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5화 〉 폭력의 맛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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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악!
“흐으으읍!!”
찰진 소리, 돌아가는 고개, 그리고 억눌러진 비명.
재갈이 물린 상태로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이희연을 바라보던 실비아의 입가에 만족스런 미소가 맺혔다.
벌써 열 대째.
이미 이희연의 뺨은 푸르딩딩해져 부풀어 오른 상태였다.
솔직히 처음 때릴 때엔 기분이 더러웠다.
마치 죄를 지은 것 같았고, 불쾌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희연의 뺨이 벌개지고, 눈에서 눈물이 흐르자 한 감각이 전신을 지배했다.
그건 온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의 흥분... 쾌락이었다.
자신이 새디스트인 건 아니다.
아델, 혹은 지혁을 때린다는 상상을 해보니 정말 끔찍했기 때문이다.
이건 그저 싸가지 밥 말아먹은 년의 안하무인한 태도가 순식간에 바뀌는 것에 대한... 즉, 참교육으로 인한 만족감일 뿐이었다.
지구의 수호자인 자신은 이희연 같은 예의 없는 인간을 계도해주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앞으로 사회에서 모난 돌을 맞지 말라고, 그리고 세상의 쓴맛도 보여줄 겸.
생각해보라. 그냥 죽이고만 싶었다면 변신을 풀지 않고, 귀찮음을 무릅쓰고 결박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년은 자신의 자비로움에 감사해야 한다.
“고개 똑바로.”
낮게 깔리는 목소리에, 무릎을 꿇은 채로 포박되어있던 이희연의 군기가 다시 돌아왔다.
재빨리 실비아를 마주본 그녀가 간절함이 담긴 눈빛을 보냈다.
“재갈 풀어줄 테니까, 큰소리 내면 안 돼. 알았어?”
“읍! 읍읍!”
이희연이 정신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한쪽 입꼬리를 올린 실비아가 그런 희연의 재갈을 풀어주었다.
“제,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흐으윽...! 잘못했습니다... 정말 잘못했어요...!”
입이 자유로워지자마자 곧바로 흐느끼며 사죄하기 시작하는 희연.
실비아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내가 뭐라고 했더라?”
“소리... 지르지 말라고 하셨어요... 죄송합니다... 끄읍...!”
입을 꾹 다무는 모습을 보니, 교육이 아주 잘된 것 같다.
희연의 부푼 뺨을 톡톡 두드린 실비아가 물었다.
“방송하는 애지?”
“네... 맞아요... 흑...!”
“내일 방송 켜서 푸념할 거야?”
“저, 절대 아니에요... 화장 제대로 할게요... 아, 아니요...! 아예 다 나을 때까지 방송 안 할 게요...”
마음에 든다.
역시 말썽꾸러기를 교화시키는 데엔 주먹이 최고였다.
끙끙 앓을 필요 없이 몇 대 때려주면 그만이다.
“네가 기절해있는 동안 너희 부모님 주소 다 확인해놨어. 이사한다 해도 찾을 방법은 엄청 많아. 그러니까 오늘 일은 어디 가서 발설하지 마.”
“네... 입 꾹 닫고 있겠습니다아... 제발...”
“그냥 나쁜 꿈꿨다고 생각해. 지혁이도, 나도 다 잊어버려. 만약 누구한테 말하거나 신고하면... 네 가족부터 시작해서 주변 사람들을 전부 죽일 거야. 네 눈앞에서.”
살벌하기 그지없는 말에, 희연이 딸꾹질을 했다.
“흐끅! 무조건... 무조건 잊을게요...! 흐아아아앙...”
“믿을게.”
희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준 실비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솔직히 이런 불법침입과 폭행은 위험한 행동이었다.
비스트 슬레이어가 연예인 따윈 씹어 먹을 정도로 범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지금이다.
얼굴도 많이 팔린 상태.
더군다나 사다리 하나 없는 4층의 창문을 힘으로 밀고 들어왔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초인적인 일... 지구에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비스트 슬레이어밖에 없었다.
