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1화 〉 포기하면 편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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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아...”
벽에 손을 짚은 실비아가 숨을 몰아쉬었다.
지혁이 손을 뻗은 직후부터, 아랫배가 순식간에 달아오르더니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문신의 효과를 발동시켜 발정하도록 만드는 건가 싶다.
“숨이 가빠졌네요.”
지척까지 다가온 지혁의 말.
욱한 실비아가 눈을 부릅떴다.
“이, 이건 네가...! 흣...! 문신... 때문에...!”
“부축해드릴까요?”
“필요 없어...! 내 몸이나 원래대로... 돌려놔...!”
“알겠습니다.”
지혁이 다시 한 번 손을 휘젓자, 아랫배에서 느껴지는 야릇한 감각이 일시에 사라졌다.
“허어억... 허억...”
바닥에 주저앉은 실비아는,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일말의 아쉬움이 느껴지자 어이가 없어졌다.
지금 자신이 지혁과 하고 싶어 한 건가?
이런 상황에서도?
‘미친년...’
스스로에게 욕지거리를 쏟아낸 실비아가 끙끙거리며 일어났다.
“이제 괜찮으시죠?”
조곤조곤한 투로 저리 물어오는 지혁의 입술에 키스를 하고 싶다.
추잡하게 혀와 혀를 얽혀 타액을 교환하고 싶다.
그러한 욕망을 간신히 참아낸 실비아가 지혁의 몸을 밀쳤다.
“비켜...!”
힘겹게 휴게실로 간 실비아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당장 연구실을 박차고 나가야함에도 왜 휴게실로 온 걸까?
그건 그 어느 때보다도 굳건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지혁이 악당임을 알면서도, 그가 자신을 해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스으윽...
소파에서 숨을 몰아쉬던 실비아는, 열어놓은 휴게실 문이 밀리는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지혁이 서있었다.
마치 도망간 곳이 고작 여기냐? 라고 비꼬는 것 같은 표정으로.
방글방글한 미소를 지은 그가 말한다.
“저만 죽으면 지구는 완전한 평화를 찾게 됩니다. 아델과 실비아 씨, 두 분께서 여기 온 목적도 달성할 수 있어요. 로사리오의 신탁을 이루게 돼요. 마물들이 남아있긴 하지만, 제가 죽으면 그들은 지구엔 신경도 쓰지 않을 겁니다.”
왜 안 죽이냐고 비꼬고 있다.
그리고 지혁은 자신이 그를 죽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안다.
지금 자신은 능욕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 실비아 말했다.
“입 닥쳐... 넌 이미 아델을...”
“예. 아델은 제 편입니다. 아델과 실비아 씨가 서로 주먹다짐을 하며 싸운 것도 전부 제 탓이에요. 아델의 마음은 서서히 악독해졌고, 지금은 이미 제 권속이 됐죠. 하지만 원래대로 돌릴 수 있어요.”
“.....”
그게 무엇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지혁을 죽이는 것.
그의 목에 칼을 박아 넣는다면 모든 일을 끝낼 수 있다.
‘해야 돼...’
마음을 굳게 먹은 실비아가 디바이스로 손을 가져갔다.
그러다가 흠칫했다.
어제 있었던 일이 생각나서였다.
로사리오로 인해 피폐해진 마음을 다잡아준 지혁 덕에 변신할 수 있었던 일 말이다.
‘.... 아니야...’
정신 차리자. 지혁은 음흉하기가 이를 데 없는 놈이다.
저놈의 모든 것은 가짜. 그 일 또한 어떠한 수작을 부렸던 것일 수도 있다.
화아악!
내키지 않는 마음을 뒤로 한 실비아가 변신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지혁에게 달려들어, 그의 목에 단검을 들이댔다.
‘죽인다.’
죽이면 끝난다.
지구는 평화를 찾고, 아델은 예전의 순수했던 동생으로 돌아올 테며, 자신 또한 이토록 방황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생각처럼 쉽게 안 된다.
지혁의 다정한 눈빛에 생기가 없어지고, 목이 땅바닥으로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니까 오한이 들었다.
그가 더 이상 자신의 옆에 없을 거라는 상상을 하자 마음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다.
그만큼 자신은 지혁을 사랑하고 있었다.
동굴에서 그와 성적인 스킨십을 했을 때부터 특별한 마음을 품었었다.
그땐 지혁이 자신에게 문신을 만들지도 않았다. 무언가 제대로 수작질을 하기도 전이라는 뜻이다.
정리하자면, 저놈을 죽도록 사랑하게 된 건 자신의 의지라는 거다.
그리고... 지혁이 그랬다.
속이려면 얼마든지 속일 수 있었다고.
