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8화 〉 살인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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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이블리언 에너지가 탐지되었습니다! 시민 여러분들께서는 신속히 벙커로 대피하시길 바랍니다.]
[경고! 이블리언 에너지가…….]
위이이이이이잉!
공습경보보다 귀가 훨씬 얼얼해지는 사이렌 소리에, 시민들이 앞을 다투며 지하벙커가 설치된 장소로 달려갔다.
도로 밑에 설치된 벙커는 도개교처럼 분리되어 자동차가 출입할 수 있게끔 내려간다.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마물의 출현이지만, 인간들은 여전히 혼비백산했다.
자신만 살겠다고 노인을 밀치고, 사람이 밟혀 죽는 것도 개의치 않아하는 놈들 같은... 성악설에 힘을 실어주는 다양한 인간들도 여전히 많다.
이번 출현이 끝나면 인간에 의해 죽는 인간들이 나오겠지.
여느 때처럼.
파앗!
미물들의 발악을 보고 있던 나는, 전투기 내부에 환한 빛이 일어나자 잡념을 날려버렸다.
포탈 안에서 튀어나온 실비아가 다짜고짜 묻는다.
“박사님은?”
“연구실에서 모니터링 중입니다.”
“그래? 마물 등급은? B급에서 안 올라가?”
“예.”
“쉽네. 아델을 부를 필요도 없겠어. 근데 왜 낮은 등급이지? 최근엔 거의 A급 이상만 나타났잖아.”
왜긴, 실험을 위해서지.
말파스에게 붙은 개새끼를 유리아가 정찰을 하다가 잡아냈고, 지금 내려올 준비를 시켜놓았단다.
지금 나타날 놈은 아델의 마력을 받아낼 실험용 개체다.
아델의 변질된 신성력으로 강화가 되는지 안 되는지 확인해보는 용도.
만약 내 직속 권속이 아니더라도 강화가 된다면, 반란 진압은 완벽한 청신호.
그렇지 않더라도 실망스럽지 않았다.
왜? 난 아델이라는 강대한 이블 발키리를 얻었고, 실비아 또한 얻을 예정이니까.
“타이라트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보죠.”
“제발 나쁜 일이었으면 좋겠다. 콱 죽어버렸으면...”
어허... 그런 말을 하면 못써요.
“생포할 겁니다. 알아두세요.”
“꼭 그럴 필요가 있어?”
“예?”
“저번에 나타난 마물도 에너지원으로 써보려다가 실패했잖아. 자원이 전혀 안 되는데 굳이 생포할 필요가 있어? 후환을 남겨놓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봐.”
실비아야.
능동적인 모습은 보기 좋지만, 지금은 내 명령에 따라줘라.
“마물들은 각자 특색이 있어요. 피 색깔도 다르고, 그 안에 들어있는 성분마저도 상이해요. 그러니만큼 연구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제 말대로 해요.”
“알았어. 생명줄만 붙어있으면 되지?”
살벌한 말이었다.
과격하게 변한 실비아를 뿌듯한 눈으로 바라보던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죽지만 않으면 됩니다.”
전투기를 호버링시킨 나는, 마물이 나타나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실비아의 슈트를 잘 정리해주었다.
“끝나고 곧바로 돌아오세요. 딴 짓하지 마시고.”
이런 날 바라보며 얼굴을 붉힌 그녀가 투덜거렸다.
“내가 무슨 딴 짓을 한다고...”
“대답.”
“아, 알았어... 바로 돌아올게... 아, 그리고... 이희연 걔는 잘 처리했어? 만나지는 않았지? 약속대로 전화로만 했지?”
“만났으면 어떡하려고?”
실비아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이희연을 죽이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아델의 마력과도 감응했고, 공격적인 모습도 좋고...
저 반응을 보니 착한 척 연기를 하는 날도 머지않았다고 느낀다.
이대로만 해나가자.
방긋 웃은 나는 그녀를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마. 전화로 잘 말해뒀어요.”
쩌어어억!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사이 마물의 아가리가 열렸다.
끈적한 타액이 질질 쏟아지고 있는 그곳에서, 온몸에 상처가 가득한 마물이 튀어나왔다.
인간형 마물. 머리에 달린 두 개의 뿔 중, 하나는 박살이 나있다.
유리아의 화살에 당한 듯싶었다.
놈의 면상을 살피던 나는, 실비아의 엉덩이를 짝! 소리가 날 정도로 때렸다.
그러자 실비아가 펄쩍 뛰며 소리쳤다.
“아악! 야! 너까지 왜 그래!?”
고개를 갸웃한 내가 물었다.
“나까지?”
“아, 아무것도 아냐... 다녀올게.”
알아서 전투기 문을 옆으로 열어 재낀 실비아.
그녀는 곧 연홍색 빛이 되어, 마물을 향해 쏘아졌다.
**
“불쌍한 놈...”
비밀기지에 잡혀있는 마물을 보던 나는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놈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목구비가 사라져있는 것은 물론, 팔다리까지 잘려 없어진 상태였다.
