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15 재탄생한 사고뭉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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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어억-!
눈앞에 열린 포탈.
아델의 미간이 잔뜩 구겨졌다.
‘싫다아...’
저 흉악한 이빨 사이사이에 낀 질척한 타액을 보라.
어쩜 저리 징그러운 포탈이 다 있을까?
자신도 저 마물 포탈을 열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걸까?
지혁도 참... 마왕이면 마왕답게 우아하고 고귀한 포탈을 사용할 것이지... 이게 뭐람.
“오피스텔 입구로 통하는 포탈이에요.”
“네에...”
대답을 늘어뜨린 아델이 애꿎은 바닥만 찼다.
그러자 지혁이 부드럽게 웃더니 묻는다.
“타기 싫은 거예요?”
“징그러워요... 잡아먹힐 것 같아요...”
“엄청 편한 건데? 한 번만 타면 그런 생각은 쏙 사라질 겁니다. 자, 저랑 같이 눈 딱 감고 가봐요.”
손을 내미는 지혁.
아델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이렇게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면 징계를 내릴 수가 없잖은가!
바람을 피웠으면서...! 화난다!
“아델, 제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아델의 허락 없이 실비아 씨와 몸을 섞지 않을게요.”
자신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 미안한 투로 저리 말해오는 지혁이었다.
으음...! 역시 영혼끼리 교감해서 그런지 생각이 읽힌다.
이러면 지혁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는데... 참 걱정이다.
“약속해요...”
“약속할게요. 마왕의 이름을 걸고.”
“.... 좋아요.”
아델이 머뭇머뭇 지혁의 손을 잡고 깍지를 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자신은 이제 마계의 왕비가 되었는데, 그럼 앞으로 마계에서 살아가야하는 걸까?
침을 질질 흘리며 살육을 탐하는 징그러운 마물들이랑?
그건 정말 싫은데에...
마계엔 놀이공원이나 미용실, 네일아트 샵도 없다.
심지어 영화, 드라마를 마음껏 볼 수 있는 OTT도 존재하지 않는다.
딱 봐도 심심할 것이 뻔한데, 나중에 지혁에게 말해야겠다.
지구의 좋은 문물들은 남겨달라고 말이다.
아니면 마물들은 아예 마계에서만 놀도록 하고, 지구는 그냥 놔두자.
이곳에 단 하나의 종교인 아델라인교... 아니, 타이라트교만 뿌리를 내리게 만들고, 모든 인간들이 평화롭게 살아도록 하는 거다.
음음...! 아주 좋은 생각 같다.
화아악-!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포탈에 발을 들이니, 시야가 갑자기 암전되었다가 밝아졌다.
그리고 아델은, 자신과 지혁이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입구에 있자 눈을 크게 떴다.
“으응...?”
벌써 도착했다는 말인가? 아무런 느낌도 없었는데...
어리둥절해하는 아델에게, 지혁이 말했다.
“순식간에 왔죠?”
“네에... 신기해요...!”
마물 포탈은 디바이스에 내장된 포탈보다 성능이 훨씬 좋은 듯했다.
외관만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이제 예전의 아델로 돌아와 주세요. 그 상태로 실비아 씨를 만날 순 없잖아요.”
“아, 그렇지요. 그런데 지혁 씨.”
“예.”
“이렇게 중요한 일을 여기서 말씀하시면 어떡하나요? 연구실에서 미리 말을 했어야지요! 여기엔 감시카메라도 있구...”
“카메라는 전부 마르셀... 아니, 민지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허 참... 안전불감증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민지가 아무리 유능하다고는 해도 모든 일을 처리할 수는 없는 법일진대... 이렇게 조심성이 없어서야 원...
혀를 끌끌 찬 아델이 물었다.
“혹시나 남들이 보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구요?”
“죽이면 됩니다.”
황당한 답변을 들은 아델이 허리춤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지혁을 쏘아붙였다.
“지혁 씨! 인간들이 아무리 하찮다지만 이런 곳에서까지 마음대로 죽여선 안 돼요!”
“왜요? 아델을 얻은 지금, 마음만 먹으면 당장 할 수 있는 게 지구정복인데. 게다가 벌레 몇 마리 죽는 게 뭐가 대수입니까?”
저... 저 자만하는 모습을 보라!
자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의기양양해하는 꼴이, 딱 만화영화에서 나오는 악당 같다.
방심한 악당의 말로는 죽음뿐인데... 걱정이다.
정말 손이 많이 가는 남자다.
시종일관 여유로운 지혁의 태도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아델.
한숨을 내쉰 그녀가 말했다.
