
이 말썽꾸러기를 어찌하면 좋을까 잠깐 고민하던 내가 입을 열었다.
“이번만큼은 유리아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겠습니다.”
“네에...?”
충격을 받았는지 눈이 두 배는 더 커진 아델.
입을 살짝 벌린 모습이 깜찍하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나는 구체를 가리켰다.
“말파스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충분히 설명했잖아요. 그런데도 가만히 있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게다가 지금이 중요한 상황임을 알면서도 손을 거들어주지 않으니 약간 슬퍼지려고 하네요.”
“그게 아니라아... 도와주려고 했어요...”
금세 꼬리를 내리는 아델이었다.
그녀의 곁으로 내려온 유리아가 다정한 투로 말했다.
“그럼 도와주면 안 될까? 우리 지금 엄청 힘든데...”
아델의 무거운 엉덩이를 떼도록 하려면 약간의 동정심 유발이 필요하다.
약간 엄하게 꾸짖는 모습도 있으면 좋다.
지금은 동정심이 먹힐 때였고, 진즉 그것을 파악한 유리아가 정말 힘에 부친 듯 헉헉거리면서 말하자 아델의 마음이 약해졌다.
“.... 그, 그러면... 다시는 메릴을 가지고 조건을 걸지 않겠다고 약속하셔요...”
“약속할게.”
“맹세해요...?”
“응, 맹세해.”
“.... 알았어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아델이 구체 앞으로 갔다.
그러더니 세상을 다 잃은 얼굴로 팔을 붕붕 돌리기 시작했다.
다소 황당한 준비동작. 세화가 입을 살짝 벌린 채로 아델을 바라보았다.
세화가 그러거나 말거나, 아델은 자신의 주먹에 충분한 회전력이 가미되자 혀를 빼꼼 내밀어 살짝 깨문 채로 주먹을 갈겼다.
쩌어어어어엉!
거대한 종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이러할까?
푸화악!
구체와 맞닿은 주먹에서부터 거대한 충격파가 발산되더니, 나를 비롯한 이블 발키리들을 덮친 것은 물론이요, 마계의 구름까지 저 멀리 밀어냈다.
쿠구구궁...!
지각마저 흔들린다. 마치 화산이 폭발한 후 동반하는 지진처럼.
어마어마한 괴력.
온갖 공격에도 상처만 났지 전혀 움직이지 않던 구체마저도 살짝 밀려났다.
쩌어억...!
심지어 세 명의 이블 발키리들이 있는 힘껏 공격을 날렸을 때보다 훨씬 더한 균열이 가기까지 했다.
자신이 만든 결과물을 보고 콧대를 우뚝 세운 아델.
위풍당당하게 내 곁으로 온 그녀가 팔을 부여잡았다.
“흐아아... 아프다아...”
누가 봐도 엄살이었다.
적당히 받아주고 한 번 더 공격하라고 해봐야지.
그리 마음먹은 내가 방긋 웃으며 아델을 안으려는 순간,
쩌적...!
그녀의 손목에 찬 디바이스 화면에 균열이 생겼다.
“으응...?”
쩌적! 쩌저적!
아델이 의아한 탄성을 터뜨림과 동시에, 세화와 유리아, 실비아의 디바이스에도 이상이 생겼다.
‘이건...’
아델의 디바이스만 깨지는 거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녀가 휘두른 주먹의 충격이 디바이스까지 전해졌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하지만 남은 세 명의 디바이스는 왜...?
구오오오...
혼란스런 마음을 잠재우고 상황파악을 하려던 나는, 구체가 걷히면서 말파스가 나오자 눈을 가라앉혔다.
폭삭 늙어버린 얼굴. 힘이 전혀 없어보였다.
그러나 입가엔 비소가 맺혀있었다.
“클클...”
저 재수 없는 웃음소리와 놈의 몸 안에 내재된 마력을 파악해보니, 디바이스에 일어난 일이 놈의 소원으로 인한 일이란 걸 알겠다.
마력은 있긴 했지만 아까에 비해서 쥐뿔도 없어졌다.
저 정도면 C급... 아니, D급 마물과의 대결에서도 패할 수준.
좋게 말해주기도 어려울 정도다.
“어떻습니까?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 아닙니까?”
이젠 예의상 마왕이라고 해주던 호칭도 뺐구나.
