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07 광란
“흐으음...?”
연신 고개를 갸웃하는 아델.
또 여자 냄새라도 맡았나 싶다.
검지로 아델의 코끝을 톡 건드린 내가 물었다.
“왜 그러시죠?”
“이상해요... 지혁 씨의 몸에서 신성한 기운이 느껴져요... 근데에...”
“근데?”
“거기서 약간 꾸릿한 냄새도 나는 것 같아요... 마치 방귀처럼요.”
신성한 기운은 마기를 지칭하는 듯한데...
꾸릿한 냄새는 뭘까?
세화와 유리아의 기운? 아니면 말파스를 비롯한 반역자들의 기운이라도 느낀 건가?
“마음에 들지 않아요. 불쾌한 냄새에요.”
대충 얼버무리자.
“교회에 잠깐 들렀다 왔습니다. 거기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아마 그들이 모시는 신의 기운을 착각한 게 아닐지?”
“으음...! 그런가아...?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없는 동안 뭘 하고 계셨죠?”
그 말에 아델의 예쁜 얼굴이 살짝 구겨졌다.
“지혁 씨도 저를 감시할 생각이신가요?”
“예...? 그게 무슨...”
콧바람을 훅 내뱉은 아델이 내 무릎에 앉았다.
“오늘 실비아 언니가 절 감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휴... 정말 싫었어요.”
인자한 웃음을 지은 나는 아델의 도톰한 볼을 꾹꾹 눌렀다.
그러자 아델이 손가락을 무는 시늉을 하더니 말한다.
“하지 마셔요...!”
“누르고 싶은데 어떡해요.”
“초등학생도 아니면서 왜 이런 유치한 장난을 하지요? 아잇...! 정말...! 하지 말라니까요...!”
손을 휘휘 저으며 내 팔을 막아내는 아델.
오늘따라 왜 이렇게 사춘기 소녀처럼 구는지 모르겠다.
아델을 진정시킨 내가 말했다.
“얘기는 해보셨습니까? 실비아 씨한테?”
“아뇨. 언니가 저한테 이상한 설교만 늘어놓으셔서 얘기할 틈이 없었어요. 그리고 언니가 박사님을 옹호하는 거 있죠? 엄청 짜증났어요. 지혁 씨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요.”
“그랬어요?”
마치 어린애를 대하듯 우쭈쭈거리는 모습에, 아델이 날 한 차례 노려보고는 품에 안겼다.
가슴팍을 강하게 깨물어 피를 낸 건 덤이었다.
이젠 물어보지도 않고 성혈을 마시고 싶어 하는구나.
동그란 눈으로 내 눈치를 보는 것이 웃기다.
아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내가 생각했다.
타락 준비는 끝났다고 본다.
이제 살인을 위한 판을 짜야하는데... 어쩔까?
분노에 몸을 맡겨 상대방을 박살내도록 만들고, 그 행위로 인해 쾌감을 느낄 정도면 완벽하다.
이번 일이 타락의 결정적인 역할을 맡는다면 금상첨화.
그러려면 아델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어야한다.
아주 빡치게 만들어야 해. 거기서 나는 쏙 빠져나가야 하고.
“우움...! 마시써요...♡”
피를 꿀꺽꿀꺽 마셔대며 만족스런 웃음을 흘린 아델이 눈을 끔벅거렸다.
갑작스레 졸음이 몰려온 모양.
인자한 표정을 지은 내가 조용히 말했다.
“한숨 푹 주무세요.”
“네에... 잠들 때까지 이러고 있어주셔요. 잠든 뒤엔 저를 침대에 데려다놓도록 하시구요.”
“그럴게요.”
배시시 웃은 아델이 내 허리를 꼭 붙잡았다.
가슴팍에 아직 묻어있는 피를 혀로 냠냠 핥은 그녀가 나른한 하품을 했다.
그리고는 이내 새근새근 잠들었다.
벌써부터 들려오는 아델의 규칙적인 숨소리.
헛웃음을 켠 나는 아델이 깊이 잠들 때까지 아무 소리도 내지 앉으려 노력하면서, 앞으로의 청사진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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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은 무척 화가 났다.
지혁이 이제 성혈을 주지 않겠다고 말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왜요! 빨리 가슴 내놓으셔요!”
“제가 무슨 피 주머니에요? 그만 마시세요.”
“싫어요!”
“어리광은 그만두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성혈 조금 마시는 게 그리 아까운가?
영혼의 동반자라는 사람이, 같은 신으로서 함께 걸어가자고 했던 사람이 자신을 위해서 이 정도도 못해주는가?
게다가 저 냉랭한 눈빛은 무어란 말인가! 실망스럽기가 짝이 없다!
