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304화 (304/471)

EP.304 다다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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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앙-!

수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피라미드가 박살난다.

이제는 평생 동안 살아가야하는 지구의 얼마 남지 않은 유산.

그게 덧없이 망가지는 모습은 정말 안타까웠다.

[email protected]#&!*#*!&@!!

실비아는 눈앞에서 무어라 지껄이고 있는 마물을 바라보았다.

온몸에 털이 난 인간형 마물. 다리는 근육이 엄청난데다 발굽이 있었다.

등에 있는 다 찢어져가는 날개와 사슴 같은 머리까지 종합하면 정말 기괴하게 생겼다고 할 수 있었다.

전신에 크고 작은 상처가 많았던 놈은, 검은 피를 주륵주륵 흘리면서 주변을 마구 파괴하고 있었다.

저 상처는 인간들이 만든 것이 아니었다.

지역강국인 이집트가 강하다고는 하지만, S급 마물의 몸에 상처를 입힐 수 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상처 대부분이 자상, 열창상이었다.

날붙이로 당했다는 뜻이다.

같은 마물들에게 당했을 확률이 아주 높았다.

왜? 세상 사람들 그 어느 누구든 S급 마물을 상대로 날붙이를 사용하려하지는 않을 테니까.

‘생포해야 돼.’

저 마물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지껄이고 있었지만, 어조가 또박또박했다.

언어를 구사할 수 있고, 지성이 높다는 의미.

잘하면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또한 부상을 당한 몸이니 마물들에게 내쳐졌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마물들의 세계에 반목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도착 6분 전입니다. 저놈은 가능하면 생포하세요.

지혁 또한 같은 생각이었는지, 담담히 실비아와 아델에게 명령을 내려왔다.

“알았어. 저번처럼 머리만 남기면 돼?”

-뭐든 살려만 둬요.

“응.”

통신을 마친 실비아가 쌍검을 휘리릭 돌리며 아델을 쳐다보았다.

“신성력 둘러줄래?”

왜인지는 모르지만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던 아델이 눈을 감고 힘을 집중했다.

우우우웅-!

찐득하게 피어나오기 시작하는 금빛 광채.

그 색이 상당히 진하다고 생각하던 실비아는, 신성력이 자신의 겉을 두르자 모든 감각을 열었다.

느낌은... 따스하다. 평소 아델의 신성력보다 더.

진한 느낌이 있긴 했지만, 이건 아델이 교회에 다녀온 후 믿음이 깊어져서 생긴 현상이리라.

걱정을 날려버린 실비아는 허공을 뻥뻥 차며 마물을 향해 짓쳐 들어갔다.

슈트도 생겼겠다, 신성력도 둘렀겠다, 마물도 약해져있겠다...

두려운 건 아무것도 없었다.

-#*!*#&@@#(!

엄청난 속도로 돌진하는 실비아.

그녀를 본 마물이 무어라 소리를 지르며 한손을 앞으로 뻗었다.

고오오-!

놈의 손바닥에서 응축되기 시작하는 시꺼먼 마기.

그것을 주시하며 돌진하던 실비아는, 문득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말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뭔가 근본적으로 익숙한 것 같다.

예전에도 자신이 이런 느낌을 받았느냐? 절대 아니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한 가지였다.

‘나도 타이라트에게 영향을 받고 있다는 뜻이겠지.’

로사리오의 신탁은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까 지혁이 빨리 ‘무에서부터 창조되는 만물’의 뜻을 알아냈으면 좋겠다.

상념을 날려버린 실비아는, 마물의 지척까지 다가서자마자 발을 굴렸다.

쐐애액-!

**

“전부 철수하세요. 상황은 종료됐습니다.”

-하지만 마물이 아직...

“마무리는 저희가 해요. 현장에선 세계연합보단 본부의 명령을 우선한다는 법률이 있을 텐데요?”

박사의 날 선 말투에, 이집트군 관계자가 찔끔하더니 대답했다.

-마, 맞습니다. 그럼 저흰 철수하겠습니다.

썰물처럼 빠져나간 이집트군.

황폐화된 피라미드 주변은 그렇게 깔끔해졌다.

누워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 푸르를 제외하면 말이다.

푸르는 배신자이며, S급 마물 중에서도 약한 축에 든다.

세화와 유리아라면 충분히 물리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들이 이놈을 지구로 보낸 이유는 놈의 능력 때문.

푸르는 자신의 공격이 닿은 상대방을 불임으로 만들어버리는, 아주 치가 떨리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혹시라도 눈먼 공격에 닿으면 불임.