기가 찬다. 지금 저놈의 힘을 매개로 이블 발키리들의 디바이스를 파괴한 거야?
“주, 주인님...! 힘이...!”
세화의 다급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콰창!
유리가 깨지는 듯한 파열음과 함께, 그녀들의 모든 디바이스가 산산조각이 났다.
푸화아아악!
뒤이어 세화를 비롯한 네 사람의 몸에서 마기가 전부 빠져나갔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우우우웅...!
그녀들의 몸에서 보랏빛 광채가 일어나더니, 원래의 모습으로 변화했다.
인간으로 돌아간 것이다.
갈색, 연두색, 연홍색, 그리고 금색 머리카락.
눈빛마저도 인간이었던 그녀들 특유의 색으로 변했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채로 자신의 몸을 살피는 이블 발키리들.
“흘흘흘흘...”
힘겨운 웃음을 터뜨린 말파스가, 그녀들을 응시하고 있는 날 비웃었다.
“할 말이 없어진 모양입니다그려... 허탈하지 않소이까? 그간의 모든 고생이 날아가 버렸으니 말이외다. 내 힘이 모조리 빠져나간 건 아쉽지만 그것이야 다시 마물들을 희생시키면 되는 것이고, 이 자리를 피할 힘쯤이야 남겨두고 있었...”
구구절절 말이 많다.
“실망스럽구나.”
“무엇이 말입니까?”
“고작 생각한 게 이것이라니 말이다.”
“내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한 겁니다만? 드디어 정신이 나가버린 겝니까?”
“이런 놈한테 속은 마물들의 대가리엔 뭐가 들었는지 궁금해지는군. 네놈을 최악의 적수라 생각했던 내 스스로에게 자괴감도 드는구나. 그래... 뭐... 그리 생각하거라.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다른 일도 도모해보지.”
내 침착한 말투에 무언가 느끼는 것이 있었을까?
말파스의 미간이 잔뜩 좁혀졌다.
자글자글한 주름... 징그럽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이젠 존칭도 안 하네. 서운하게.
혀를 끌끌 찬 나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는 말파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네 사람에게 말했다.
“정신 차려야지?”
그에 움찔한 세화가 자신의 새빨간 입술을 열며 눈을 감았다.
“아... 그렇죠, 네.”
태연한 대답, 태연한 행동.
세화뿐만이 아니라 유리아, 실비아, 그리고 아델마저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마력을 새로이 생성하여 발산했다.
고오오오...!
네 사람의 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피어오르는 보랏빛 마기.
그녀들의 머리색이 순식간에 이블 발키리의 색으로 바뀌어가고, 모습을 본 말파스가 입을 쩌억 벌렸다.
“이, 이게 대체...”
“아쉽게 됐구나, 말파스여.”
말파스는 자신의 오만 외에도 또 다른 실수를 저질렀다.
내가 디바이스로 강제력을 발휘하여 이블 발키리를 묶어놓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게 그것이다.
결과는 보다시피 소용이 전혀 없었다.
“마물들은 영혼이 주는 무게감을 모르지. 물마시듯 쉽게 가져갈 수 있는 것이 목숨이고, 영혼이니만큼 그럴 수밖에. 하지만 네놈까지 그럴 줄은 몰랐구나. 힘이란 게 참 무서워. 연륜이 많은 놈들마저도 교만해지도록 하니.”
이블 발키리들은 내게 자신들의 몸은 물론 고결한 영혼까지 바쳤다.
세포 하나하나가 바뀌어 완전한 내 권속이자 마족으로 재탄생했으며, 그녀들은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아주 잘 자각하고 있다.
디바이스와 아이테르는 그저 수단 중 하나일 뿐이지, 현재의 그녀들은 로사리오가 와도 되돌리지 못한다.
아무런 매개체도 없이 다시 권속으로 변신했다는 게 그 증거.
잠깐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건, 아이테르와 연결되어있는 마력이 잠시 끊겼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또한 변신이 풀렸을 때, 자유를 얻은 아이테르는 그녀들에게서 도망가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을 배회하며 빨리 다시 자신을 잡아달라고 하기까지 했다.
내가 비스트 슬레이어들을 한 명 한 명씩 떨어뜨릴 때 항상 했던 말이 있었다.
이제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원래대로 돌아올 수 없다고 말이다.
지금 상황도 그 말대로였다.
