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3화 〉 진정한 가족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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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꿈틀대던 허리도 이젠 움직이지 않는다.
의지가 아예 없었고, 정신은 혼미했다.
수 시간에 걸친 최음제의 효과는 실비아의 체력을 완전히 빼놓아버렸다.
그런 상황에서도, 실비아의 귀는 지혁의 목소리에 반응했다.
“수고했어요. 사랑해.”
“아...♡”
낮게 깔리는 중저음.
가슴이 두근거리는 저 목소리로 사랑한다는 고백을 들을 때마다, 심장이 좋은 쪽으로 철렁한다.
대답하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입을 뻐끔거리던 실비아는, 그냥 희미한 미소를 띤 채로 눈을 감아버렸다.
그때,
“언니도 참... 그렇게나 좋았나요? 저도 기쁘네요.”
아델이 다가오더니, 실비아의 뺨에 약간 묻어있는 지혁의 정액을 훑었다.
그리고는 실비아의 입술 사이에 검지를 비벼 넣었다.
“읍...!”
강하게 밀고 들어오는 손가락.
눈을 번쩍 뜬 실비아는, 손가락을 문 상태로 아델을 바라보았다.
오일로 범벅이 되어 매끈해진 몸을 자랑하고 있던 그녀가 방긋 웃었다.
“전부 드셔요. 지혁 씨의 성액은 하나도 남기면 안 되어요.”
성액이라니... 종교인다운 단어선택이었다.
꽃사슴 같은 눈망울을 한 채로, 실비아는 입 안에 들어온 검지를 혓바닥으로 굴렸다.
젖병을 빨듯 쫍쫍. 지혁의 정액을 목 아래로 넘겼다.
“옳지, 옳지... 잘했어요.”
마치 아이를 대하는 것 같은 모습.
어린이 취급에 발끈할 만도 하지만, 실비아의 마음은 여느 때보다 상쾌했다.
아델은 자신에게 최음제를 먹였다.
당연히 화가 날 일이고, 따져야할 일이다.
하지만 아델의 의도를 알고 나니 화내는 것이 이상해보였다.
왜? 애인을 다른 남자에게 준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아델은 정말 큰마음을 먹고 이 자리를 마련했다.
최음제라는 방식이 그렇게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오늘 자신은 지혁과의 관계를 인정받았다.
그야말로 꿈에 그리던 일이었고, 얹혀놓았던 무언가가 쑥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자신은 동생에게 고마워해야 했다.
그게 이치에 맞는 일이다.
다만 자신을 매도한 건 쉬이 넘어갈 수 없었다.
동생에게 ‘암퇘지’, ‘천박한 것’, ‘더러운 계집’ 같은 욕을 들어서 기분이 나쁘다거나 하는 이유 때문이 아니다.
과격한 모습을 보여준 아델이 걱정되어서였다.
타이라트의 영향이 줄어든 줄 알았는데, 줄어들기는커녕 그 크기가 더욱 커진 것 같았다.
‘나중에... 나중에 말하자...’
지금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럴 힘이 없기도 하거니와, 지혁과의 섹스에 대한 여운을 느끼는 게 중요했으니까.
실비아는 혀를 굴리던 것을 멈추었다.
다 빨았다는 신호였다.
입에서 손가락을 빼낸 아델은, 실비아를 빤히 바라보며 다소 큰 소리로 누굴 불렀다.
“유세라 씨, 송혜윤 씨. 이리 오셔요.”
그러자 문이 열리더니, 속살이 보일 정도로 야한 흰색 슬립을 입은 두 사람이 들어왔다.
이 두 년은 뭐하는 애들일까.
“돈을 받고 이런 일을 해주는 음지의 사람들이에요. 의심하지 않아도 되어요.”
자신의 마음을 읽은 듯한 아델의 설명에, 실비아가 수긍했다.
그래서 유세라가 돈을 받았다고 지껄였었구나.
이런 광경을 보고도 아무런 내색조차 하지 않는 것이, 이쪽 경험이 꽤나 많은 듯싶다.
하지만 이년들에겐 교육이 필요했다.
아무리 명령이었다고는 하지만, 괘씸하게 자신을 속이고 최음제를 먹인 대가는 치러야한다.
아델의 명령에 의해 일어난 일이니 죽이진 않는다.
허나 꽤 많이 아플 것이다.
톡. 톡.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지혁이 갑작스레 자신의 아랫배를 두드려주었다.
엄청난 쾌감이 올라온 실비아가 본능적인 신음을 내뱉었다.
“앗...♡ 앗!”