나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있던 두 사람에게, 푸르라는 마물은 말파스보다 더 위험한 놈인 것이다.

실비아와 아델, 두 경쟁자를 처리할 생각도 깔려있었겠지.

아니, 이건 너무 갔구나. 만약 그럴 생각이었다면 푸르를 멀쩡한 상태로 내려 보냈을 테니까.

어쨌거나 마계 방어는 잘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조만간 한 번 들러서 두 사람을 봐야겠다.

나는 전투기의 로봇 팔을 이용해 몸뚱아리와 머리만 남은 푸르의 상처를 지졌다.

그러면서 아델을 흘끗 살펴보았다.

아델이 저번에 그랬었다.

아무리 악하다 하여도 생명이니, 망자는 곱게 보내줘야 한다고.

하지만 지금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상태.

오히려 괴상하게 생긴 푸르를 혐오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 꼴린다...’

뒤바뀐 가치관이 너무나도 마음에 든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킨 나는, 디바이스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실비아를 불렀다.

“실비아 씨.”

“응...? 왜?”

“실비아 씨가 너무 빨라서 모니터 상으론 체크가 힘들었는데, 이 마물의 공격에 닿았나요?”

“전혀. 한 대도 안 맞았어.”

실비아는 지금 자신과 아델이 타이라트의 음모에 당했다고 인식하는 상태다.

그러니 마물들을 상대할 때 극도로 조심해야한다는 마음가짐이 깔려있을 터.

신경을 잔뜩 쓰고 있는 상태이니만큼, 그녀의 말마따나 한 대도 맞지 않았을 것이었다.

나는 이번엔 아델에게 물었다.

“아델은 뒤에 있었죠?”

아델이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네! 잘했지요?”

그래. 잘했다.

보라색 마력이 나타나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디야.

고개를 주억거린 내가 다시 일을 하려고 할 때,

“너는 비스트 슬레이어면서 후방에만 있었던 게 잘한 거라고 생각하니?”

옆에 있던 박사가 아델을 나무랐다.

찔끔한 아델이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죄송해요...”

“대체 생각이 있는 애니? 없는 애니?”

“네? 하지만 저는 무기도 아직...”

“핑계대지 마. 여태까지 주먹으로도 잘 싸워왔잖아.”

“.... 저도 노력했는데요...”

“노력? 신성력만 실비아에게 둘러준 게 끝이면서 무슨 노력을 했다고 그래?”

“.... 씨이...”

격앙된 감정을 터뜨리는 아델.

깜짝 놀란 실비아가 박사의 눈치를 보았다.

철없는 아델의 행동에 분노한 박사가 말했다.

“너 방금 뭐라고 했어?”

“.....”

“뭐라고 했냐니까!?”

“.....”

박사를 무시한 아델은 내 옆으로 쫄래쫄래 다가왔다.

이후 내 손을 꼭 잡은 채로 전방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철없는 행동을 본 박사가 헛웃음을 켰다.

“하... 뭐 이런...”

아델을 더욱 혼내려던 박사를 말린 사람은 실비아였다.

분위기가 심상찮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는지, 그녀가 방글방글 웃는 낯으로 박사를 달랬다.

“박사님의 마음은 이해해요. 마물의 시체를 이용해 무기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민감하신 거죠?”

“.... 맞아.”

“아델의 신성력이 아니었다면 몇 대 맞았을 수도 있어요. 상극인 힘이라 쉽게 처리한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화내시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는 실비아의 실수였다.

왜? 박사는 나와 합을 아주 잘 맞추니까.

한숨을 푹푹 내쉰 박사가 마지못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근데 쟤는 아직도 저런다니? 아델도 너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애가 너무 어려.”

좋게 말하면 순수하고, 나쁘게 말하면 철이 없는 사람에게, 저런 비교는 큰 스트레스를 준다.

특히 실비아에게 열등감 비스무리한 동경심을 갖고 있는 아델에겐 특히나 더.

박사의 말을 듣고 완전히 삐친 아델이 내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조용히 속삭였다.

“짜증나... 박사님이 싫어요... 엄청 미워요...!”

더 분노해. 더... 더!

하찮은 인간이 신에게 기어올랐으니 벌을 내려줘야겠다고 생각해!

죽이고 싶다고 생각해!

그렇다고 진짜 죽이지는 말고.

나는 아델의 자그마한 등을 토닥여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이 나쁜...! 미개한 인간 주제에 어디서 감히...!”

분을 참지 못하고 있는 아델.

오랜만에 나타난 마물 따윈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얌전히 오피스텔 소파에 앉아있던 나는, 쿵쿵거리며 다가온 아델이 날 바라보며 인상을 마구 찌푸리자 물었다.

