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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352화 (352/471)

〈 352화 〉 영혼을 담는 보석 #2

* * *

꼴이 말이 아니다.

내 꼴이 아니라, 아델의 꼴을 말함이었다.

주황색 털을 전신에 덕지덕지 묻힌 그녀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내게 다가와 양팔을 벌렸다.

자신의 몸을 털어달라는 뜻인지, 아니면 안기라는 뜻인지 헷갈린다.

둘 다 하면 되지.

손으로 아델의 셔츠를 대충 털어준 나는, 그녀를 소중한 듯 안아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메릴이랑 놀고 있었나요?”

“네. 그런데 유리아 언니가 납치해갔어요.”

“납치라뇨?”

“메릴을 제게서 빼앗아갔다는 뜻이에요. 메릴은 언니의 부름이 들리자마자 제 품에서 폴짝 뛰어내리더니 도망을 쳤어요.”

“그럼 납치가 아니라 그냥 제 발로 간 거잖아요.”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요! 지혁 씨도 참... 이해력이 그렇게도 없으신가요?”

그래 뭐... 네가 그렇다니까 그런 거지.

내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델을 데리고 옥좌로 간 나는, 품에서 모락스의 보석을 꺼내 내밀었다.

울퉁불퉁한 부분을 다듬은 후 동그랗고 크게 만든 보석.

테두리에 보라색으로 빛나는 합금이 둘러진, 이젠 완전한 보옥이 된 그것을 쳐다보던 아델의 눈이 빛났다.

“이게 무엇이지요?”

“마계의 장인이 밤을 새며 가공한 보옥입니다. 아델에게 드릴 무기에요.”

“이게 어찌 무기가 되나요? 던지라는 거예요? 눈싸움하듯이?”

눈싸움이라니... 아델답다.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낸 내가 말했다.

“들고 마력을 일으켜보세요. 알아서 잘 감응할 겁니다.”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보옥을 받아든 아델.

손이 워낙 작아서인지 보옥의 크기가 크게 느껴진다.

보옥을 한손에 올린 아델이 마력을 일으켰다.

그러자,

그오오오오...!

불길하기 짝이 없는 소리와 함께, 보옥에서 빨간 빛과 연기가 새어나왔다.

아델의 마력과 감응한 연기는 내 주변을 둘렀고, 무언가를 빨아들이려 했다.

바로 본질... 즉, 영혼이었다.

마치 자아를 가진 혼처럼 내 주위를 배회하던 연기는, 이내 대상을 잘못 찾았다고 생각했는지 곧바로 물러났다.

“바, 방금 뭔가요?”

놀란 아델의 물음.

한쪽 입꼬리를 올린 나는 알현실 안에 자욱하게 퍼지기 시작한 연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델도 느꼈을 겁니다. 그렇죠?”

“네... 느꼈어요...!”

“일단 마력 공급을 멈추세요. 무고한 마물들이 당할 수도 있으니까.”

“아, 네...”

아델이 마력을 끊자마자, 창문도 열지 않은 알현실에서 제법 강한 바람이 불더니 연기가 보옥으로 빨려 들어갔다.

눈을 초롱초롱하게 뜬 아델이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지혁 씨의 혼을 가져가려고 했어요...!”

“하지만 못 가져갔죠. 아델이 사용하는 마력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차리고 자연스럽게 물러난 겁니다.”

“이, 이게 제 무기인가요? 우아하군요! 정말 마음에 들어요. 세화에게 사용해 봐도 되나요?”

“대놓고 본색을 드러내시는군요.”

“본색이라니요? 마계에 있다 보니 유머감각이 떨어지셨군요. 물론 농담이지요. 지혁 씨의 마력을 공유하는 권속들의 영혼은 못 가져가잖아요.”

정확하다. 솔직히 조금 걱정했는데, 이런 쪽으로는 이해력이 빠르구나.

“맞습니다. 아무 마물이나 막 수집하려 하지 말고, 잘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하세요.”

그 말에 아델의 얼굴이 뾰로통해졌다.

새침한 눈으로 날 노려본 그녀가 묻는다.

