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3화 〉 변해가는 실비아 #3
* * *
원나잇은 서사가 없다.
있어봤자 서로 호감을 쌓기 위한, 면식을 위한 과정 뿐.
그러나 어느 한 쪽이 상대방에게 마음이 있으면 달라진다.
자주 연락을 하게 되고, 풋풋한 사랑이 생기면서 썸을 타게 된다.
그리고 이희연이 그 과정 중에 있었다.
차에서 내린 내 온몸을 스캔한 직후부터, 카페에서 내 정보를 간단하게 얻은 직후부터 안 그래도 살갑던 태도가 더욱 살가워졌다.
금방 사랑에 빠지는 성정을 지닌 사람처럼 말이다.
물론 희연의 이러한 태도는 날 꽉 물고 놓아주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그럼 오빠는 가끔 회사만 들르고 집에 있는 거야? 완전 백수네? 돈 많은 백수.”
나는 나이를 속인 상태였다.
오빠라는 호칭이 듣기 좋았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오늘 이후 듣지 못할 가능성이 아주 높았지만.
“그렇지.”
“내 캠방은 어떻게 알게 된 건데?”
“그냥 심심해서 인방 찾고 있는데, 네가 보이더라.”
“다른 여캠도 많은데 굳이?”
자꾸 재보려고 하는 꼴이 가관이다.
“취향이니까 들어갔지.”
“무슨 취향? 얼굴이?”
“목소리가 마음에 들더라.”
“뭐야... 얼굴은 별로라는 얘기로 들리는데?”
보통은 제 입으로 저런 말을 하기 부끄럽지 않나?
프로로구나.
“얼굴도, 목소리도 좋다는 뜻이야. 커피 다 마셨어?”
“응. 나 배고픈데 낙곱새 먹으러 갈래?”
낙곱새라... 이 지긋지긋한 건 인기가 떨어지질 않네.
맛있긴 하지만.
“잘 아는데 있어? 나 과천은 별로 안 와봐서 잘 몰라.”
“맛있는데 알아. 술도 사서 우리 집에서 먹자. 포장해가서.”
상당히 적극적이다. 아주 좋아.
요새 매번 같은 섹스가 불만이었는데, 오늘 꽤나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고개를 주억거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나왔다.
뒤따라 나온 희연이 구김살 없이 다가와 딱 달라붙는다.
원래는 호구 한 명을 낚아채기 위해 연락을 해왔으면서 이러다니.
자신이 이러고 있는 걸 시청자가 우연히 알아낼까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는 것도 웃겼다.
집으로 가자는 것도 모텔은 위험해서가 분명하다.
나 또한 이런 섹스어필을 바라고 이희연에게 접근한 거였으니 할 말은 없었다.
어쨌거나 우수한 이성에게 끌리는 건 사람의 당연한 본능이라는 옛말이 틀린 게 하나 없다.
차에 탄 나는 내부를 보며 감탄하는 희연 몰래 실비아에게 문자를 하나 남겨놓았다.
이제 어떻게 되나 보자고.
@@
[11시까지 이쪽으로.]
명령조가 다분한, 위치가 찍힌 문자를 본 실비아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어제부터 지혁이 말하는 모든 것들을 무조건적으로 따르고 싶었다.
이건 사랑이라는 말로 치부하기엔 다소 과했다.
마치 신앙 같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나쁜 기분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계속 느끼고 싶었다.
여태껏 목숨보다 소중한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기에 이러는 것일지도 몰랐다.
실비아에게 있어서, 지혁은 그 정도로 진실한 첫사랑이었다.
“언니, 저 교회에 다녀올게요. 오늘 주일예배 있어요!”
소파에 앉아 쉬고 있던 실비아는, 박시한 옷을 입은 아델이 나오자 디바이스에 내장된 시계를 보았다.
“이 시간에 주일예배를 해? 일곱 시가 다 됐는데?”
“직장인들을 위한 저녁예배도 많아요. 언니는 많은 교회를 다녔으면서, 그것도 모르시는 건가요?”
“그래? 그나저나 요새 교회에 자주 가는 것 같은 느낌이네?”
“이상한가요? 그분의 성녀가 교회에 간다는 게요?”
“전혀 아냐. 그냥 뿌듯해서 한 말이었어. 근데 그분이라니?”
“로사리오 님 말이에요. 언니도 참 말귀가 어두우시네요. 이해력이 그렇게도 없으신가요? 바보에요, 바보.”
장난기 어린 아델의 말투.
아직 로사리오를 향한 신앙은 여전한 것 같았다.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 실비아는 시무룩해진 척 고개를 푹 수그렸다.
“바보 같아서 미안해...”
그러자 아델이 황급히 달려오더니 실비아를 꼭 안아주었다.