“괜찮아요. 그냥 쓰다듬어주는 겁니다.”
그 말에 아까부터 후끈해져있던 그곳이 서서히 식어가더니, 굉장히 편해졌다.
나른한 표정을 지은 실비아는, 이어지는 지혁의 말에 아주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 두 사람이 목욕시중을 들 거예요. 오늘은 씻고 아델이랑 같이 집에서 푹 쉬세요. 아셨죠?”
“으응...”
“내일 다시 얘기합시다. 다시 말하지만, 수고 많았어요.”
“고... 마워...”
힘겹게 입을 뗀 실비아를 향해 씨익 웃어 보인 지혁은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비아는, 유세라와 송혜윤, 이 두 사람의 부축에 힘입어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수면제라도 먹은 건지 눈이 절로 감긴다.
너무 피곤하다. 잠들고 싶다.
‘잘래...’
그냥 자자. 어차피 저들이 알아서 씻겨줄 거잖아.
지혁과 아델도 있으니까 걱정할 건 없어.
그리 생각한 실비아가 고개를 푹 떨궜다.
그리고 그녀는,
쩌어억!
자신의 귀에서 약간 징그러운 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로 수마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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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리즈!
귀에서 왱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오만상을 다 쓴 실비아는, 그렇게 잠에서 깨어났다.
“끄으응...”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리고 음부가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마냥 아프다.
고통 속에서 눈을 뜬 실비아가 상체를 일으켰다.
‘앞이 안 보여...’
주변은 빛이 한 점도 없었다.
일순 불안해진 실비아였지만, 자신의 콧속으로 들어오는 달콤한 향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복숭아향 방향제 냄새. 자신의 방에 놓아둔 것이었다.
‘내 방이구나...’
두껍지만 가벼운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긴 실비아가 그곳에 얼굴을 묻었다.
얼마나 지난 걸까? 암막커튼의 틈 사이로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밤인 듯한데...
머리가 찡하게 울리고 무거울 정도라면 꽤나 오래 잔 것 같았다.
한참동안 가만히 있으면서 정신을 차린 실비아가 다리를 움직여보았다.
그럴 때마다 아래가 쑤셨다.
지혁의 우람한 자지를 열 번이 넘도록 받아들인 대가였다.
최음제 때문에 정신이 나가버려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 정도 횟수가 맞을 터였다.
고통을 참아내며 자리에서 일어나니 몸이 휘청거린다.
벽을 짚어 균형을 잡은 실비아는 문 앞으로 가서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문아래 틈 사이로 주홍색 빛이 희미하게 들어왔다.
거실 불이 켜져 있다는 뜻.
더듬더듬 문고리를 잡은 실비아는 문을 열었다.
끼이이...
TV를 보며 깔깔거리고 있는 아델이 보인다.
재미있는 예능 프로라도 보는 모양.
소파 테이블엔 딸기우유 곽이 다섯 개나 보였는데, 입구가 열려있는 것이 모두 마신 듯싶었다.
“언니, 일어나셨군요.”
소파에서 일어난 아델이 환히 웃는다.
실비아는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까 고민했다.
굉장히 창피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라, 아델이 보는 앞에서 지혁의 자지에 맛 들려 정신을 놓아버렸다.
동생의 손길에 조수를 몇 번이나 뿜어내기까지 했다.
쪽팔리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었다.
“몸은 어때요?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있나요?”
하지만 아델이 살갑게 다가와 물으니 그런 불편함이 불식되었다.
어색한 미소를 지은 실비아가 말했다.
“그... 아직 아랫배가 조금... 근데 지금 몇 시야?”
“자정이 조금 넘었어요. 그제 돌아오셔서 지금까지 쭉 주무신 거예요.”
그저께라고...?
아델과 업소에 들린 것이 오전.
그리고 나갈 땐 정오가 훌쩍 지난 시간이었으니까...
하루하고도 반나절 조금 안 되게 잤다는 말인가?
어지간히 피곤했다보다.
“저, 정말...?”
“네. 배가 고프지는 않으셔요?”
그러고 보니 뱃가죽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것보다 시급한 건 물이었다.
그런 실비아의 마음을 알아차린 듯, 아델이 냉장고를 열더니 딸기우유를 가져와 내밀었다.
“일단 목이 마를 테니, 이걸 먼저 드시도록 하셔요.”
무심코 그걸 받은 실비아는 풋 하는 실소를 터뜨리고야 말았다.
참 아델답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딸기우유를 한 모금 들이켠 실비아가 물었다.
“근데... 나 여기 어떻게 온 거야?”