“제가 못 미더우시나보지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새로운 무기이니만큼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려던 것뿐이에요. 세화도 낫을 능숙하게 사용하기까지 많은 연습을 했어요.”

“저는 천재라서 괜찮아요. 하지만 지혁 씨의 특별한 부탁이니만큼 열심히 연습하도록 하지요. 그런데 세화에게도 이런 걸 준 것은 아니겠지요?”

“아델에게만 드리는 특별한 선물입니다.”

대번에 환해진 미소를 지은 그녀가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어깨가 달싹거리는 것이, 기분이 무척 좋은 모양이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아델은 알기 쉬워서 사랑스럽다.

아무것도 묻히지 않은 백색... 아니, 검은색 도화지를 보는 기분이야.

**

뻐어어엉­!

귀가 얼얼해질 정도로 심한 굉음.

유리아가 마력을 모아 쏜 거대한 화살에 의해, 서부의 말파스 측 진영에서 귀가 얼얼해질 정도로 심한 굉음이 들려왔다.

흙먼지가 걷힌 그쪽 상황은 좋은 말로도 위로를 건네지 못할 수준이었다.

운석이라도 충돌한 것 마냥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성되었고, 크레이터 바깥으론 마물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조각난 신체부위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폭발에 휘말린 흔적. 그마저도 곧 가루가 되어 소멸됐다.

“와아...”

순진한 감탄을 터뜨린 실비아가 공중에 떠있는 유리아를 올려다보았다.

실비아에게 윙크를 해준 유리아는, 한 발을 다시 장전하면서 밑을 곁눈질했다.

거기선 세화를 필두로 한 마물들이 서부를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말파스 측 마물들을 죄다 박살내면서.

으적! 으저적!

­키에에에엑!

심지어 많은 수의 사족보행 마물들은, 쓰러진 말파스 측 마물의 위에 올라타 몸을 씹어 먹기도 했다.

B급, A급, S급... 고위급 마물들이라도 가리지 않고 말이다.

지휘관이 있기야 했지만 오합지졸 그 자체.

세화가 간결하게 휘두른 낫으로 인해 목이 뎅겅 날아가거나, 발록이 내뿜는 업화에 불살라지거나...

이도 아니라면 날 모시는 마물들의 공세에 추풍낙엽마냥 밀렸고, 죽었다.

곤두박질 친 사기로 인해 일어난 현상.

높은 절벽 위에서 한눈에 보이는 전황을 지켜보던 나는 뺨을 긁었다.

등급이 높은 마물들이 죽는 모습은 기분이 별로였다.

허나 마계를 다시 일통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었다.

그래도 쓸모가 많은 것들이라, 몇몇 녀석들은 살려서 잡아두었다가 지구로 보낼 생각이었다.

스텔라를 각성, 타락시키는데 강제로 이용해먹어야지.

“오늘 반란을 진압하실 생각인가요?”

옆에서 들려오는 실비아의 물음에 정신을 차린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히 오래 끌었지. 더 지체하는 건 시간낭비다.”

강화된 세화, 유리아, 그리고 실비아라면 말파스 측에서 가장 강하다 할 수 있는 4기사마저도 쉽게 이길 수 있을 터.

그러니 오늘 말파스를 포함한 모든 반란분자들을 아예 밀어버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저랑 아델도 나갈까요?”

그 질문에 대답한 건 아델이었다.

“언니, 저와 언니마저도 나가버리면 지혁 씨의 곁은 누가 호위하지요?”

“아무도 안 오는데... 정 불안하면 나만 나갈 테니까, 너는 여기서...”

“어허! 저와 담소를 나누셔야지요!”

“주인님이랑 나누면... 아니다, 네 말대로 할게.”

자포자기한 듯 실소를 터뜨린 실비아가 아델의 뒤로 가서, 그녀의 어깨 아래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아델의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그녀를 달랬다.

“무슨 얘기할까?”

“네일아트 샵을 이곳으로 가져다놓을 방법에 대해 토론해보도록 하지요.”

“그런 건 마르셀라한테 말하는 게 맞지 않아?”

