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0화 〉 질투심에 못 이겨 심한 장난을 친 아델의 엉덩이를 때찌하는 세화, 말리려다가 그러려니 하는 실비아와 유리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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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화야...! 세화야!”
아델의 다급한 부름.
협곡 안으로 한 발자국 들어온 세화가 고개를 돌렸다.
“왜? 뭔가 감지돼?”
“아니이... 그게 아니라... 나 여기 싫어. 시체랑 피가 너무 많아.”
세화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고작 이거 가지고 그래?”
“아 싫어...! 딴 데로 가자. 비위 상해...”
발을 동동 구르며 앙탈을 부리는 아델.
그녀의 말마따나 협곡 안엔 마물들의 시체가 여기저기 널브러져있었고, 그들이 쏟은 듯한 피가 벽에 말라붙어있었다.
세화는 조곤조곤한 투로 아델을 나무랐다.
“그러니까 나 혼자 간다고 했잖아. 무서울 거라고 해도 왜 굳이 따라오겠다고 한 건데?”
“시, 심심하니까 그렇지이...! 메릴은 유리아 언니가 데리고 갔고, 지혁 씨는 실비아 언니랑 불쟁이를 만나러 갔잖아.”
“불쟁이?”
“맨날 몸에 불만 두르고 사는 머리에 빨간 뿔이 달린 마물 말이야. 그것도 몰라?”
“혹시 발록을 말하는 거야?”
“응. 그 험상궂게 생긴 것.”
세화는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어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아냈다.
불쟁이라니... 아델답다고 해야 하나? 엉뚱하면서도 어울렸다.
세화는 저 앙탈을 받아줘야 하는지 말아야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
‘어쩌지...?’
현재의 아델은 철이 아주 없었다.
방자함은 물론 교만을 부리기도 했다.
안하무인. 아델에게 딱 어울리는 단어였다.
타락하기 전엔 이러지 않았는데, 마음이 악으로 물들다보니 사악해지면서, 동시에 지혁이 특별하게 취급해주니 오만방자해진 듯했다.
물론 자신의 눈에도 귀엽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 망설여지는 건, 아델이 시시때때로 보여주는 질투심 가득한 눈빛 때문이었다.
이건 솔직히 지혁의 오판이었다.
자신과 유리아가 이블 발키리가 되었다고 언급만 했어도 아델은 납득을 했을 텐데...
‘휴...’
속으로 얕은 한숨을 내쉰 세화가 아델에게 다가갔다.
주인은 자신의 모든 것이다.
그가 뭘 하든, 자신은 이해하고 따르겠다고 영혼에 맹세했다.
주인의 실수 또한 자신의 실수이니, 일단은 아델에게 맞춰주면서 천천히 교육시켜나가면 될 터였다.
“어떻게 할까? 여긴 꼭 살펴야하는 장소 중 하난데.”
“그럼 난 안 갈래.”
“같이 가주면 안 돼? 혼자 심심한데. 공중에 떠있어도 돼.”
“으으음...!”
깊이 고뇌하는 아델.
얼마간 그러고 있던 그녀가 손뼉을 치더니 말했다.
“업어주면 생각해볼지도 몰라.”
업어주면 가게 되는 건데 생각은 무슨... 새침하기는...
속으로 킥킥거린 세화가 아델의 앞에서 허리를 살짝 구부렸다.
그러자 아델이 기다렸다는 듯 폴짝 뛰어올랐다.
그리고는 세화의 뒤통수에 코를 박고 킁킁거렸다.
“지혁 씨 냄새나.”
“당연하지. 유리아 언니한테도, 실비아 언니한테도 날 걸? 너한테도 마찬가지고.”
“.....”
“왜? 내 몸에서 주인님 냄새가 나는 게 싫어?”
“아니...? 왜 멋대로 오해해?”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으면서 튕기는 게 웃긴다.
발걸음을 옮기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세화는, 눈으로 자상이 있는 시체들을 살폈다.
“세화야, 왜 오해하냐니까?”
뒤에서 계속 말을 걸어오는 아델.
시끄러울 법도 하지만, 그저 꼬맹이의 투정 정도로 생각하니 하나도 귀찮지 않았다.
“오해 안 했어.”
“했잖아.”
“안 했어.”
“거짓말.”
뒤에서 따끔한 느낌이 일었다.
아델이 세화 자신의 목 뒤를 약하게 깨물었기 때문이다.
조곤조곤한 투로 대해주니, 자신이 조금은 편해진 모양.