이는 실비아의 악독한 손속 덕이었다.
그녀는 이 마물과 싸울 때, 의도적으로 시간을 끌었다.
그러면서 천천히, 마치 고문을 하듯 마물을 능욕했다.
내가 명령한 대로 숨만 딱 붙여놓기만 한 것이다.
아무리 악의를 받아들여 사악해졌다지만, 솔직히 이렇게까지 잔인할 줄은 몰랐다.
그래서 더 좋았다.
저놈이 불쌍하다는 것도 거짓말이다.
왜? 놈은 날 배신하고 말파스에게 붙은 개새끼니까.
모니터를 통해 고통에 엑엑대고 있는 마물을 바라보던 나는,
“여기가 지혁 씨의 비밀기지인가요?”
뒤에서 포탈이 열리고 아델과 민지가 나타나자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아델은 비밀기지에 온 것이 처음이구나.
히죽 웃은 내가 대답했다.
“맞습니다.”
“여기서 저와 언니에게 마수를 뻗은 것이로군요...! 아주 음침한 장소에요...”
우리 아델, 어쩌지?
그 전에 세화, 유리아는 물론 박사까지 내 것으로 만들었단다.
박사야 네가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더라도, 나머지 두 사람은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중에 보면 피를 토하며 성질을 낼지도 모르겠군.
“음흉한 지혁 씨가 있는 곳이라 그런지, 공기가 무척 퀴퀴해요... 냄새나요...”
연신 투덜거리는 아델.
실비아와 내가 관계를 가진 것이 정말 싫었나보다.
이후로도 한참을 무어라 중얼거리던 아델이 민지에게 명령을 내렸다.
“김민지 사제, 탈취제를 가지고 오도록 하셔요.”
“네...? 탈취제요...?”
“김민지 사제도 지혁 씨를 닮아가는군요. 말귀가 어두워졌네요.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 죄송합니다. 탈취제... 곧바로 가져오겠습니다.”
“됐어요. 그냥 해본 말이었으니, 신전으로 돌아가서 요리를 하도록 하셔요.”
“아, 네...! 그럼...”
민지는 곧바로 포탈을 열어 도망치듯 사라졌다.
심술을 부리는 아델은 받아주기 힘들지.
그 마음 이해한다.
아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준 내가 물었다.
“정말 냄새가 나나요?”
“.... 안 나요. 근데 이 장소는 싫어요. 너무 공허해요.”
공허하다고?
하긴, 널따란 내부에 비해 마물들이 한 마리도 없긴 하지.
아니다, 지금 의료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녀석이 하나 있을 텐데...
“오늘만입니다. 다음부터는 절대 오라고 하지 않을게요.”
“네에... 제가 뭘 하면 되지요?”
“이쪽으로 오세요.”
아델을 마물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간 나는,
“흐이익!”
그녀가 숨을 훅 들이켜고는 내 등 뒤로 숨자 의아해했다.
“왜 그러십니까?”
내 등허리에 머리를 기댄 그녀가 소리쳤다.
“지, 징그러워요! 당장 저 마물을 치우도록 하셔요! 냄새나! 지독해요!”
아... 그냥 징그러워서 그러는 거야?
우리 아델은 철이 없어도 너무 없어요.
“실험해볼 게 있습니다. 아델의 마력을 저 마물에게 주입해주셨...”
“싫어요! 어찌 감히 제 신성한 마력을 저것에게 주입하라고 하실 수 있지요!?”
“아델, 부탁해요.”
“.....”
진중한 어조는 아델에게 항상 잘 먹힌다.
예상대로, 입술을 잘근잘근 씹던 그녀가 한숨을 푹푹 내쉬며 앞으로 나왔다.
잔뜩 토라진 표정의 그녀가 콧바람을 훅 내뿜었다.
“이, 이번 일이 끝나면...”
“원하는 건 모두 들어드리겠습니다.”
“.... 정말인가요?”
“네.”
“조, 좋아요... 그럼... 어떻게 하면 되지요? 그냥 마력만 주입하면 되나요?”
“맞습니다. 아델이 김민지 사제의 세례성사 때 마력을 일으켰던 것처럼, 저 마물에게도 똑같이 해주세요.”
아델이 마물과 멀찍이 떨어져선 눈을 질끈 감았다.
곧 죽어도 저 마물에게 가까이 가기는 싫은가보다.
고오오...
곧이어 보랏빛 기운이 피어나 마물에게로 향했다.
아델의 마음을 대변하듯 마물의 지척에서 잠깐 멈춘 마력은, 놈의 상처를 통해 내부로 침입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어어억... 그어어! 그어!
입술이 사라져 흉측해진 놈의 입에서 괴상망측한 비명이 들려왔다.
몸통과 얼굴밖에 없는 신체는 마구 뒤틀렸다.
마치 고통에 몸부림을 치는 것처럼 말이다.
놈의 상처에선 지혈되었던 검은 피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려 바닥을 적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물의 신체가 축 늘어졌다.