“아휴... 지혁 씨는 정말 바보 같으시군요. 앞으로는 조심히 움직이셔요. 꼭이에요! 아시겠나요?”
“예.”
“좋아요. 자, 이제 변신하는 방법을 알려주셔요.”
“모르는 건 없다고 하셨잖아요.”
“이이...! 지혁 씨! 지금 저를 테스트하고 있는 건가요!?”
“죄송합니다. 그저 마음만 먹고 아델의 몸에 있는 마력을 사용하면 돼요. 신성력처럼 사용해보세요.”
빼액 소리를 지르자, 그제야 찔끔해선 한 발 물러서는 지혁이었다.
코를 찡그리며 틱틱거린 아델은 눈을 감고 지혁이 말한 대로 했다.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겠다는 마음을 먹고 몸 안에 내재된 마력을 움직이니,
화악...!
밀폐된 공간에 은은한 바람이 생성되어 머리카락을 훑고 지나갔다.
눈을 뜬 아델은 만족스런 미소를 흘리고 있는 지혁을 보며 변신에 성공했구나 싶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 안에 있던 거울을 보니, 지금보단 덜하지만 예전의 아름다웠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델이 자신의 뺨을 만지작거리며 지혁을 나무랐다.
“이런 식으로 절 속이신 것이로군요...! 정말 나쁜 악당이에요.”
“저는 좋기만 한데요. 아델은 싫으신가봅니다.”
어허...! 또 눈치가 없어졌다!
지금 자신이 싫다고 말하는 줄 아는가!
돌려 말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다니... 쯧!
인상을 팍 쓰며 지혁을 노려보고 있자, 그가 다가오더니 자신을 꼭 안아주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꽁해있는 건가요?”
그걸 말이라고 하다니...!
바람기가 다분한데다, 거짓말까지 밥 먹듯 하여 자신을 마족으로 만들었으면서...!
원래라면 당장 노해야 옳은 일인데, 지혁은 고마운 줄 모른다!
헌데 왜 마음속이 행복으로 가득 차는 것일까?
‘몰라아...♡’
결국 아델은 지혁의 턱에 자신의 머리를 부볐다.
바람기 교육은 나중이다.
지금은 이 차갑지만 포근한 지혁의 품을 오롯이 느끼고 간직하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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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 왜 연락도 없이 이제 와? 걱정했잖아...!”
복부가 드러나는 탱크탑을 입은 채로 자신을 반기는 실비아.
그녀를 본 아델의 눈썹이 꿈틀했다.
저 파렴치한 것!
지혁을 몸으로 유혹하려고 했던 것이 분명하다!
“죄송해요. 지혁 씨랑 있느라 늦었어요.”
그 말에 실비아의 얼굴 근육이 미세한 움직임을 발했다.
예전엔 몰랐는데, 지금은 확실히 알겠다.
언니는 자신과 지혁이 같이 있는 것에 질투를 하고 있었다.
‘이 악독한...!’
임자가 있는 남자에게 흑심을 품은 년!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모습이 무척 역겹다! 천박한 계집!
하지만 그런 언니임에도 사랑한다.
아무리 실비아가 자신 몰래 지혁과 바람을 피운 창녀라고는 해도, 우리의 유대감은 끊어지지 않는다.
이게 다 자신의 자애로운 성격 덕분이다.
그러니 언니는 고개를 조아리고 고마워해야한다.
참, 그러고 보니 지혁은 언니에게 악의를 잔뜩 주입해놓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자신은 언니보다 직책이 높고, 지혁의 아내이고, 그와 영혼의 교감을 나누고 있는 만큼...
언니에게 들어간 악의를 컨트롤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실 소파에 앉아 몰래 킥킥거린 아델이 속으로 외쳤다.
‘옷을 벗고 제 앞에 무릎을 꿇으셔요! 이 더러운 것!’
하지만 잔뜩 기대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실비아는 그저 방글방글 웃는 낯으로 자신을 바라보기만 할뿐이었다.
로사리오... 그년의 힘이 언니를 보호하고 있나보다.
시무룩해진 아델이 실비아가 내민 바나나우유를 받아들었다.
“표정이 왜 그래? 안 좋은 일 있었니?”
“아니에요... 자, 언니. 이리 누우셔요.”
아델이 자신의 무릎을 팡팡 치자, 실비아가 황당한 표정으로 헛웃음을 켰다.
그래도 기분은 좋아보였다.
자신이 이토록 살갑게 구는 것이 좋은 듯했다.
앞에선 이런 식으로 알랑방귀를 끼면서, 뒤에선 지혁과 추잡하게 얽혀있었다니...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이 가식덩어리!