들어오자마자 변신을 바로 풀긴 했지만, 이미 이희연은 슈트차림을 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러니 정체를 눈치챘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녀 혼자 무슨 말을 지껄이든 피해는 전혀 없을 테니까.
이미 본부와 비스트 슬레이어는 전 세계에서 성역으로 취급받고 있었다.
본부는 마물을 상대하는 위험부담을 떠안고, 이에 대해서 어떠한 불만도 표출한 적 없었다.
물론 세계연합에 몇 마디 하긴 했지만, 이는 당연한 행동.
애초에 그들이 죽은 마물, 혹은 본부의 소모품을 이용해 음모를 꾀하지만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이블리언 탐색기를 전 지구에 설치한 것도 본부고, 피해보상과 관련된 법률을 모든 나라에 적용시킨 것도 본부다.
게다가 비스트 슬레이어들은 인기를 얻었다 하여 허영심에 찌들지도 않았다.
높은 인기를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 하지도 않았고, 그저 조용히 있다가 마물만 잡고 사라진다.
이런 희생만 하는 상황에서, 이희연이 폭로를 한다 한들 믿어주는 일반인은... 단언컨대 아무도 없을 것이었다.
오히려 역풍이 불어 몰매를 맞게 될 테지.
악플러들이 좋다고 달려들기야 하겠지만, 열정적인 비스트 슬레이어 찬양론자들이 신상을 털어줄 테고... 거리낄 것은 전혀 없었다.
이희연의 결박까지 풀어준 실비아가 자신의 휴대폰을 확인했다.
[언제 와요?]
철없는 지혁의 문자를 본 그녀가 픽 하는 웃음을 터뜨렸다.
평소엔 정말 어른스러운데... 오늘따라 애 같다.
그래서 더 좋다. 자신을 의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 가.]
지혁에게 답장을 보낸 실비아는, 결박이 풀렸음에도 미동조차 없는 이희연에게 경고했다.
“내 말 기억하지?”
“.... 저, 절대... 흐끅! 신고하지 않겠습니다... 어디 가서 말하지도 않을 거예요... 흐윽...!”
이 정도면 교육은 다 된 것 같다.
이년이 지혁과 어떤 식으로 물고 빨고 했는지 알고 싶었지만, 듣지 않기로 했다.
왜? 듣다간 화가 나서 이년의 머리통을 날려버릴 것 같아서였다.
“잘 들어, 앞으로...”
몇 마디 더 경고를 한 실비아는, 그렇게 이희연의 집을 나섰다.
**
가슴팍이 슬쩍 드러날 정도로 가운을 걸친 상태였던 나는, 얼굴을 붉힌 실비아의 솔직한 설명에 꽤나 놀랐다.
그녀는 이희연을 폭행한 일을 가감 없이 말하고 있었다.
솔직히 몇 개는 비밀로 할 줄 알았는데... 기쁘다.
이러한 말까지 할 정도면 그만큼 날 신용하고 있다는 의미였으니까.
잠자코 모든 이야기를 들은 내가 물었다.
“실비아 씨는 비스트 슬레이어 아니었나요?”
“맞아.”
“그런데 왜 지켜야할 사람을 때렸죠?”
“연예인들도 악플 받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마당이야. 공인이라고 참기만 하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해.”
“비교가 잘못됐잖아. 실비아 씨는 정의로운 사람이에요. 사람들을 지키려는 마음가짐이 있다고. 그런 분이 왜 사람을 때리냐는 거죠.”
“지금 그년 편드는 거야?”
“그저 놀랐을 뿐이에요. 그리고 실비아 씨가 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알고 있었어요?”
실비아가 태연스레 대답했다.
“걘 아무것도 못해. 뭘 말하든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거고.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확실히 그 말대로긴 하다.
근데 당당해도 너무 당당한 거 아니니?
나야 좋지만.
“단정 짓지 마세요. 나중에 골치가 아파질 수도 있다고요.”
다소 강한 태도로 나무라면 한 발 물러설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실비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내가 이런 일을 한 데엔 네 잘못도 있어.”
“그건 또 무슨 소립니까?”
“네가 아델이랑 날 놔두고 바람을 피워대니까 열이 받을 수밖에 없잖아. 그럼 어떡해? 화풀이할 수밖에 없지.”