“김민지 사제에요.”

“그, 그래... 김민지 사제한테 옮겨달라고 하거나, 네일을 잘하는 인간을 잡아서...”

곧 열띤 토론을 나누기 시작하는 두 사람.

전황을 지켜보며 대화를 엿듣던 나는 남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둘 모두 지구에 상상이상으로 정을 붙이고 있는 듯하니, 빨리 반란을 진압한 후에 돌아가야겠다.

쐐애애액­!

잠깐 딴생각을 하는 사이, 공중에서부터 거대한 무언가가 내 쪽으로 날아왔다.

공기가 찢어지는 파공성이 들릴 만큼 어마어마한 속도.

심지어 깃든 마력까지 유리아가 쏜 화살만큼 어마무시하다.

가장 먼저 그 기색을 눈치챈 건 실비아였다.

순식간에 내 앞을 가로막은 그녀는, 어느 샌가 꺼내든 단검을 허공에 내던졌다.

콰창­!

날붙이끼리 부딪치는 충돌음과 함께 추진력을 잃고 힘없이 떨어지는 두 물체.

그중 하나는 실비아의 단검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중세에서나 볼 법한, 기사들이 사용하는 랜스였다.

‘4기사로군.’

랜스를 쓰는 놈이라면 기근을 관장하는 검은 기수.

놈이 내 머리를 노렸구나. 이 무자비한 새끼...

인상을 구긴 나는 랜스가 날아온 방향을 쳐다보다가 움찔하고 말았다.

그오오오오오...!

발록마저도 꼬랑지를 내릴 것 같은 강대한 마력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 마력의 주인이라면 단 한 명뿐.

바로 말파스였다.

내 예상대로, 말파스가 일신의 무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마물들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 같았다.

아니, 같았다가 아니라 확실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마력을 뿜어낼 리 없으니.

그렇다고 해서 겁을 먹은 건 아니었다.

그저 살짝 놀랐을 뿐.

놈의 기세는 아델의 마력으로 강화된 세화가 마기를 완전히 개방했을 때와 비슷한 압박감을 풍겼다.

현재의 세화와 힘의 차이가 별로 없다는 얘기다.

‘얼마나 많은 마물들을 처먹었으면... 개새끼...’

여기 올 때까지 수하들을 모조리 희생시켰음이 분명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4기사의 호위를 받으며 이리로 오고 있는 말파스가 보인다.

내가 알던 깡마른 몸. 얼굴도 여전하다.

4기사는 약간 우락부락해진 느낌인데, 말파스가 능력을 써서 강화시켜줬나? 그래 보인다.

끼기긱...!

위에서부터 기이한 마찰음이 들렸다.

유리아가 활시위를 극한으로 당기고 있는 소리였다.

위로 마력을 약간 흘려보내 유리아를 진정시킨 나는 세화를 이리로 불렀다.

쩌어억­!

기다렸다는 듯 열리는 포탈.

그 안에서부터 나온 세화가 내 옆에 시립했다.

그녀의 눈빛은 언제라도 출수할 것처럼 흉흉했는데, 내가 명령을 내리지 않아 간신히 분을 삭이고 있는 모양새였다.

그래, 참아라. 네가 무너지면 다른 이블 발키리들도 폭주할 거야.

마력을 전부 개방시키지 마. 일부분만 열어놓고 말파스의 방심을 유도해.

놈이 모습을 드러낸 건 천재일우의 기회니, 이 자리에서 잡고 간다.

이런 내 속마음을 알아차렸을까? 세화와 유리아의 마력은 일정수준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실비아 또한 마찬가지. 눈치껏 잘 행동해주고 있었다.

아델이 걱정이긴 하지만, 실비아가 알아서 잘 케어해줄 것이었다.

“흘흘흘... 이그니가 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뜬소문이라 생각하였는데, 진실이었군요. 왕비님들의 마력이 대단하옵나이다.”

뒷짐을 진 채로 내게 다가온 말파스의 말이었다.

“그간...”

놈에게 형식적인 안부를 물으려던 나는,

“세상에... 세상에...! 어쩜 저리 흉측할 수가...!”