“지혁 씨! 당장 제 앞으로 오셔요!”
“아델이 그럴수록 저는 더 멀어질 뿐입니다. 솔직히 점점 질려가네요. 실비아 씨를 만나길 잘한 것 같아요.”
질린다고...?
게다가 뭐? 실비아를 만난다고!?
경악의 경악을 거듭한 아델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지요...?”
“전 실비아 씨와 뒹굴러 가보겠습니다. 그럼...”
“뭐라구요...? 언니랑 뒹군다니...! 지혁 씨, 드디어 미친 건가요?”
“안녕히 계십시오.”
순식간에 멀어지는 지혁의 몸.
지혁을 잡기 위해 변신까지 하며 뛰어보았지만, 그와 자신의 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멀어졌다.
잡히지 않는다. 지혁이 사라진다. 눈물이 터져 나온다.
결국 지혁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아델은 온통 시꺼먼 검은색 땅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흐아아아앙!”
그 순간, 시야가 한 차례 암전되더니 환한 빛이 내리쬐었다.
“허어어... 엉...?”
엉엉 울던 아델은 자신의 눈앞에 천장이 보이자 상체를 일으켰다.
주위를 두리번거려보니 익숙한 방 안이었다.
지혁의 집 침실 말이다.
이제야 자신이 꿈을 꾸었음을 자각한 아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뭐 이딴 개꿈을... 황당하다.
그래, 지혁이 갑작스레 태도가 바뀔 리가 없지.
자신을 두고 천박한 언니에게 갈 일은 더더욱 없고.
지혁의 이불에 눈물과 콧물을 닦고 훌쩍거리던 아델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깨어나면 회사로 오세요. 외식하러 가요. 사랑해요, 아델.]
음음... 그저 메시지일 뿐이지만 지혁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다.
역시 지혁은 자신만을 사랑한다.
눈이 부어가는 채로 킥킥 웃던 아델이 옷을 입기 시작했다.
상큼해 보이는 오버핏 바이올렛 후드.
오늘따라 기분이 꿀꿀하니 힙합 느낌을 내어 힐링하기 위해 일자 챙 스냅백까지 착용한다.
하의는 뭘로 입을까?
각선미가 드러나는 반바지를 입은 후 밑단으로 살짝 가려주면 지혁이 엄청 좋아하겠지만, 추우니까 무난한 청바지로 하자.
전신거울을 보며 코디에 만족해한 아델이 집을 나섰다.
어두컴컴한 하늘이 제법 운치가 있다.
외식은 어디로 갈까? 스테이크 무한리필 집이 좋아 보이는데...
지혁과의 달달한 데이트를 기대하며 강남에 도착한 아델은, 으리으리한 요식업 프랜차이즈 본사 건물로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아델라인 님.”
저번에 보았던 그 치마 짧은 년이 인사를 한다.
오늘도 짧다! 분명히 지혁에게 경고했었는데 고치질 않다니!
무조건 무릎 아래까지 덮도록 규정을 바꾸라고 말해야겠다.
일단 저 하찮은 기집애는 보속 대상! 나중에 시간을 내어 벌을 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벽관의 죄인을 회개시켜야 하는데...
나중에 해야지.
속내를 감춘 아델이 환히 웃었다.
“안녕하셔요. 지혁 씨는 위에 계시지요?”
“아뇨, 사장님께서는 오늘 오전에 출근하셨다가 나가셨습니다.”
으엉...?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회사로 오래서 왔는데 자리에 없다니?
혹시 직원이 착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럴 리가요? 전화해보셔요.”
“아, 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수화기를 든 직원은 제법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조용했다.
사장실에서 응답이 없는 모양.
직원이 미안하다는 얼굴을 하며 말했다.
“안 받으십니다.”
“그래요? 그럼 절 안내하셔요. 올라가봐야겠어요.”
“네, 이쪽으로...”
직원의 뒤를 따라가던 아델은, 직원의 딱 달라붙은 오피스 치마로 빵빵한 엉덩이 라인이 보이자 인상을 찌푸렸다.
저 엉덩이로 얼마나 많은 남자들을 유혹했을지...
음흉하고 더럽고 천박하고 상스러운 것...!
조만간 민지를 시켜 잡아오라고 명해야겠다.
안내에 따라 사장실로 간 아델은, 직원의 깍듯한 인사도 받아주지 않고 문을 열었다.
덜컥.
지혁의 향수냄새와 특유의 기운이 은은하게 풍긴다.
역시 좋다.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
지혁이 일하는 자리에 앉은 아델은, 눈앞의 서류 냄새까지 맡아보다가 움찔했다.
서류의 내용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압구정 러스트 공동사업 제안서]
‘러스트?’