방금 내가 살짝 당황한 건, 디바이스를 다시 만들어야 되니까 화가 난 거다.
‘엄밀히’ 말해 필요 없다뿐이지, 디바이스는 있으면 유용한 물건이었다.
침식된 아이테르와 이블 발키리들의 연결고리가 되어주어 마력을 훨씬 잘 사용하도록 만드니까.
스텔라를 속이려면 있어야하기도 하고.
“네가 한 짓은 내게 있어서 아주 조금만 귀찮을 뿐이다.”
말파스의 소원 성취 능력은 디폴트값이 부등가교환이다.
소원을 비는 대상에게 무조건적으로 불합리한 대가를 요구한다.
예전에 말파스를 불러 아몬의 수상쩍은 움직임에 대해 물어보았을 때도 그랬다.
놈의 의중만 알고 싶었는데 무려 마계의 주인인 내 팔 한 짝을 달라는 아주 개좆같은 대가를 요구했다.
어쨌든 이 불합리한 대가는 말파스 자신도 해당이 된다.
여기서 말파스 자신이 현재 처한 상황이 무척 불리한 것이 겹쳐져, 소원의 대가가 아주 컸던 모양이었다.
수지타산이 전혀 맞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차라리 다른 행성으로 도망가서 후일을 도모했다면 또 몰랐는데...
아마 내게 절망감을 주려는 목적으로 저런 소원을 빌었다가 된통 당한 것 같았다.
무적이라 생각했던 방어막이 흔들리니 초조해져서 자세한 소원을 빌지 못했거나...
뭐가 됐든 이는 말파스의 명백한 패착이었다.
말파스의 저 웃기는 면상을 보면 답이 나왔다.
소원의 신은 참 짓궂어요.
“마, 말도 안 되는...”
“네 눈앞에서 일어난 광경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
입도 뻥긋하지 못하는 말파스.
놈을 한껏 비웃어준 나는 아델을 불렀다.
“아델.”
“지혁 씨... 저 지금 너무 힘들어요... 싸울 기력이 하나도 없어요... 저 흉물의 이상한 능력 때문에 마력이 전부 사라졌어요... 자고 싶다아... 저 성으로 돌아갈래요...”
또 엄살은...
“방금 제 몸에서 마력을 흡수해갔잖습니까. 한 번만 고생해주세요.”
“.....”
귀찮음이 뚝뚝 묻어나오는 표정을 지은 아델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왜요...?”
“저놈의 영혼을 보옥 안에 가두십시오.”
그 말에 말파스가 숨을 훅 들이켰다.
아델이 갖고 있는 보옥을 빤히 주시하던 놈이 다급한 투로 말했다.
“모락스... 이제 보니 저건 모락스의 보석이로구나...!”
최고등급 루비를 가공한 것 같은 아름다운 보옥이지만, 이건 무척 흉악한 물건이었다.
아름다운 꽃엔 가시가 있다는 격언이 있듯 말이다.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던 말파스가 도주를 시도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추레하게 변해버린 그로선, 세화와 유리아, 그리고 실비아가 뿜어내고 있는 흉흉한 기세에 몸의 자유를 박탈당해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아델은 말파스가 그러거나 말거나 내게 징징거렸고 말이다.
“시른데에... 왜 제 예쁜 보옥 안에 못생긴 것의 영혼을 넣어야하지요...?”
“갖고 놀면 재미있을 겁니다. 연습용이라고 생각해요.”
“.... 진짜 싫다아...”
말은 그렇게 하면서 앞으로 나서는 아델이었다.
그녀가 보옥에 마력을 집어넣자,
키이이이익...!
불길한 소리와 함께 주변의 공기가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크윽...!”
동시에 말파스의 몸이 자석에 이끌리듯 서서히 앞으로 끌려간다.
말파스가 빨려 들어가는 경로에 자리한 나는, 놈을 한껏 비웃어주었다.
“능력을 연속해서 사용할 수는 없나보구나, 말파스여. 아니면 이젠 능력을 사용할 힘이 없는 건가?”
안간힘을 쓰며 팔을 들어올리는 말파스.
놈의 손이 내 얼굴로 향한다.
마치 날 한 번이라도 잡아보려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타이라트...!”
그래도 자존심은 있는지 살려달라고 빌지는 않는구나.
너도 3기사들처럼 강단이 있어.
