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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324화 (324/471)

〈 324화 〉 폭력의 맛

* * *

‘봤구나.’

어디서부터 본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희연과 키스를 나누는 장면만큼은 확실하게 봤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눈빛을 할 리가 없을 테니까.

평온한 표정을 하고는 있지만, 눈에서 어마어마한 분노가 느껴진다.

“언제 왔대? 연락이라도 하지 그랬어요.”

방글방글 웃으며 말하는 내게, 실비아가 묻는다.

“왜 여기서 만나자고 한 거야?”

날 캐보려는 생각이구나.

노발대발하는 것보다 저게 훨씬 무섭다.

“글쎄요. 왜 여기서 만나자고 했을까?”

“장난치지 마. 똑바로 얘기해.”

“사람을 한 명 만났거든요.”

“누구?”

“실비아 씨가 모르는 사람 있어요.”

이렇게 애매모호한 말을 한다면 무조건 반응이 오게 되어있다.

저 봐라. 벌써부터 이마에 힘줄이 돋아나는 것 같잖은가.

“야, 송지혁. 난 너한테 항상 솔직한데 넌 왜 상황을 능글맞게 넘어가려고만 해?”

“무슨 소리에요? 내가 거짓말이라도 했어?”

이런 말장난에 노한 실비아가 날 쏘아붙였다.

“그딴 식으로 말하는 거, 얼마나 밉상인 줄 알아? 만난 사람 정체가 뭐냐고!”

“갑자기 왜 화를 내고 그래요? 무슨 안 좋은 일 있었어요?”

실비아에게 다가간 나는 그녀를 안으려고 했다.

하지만 실비아가 팔을 뻗어 내 가슴을 밀었다.

제법 강하게 말이다.

“더러운 몸으로 나 안으려고 하지 마.”

“뭐...? 더러운 몸?”

“그럼 안 더러워? 다른 여자랑 물고 빨고 했던 몸이잖아.”

이제야 실토를 하는구나.

머리를 긁적인 나는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봤어요?”

“내가 이걸 그냥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지 마. 너 이거 아델한테 말할 거야.”

“꼭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봅니다.”

“미친놈 아니야?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아델을 놔두고 그딴 걸레 같은 년이랑 만나고 싶냐 넌?”

왜 너는 쏙 빼놓냐?

제대로 말해야지. 나랑 아델을 놔두고 바람피우지 말라고.

우리 실비아, 그런 말을 하기엔 많이 쑥스러운가보구나?

그나저나 걸레 같은 년이라니... 너무 좋다.

더 욕해줘. 나한테도, 이희연한테도.

어깨를 으쓱인 내가 말했다.

“본능 같은 건데 어떡해요.”

“보, 본능...? 이거 진짜 또라이 아니야?”

실비아는 이젠 화를 참지 않기로 한 것 같았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상태로 내게 성큼 다가온 그녀가 말했다.

“그년 주소 말해.”

“왜? 찾아가서 해코지라도 하시려고요?”

“말하기나 해!”

“저 건물 408호에요. 공동현관 비밀번호는 나도 몰라. 이름은 이희연이에요. 나이는 스물셋이고, 인터넷에서 방송하는 애야. 내 나이는 스물다섯이라고 속였어.”

설마 내가 이토록 쉽게 정보를 발설할 줄은 몰랐는지, 실비아가 벙 쪘다.

하지만 이내 다시 예의 그 흉악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더러운 새끼... 네가 이럴 줄은 꿈에도 몰랐어. 걔랑 했냐?”

“네. 세 번 했어요.”

실비아가 이마를 착! 소리가 나도록 짚었다.

“하... 어이가 없네... 왜 이렇게 당당하지?”

“이건 실비아 씨 잘못도 있으니까.”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실비아 씨가 자꾸 빼려고 하니까 성욕을 풀 데가 없잖아요. 아델도 요즘 바쁘고... 그런 상황에서 쟤가 날 꼬시더라고요. 그럼 어떡해? 잘 수밖에 없지.”

“이, 이런 미친...!”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

내 궤변을 듣고 어이를 상실한 것 같았다.

답답한 듯 자신의 가슴을 쿵쿵 때린 그녀가 팔을 옆으로 뻗었다.

“여기서 더 얘기하면 완전 폭발할 것 같아. 지금 당장 근처 아무 모텔이나 잡고 들어가서 샤워해. 문자로 모텔 이름 보내놓고.”

나는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냈다.

꺼지라는 것도, 그만 만나자는 것도, 뺨을 때리는 것도 아니고 샤워부터 하라니...

나랑 선을 긋기는 싫었나보다.