고개를 갸웃한 아델이 휴대폰으로 이곳을 찾아보았다.
그리고는 검색결과에 떡하니 클럽이 나오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클럽이 요식업 프랜차이즈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 공동사업을 하자는 거람?
일단 자신은 이쪽 일을 전혀 모르니... 지혁이 알아서 하게 둬야지.
그리 생각한 아델이 휴대폰으로 지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거리는 신호음이 가길 한참 후,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안내음이 들려왔다.
혀를 찬 아델이 다시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허사.
이어서 몇 번을 더 걸어보았지만 전혀 받질 않았다.
“에잇...! 정말!”
순간 욱하여 휴대폰을 던질 뻔한 아델이 마음을 가다듬었다.
직원이 말하길, 지혁은 오늘 오전에 출근했다가 나갔다고 했다.
그렇다면 서류에 적힌 러스트라는 클럽으로 갔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거기서 사업회의 같은 걸 하고 있겠지.
여기서 기다려도 되지만, 빨리 지혁을 보고 싶으니까 가봐야겠다.
지혁은 여러 회사를 갖고 있는 사장이니, 그의 애인이라 한다면 정중하게 안내해줄 것이다.
지혁에게 서류를 봤으니 그쪽으로 간다고 톡을 남겨놓은 아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
왁자지껄한 클럽 입구.
천박한 여자들이 너무 많다.
발정이 난 남자들도 많이 보이고... 이런 추잡한 곳과 공동사업이라니 어이가 없다.
모자와 후드를 푹 눌러쓴 아델은, 길게 늘어진 줄을 서지도 않고 기도에게 다가갔다.
“송지혁 씨의 아내이니, 저를 그분께 안내하셔요.”
그러자 대기자의 신분증과 얼굴을 보며 수질을 검사하던 기도가 귀찮은 듯 손을 휘저었다.
“그런 사람 없습니다. 입장하고 싶으시면 줄 서세요.”
“없다니요? 확인해보지도 않고 말하시네요?”
“줄부터...”
줄부터 서라고 짜증을 내려던 기도가 아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후 순식간에 아델의 온몸을 스캔하더니 태도를 바꾸며 옆으로 섰다.
“바로 입장하시겠습니다.”
송지혁의 아내라고 하니 알아차린 것이구나.
흥, 싸가지 없는 것.
단단히 오해를 해버린 아델이 기도를 한 차례 째려보았다.
이후 당당하게 입장하려다 멈칫했다.
아주 포근하고 익숙한 느낌을 받아서였다.
이건 분명히 지혁의 것.
영혼으로 이어진 그의 무의식적인 기운이 자신에게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역시...!’
킥킥거린 아델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운은 클럽 안이 아니라 그 옆의 건물에서 나오고 있는 것 같았다.
클럽은 시끌벅적하니, 저기서 회의를 하고 있는 것이로구나!
역시 자신은 추리력이 좋다.
혼자 자화자찬한 아델이 몸을 홱 돌리고는 클럽에서 멀어졌다.
그녀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던 모습을 지켜보던 기도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약이라도 한 거야...? 아니면 그냥 미친년인 거야...?”
기도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아델이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다가 경비원에게 막히고 말았다.
“잘못 찾아오셨습니다. 돌아가세요.”
“네? 여기 제 남편이 있는데요? 위에서 회의를 하고 있을 텐데? 이름은 송지혁이구...”
“그런 사람 없습니다. 무단침입으로 신고하기 전에 가세요.”
짜증난다.
왜 아까부터 자꾸 확인해보지도 않고 없다 지껄이는 거람...?
그리고 거짓말을 하다니! 기운은 분명 이 건물 위로 이어져있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예의가 없어도 너무 없다.
천민들을 목숨처럼 아꼈던 예전의 자신이 한심하다.
점점 화가 나기 시작한 아델이 말했다.
“확인부터 해보셔요. 남편의 이름은 송지혁이에요. 강남구에서 가장 큰 요식업 프랜차이즈의 사장...”
“아 없다니까요.”
뭐야... 방금 자신에게 짜증을 낸 건가?
말도 끊었어?
이를 뿌드득 간 아델이 따지려고 할 때,
그윽...! 고오오...
지혁의 기운이 출렁거렸다.
흠칫한 아델이 위를 쳐다보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고요했던 기운이, 지금은 거센 파도마냥 요동치고 있다.
지혁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혹시 공동사업 이야기가 잘 안 됐나?
클럽 기도도 그렇고, 이 경비원도 그렇고... 여기 직원들은 싸가지가 너무 없다.
그렇다면 대화가 잘 안 됐을 경우 무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골목에서 변신을 한 뒤, 창문을 박살내고 들어가야겠다!
라고 생각한 아델이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