내 등 뒤로 숨은 아델의 기겁한 목소리에 숨을 삼켰다.

아이 씨... 웃을 뻔했잖아.

말파스가 그런 아델을 보더니, 자신의 가슴께에 한손을 올리고 상체를 약간 숙였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옵니다. 헌데 새로운 왕비님께서는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가봅니다그려.”

대체 누가 널 마음에 들어 하겠냐?

“모, 목소리마저도 불쾌해요! 지혁 씨! 저 흉물을 제 눈앞에서 치워주셔요! 어서!”

“무슨 말을 하고 계시는지 도통 모르겠사온데, 혹 지구의 언어인지?”

“훠이! 저리 갓! 이 못생긴 것!”

아무리 언어를 모른다지만 손을 휘젓는 제스처는 알아먹을 수 있었는지, 말파스의 미간이 좁혀졌다.

“흐으음... 예의범절을 모르시는...”

“히이익! 지혁 씨! 저 흉물의 이마에 주름이 잡힌 것 좀 보셔요! 이노옴! 저리 안 가!?”

말파스의 말을 끊은 것도 모자라 주먹을 들고 위협을 가하기까지 하는 아델.

당연히 그 어떤 누구에게도 통하지 않았다.

혀를 끌끌 찬 말파스가 여유로운 투로 어떠한 말을 하려고 했다.

“적의가 상당... 음?”

하지만 아델이 자기 자신의 눈을 가려버리고, 실비아마저도 아델의 귀를 막아주자 황당했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잠깐 침묵하던 놈의 아가리가 열렸다.

“장기전을 기대했건만 이토록 급하게 마물들을 내보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델을 무시하기로 작정했구나.

좋은 선택이다.

“네놈의 능력을 잘 아는데, 속전속결로 끝내는 게 맞겠지.”

“전세를 완전히 잡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들리옵니다만...”

“잘 이해했구나.”

“왕비님들의 새로운 힘이 대단하긴 하오나, 제게 미치지는 못할 것 같사온데?”

놈과 대화를 나누던 나는 기이한 기분에 휩싸였다.

말파스는 기본적으로 흉계를 꾸미는 놈이다.

뒤에서 짱구를 굴리는 지능캐. 헌데 왜 저렇게 오만한 걸까?

저럴 놈이 아닌데... 이상하다.

혹시 다른 의도가 있나? 한 번 알아보자.

“방금 유리아가 행한 공격을 보지 못했느냐?”

“그 정도쯤은 절 호위하는 4기사 또한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제게는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할 테고 말입니다. 흘흘...”

“믿기지 않는구나.”

“허면 한 번 보여드리리까?”

우리 쪽 마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을 향해 손을 뻗는 말파스.

놈의 손바닥 앞으로 방대한 회색 기운이 모이기 시작했다.

시선을 날 향해 있고,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있다.

누가 봐도 비웃는 표정이었다.

‘이 새끼 봐라...?’

놈을 비웃고 싶은 건 오히려 나였다.

대화를 나눠보니 확실히 알겠다.

말파스 이놈은 지금 힘에 취했다.

맨날 뒷방에서 머리만 굴리다가 평생 갖지 못했을 무력을 갖게 되어서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거다.

게다가 마력을 숨기고 있는 세화와 유리아를 자신의 아래라고 오판하고 있고...

‘이러면 나한텐...’

아주 좋은 일이었다.

“대체 얼마나 처먹은 거지? 다섯 자릿수 정도인가?”

“그 정도 됩니다. 그나저나 처먹다니... 숭고한 희생이라 칭하여야 옳지요.”

만 마리... 아니, 수만 마리인가?

어쨌든 그렇게나 많이 처먹었으니 자신감을 갖는 것도 이해는 된다.

아델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느껴지기도 한다.

“허면 마왕님, 새로운 마계는 이 제가 다스릴 테니, 마왕님께오선 이만 쉬시길 바라겠사옵나이다.”

말을 끝마친 말파스가 날 향해 손을 내밀었다.

푸화악­!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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