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20 변해가는 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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퀭한 상태로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여자.
그녀의 앞에 선 아델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죄인, 유세라의 죄는 이제 사하여졌어요. 당신은 오늘부로 타이라트교의 신도로서, 목숨을 다해 교주님과 저를 모시도록 하셔요.”
“네... 성녀님...”
“이제부터 유세라 신도는 송혜윤 신도와 함께 포교활동을 맡으셔요. 이교도들이 진심으로 저희 교를 따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당신의 임무에요. 아시겠나요?”
“알겠습니다...”
“김민지 사제.”
유세라의 옆에 있던 민지가 한발자국 앞으로 걸어 나왔다.
“부르셨습니까, 성녀님.”
“유세라 신도에게 식사를 내어주도록 하셔요. 건강검진은 김민지 사제가 도맡아서 하시구요.”
“명을 받듭니다. 현재 송혜윤 신도의 전도를 깊이 받아들이고 있는 간호인들을 골라, 유세라 신도를 치료하도록 하겠습니다.”
음...! 역시 유능하다.
하지만 질투도 난다.
지혁을 지척에서 오랫동안 모셨다고 하던데... 혹시 은총을 받았을까?
민지를 미심쩍게 바라보던 아델이 명령했다.
“포탈을 여셔요. 집으로 돌아가겠어요.”
“네, 성녀님.”
망설임 없이 허공에 손을 휘젓는 민지.
마물이 아가리를 쩌억 벌려 자신의 심연을 드러냈다.
이번이 세 번째지만 볼 때마다 적응이 안 된다.
징그러워선... 쯧!
이지가 없는 눈을 하고 있는 유세라를 지나친 아델은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시야가 암전되더니 곧바로 다시 밝아졌다.
눈앞엔 귀여운 곰돌이 시트와 이불이 있는 침대가 있었다.
민지가 아델 자신의 방으로 목적지를 설정한 것이다.
‘으음...!’
실비아가 보면 어쩌려고...! 이런 무식한...!
지혁과 여태까지 아주 은밀하게 움직였을 텐데, 이런 기본적인 것조차도 모른다는 말인가!
설마 자신을 물 먹이려고 하나!?
만약 그렇다면 호되게 혼을 낼 것이다!
씩씩대며 잠옷으로 갈아입은 아델이 방 밖으로 나왔다.
조용한 거실. 실비아는 종교시설에 있거나 운동을 하러 간 듯했다.
어깨를 으쓱인 아델은 노크도 없이 실비아의 방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눈을 크게 떴다.
“흐응...♡”
침대 헤드보드에 등을 기댄 실비아가 천박한 교성을 내뱉으며 다리를 쫙 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손으로 음부를 문지르기까지...
예상치 못한 광경에 벙 찐 아델이 중얼거렸다.
“어, 언니...?”
그러자 인기척을 느낀 실비아가 고개를 홱 돌렸다.
“아, 아델...?”
화들짝 놀란 그녀가 총알처럼 일어났다.
그리고는 재빨리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어, 언제 왔어...? 옷도 잠옷으로 갈아입었네?”
“방금... 왔는데에...”
“흐흠...! 그러니...? 아무 소리도 안 들리던데...”
“언니가... 그... 그것을... 하고 계셔서... 못 들은 것이겠지요...”
“아, 네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난 자위를 하려던 게 아니라...”
딱 봐도 천박하게 구멍을 쑤시려 하고 있었는데 오해는 무슨 오해!
어찌 감히 하늘을 가리려고 하는가!
언니도 참 못 말린다!
“그러신가요...?”
“응... 근데 노크는 왜 안 했어...? 물론 노크 없이 찾아온 적이 많긴 해도... 기본적인 예의라는 게 있잖아...”
“아... 네에... 그렇지요... 죄송해요...”
자위까지 할 정도라... 이는 지혁이 약속을 지키고 있다는 뜻과도 상통했다.
자신의 허락 없이는 실비아와 몸을 섞지 않겠다는 약속 말이다.
딱 실비아만 꼽아서 말한 것이 아니꼽긴 했지만... 그래도 지키긴 지키고 있었구나.
그나저나 언니가 많이 외로운가?