허어... 내가 했던 말을 모방하는 실력이 썩 뛰어나다.
제법이야.
“그럴 거면 차라리 죽이지 그랬어요. 그랬다면 뒤처리하기 더 편했을 텐데.”
그 말에 실비아가 움찔했다.
기세가 팍 죽은 그녀가 작아진 목소리로 따진다.
“너, 너는 무슨 그런 말을 해...? 어떻게 사람을 죽여...”
너도 죽이고 싶었잖아.
아까부터 얼굴이 잔뜩 상기되어있었으면서, 말할 때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으면서 감히 조신한 척을 해?
자지로 혼쭐을 내줘야겠구나.
“못할 건 뭐있어요? 어차피 걔는 실비아 씨의 입장에서 화풀이 대상 아닌가? 인간 취급도 안 할 정도로 하찮은.”
“.... 너 지금 나 비꼬냐?”
“아뇨. 실비아 씨가 너무 당당해서요.”
“넌 뭐가 그렇게 잘나서 당당한데? 애초에 원인을 제공한 건 너잖아.”
그에 대답하지 않은 나는 미리 시켜두었던 칵테일을 실비아에게 내밀었다.
슬라이스 레몬을 가니쉬로 올린 연갈색의 기다란 유리잔.
그것을 받은 실비아가 물었다.
“칵테일이야?”
“네.”
“뭔데?”
“롱티라고 있어요. 아이스 티 같은 거야.”
“아니... 이걸 왜 나한테 주냐고. 뇌물 같은 건가?”
“비슷해요.”
칵테일을 홀짝인 실비아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달짝지근한 맛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이런다고 용서해주진 않아.”
그 미소부터 좀 감추고 말하든가.
실비아의 옆에 앉은 나는, 그녀에게 바짝 달라붙었다.
“용서해주지 않으면 어쩔 건데? 아델처럼 혼내기라도 하게?”
“.... 닥쳐. 잘못한 놈이 왜 이렇게 말이 많아...? 반성은 하고 있었어?”
“반성은 실비아 씨가 해야지. 내 욕구를...”
“또 이상한 궤변 늘어놓... 허억...!”
실비아가 깜짝 놀랐다.
원인은 내 손 때문이었다.
윗배에서 시작해 명치 부근까지 올라간 손.
가장 긴 중지 끝부분에서, 실비아가 찬 브라의 후크 감촉이 느껴진다.
우웅...! 우우웅...
소음을 발하기 시작한 디바이스.
그 소리를 들은 실비아가 곤란한 투로 말한다.
“디바이스... 빼야 돼...”
“어차피 다시 소모하면 그만 아니야?”
“그럼 왜 저번엔 30퍼센트만 쓴 건데...?”
그거? 하루 만에 다 쓰면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잖아.
가령 네가 받은 그 신탁에 관련된 거 말이야.
아까처럼 실비아를 무시한 나는 중지에 힘을 주어 그녀의 명치를 꾸욱 눌렀다.
그러자 곧바로 반응이 왔다.
“흣...!”
감전된 사람마냥 몸을 부르르 떤 실비아가 칵테일을 잔뜩 쏟아버린 것이다.
원래라면 이것 하나만으로 이 정도까지 흥분하진 않았을 텐데, 희연에게 폭력을 쓴 일의 여운이 좋은 쪽으로 남아있는 것 같았다.
점점 눈이 풀려가려는 실비아가 묻는다.
“.... 다, 다 씻은 거 맞지...? 거기도...”
“거기 어디?”
“그거... 네 아래에 달려있는 거...”
“똑바로 말해요.”
“.... 자지... 자지 씻었어...?”
히죽 웃은 내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깨끗하게 씻었어.”
“다, 다시 씻어... 그래야...”
“왜 이렇게 깔끔 떨어? 이것도 깨끗하게 해봐요.”
나는 실비아에게 칵테일이 묻은 손을 내밀었다.
처음엔 어리둥절해하던 그녀는, 이내 내 의도를 파악했는지 눈을 게슴츠레 떴다.