맞는 말이었다. 자신이 눈치채지 못하게 지혁의 정체를 속일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그럼에도 사실을 알려줬다는 건...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게다가 저 지그시 감은 눈을 보라.
운명에 순응하겠다는 의지가 풍겨져오는 것 같다.
보기만 해도 이토록 애틋한데... 죽일 수 있을 리가 없잖은가.
단검을 쥔 실비아의 손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혁이 눈을 감은 상태 그대로 입을 열었다.
“망설여지시나 봅니다.”
“.... 입 다물어...”
“내가 도와드릴게요.”
“무슨...”
실비아가 말을 마치려 하기도 전에, 지혁이 한 발자국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그로 인해 목에 대어져있던 단검이 살을 부드럽게 꿰뚫었다.
지혁의 그 미친 행동을 인지한 실비아의 눈이 크게 뜨였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아!!!”
단검을 확 빼내며 휴게실 안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는 실비아.
미소로 화답한 지혁이 말했다.
“도와드린다고 했잖아요.”
그 태연스런 모습에 벙 찐 실비아가 생각했다.
이 새끼 미친 거 아니냐고.
자신이 조금만 늦게 단검을 빼내지 않았더라면, 경동맥이 잘렸을 것이었다.
방금 지혁은 진짜로 죽으려 했다.
지금까지 목숨을 건사하려고 숨어서 지낼 때는 언제고... 어이가 없었다.
지혁의 이러한 행동은 계획적일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목숨을 바치려 했다면 인정할 만 했다.
식겁한 실비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왜... 왜 이러는 건데...?”
“사랑하는 사람의 바람을 이루는 것만큼 뿌듯한 일이 있나요?”
“사탕발린 말은 집어 쳐! 솔직하게 얘기해!”
“솔직하게 얘기한 겁니다. 전 실비아 씨가 죽으라면 죽을 자신이 있어요. 그리고 그건 실비아 씨도 마찬가지겠죠.”
내가? 너 대신 죽을 수 있다고?
대체 무슨 자신감인지... 자신만만한 소리를 지껄이는 모습이 황당하다.
“내가 그럴 거라고 생각해...?”
“확신해요.”
“개소리...! 넌 틀렸어.”
“그렇다고 치죠. 난 실비아 씨가 내 권속이 되어줬으면 좋겠어.”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이 개자식!
“우, 웃기지 마...!”
“절 죽일 수 있는 기회도 스스로 걷어찬 사람이 실비아 씨입니다. 계속 로사리오의 신탁을 마음속에 품고 있어봤자, 실비아 씨는 아무것도 못해요.”
아무것도 못한다고? 웃기는 소리.
아직 세화도, 유리아도, 그리고 박사도 남아있...
“....!”
세 사람을 생각하던 실비아가 어깨를 움찔 떨었다.
설마... 저 셋도 이미 지혁의 수중에 떨어진 것인가?
그래서 저토록 자신만만한 태도로 자신이 아무것도 못한다 말할 수 있던 것이었나!?
“너... 설마 세화도...”
“맞습니다. 세화는 물론 유리아도, 제니퍼도 다 제 권속입니다. 아델은 세화와 유리아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지만요.”
“대, 대체 언제부터...”
“실비아 씨와 아델이 지구에 도착하기 전부터, 세화와 유리아는 마족인 상태였어요.”
실비아가 침을 꼴깍 삼켰다.
이런 일을 행할 수 있는 지혁이 이제는 무서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 그럼... 세화와 유리아가 보이지 않았던 건... 아델의 신성력이 무서워서...”
“똑똑하시네요. 하지만 일부분만 맞추셨습니다. 두 사람이 여기 없는 이유는 마계 때문입니다. 현재 반란이 일어나고 있는 그곳에서 교통정리를 하고 있죠.”
“반란...?”
“제 권속이 되기 전의 아델, 그녀의 신성력이 몸에 영향을 줬습니다. 제 몸의 마기를 서서히 지워갔고, 그로 인해 고참 마물들 중에서 반란을 일으키려는 놈들이 나타났어요.”
그래서 마물들이 찔끔찔끔 나타났던 것인가...?
몇 놈의 상태가 이상했던 것도 반란과 관계된 일인 것인가?
그리고 박사가 은근슬쩍 아델에게 아니꼽게 굴었던 것도, 자신의 등을 떠밀며 지혁과 관계를 가지라고 했던 건...
지혁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나?
“아...”
실비아가 이마를 짚었다.
머리가 띵하다.
모든 퍼즐이 맞춰지고 있다. 일이 크게 벌어지고 있는데도 자신과 아델은 전혀 몰랐구나.
“박사님은... 언제...”