이건 뭐 아이를 키우는 것도 아니고...
헛웃음을 켠 세화가 아델에게 한 마디 하려고 했다.
하지만,
화아아악!
협곡 안쪽에서부터 무척 뜨거운 강풍이 자신과 아델을 향해 쏘아지자 눈을 가라앉혔다.
뒤이어 주황색 연기가 굉장한 속도로 짓쳐왔다.
저 연기의 주인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던 세화는, 마력을 일으켰다.
우우웅!
세화의 주변을 순식간에 두른 보랏빛 마기.
그것에 닿은 주황색 연기가 칙 소리를 내며 소멸되었다.
‘이거... 괜찮은데...?’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세화는 꽤나 놀라고 있었다.
주황색 연기를 내뿜은 놈은 이그니.
불을 다루는 S급 마물이었다.
아무리 발록보다는 한 수 쳐진다하지만 고위급 마물의 힘은 말해 입 아프다.
평소였다면 마력을 더욱 집중했어야 이그니의 기운을 소멸시킬 수 있었을 텐데, 그저 경로를 비틀 목적으로만 만든 보호막의 방어력이 이토록 강력할 줄이야.
아델의 마력이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사용해보니 예상을 아득히 초월했다.
이 정도면 S급 마물 두세 마리는 손쉽게 찜 쪄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감이 가득한 미소를 지은 세화가 고개를 살짝 돌렸다.
“아델, 잠깐 내릴래? 적이 나타났어.”
“싫어.”
“싸워야 되는데?”
“그래도 안 돼. 내가 도와줄 테니까 이렇게 싸워.”
뭐 이런 똥고집을 다 피우는지.
더 이상 안 되겠다고 생각한 세화는, 아델의 팔을 풀고 그녀를 강제로 내려 보냈다.
그러자 아델이 기겁을 하며 팔딱거렸다.
“흐이이익! 신발에 피 묻잖아아! 더러워!”
낫을 꺼낸 세화가 말했다.
“마력으로 치우면 되잖아.”
“아잇...! 정말...! 난 여기서 꼼짝 말고 있을 테니까, 얼른 처리하고 다시 업어줘!”
“도와준다며?”
“그건 네가 날 업고 있었을 때 얘기구! 진짜 싫다아...! 실망이야!”
빼애액 거리는 모습이 귀엽다.
킥킥거린 세화는 멀리서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마물을 보며 무기를 소환했다.
자신의 키를 훌쩍 넘기고도 남는 거대한 데스사이드의 공치 부분을 부드럽게 쓰다듬은 세화.
좁은 협곡에서는 지극히 비효율적인 무기였지만, 세화는 아델의 마력으로 강화된 자신을 믿었다.
쩌어엉! 쩌저저적!
세화의 발끝에서부터 나타나는 균열.
땅을 구른 세화는 곧 이그니를 향해 쏜살같이 쏘아져나갔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델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한손을 뻗었다.
**
짜아아악!
실비아와 함께 돌아온 나는, 성 전체가 울릴 정도로 찰진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일이지?”
“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누가 맞는 것 같은 소리 같은데...”
주위를 둘러보니 항상 상주하고 있어야할 집사도, 하인들도 없었다.
발록이 명을 내려도 거절하고 제자리를 지켰을 그들이 여기 없다는 건, 누군가의 명령이 떨어졌다는 뜻.
아마 세화, 혹은 유리아의 명일 터였다.
짜아악!
한 차례 더 일어나 성 내부를 울리는 효과음.
이번엔 누군가의 비명소리까지 함께 들려왔다.
“흐아아아아악!”
2층에서부터 들려와 벽을 타고 메아리치는 아델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
눈을 마주친 나와 실비아는,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소리가 나는 침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눈을 부릅떴다.
짜아악!
“히야아악...! 아파앗...!”
세화가 자신의 무릎 위에 아델을 앞으로 눕혀놓고는, 그녀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나 많이 때렸는지, 뽀얬던 볼기짝이 푸르딩딩하게 부풀어 오르기까지 한 상태였다.
“세화야... 이제 그만 때리고 말로...”
옆에서 유리아가 말리고 있었지만, 세화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아델의 엉덩이를 후려쳤다.
짜아악!
“흐아아악!”
띵띵 부은 눈으로 온몸을 버둥거리는 아델.
도망가려는 시도도 해보았으나, 세화의 우악스런 악력에 의해 다리를 잡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짜악! 짜악!