죽은 것이다. 아주 허망하게.
‘흠...’
애초에 생명의 불빛이 꺼져가고 있긴 했지만, 피를 마구 흘렸던 것으로 보아 신진대사의 작용이 무척 빨라진 듯싶은데...
아델의 마력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자세한 사항은 모니터링 결과를 봐야 알겠지만, 결론은 대충 났다.
아델의 마력은 내 직속 권속이 아니라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그 결론이다.
만약 잘 받아들였다면 상처가 아물고, 내부에서 느껴지는 힘이 더 강대해졌을 테지.
나는 아직까지도 눈을 감고 있는 아델을 앞으로 안아들었다.
“수고했어요.”
“끝났나요? 이제 눈을 떠도 되어요?”
“아뇨. 아직입니다.”
“알았어요. 얼른 저를 이 냄새나는 곳에서 데리고 나가셔요. 오늘 엄청 고생을 해서 피곤하군요. 그러니 딸기우유와...”
수십 가지 요구사항을 말하기 시작하는 아델.
실소를 터뜨린 나는 아델을 오냐오냐해주며 여길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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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서 기도를 드리고 나온 실비아는, 어느 새 쌓여있는 눈을 보며 탄성을 터뜨렸다.
눈은 볼 때마다 아름다웠다.
각박한 현실을 잠시 잊게 해준다고 해야 할까? 마음에 평온을 가져다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잠깐 멈춰 서서 넓게 퍼진 눈을 바라보고 있던 실비아는, 신부가 넉가래를 가지고 오자 활짝 웃었다.
“안녕하세요, 신부님. 눈 치우시려나보네요?”
“예. 기도는 잘 드리셨습니까, 자매님.”
“잘 드렸어요. 오늘도 감사했습니다.”
“별 말씀을... 헌데... 오늘 오전에 대전에서 괴물이 나타났다가, 비스트 슬레이어 캐롤라인에게 물리쳐졌다는 소식, 혹시 들으셨습니까?”
그걸 잡은 게 자신이다.
속으로 픽 웃은 실비아가 대답했다.
“물론 들었죠. 그게 왜요?”
“실례가 되는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실비아 씨가 그 캐롤라인 님을 닮은 것 같아서 이야기해봤습니다.”
실비아가 흠칫했다.
자신의 변신 전, 변신 후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다.
끽해봐야 헤어스타일, 그리고 눈매뿐이었다.
이로 인해 언제고 알아볼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했었는데... 벌써 이런 일이 생겨버렸다.
물론 이희연이 자신의 정체를 눈치챘을 테지만, 그건 들키는 것도 불사한 일이라 상관없었다.
어차피 지혁의 안배로 입막음도 확실할 것이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허나 이 신부는...
‘쓸데없는 오지랖은...’
일순 욱한 실비아의 표정이 날카로워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신부가 이상함을 눈치채기도 전에 예의바른 모습으로 돌아온 실비아가 말했다.
“제가 캐롤라인을 닮았다니 영광이네요. 하지만 전 그분이 아니에요. 닮았다는 얘길 종종 듣긴 하지만요.”
“그렇습니까?”
“네. 흔치 않은 적발이라서 많이들 착각하시는 것 같아요.”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이만 가볼게요. 수고하세요.”
“살펴 들어가십시오.”
성당을 벗어난 실비아는 모자를 푹 눌러썼다.
예전엔 알아보는 사람이 생긴다 해도 자신만 신경 쓰지 않으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막상 실제로 겪고 나니 제법 귀찮았다.
고작 짧은 대화만으로도 이럴 정도인데, 얼굴이 완전히 알려지면 어떨지...
“.....”
저 신부는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말이 많다.
주일에 사람도 얼마 없는 자그마한 성당 소속이지만, 말이 많은 신부가 있다는 부분은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캐롤라인을 닮은 여자가 있다고 지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걸로 광고를 해서 사람을 모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냥 입막음을 해버릴까? 이희연처럼?
아니면 지혁의 말대로 확실하게 죽...
“핫!”
과격한 생각을 하던 실비아가 움찔했다.
제자리에서 우뚝 멈춘 그녀가 생각했다.
요즘 자신이 꽤나 다혈질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이다.
감정에 솔직한 실비아 씨가 정말 예뻐 보여요.
자신의 가치관에 대해 진중한 고민을 해보던 그녀는, 머릿속에 부드러운 지혁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상념을 날려버렸다.
그래, 지혁이 좋아해주면 된 것 아니겠는가?
이러한 성격파탄자 같은 모습은 타이라트의 영향을 받아서임이 확실하겠지만...
지혁만 있다면, 아델만 있다면, 그리고 두 사람이 자신을 계속 사랑해준다면...
자신은 자신으로 있을 수 있다.
퍼석!
인도 위에 쌓인 새하얀 눈을 밟고 나니 마음이 상쾌해지는 기분이다.
집으로 돌아가면 변신해야겠다.
아이테르 에너지도 소모할 겸, 그리고 안정도 얻을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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