“제니퍼가 한 일주일 정도, 세계연합과 관련된 일이 있다고 출장을 갔었던 일을 기억하시나요?”
“기, 기억해...”
“그때부터였습니다. 제니퍼는 진실에 너무 가까이 다가갔어요. 스스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상쩍은 일을 의심했죠. 하지만 그녀는 너무 늦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제니퍼는 지원군으로 유리아를 불렀는데...”
유리아는 이미 지혁의 권속이어서, 뭘 해보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당해버렸구나.
“넌... 미쳤어...”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근데 제가 왜 실비아 씨에게 이런 사실들을 알려주고 있을까요?”
“.....”
“실비아 씨를 진심으로 사랑하니까요. 전 실비아 씨가 없으면 그저 반쪽짜리 마왕일 뿐이에요. 더 이상 방황하지 마세요. 저, 그리고 아델이랑 영원히 함께 살아요.”
영원히 함께.
언제 들어도 달콤한 말이었다.
심장이 두근거릴 만큼.
“난...”
“신탁은 포기해요.”
“그, 그럴 수는...”
“세화와 유리아에겐 코빼기도 비추질 않다가, 아델이 떨어질 때쯤 위기감을 느끼고 실비아 씨에게 현신한 년입니다.”
세화, 유리아가 떨어질 땐 나타나지도 않았다고? 정말인가?
믿기 싫지만 지혁의 눈은 진실만을 말하고 있었다.
로사리오는 아이테르를 직접 만든 장본인인데 그랬다니... 웃기지도 않는다.
게다가 자신이 이 꼴이 날 때까지 도와주지도 않았다.
그저 꼴랑 두 번 나타나선 이거 해! 라고 명령을 내렸을 뿐이다.
악덕사장과 다를 바가 없다. 책임감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것 아닌가?
이런 실비아의 마음을 알아차렸을까?
지혁이 그녀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저는 항상 실비아 씨의 옆에 있을 겁니다. 아델도 마찬가지고요.”
“.....”
“새로운 가족들과 새로운 삶을 시작해요.”
새로운 가족, 새로운 삶.
굉장히 유혹적으로 들린다.
마음이 무너진다.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싶어진다.
본능적으로 지혁의 단단한 가슴에 얼굴을 묻은 실비아가 생각했다.
‘편해지고 싶다...’
그냥 마음 편하게,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다.
스으으...
자신의 몸에서 거뭇한 기운이 피어나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실비아는, 근처에서 달콤한 냄새가 나자 입맛을 다셨다.
고개를 올려보니, 단검에 찔렸던 지혁의 상처에서 피가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꿀꺽.
무언가 들어있음이 확실한 피였다.
먹으면 안 된다. 근데 먹고 싶다는 충동이 느껴진다.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깊은 고민을 하던 실비아는, 이어지는 지혁의 말에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사랑해요.”
정신이 나가버릴 정도로 감미로운 고백을 듣자마자, 온몸에 찌릿찌릿한 전기가 통했다.
그 가공할 쾌락을 받아들인 실비아는, 본능을 선택하고 혀를 내밀었다.
할짝. 혀끝에 피를 묻힌 실비아가 혀를 굴려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피 맛을 음미했다.
‘맛있어...’
지혁의 혈액이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와 공유된다고 생각하니 느낌도 야릇했다.
쩔그렁!
손에 들고 있던 단검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팔을 들어 지혁의 목을 휘감은 실비아는, 무아에 빠져들어 그의 피를 핥아댔다.
그렇게 한참동안 피를 내어주던 지혁이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쩌어억!
그러자 익숙한 포탈이 생겨났다.
마물들이 출몰할 때 공중에 나타나던 징그러운 아가리였다.
흠칫한 실비아가 포옹을 풀고 뒷걸음질을 쳤다.
“지, 지금 뭐하는 거야...”
“겁먹지 마세요. 아무 일 없습니다. 그냥 포탈이에요.”
“포... 탈...?”
“네.”
“어디 가려고...?”
“먼저 가있겠습니다. 마음의 준비가 되면, 절 따라오세요.”
그 말만을 남긴 채, 지혁이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기, 기다려...! 기다려!”
실비아가 다급히 손을 뻗어보았지만, 지혁의 신형은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간 지 오래였다.
그를 따라갈 생각도 못한 실비아는 남아있는 포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렇게 자신을 버려두고 가면 어쩌란 말인가?
환풍기 소리만이 들려오는 적막한 휴게실 안.
외로움이 물밀 듯 밀려온다.
덜컥 겁이 난 실비아는 주먹을 꽉 쥐었다.
저긴 어디로 통하는 문일까?
마계? 아니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불길한 장소?