“허어어어엉...! 세화야...! 아파...! 나 아프다구...!”
눈물 콧물 쏙 빼고 있는 아델의 안쓰러운 목소리에, 실비아가 발끈하여 나서려고 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 일단 세화를 말리려고 했다.
하지만 세화의 고운 어깨라인에 부종과 물집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우뚝 멈추었다.
아델의 마력을 받고 강화된 그녀가 상처를 입었다?
그것도 아델과 함께 있는데?
웬만해선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기에 상황파악이 먼저였다.
실비아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설명을 갈구하는 표정으로 유리아를 바라보았다.
우리 곁으로 다가온 유리아가 조용히 말했다.
“그... 아델이 장난을 조금 쳤나 봐요. 이그니랑 싸우기 직전에 마력을 회수해서 세화가 화상을 입었대요.”
이그니라면 고온의 불을 내뿜는 마물인데?
발록의 그림자에 가려져 열등감을 갖고 있긴 하지만, S급 마물답게 가지고 있는 힘이 워낙 강대한 만큼 쉬이 볼 상대가 아니었다.
그런 놈을 앞에 두고 마력을 회수했다?
아델의 마력은 기존에 세화가 가지고 있던 마기와 잘 동화되어있던 상태였을 텐데...
그 상태에서 갑작스레 대량의 마력이 빠져나갔다면, 그것만으로도 내상을 입었을 것이었다.
몸을 제대로 컨트롤하지도 못했을 테고, 그 결과가 화상으로 나타났나보다.
정확한 사정이야 세화와 아델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알겠지만... 지금만 보면 참작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이그니는 어떻게 되었느냐?”
“세화가 죽였고, 발록에게 목을 갖다 줬어요.”
어찌 저찌 잘 처리하긴 한 모양이구나. 다행이다.
유리아는 곧 실비아에게 이그니가 어떠한 마물인지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실비아가 당황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아델이 잘못한 거네...?”
“일단은요...”
“그, 그럼 어쩔 수 없잖아...”
마지막 지원군마저 고개를 돌린 상황.
맞는 와중에도 우리 이야기를 듣던 아델의 얼굴이 절망감으로 물들었다.
짜아악!
“히이이익!”
턱을 치켜세우며 고통에 겨워하던 아델은 방법을 바꾸기로 한 것 같았다.
아델이 돌연 세화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 그녀의 배에 얼굴을 파묻었던 것이다.
“잘모태써요...! 미안해애...!”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작전이 먹혀든 걸까?
아니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게 통한 걸까?
아델의 엉덩이만큼은 아니지만 빨갛게 부어오른 세화의 손이 우뚝 멈췄다.
그런 세화의 반응을 확인한 아델이 훌쩍거렸다.
“그렇게 될 줄은 몰라써요... 그냥 장난치려구... 했다가아... 허어어엉...!”
세화의 고개가 내 쪽으로 돌려졌다.
어떻게 처리해야할까 묻는 눈빛.
알아서 하라는 뜻으로 어깨를 으쓱여주자, 세화가 무릎께까지 내려간 아델의 바지를 잡아당겨 입혀주었다.
“앗 따가...! 아팟...!”
움찔거리면서도 가만히 있으려 노력하는 아델.
그런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살 쓰다듬은 세화가 물었다.
“오늘 엄청 잘못했지?”
“으응...”
“인정하니까 좋다. 나도 잘못했어.”
아델이 고개를 빼꼼 들어 세화를 올려다보았다.
병 주고 약 주니 황당한 모양.
하지만 이내 다시 세화의 배에 얼굴을 묻어, 자신의 부은 눈을 옷자락에 비벼댔다.
아델은 따끔한 매질이 필요하긴 했다.
세화도 원래는 아델을 천천히 교육시키려 했을 터였는데, 이번 기회에 확 휘어잡기로 결심한 듯했다.
그리고 아주 잘 해내주었다.
시간이 지나면 또 까불지 모르겠지만, 오늘처럼 선을 넘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화가 나서 앞뒤 안 가리고 아델을 때렸다면 당장 말렸을 것이다.
허나 세화는 성을 비워두었다.
아델이 혼나는 모습을 마물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말이다.
다 계획적이라는 뜻.
“우린 이만 나가지.”
지금은 세화와 아델, 둘만의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세화는 앙금을 갖고 가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고 나면 우애가 돈독해지겠지.
나는 조용히 유리아와 실비아를 데리고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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