또한 이희연을 어지간히 더러운 년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샤워요? 방금 하고 나왔어.”

“또 해야지! 더러운 게 엄청 묻어있는데!”

“더러운 거? 희연이를 말하는 거예요?”

“그래! 그년!”

“인간이 더럽다고 하는 건가 지금?”

“그년 혼자만 더럽다고 하는 거야! 말귀 좀 알아먹어! 제발!”

아아... 실비아의 모습이 무척 아름다워 보인다.

그녀의 입장에서, 지금 이 상황은 당연히 화날 일이 맞다.

세상 그 어느 누가 아까 같은 장면을 보고도 노하지 않겠는가?

때문에 자연스러운 반응이라 치부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난 달리 생각한다.

실비아는 아까부터 수위가 낮은 욕을 시도 때도 없이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날 향해, 이희연을 향해 매우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드문드문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기까지 한다.

매사 침착한 그녀답지 않게 말이다.

이는 실비아에게 동화되기 시작한 악의가, 그녀의 이성을 집어삼켜 화를 더욱 돋우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완벽해.’

확실해졌다.

악의는 실비아와 잘 섞여가고 있다.

입가에 절로 함박미소가 맺힌다.

“대체 뭐가 웃기냐? 나도 같이 좀 웃게 지껄여봐.”

이런 내 표정을 본 실비아의 타박.

철없는 날 한 대 치고 싶은 얼굴이었다.

“아닙니다. 실비아 씨가 절 너무나도 사랑하는 게 보이는 듯해서요. 지금 바로 갈까요?”

“.... 혼자 가. 난 여기서 좀 가라앉히고 갈 거야. 지금 너랑 같이 뭘 할 자신이 없어.”

“알았어요.”

“.....”

“.....”

머뭇머뭇 밍기적거리고 있는 내게, 실비아가 버럭 소리쳤다.

“빨리 가라고!”

“아, 네. 근데...”

“닥치고 그냥 가... 제발...”

더 긁으면 완전히 터질 것 같다.

이 정도만 해야지.

빠른 걸음으로 실비아에게서 벗어난 나는, 주변에 흔하게 보이는 모텔에 들어갔다.

이후 방을 하나 잡고, 실비아에게 문자를 남겨놓은 뒤 그녀의 디바이스에 딸린 음성장치를 연동했다.

얼마만큼 잘 동화됐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뒤처리는 나와 마르셀라가 해줄 테니까, 마음껏 분노를 표출해보려무나.

@@

뻔뻔하게 구는 것하며, 자신의 속을 벅벅 긁어놓는 것하며...

오늘은 지혁에게 무척 실망한 날이었다.

특히 지혁이 이러한 행동을 한 건, 실비아 자신의 잘못도 있다고 했을 땐 정신이 잠시 멍해졌었고, 화병이 나서 죽을 뻔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지혁을 향한 사랑은 그대로였다.

아니, 오히려 미안한 감정도 느꼈다.

괜히 잠자리를 거부해서 지혁이 이러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고, 이러한 감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심지어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그의 말에 어느 정도는 공감해버리고 있었다.

‘하... 어이없어.’

정말 웃기는 일이었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이 무서웠다.

지혁을 본격적으로 만난 시간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나 감정적으로 변해버리다니 말이다.

어쨌거나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지혁을 꼬신 년에게 교육을 하는 게 먼저다.

‘그 미친년이 먼저 꼬셨다고 했지...?’

감히 임자가 두 명이나 있는 남자를 건드린 대가, 톡톡히 치러줄 것이다.

이희연이 사는 건물로 간 실비아는, 공동현관에 설치된 비디오폰을 통해 408호를 호출했다.

경쾌한 노랫소리가 지나가고 얼마 후, 스피커에서 의문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실비아는 아차 했다.

너무 화가 나서 핑계거리를 생각하지 않고 와버렸다.

재빨리 머리를 굴린 그녀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말했다.

“이 근처에 사는 지혁이 친구인데요. 걔가 보냈어요. 선물 주라고...”

­네? 지혁이 오빠가 선물을 줘요? 근데 그쪽은 오빠랑 무슨 사이에요?

오빠는 무슨. 넌 지금 지혁의 거짓말에 당한 거야.

그리고 그쪽이라... 호칭이 참 싸가지가 없다.

“말씀드렸잖아요. 친구라고.”

­그래요...?

“안 열어요? 선물 안 받을 거예요?”

­오빠한테 전화부터 해보구요.

“그럼 그냥 지혁이한테 직접 주라고 말할게요. 별 시답잖은 일로 부르고 난리야...”

투덜거린 실비아가 미련 없는 척 몸을 돌렸다.