뭐가 됐든 지혁은 지금 자신에게 믿음을 보여 달라고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에게 가려는 믿음 말이다.
저 안으로 들어가면... 자신은 더 이상 비스트 슬레이어가 아니게 된다.
그런 확신이 선다.
‘나쁜 자식...!’
스스로 인간을 포기하라고 선택하게 하다니... 정말 사악한 놈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선택을 한 상태였다.
자발적으로 지혁의 피를 핥았던 것이 그 대답.
그러니 순리대로 가야 맞았다.
두근! 두근!
무척 빠르게 뛰는 심장에 손을 올린 실비아는, 눈을 질끈 감고 아가리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 포탈에 탄 건가?
공간이 일그러지는 포탈 특유의 불쾌한 감각이 전혀 없다.
춥다. 찬바람이 부는 것 같다.
헌데 반대쪽은 따뜻하다. 여긴 대체 어딜까? 눈을 뜨기가 두렵다.
“눈 떠도 돼요.”
뒤에서 지혁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본능적으로 안도감이 든 실비아가 한쪽 눈을 지그시 떴다.
그리고는 크게 놀라고야 말았다.
자신이 익숙한 장소에 와있었기 때문이다.
“.... 여긴...”
칙칙하고 습하기까지 한 좁은 공간.
구석에 켜져 있는 난로, 침낭을 비롯한 세간살이가 여기저기 널브러진 이 장소는 분명...
지혁과 자신의 첫 추억이 생기기 시작한 그랜드캐니언의 동굴이었다.
뭔가 로맨틱하다고 해야 할까? 썩 나쁘지 않은 장소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실비아 씨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요?”
가까이 다가온 지혁이 실비아의 몸을 끌어안고 저리 말해왔다.
그래, 선택했다. 그래서 뭐! 이제 어쩔 건데!
라고 따지려던 실비아는, 이어지는 지혁의 말을 듣고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이제 네 영혼은 내 거라는 뜻이야. 절대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는, 오직 나만 바라보는 권속으로 새로이 태어난다는 거지.”
“흐으읏...♡”
오직 지혁만 바라보는 권속. 무척 좋은 울림이었다.
그냥 말만 들은 것뿐인데 가버릴 것 같다.
전신이 파리하게 떨려오고,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하아... 하아...”
힘겨운 신음을 터뜨리는 그녀의 목에 둘러진 지혁의 팔이 움직였다.
가슴팍 가운데에 자리한 연홍색 크리스탈로 천천히...
우우우웅!
디바이스가 울려댄다.
마치 경고음을 발하는 것 같은데, 무척 거슬린다.
톡.
지혁의 손톱이 크리스탈 가운데를 건드렸다.
그러자 가슴이 쿵! 하고 울리는 것 같더니,
“허어어억♡”
엄청난 쾌감과 함께 시야가 새빨개졌다.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다. 빨리 지혁의 자지를 받고 싶다는 음욕이 온몸에 가득 퍼진다.
톡.
크리스탈이 한 번 더 울렸다.
이번엔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살의가 뇌리를 잠식했다.
지혁이 크리스탈을 건드릴 때마다 내면의 본성이 하나하나씩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당장 무언가를 부수지 않으면 성이 풀리지 않을 것 같다. 미칠 지경이다.
톡.
“하아악...!”
이번에 생긴 감정은 사랑이었다.
이제 완전히 지혁의 것이 된다고 생각하니, 영원의 시간동안 그, 그리고 아델과 함께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황홀한 감각이 퍼져나갔다.
톡.
이번엔 복종. 지혁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그의 발등에 키스를 하여 충성을 맹세하고 싶었다.
마치 감정을 그린 벽자가 휙휙 넘어가며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다.
상체를 수그린 채 헥헥거리고 있는 실비아.
그런 그녀의 가랑이 사이로 지혁의 손이 들어와, 바지 가운데에 자리한 비부를 꾸욱 눌렀다.
“이힉...♡”
경기를 일으킨 실비아가 발끝을 세웠다.
엄지발가락, 그리고 지혁의 손으로만 온몸을 지탱하던 그녀는, 자신의 귓속에 지혁의 손가락이 파고들자 혀를 쭈욱 내뺐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부터 피어난 마기가 뇌리로 침투한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도덕이 완벽하게 역전되고, 주인을 향한 총애가 가득 찬다.
지혁이 실제로 그러지는 않았지만, 실비아는 그렇게 느꼈다.
툭.
음렬을 만지고 있던 지혁의 다른 손이 벨트를 푼다.
실비아는 자신이 방금 느꼈던 모든 감정들을 지혁이 해소해줄 것이라 확신하며, 그가 바지를 쉽게 벗길 수 있게끔 골반을 씰룩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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