“아이 참... 장난을 친 것뿐인데 왜 축 쳐지는 것이지요? 제가 잘못했어요. 울지 말아요. 뚝!”
운 적은 없는데... 그래도 걱정해주니 고마웠다.
이대로만 가면 된다. 아델은 자신과 지혁의 옆에 있으면 예전의 깨끗한 정신으로 돌아올 거다.
아이테르의 숨은 비밀을 찾아낸다면 그 일이 더 빨라질 수도 있을 터였다.
위험한 건 딱 하나. 자신이 지혁을 만나는 걸 들키지 말아야한다는 것.
애초에 지혁을 포기하면 끝나는 일이긴 하지만, 그러기엔 죽기보다 더 싫었다.
아델의 눈치를 본 실비아가 조심스레 물었다.
“언제나 내가 아는 아델로 있어줄 거지...?”
“당연하지요.”
“약속해.”
“약속까지 할 필요가 있나요?”
“필요 있어. 약속해.”
실비아의 진중한 재촉에, 아델이 아휴... 하는 소리를 내더니 대답했다.
“약속해요. 저는 언제나 언니가 아는 아델일 거예요.”
대답에 안도한 실비아는, 아델의 등에 두른 팔에 힘을 꽉 주었다.
약속까지 받아냈으니, 아델이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그녀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믿음이 있다. 자신이 지혁을 사랑하는 마음과 견줄만한 굳건한 믿음이.
“잘 다녀와, 아델.”
“놓아주셔야 가지요.”
“아... 미안.”
“아니에요. 언니가 절 무척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서 좋았어요. 이제 가볼게요! 심심하면 톡하셔요.”
“응.”
아델이 나가고 조용해진 거실.
실비아는 손톱을 물어뜯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외로움 때문이었다.
밤 11시까지 남은 시간은 4시간.
지혁을 당장 보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으니 초조해 미치겠다.
변신을 할까? 그래야겠다.
어차피 지혁에게 에너지 소모에 대한 허락도 받았으니 거리낄 것도 없다.
생각을 마친 실비아는 디바이스를 터치했다.
화아악!
거실에 가득 퍼지는 연홍색 기운.
마음이 안정되어오는 것을 느낀 실비아가 다시 소파에 앉았다.
무릎 위에 양손을 올린 채로.
현 상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다소곳한 자세였기에 절로 실소가 터져 나왔다.
남들이 보면 뭐하나 싶을 것이었다.
‘보고 싶다...’
최근 지혁을 향한 감정이 더욱 강해진 듯했다.
아니, 듯한 게 아니라 확실했다.
예전엔 지혁이 있는 바다에 가슴께 정도까지만 담갔다면, 지금은 정수리까지 전부 가라앉아 심해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를 향한 소유욕, 그리고 집착을 느낀다.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자신이 신기하면서도 좋았다.
그리고 로사리오에게 감사했다.
자신에게 아이테르를 주어서, 아델을 만나게 해주어서, 그리고 아델과 함께 지구로 오도록 신탁을 내려주어서,
마지막으로 지혁을 만나게 해주어서.
‘감사합니다.’
로사리오에게 진심어린 감사를 전한 실비아는, 지혁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강해지자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몸이 달아오른다.
이러한 그리움은 곧 음탕한 행위로 이어졌다.
슈트의 바지 안으로 손을 넣은 실비아가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음렬 사이로 쏙 들어간 중지.
자신의 음핵을 쓸어내리며 질구에 살짝 들여보내니, 순식간에 온몸이 뜨거워진다.
“후...”
교태 섞인 콧바람을 내뱉은 실비아가 중지와 약지를 딱 붙이고 본격적인 자위를 시작했다.
지혁을 생각하니 흥분이 더욱 고조된다.
자신의 손가락은 그의 물건에 비할 바가 안 되지만, 급하게 찾아온 성욕을 해결할 정도는 되었다.
“하앙...♡”
지혁과의 격렬한 섹스를 상상하니 아래가 찌릿찌릿해지면서 애액이 흘러나온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라니... 천박하다.
섹스가 어지간히 하고 싶은가보다.
그리고 변신한 상태에서의 자위라 그런지, 강인한 마음이 모조리 성욕으로 변환되는 것 같았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 지혁을 만나면 디바이스를 먼 곳에 보관해놓은 뒤, 자지를 달라고 졸라봐야겠다.
@@
열시 반. 약속시간보다 삼십 분 이른 시간.
지혁이 말해준 장소에 도착한 실비아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긴 원룸촌인데...?’
심지어 위치도 과천이다. 왜 여기서 만나자고 한 걸까?
또 못 받은 돈이 있으니 자신에게 대신 받으라고 명령을 내리려는 것일까?