이후 입을 살짝 벌리고, 눈앞에 있는 검지를 빨기 시작했다.
우웅! 우우우웅!
강해진 디바이스의 소리.
실비아의 시선이 내리깔아지는 것이 보인다.
충전되고 있는 디바이스가 곤란한 듯싶은 표정. 하지만 입을 멈추지는 않는다.
한동안 아이스크림을 빨듯, 손가락을 쪽쪽 빨아대던 그녀가 콧바람이 섞인 나른한 한숨을 내뱉었다.
“후으...♡ 디바이스... 벗을게... 이거 다시 소모하려면... 힘들어서...”
“변신할래요?”
“갑자기...?”
“왜요? 변신한 채로 하는 게 낫잖아. 에너지가 충전되면서 실시간으로 소모되기도 하니까.”
“어, 어차피 너랑 한 번 하면 다 충전되는데... 저번에도 변신한 상태로 했었잖아...”
“그냥 변신해요.”
실비아의 목젖이 크게 꿀렁였다.
저음으로 깔리는 내 목소리가 무척 마음에 든 모양새였다.
작게 고개를 주억거린 그녀가 디바이스를 터치했다.
심지어는 내 눈이 부시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기운을 최소화하기까지 한다.
변신을 마친 그녀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간 내가 물었다.
“기분 어땠어?”
“응...? 무슨 소리야...?”
“희연이 교육시킬 때, 기분이 어땠냐고요. 좋았어요? 아니면 불쾌했어요? 솔직하게 대답해봐.”
머뭇거리던 그녀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소, 솔직히... 교육하기 전엔 불쾌한 감정이 어느 정도는 있었는데...”
“그랬는데?”
“교육할 땐 좋았어... 엄청 좋았던 것 같아... 이런 내가 이상해...? 난 그저 예의를 가르치려고 했을 뿐인데...”
도덕의 붕괴, 가치관의 변질, 자기합리화.
이러한 타락의 증표들은 마주할 때마다 흥분된다.
지금이 그랬다.
정의, 수호를 부르짖던, 애타게 로사리오를 찾던 비스트 슬레이어 캐롤라인의 뒤바뀐 모습은 그만큼 매혹적이었다.
손을 뻗어 실비아의 턱을 약하게 붙잡은 나는, 손가락 두 개로 그녀의 턱밑을 살살 긁었다.
“아뇨. 이상하지 않아요. 여태까지 많이 참아왔잖아. 스트레스 풀 데도 필요하지.”
“나, 난 스트레스를 풀려던 게 아니라...”
“그래요. 교육이죠. 예의 없는 사람들을 갱생시키기 위한 교육.”
“응... 맞아...”
여태까지 실비아의 몸에 악의를 열심히 쏟아냈던 내 행동은 헛된 게 아니다.
디바이스 침식이 끝난 이후로부터, 실비아가 밀어내었던 악의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악의는 침식된 아이테르와 아주 잘 섞여 실비아의 마음속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갔다.
어쩌면... 오늘 음문이 나타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직 조심할 필요가 있긴 하지만, 상황이 낙관적이라는 데엔 이견이 없다.
그런 굳은 믿음, 확신이 있다.
“오늘은 실비아 씨의 과격한 언동에 대해 많이 놀란 날이었어요.”
“.....”
“그래서 더 좋은 것 같아. 감정에 솔직한 실비아 씨가 정말 예뻐 보여요.”
안절부절 못하던 실비아의 얼굴이 환해졌다.
부끄러워하는 그녀에게, 내가 말했다.
“희연이는 내가 알아서 처리해줄게요.”
“지혁아, 입막음을 할 생각이라면 내가 이미...”
“확실하게 해야죠.”
“화, 확실하게? 어떤 식으로...?”
“알아서 할게. 걱정하지 말고 있어.”
“마, 만나려는 건 아니지...? 만약 그럴 생각이었다면 그냥 전화로 해... 나 불안해... 네가 또 그년이랑 뒹굴까봐...”
질투하는 모습까지... 완벽하다.
“만나지 않을게요.”
말을 마친 나는 실비아를 그대로 밀어 침대에 넘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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