휴대폰은 또 언제 가져왔대? 원래 손에 들고 있었던 건가?
너무 당황스러워서 상황파악이 잘 안 된다.
“바, 밥은... 먹었어...?”
말을 더듬으며 저리 물어오는 실비아.
아델이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아니요...”
“그럼... 같이 먹을까...? 스파게티 만들어줘?”
“네에... 근데 손은 씻으셔요...”
“물론이야... 아예 샤워까지 할게. 그... 미안한데 비켜줄래? 나가야 돼서...”
“아, 그렇지요... 네...”
뒷걸음질을 친 아델은 실비아가 자신을 스쳐지나가려고 하자 몸을 바싹 당겼다.
턱이 접힐 정도로 말이다.
마치 불경한 것을 대하는 듯한 태도.
그런 아델의 반응을 본 실비아의 인상이 구겨졌다.
“.... 너...”
“왜요...?”
무어라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웅얼거리려던 실비아는, 이내 눈을 지그시 감았다.
“아냐... 씻고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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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그럭거리는 식기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식탁.
무척이나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스파게티를 먹던 실비아는, 아까 아델이 보인 반응을 상기해보았다.
자신을 혐오스런 눈으로 바라보는 아델에게 서운했다.
사람이 자위 좀 할 수도 있지... 노크도 않고 들어온 주제에...
이로 인해 욱하여 아델에게 따질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아냈던 그녀였다.
‘화나는 게 정상이지? 맞지?’
고개를 그릇에 거의 처박다시피 하며 면을 먹던 실비아는 스스로에게 자문을 구했다.
자위는 사생활 중에서도 가장 비밀스런 일.
문을 잠그지 않고 자위를 하던 자신의 잘못도 있지만, 더욱 큰 잘못은 노크를 하지 않고 문을 연 아델에게 있었다.
오히려 아델은 이정도로 넘어가준 자신에게 감사해야 했다.
흘끗 아델을 바라보니, 태평하게 스파게티를 흡입하고 있었다.
배가 어지간히 고팠던 모양.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쉰 실비아가 조심스레 물었다.
“맛은 어때...?”
“맛있어요... 언니 요리는 언제나 그래요...”
아델의 말투는 조곤조곤했고, 진심이 담겨있었다.
그녀 또한 반성하고 있다는 의미.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델의 본질인 특유의 순수함은 어디 가지 않은 것 같아서.
근데 미치도록 쪽팔리다.
게다가 한창 흥분할 타이밍에 들어왔다.
신음소리도 들었을 텐데... 자신을 뭐라고 생각할지 걱정이었다.
그냥 속옷 차림의 동영상만 보낼 걸, 괜히 지혁을 기쁘게 한답시고 오버해서는... 후회가 물밀듯 밀려온다.
“그런데요... 언니...”
“응?”
“혹시... 많이 외로우셔요...?”
“.... 왜 그런 걸 묻고 그래...”
예의상 못 본 척해달라는 말을 돌려 해보았지만, 아델은 이런 자신의 의도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저는 언니를 엄청 사랑해요... 알지요?”
“물론 알지.”
“그러니 너무 어색해하지 마셔요. 그냥 아무 일 없는 듯이 지내요... 괜찮지요?”
아무 일 없는 듯 지내자면서 먼저 이 이야기를 꺼내는 저의가 뭘까?
뭔가 자신을 놀리는 것처럼 들린다.
‘아냐...! 내가 너무 예민한 거야.’
피해망상에라도 찌들었는지, 생각하는 꼬라지가 소인배스럽기 짝이 없다.
스스로를 자책한 실비아가 대답했다.
“알았어... 이 얘긴 그만하고 마저 먹자.”
“네... 저희 이거 다 먹고 영화 볼까요...?”
거슬린다. 신경이 거슬려.
왜 이러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는데, 아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약간 화를 돋우는 것처럼 느껴진다.
자위를 못 끝내서, 그리고 들켜서 민감해진 건가 싶다.
“그냥 방에 있을게.”
“그래요...? 그럼 같이 잘까요?”
“아델.”
가라앉은 목소리.
아델이 움찔했다.
“네?”
“그냥... 이거 다 먹고 따로 쉬자... 오늘 진짜 피곤해.”