“얼른 누우셔요. 화를 내겠어요.”
“그, 그래... 알았어.”
어색한 몸짓으로 무릎에 얼굴을 댄 실비아가 아델을 힐끔 쳐다보았다.
“이렇게 하면 돼...?”
“잘했어요. 편하지요?”
“응... 편하네...”
실비아의 이마에 손을 올린 아델은, 여기서 언니에게 마력을 집어넣으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졌다.
하지만 참자. 실비아는 엄청 세고 눈치가 빠르다.
이상한 행동을 하면 곧바로 눈치챌 것이다.
지혁에게 받은 아이테르 봉인장치가 있긴 하지만, 이걸로는 방심할 수 없다.
일단 지금은 평상시대로 연기를 해야 한다.
실비아가 받은 신탁의 내용을 모조리 알아내는 게 중요하니까.
나중에 다 알아내면 물 같은 데에 약을 타서, 헤롱헤롱한 상태로 만든 뒤 납치하거나 해야겠다.
그다음 성고문을 통해 서서히 굴복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음음...! 빨리 언니에게 보속을 행하고, 그녀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로사리오의 잔재를 날려버리고 싶구나!
[어제 새벽, 이태원의 한 클럽 소유의 건물에서 학살 사건이 일어나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마약 사건이 벌어진 이곳에서는…….]
켜져 있는 TV에서 자신이 저질렀던 범죄 뉴스가 나오고 있다.
찔끔한 아델이었지만, 그녀는 곧바로 안심했다.
무척 유능한 민지가 모든 일을 처리했을 거라고 지혁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한두 번 했던 일도 아니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까지 덧붙였었다.
“진짜 세상이 미친 것 같아... 왜 저런 짓을 하는 거지?”
뉴스를 주의 깊게 듣고 있던 실비아의 중얼거림이었다.
아델이 대답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정말 큰일이에요.”
흥, 그깟 하찮은 미물 몇 마리가 죽은 것이 뭐가 대수라고...
인간들은 사건을 너무 과대포장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끔찍한 범죄라니... 애초에 불법적인 일을 저지른 범죄자들인데, 그들에게 인권이 어디 있다고.
정의로운 척, 고상한 척은 다하고 있는 추악한 인간들... 역겹다.
나중에 시간을 내어 대사를 작성한 인간과 아나운서를 잡아 회개시켜야겠다.
시큰둥한 얼굴로 뉴스를 보던 아델이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언니.”
“응?”
“어제 주무실 때, 로사리오 님을 또 만나셨나요?”
“아니. 더 이상 내게 신탁을 내려주지 않으셔. 신기를 모아 봐도 안 돼.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있나봐.”
아마 간음을 해서 로사리오가 실망한 것 같았다.
로사리오... 그래도 양심은 있구나!
하지만 아무에게나 주지 않는 신탁을 실비아 같은... 자신만의 평안을 위하는 천한 여자에게 준 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그러고 보니 자신이 이렇게 된 것도 로사리오 때문이다.
로사리오가 조금만 더 자신을 보듬어주었더라면...!
아, 그랬다면 지혁의 아내가 될 수 없었겠구나.
‘취소... 취소...’
로사리오를 원망하던 마음을 쏙 집어넣은 아델.
실비아의 두피를 마사지해주던 그녀가 말했다.
“오늘은 같이 놀이공원에 가도록 하지요. 채비를 하셔요.”
“지금...?”
“네. 요즘 저랑 언니의 사이가 소원해졌다고 느껴져요. 그러니 관계회복을 위해 놀러가야겠어요.”
“그럴 리가... 난...”
찹!
변명은 듣고 싶지 않았던 아델이 실비아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쳤다.
이마에 올라가있는 아델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포갠 실비아가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아델...! 아프잖아...!”
“엄살 피우지 마셔요. 약하게, 애정을 담아서 매질을 하였어요.”
“티 났어? 미안... 그럼 나 옷 갈아입고 올게. 너는 이대로 갈 거야?”
“제 옷에서 냄새가 나나요?”
“아니. 향기로운 냄새밖에 안 나. 그리고 엄청 귀여워.”
실비아의 진심 어린 칭찬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좋다.
헤실헤실 웃은 아델이 말했다.
“그럼 저는 이대로 갈 거예요. 날이 추우니 따뜻하게 입으셔요. 아시겠지요?”
“응. 걱정해줘서 고마워.”
지혁은 자신의 연기가 어색할까봐 불안하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이토록 훌륭하게 해내는데 불안하긴 무슨!
콧대가 높아진 아델은 실비아의 뺨을 꾸욱 누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