“아직도 화가 안 풀리십니까?”

“당연하지요...! 박사님은 인간이에요. 그런 하찮은 존재가 절 혼내다니... 정말 짜증나요! 요즘 박사님이 너무 히스테릭하신 것 같아요! 저를 전혀 생각해주시지 않으셔요!”

인간이 아니라 마족인데.

“음...”

“실비아 언니에게 지혁 씨와 뒹굴라고 명령한 것도 박사님이었어요...! 전 지금까지 엄청 많이 참고 있었단 말이에요...! 아무리 본부의 대표라고는 해도 저를 이렇게 핍박해선 안 돼요! 저도 오늘 엄청 고생했다구요! 알지요?”

“물론 압니다. 신성력을 둘러주는 건 보통 일이 아니잖아요.”

내 무릎에 엉덩이를 딱 붙인 아델이 주머니에서 민트향 사탕을 꺼냈다.

그걸 아그작아그작 씹고 삼킨 그녀가 말한다.

“역시 지혁 씨는 제 마음을 아시는군요?”

“당연하죠. 제가 박사님한테 가서 따끔하게 뭐라고 하겠습니다.”

“음음...! 좋아요. 지혁 씨만 믿겠어요. 저에게 사과를 하도록 만드셔요.”

“글쎄요... 박사님은 자존심이 센 분이라, 과연 그러실지...”

“잘못은 명백히 박사님이 저질렀어요! 만약 사과하지 않는다면...”

않는다면?

잔뜩 기대한 얼굴로 뒷말을 기다리던 나는, 아델이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말을 잇자 실소를 터뜨렸다.

“사과하지 않는다면... 후아... 어쩔 수 없지요... 박사님은 너무 무서워요...”

“아델은 신이잖아요. 그런데도 인간인 박사님이 무섭습니까?”

“저, 저는 아직 준비가 안 된 신이니까아... 어쨌든 지혁 씨가 따끔하게 혼낸다고 하셨으니, 전 믿고 기다리겠어요!”

“지금 혼내러 가요?”

“아잇...! 정말! 누가 지금 바로 가랬나요!? 또 또 눈치가 없어지셨군요!”

킥킥거린 나는 아델의 입가에 손등을 내밀었다.

이런 내 행동에 고개를 갸웃한 아델이 묻는다.

“지금 뭘 하시는 것이지요?”

“성혈이 드시고 싶지 않으세요?”

“앗...!”

뺨이 벌겋게 물드는 아델.

순식간에 부끄러운 숙녀가 된 그녀가 내 눈치를 보았다.

푸르가 나타나면서 먹지 못하게 된 성혈이 생각난 듯했다.

인자한 미소를 지은 내가 말했다.

“드셔도 됩니다.”

“.... 시, 시러요... 천박해... 입으로 주셔요...”

“입으로 주는 게 더 천박하지 않나요? 그리고 손등을 깨물면 입보다 더 많이 드실 수 있을 텐데...”

“.... 더 많이...?”

“네, 더 많이.”

짧은 시간동안 엄청난 번뇌에 휩싸인 것 같던 아델.

유혹에 못 이긴 그녀는, 결국 입을 앙 벌렸다.

그리고는 내 손등을 아주아주 약한 힘으로 깨물었다.

이래서야 살이 뚫리지도 않겠구만... 어이가 없다.

“벌써 잊어버린 겁니까? 저는 성체를 가졌어요. 상처 따윈 금방 회복됩니다.”

그 말에 눈이 커진 아델이 이빨에 힘을 잔뜩 주었다.

그러자 시큰한 느낌과 함께 혈관이 찢겨나가고, 피가 역류했다.

아델은 그 피를 한 방울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입을 오물거리며 쭙쭙대기 시작했다.

몽롱한 표정으로 콧바람을 길게 내뱉기까지 하며 피를 음미하는 그녀.

이 비릿한 게 천상의 음식처럼 생각되어지나보다.

한참동안 아델의 흡혈귀 같은 모습을 지켜보던 내가 입을 열었다.

“타이라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델의 시선이 위로 올라갔다.

“....?”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

지금 상황에서 왜 뜬금없는 얘기를 하냐고 묻는 것 같다.

“마물이 나타난 김에 물어보고 싶었어요. 일단 드세요. 다 드시고 다시 얘기해요. 옳지, 옳지...”

부드러운 손길로 아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그녀가 눈을 지그시 감고 피를 마시는데 집중했다.

다다익선. 악의는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좋다.

많이 먹고 내게 공감해주려무나. 우리 예쁜 아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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