“원래는 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해주려고 했건만... 이 정도로 용서해주마.”
“용서...? 용서!? 네놈이 날 용서하고 자시고 할 위치더냐...!”
“허면 마왕인데 이정도 생사여탈권도 없을까.”
“네놈이 감히 내 마계를...! 한낱 풋내기조차도 안 되는 놈이...!”
“네 마계라? 벌써부터 꿈을 꾸고 있느냐? 모락스의 보석 안에서 마음껏, 네가 원하는 이상을 좇아라.”
키아아아악!
말파스의 머리부근에서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빠져나오려고 한다.
놈의 흉측한 영혼. 아직 육체에서 이탈하지는 않았다.
“으윽...!”
모락스의 보석엔 죽어도 들어가기 싫었던 탓일까?
체념의 빛이 서려있던 말파스의 눈동자가 불타올랐다.
“크으으으... 크아아아아!”
갑작스레 괴성을 내지르며 온몸을 버둥거리기까지 한다.
어마어마한 발악. 아델이 자신의 고운 미간을 좁혔다.
“다 죽어가는 노인네가 삶에 미련이 왜 이렇게 많아? 얼른 이리 오지 못햇!?”
“끄르륵...! 내가... 네 뜻대로... 하게 둘 것 같으냐...? 끄륵!”
가래 끓는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말파스.
놈의 입에서 거뭇한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어머어머... 세상에... 지혁 씨! 저 흉물이 이상한 짓을 하려고 해요! 좀 말려보셔요!”
나도 보인다.
자결이라도 할 심산인가?
아니, 놈의 몸속에 있는 아주 미약한 마기가 확 부풀어 오른다.
부우욱!
뒤이어 말파스의 몸집이 순식간에 비대해졌다.
자결이 아니라 자폭이었구나.
목표는 내가 아니라 아델이다.
마력을 끊어서 영혼을 흡수하지 못하게 막으려는 거다.
말파스의 입꼬리가 히죽 올라가는 것을 본 나는 아델을 향해 있는 힘껏 달려갔다.
이후 그녀를 품에 안고 몸을 돌렸다.
뻐어어엉!
하늘을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엄청난 굉음이 들린다.
그리고 바람이 느껴졌다.
아주 시원하고 날카로운 바람이.
“.....”
눈을 질끈 감고 있던 나는, 몸이 전혀 아프지 않자 고개를 들었다.
“그냥 절 부르시면 되지, 왜 굳이 몸을 쓰려고 하세요? 왜 이렇게 멍청하죠? 주인님이 이렇게 무식할 줄은 몰랐어요.”
실비아가 인상을 찌푸린 채 날 타박하고 있었다.
피신시켜줬구나.
세화와 유리아가 달려와선 나와 아델의 몸 상태를 확인해보고 있다.
나는 헤롱거리고 있는 아델의 완전히 풀어헤쳐진 머리를 대충 정리해주고 허리를 꼿꼿이 폈다.
스으으으...
주변에 산재해있던 말파스의 기운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곧 언제 있었냐는 듯 완전히 없어졌다.
‘끝났군.’
속이 뻥 뚫림과 동시에 허탈함이 밀려온다.
시원섭섭하다. 딱 이 말이 어울렸다.
골치를 썩이던 말파스가 죽어서 시원하고, 놈에게 영원한 고통을 주지 못해 섭섭하다.
내손으로 마무리를 짓지 못해 찝찝한 부분도 없잖아 있다.
그래도 뭐... 아주 만약에 보옥이 깨져버린다면 육신을 되찾아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으니까...
완벽하게 죽었고, 아델이 다치지 않았으니까 이것으로 위안을 삼자.
시체조차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애꿎은 지상을 뒤적거렸다.
그러다가 이블 발키리와 싸울 때 흘린 것 같은 놈의 피를 발견하고는 마력을 일으켜 태웠다.
그런 내 뒤로, 세화가 다가와 포옹을 한다.
“주인님께서는 찜찜할 테지만, 저는 오히려 안도감이 들어요. 영혼을 가두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잖아요. 보옥의 주인은 칠칠맞은 아델이기도 하구요. 차라리 이편이 나아요.”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세화가 기껍다.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린 내가 말했다.
“마무리하러 가자. 반란은 오늘부로 끝난다.”
마계를 정리해놓고, 스텔라를 떨어뜨리러 가야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