아마 그런 것 같았다.
그렇다면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었다.
보상으로 지혁의 우람한 자지를 달라고 해야지.
오기 전에 남자를 만족시켜줄만한 봉사방법도 여러 개 봐뒀으니, 한 번 해볼 생각이었다.
해본 적 없는 행위이니만큼 분명히 서투르겠지만, 지혁은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좋아하면 좋아했지.
“하아...”
집에서 오랜 시간동안 자위를 했음에도 또 몸이 달아오른다.
이놈의 성욕은 시도 때도 없이 눈치없이 솟아나선 자신을 곤란하게 하고 있다.
오늘 한 다섯 번은 해야겠다.
그래야 지혁을 만나지 못했을 때, 그와의 정사를 생각하며 참지.
아니면 지혁의 자지를 본딴 자위기구를 만들어달라고 할까?
이건 너무... 추잡스러운가?
온갖 음흉한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던 실비아는, 지혁이 말한 골목에 우두커니 서서 그를 기다렸다.
시간도 시간이고, 원체 인적이 드문 곳이라 꽤나 으스스하다.
겁이 나는 건 아니지만 겨울의 찬바람 때문에 허리가 시리다.
빨리 지혁을 만나 그의 품에 안기고 싶다.
양손을 비비면서 호호 불고, 발뒤꿈치끼리 맞부딪치며 시간을 보낸 실비아.
그렇게 11시까지 10분이 남은 시점,
“갈게. 오늘 재밌었어.”
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서 보고 싶어 마지않던 지혁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귀를 쫑긋했다.
‘응?’
그는 누구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했다.
여기서 누굴 만났나?
고개를 갸웃한 실비아가 까치발을 들었다.
골목의 벽 위로 눈만 빼꼼 내민 그녀는, 한 원룸 입구에 남녀 한 쌍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공동현관의 빛이 내리쬐고 있었기에, 실비아는 남자가 지혁임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는 나름 아름다운 여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상기된 얼굴을 한 여자가 지혁을 향해 부끄러운 투로 말했다.
“자고 가도 되는데... 오빠 술 마셨잖아. 단속 걸리면 어떡해?”
원체 조용한 동네였기에 두 사람의 대화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춥지도 않은지 짧은 돌핀팬츠를 입은 여자.
그녀는 분명히 지혁에게 자고 가라고 했다.
헌데 저 친근함은 무엇인가? 마치 여자친구 같잖은가.
게다가 오빠라니...?
“그래서 대리 불렀다고 했잖아. 내일 방송 저녁에 키나?”
“응, 6시에. 근데 오빠, 나 진짜 그런 여자 아니다? 오빠가 진짜 좋은 사람 같구, 같이 대화하다 보니까 마음이 통한다고 확신해서... 오해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오해 안 해. 걱정하지 마.”
“걱정이 되니까 그렇지... 돌아가면 톡해. 영통 걸게.”
“알았어.”
말을 마친 지혁은 곧 여자와 키스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냥 키스가 아니라, 몸을 딱 밀착한 채 둔부와 허리 부근을 만지는 끈적한 키스였다.
그런 파렴치한 짓을 저지르고 있는 지혁의 뒷머리... 분명히 젖어있는 상태다.
샤워를 했다는 증거.
설마 지금... 아델을 놔두고, 자신을 놔두고 저런 여자와 바람을 피운 건가?
저 말 같지도 않은 핑계를 늘어놓는 창녀랑?
상황을 보니까 관계까지 가진 것 같은데...
게다가 지혁은 자신과 만나면 저런 식으로 키스를 할 텐데, 그렇다면 저년의 더러운 타액이 자신의 입 안으로 들어올 것이었다.
까드득!
이빨이 절로 갈린다.
저 걸레 같은 년의 머리통을 날려버리고 싶은, 살갗을 잘 도려내 튀겨서 개밥으로 주고 싶은... 그런 충동이 인다.
지혁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 지랄을 하는 걸까?
아무리 정조관념이 없다 해도 그렇지... 자신이나 아델과 비교할 급도 안 되는 저런 하찮은 창녀와...
심지어 행동도 애인을 대하듯 다정하고, 자연스럽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죽여 버릴 거야...’
아델이 자신과 지혁의 밀회를 알아차렸을 때의 기분이 이러했을까?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너무 화가 나니까 머리가 도리어 차갑게 식는다.
차라리 잘 됐다.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으니, 지혁을 닦달해서 정보를 캐야겠다.
저년이 뭐하는 년인지, 그리고 몇 층, 몇 호실에 사는지.
꿀럭!
분노를 거듭 삼킨 실비아의 눈이, 어두컴컴한 하늘과 동화된 것처럼 급격하게 가라앉았다가 다시 연홍색 빛을 발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