그러자 공동현관문이 열렸다.

자신의 이런 심보가 가득한 행동을 보고 의심을 푼 듯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간 실비아는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을 올랐다.

CCTV가 무서워서? 아니다.

끓는 속을 달래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계단을 한 칸 한 칸 오를수록 화가 더욱 치밀었다.

쿵! 쿵!

신경질적으로 바닥을 차며 408호의 문 앞까지 당도한 실비아가 흠칫했다.

자신의 행동이 비이성적이라는 자각을 해서였다.

‘구, 굳이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물론 이곳은 각기 다른, 다양한 성격을 지닌 인간군상이 모여 있는 지구.

그로 인해 다소 과하다고 생각되는 사랑싸움도 생긴다.

당장 주말 저녁에 번화가로 나가보면, 온갖 욕지거리를 쏟아내며 싸우는 커플들이 한가득이다.

손발을 써가며 진심으로 싸우는 커플도 있다.

좀 극단적인 사건을 찾아보면, 헤어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상대방을 죽이거나, 미수에 그친 사람들마저도 있었다.

이러한 사건들이 종종 뉴스에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상기한 것들은 분노조절에 장애가 있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짓을 저지르려고 하고 있었다.

마치 사이코처럼 말이다.

지켜야할 인간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려 하고 있다니... 이는 자신답지 않았다.

‘도, 돌아가야 해... 이건 잘못됐어.’

제정신을 차린 실비아가 황급히 복도를 떠나려고 했다.

그때,

덜컥!

408호 현관문이 열리더니 이희연이 나왔다.

“뭐하세요 지금?”

실비아는 잔뜩 날이 선 이희연의 말을 듣고 끓어오르는 화를 식히려 노력했다.

간신히 이성을 되찾았는데 다시 돌아갈 수는 없잖은가.

“그게...”

“지혁이 오빠가 선물 준다고 했다면서요? 어디 있는데요?”

“까, 깜박하고 차 안에 놓고 왔어요. 다시 가지고 올게요.”

“뭐 이딴... 하... 됐어요. 그냥 가세요. 제가 알아서 오빠한테 받을게요.”

뭐 저딴 싸가지 없는 년이 다 있을까.

물론 자신이 먼저 틱틱대긴 했지만... 하찮은 년이 저러니 애써 억누른 분노가 다시금 솟아난다.

그래도 참자... 참는 게 이기는 거다.

그리 다짐하며 몸을 돌린 실비아는, 이어지는 이희연의 말에 꼭지가 완전히 돌아버리고 말았다.

“뭐 저딴 멍청한 년이 다 있지?”

작은 목소리의 중얼거림이었지만 확실히 들었다.

손가락 하나에 머리가 꿰뚫릴 년이 주제도 모르고 뭐...? 멍청한 년?

발끈한 실비아가 이희연에게 무어라 말을 하려던 순간,

쾅!

현관문이 다소 강하게 닫혔다.

“하...”

한 차례 헛웃음을 켠 실비아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침 408호 옆에 화재 시 탈출하라고 만든 창문이 활짝 열려있는 게 보였다.

누군가가 담배를 태운 흔적도 있다.

망설임 없이 변신한 실비아는, 기운을 최대한으로 낮추고 창문을 뛰어넘었다.

이후 공중에 뜬 상태로, 408호의 미닫이 창문을 강제로 밀었다.

콰직! 드르륵!

불협화음을 내며 쫙 밀린 창문.

암막커튼을 옆으로 넘긴 실비아.

입을 떡 벌리고 있는 이희연을 발견한 그녀가 히죽 웃었다.

“안녕?”

그리고는 이희연이 소리를 지르기도 전에, 곧바로 달려들어 그녀의 입을 막고, 한손으로 목을 졸랐다.

“흡! 크흡!”

압도적인 힘이 목을 조이자,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희연의 눈꺼풀이 파리하게 떨렸다.

점점 혼절상태로 다가가는 그녀를 본 실비아가 생각했다.

죽이진 않겠지만, 훈육은 제대로 해주겠다고 말이다.

자신은 인간들의, 지구의 수호자인 비스트 슬레이어다.

이희연 같은 사람들도 대가 없이 지켜주는 영웅이다.

자신이 없다면 이들은 이토록 맘 편하게 살아갈 수 없었을 터였다.

그러니 마땅히 존중받아야한다.

그런 식으로 정신승리를 한 실비아는, 이희연의 눈이 완전히 감기자 그녀를 침실로 데리고 갔다.

그 전에 문고리가 빠진 창문을 다시 닫아놓고, 커튼을 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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