“네에... 오늘 치 초콜릿은 다 드셨지요?”
초콜릿은 또 왜... 미치겠다.
실비아의 목소리가 더욱 싸늘해졌다.
“내일 먹을게.”
“그러실래요...? 알겠어요... 노크하지 않아서 죄송해요...”
어제의 요망하고 막무가내였던 아델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마치 예전 소심했던 아델을 보는 듯한 느낌.
미안하긴 어지간히 미안했나보다.
마음이 약해진 실비아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그거 다 먹고 내 방에서 영화 볼래?”
“피곤하시다고 했잖아요. 갑자기 왜 이러셔요?”
“너랑 시간 보낸다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쌩쌩해졌어. 기분도 좋아졌고.”
아델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래요? 그러면 저랑 슬래셔 무비를 보도록 하지요.”
“스, 슬래셔 무비?”
“네! 주인공이 살인마인 영화요.”
저번에도 그런 류의 영화를 봤었지만 무서워했었는데... 지금은 아예 취향으로 바뀐 것 같았다.
순수하던 아델이 어찌 이리 변해버렸을까. 타이라트의 영향이 너무 크다.
하지만 오늘 보여준 아델의 반응으로 볼 때, 희망은 있었다.
‘그래도 고어 영화는 보지 않는 게 좋을 듯싶은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실비아는 자신의 마음속 한켠에서 끓어오르는 욕망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 또한 피와 살이 난무하는 영화를 보고 싶다는... 그러한 욕망 말이다.
앞전 사건으로 인해 정점으로 치달은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다.
영화 주인공에게 이입을 해서라도.
“그럼... 네가 골라볼래?”
“그러지요! 아주 재미있는 영화로 고를 테니, 언니는 걱정하지 마셔요!”
해맑은 아델을 보며 실소를 터뜨린 실비아가 속으로 푸념했다.
‘이래도 될까 몰라...’
그나저나 지혁이 자신의 영상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 텐데...
정신이 없어서 연락한다는 것을 깜박했다.
화내는 건 아니겠지? 아델 몰래 문자라도 한 통 보내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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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혁아. 미안한데 영상은 나중에 보내줄게. 중간에 아델이 와서... 들켜버렸어.]
알고 있단다.
네가 샤워하는 동안 아델이 다 말했거든.
무척 창피할 텐데 내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 모습이 기특하구나.
[들켰다고요? 그건 그것대로 마음에 드는데.]
[변태새끼...]
[실비아 씨도 변태잖아. 문도 안 잠근 상태로 자위하고... 관음증 아니에요?]
[맞을래?]
휴대폰 너머로 실비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는 게 보이는 것만 같다.
[농담이고, 나중에 부르면 나와요.]
[언제? 나 아델 몰래 나가야되는데...]
[주인님이 알아서 잘해줄 테니까, 연락 대기하고 있어요.]
[알았어.]
예전엔 주인님이라고 자칭하면 노발대발하며 발악을 했었는데, 지금은 수긍하네?
대꾸하기 귀찮은 건지, 아니면 내 악의로 인해 순종적으로 변한 건지 모르겠다.
문자를 마친 나는 휴대폰 모서리로 옆통수를 톡톡 두드렸다.
아델은 자위 장면을 본 직후, 실비아가 자신을 향해 약간 욱한 것 같다고 했었다.
이는 즉 실비아가 공격적이라는 뜻.
하지만 이건 악의에 물들었다는 증거, 표본이 될 수 없다.
왜? 누구라도 자위 장면을 들키면 화딱지가 날 테니까.
오히려 아델을 크게 나무라지 않고 넘어갔다는 게 좀 걸린다.
일단 마음은 제외하고 몸만 전제로 놓고 보면, 지금까지는 불협화음 없이 잘 동화된 것 같았다.
그래도 신중의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
실비아와의 정사를 통해 악의를 잔뜩 주입해보고, 반응을 확실하게 체크해보자.
두근!
심장이 줏대 없이 쿵쾅거린다.
가장 강하고 육감이 발달한 비스트 슬레이어인 만큼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염통이 쫄깃해지는 수준.
의외로 쉽게 넘어올 수도 있을 테지만, 절대 방심하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