“어떻게 오기는요. 씻은 다음 포탈을 탔지요.”
“그래...? 그 두 사람한테 들키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유세라 씨와 송혜윤 씨를 말하는 건가요?”
“응... 그 버러지들...”
순식간에 솟구치는 살의.
특히 자신을 능멸한 유세라에게 적의가 가득 샘솟았다.
“걱정하지 마셔요. 둘은 언니를 씻기고 보냈으니까요. 그리고 혹시나 들킨다 해도 상관없지 않나요?”
“.....”
그렇기는 했다.
왜?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까.
순간 침침해져온 눈을 끔벅 감았다 뜬 실비아.
왠지 모르게 기뻐하고 있는 아델을 바라보던 그녀는, 업소에서 했던 아델의 험한 말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아델... 그... 업소에서 나한테 했던 말들 있잖아...”
“네.”
“왜... 그런 식으로 말한 거야? 기분이 나쁘다는 건 절대 아니고... 그냥 걱정돼서...”
“언니는 나쁜 년이군요. 너무 이기적이에요.”
뜬금없이 자신을 매도하는 아델.
놀란 실비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 응?”
“언니는 저 몰래 지혁 씨를 만났어요. 그것도 여러 번이나요.”
“.....”
입이 꾹 다물어진다. 유구무언. 할 말이 없다.
전부 사실이니까.
“그러니 제가 언니를 욕하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그렇지 않나요?”
아... 그렇다.
아델은 지혁을 몰래 만난 자신에게 화가 나있는 상태. 당연히 욕을 쏟아낼 만도 하다.
역지사지라는 말이 있다.
자신 또한 아델의 입장이었다면 곧바로 욕이 튀어나왔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아델처럼 상대방을 배려해주기는커녕 싸웠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자신의 입장을 자각한 실비아가 사과했다.
“정말 미안해... 네 말이 맞아...”
“괜찮아요. 언니가 끙끙거리는 모습을 보기가 더 힘들었으니까요. 이제는 지혁 씨를 만나고 싶으면, 눈치 보지 말고 저에게 당당히 얘기하셔요. 알겠나요?”
어쩜 이토록 자비로운지...
아델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인다.
친자매가 있다면 이러할까?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감격한 실비아는 아델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 고마워, 아델...”
“그렇다고 해서 매일 만나도 된다는 뜻은 아니에요.”
“물론이야... 내가 잘... 잘 조절할게...”
“그래요. 언니를 믿어요. 우린 진정한 가족이니까요. 언니는 영원히 지혁 씨와 제 곁에 있을 거예요.”
진정한 가족, 영원히 함께.
이 말이 왜 이토록 달콤하게 들릴까?
모르겠다...
찌릿!
“윽...!”
돌연 강하게 쑤셔오는 아랫배.
짤막한 신음을 터뜨린 실비아가 인상을 팍 구기자, 포옹을 푼 아델이 실비아의 배를 톡톡 두드려주었다.
그리고는 걱정스런 투로 말한다.
“괜찮으신가요? 아휴... 지혁 씨에게 살살하라고 했는데 참...”
“괜찮아... 그냥 약간 따끔했을 뿐이야... 지혁이는... 집에 있어?”
“언니가 깨어났다고 연락해놓았으니, 조금 이따가 올 거예요. 그 전에 식사부터 하셔야지요? 언니를 위해 스파게티를 만들어놓았답니다.”
연락을 했다? 언제?
휴대폰을 만지는 기색은 전혀 없었는데...
뭐, 아델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쉽게 생각한 실비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스파게티...? 그건 네가 좋아하는 음식...”
“언니와 함께 먹기 위해 직접 만들어놓은 스파게티에요. 그러니 뭐라고 해야 할까요?”
“그, 글쎄...? 고마워...?”
“그렇지요. 자, 식탁에 얌전히 앉아있으셔요. 오늘은 제가 전부 준비할 테니까요.”
“내가 도와줘도 되는데...”
“어허...!”
근엄한 척을 하려는 아델이 너무나도 웃겼다.
입가를 가리고 숨죽여 웃은 실비아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 앉았다.
행복하다. 앓던 이가 쏙 빠진 기분.
하루하루가 계속 이랬으면 좋겠다.
‘그런데...’
일어나기 직전에 꿈을 꾸지 않았었나?
누가 막 괴성을 지르며 자신을 불렀던 것 같은데...
‘모르겠다.’
기억이 전혀 나지 않을 정도라면 중한 꿈이 아니겠지.
그냥 아무 생각 말자.
다른 부질없는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기엔, 행복감이 충만한 지금 이 시간이 너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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