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02 강제개종
짐승 같은 신음소리가 잦아들고, 힘겨운 숨소리만 새어나온다.
“허억... 헉...”
“하아... 하아... 흣♡”
입위 자세로 뒤엉켜있던 우린 차디찬 건물 바닥에 그대로 쓰러졌다.
그리고는 서로를 마주보며 미소를 지었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옷이었던 것들을 바라보던 실비아가 투정을 부렸다.
“집은 어떻게 가라고...”
실비아의 앞머리를 옆으로 넘겨준 내가 말했다.
“차 가지고 왔어요.”
“그래...? 더러워질 텐데...”
그녀의 아래에선 악의가 잔뜩 섞인 정액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아델에게 들어간 악의와 같은 양을 넣었음에도 결과는 신통찮았다.
음문이 안 생겼던 것이다.
대체 어떤 의지로 악의를 밀어내는 건지 어이가 없을 지경.
디바이스를 침식해야겠다는 마음이 굳어진 순간이었다.
“상관없어요. 그냥 가도 돼.”
“욕구불만은 해소됐어?”
“조금요.”
“다행이네... 춥다...”
가뜩이나 추운 날씨인데 땀이 식으면서 체온을 빼앗아갔다.
나는 온몸을 계속 떨고 있는 실비아의 몸을 꼭 안아주었다.
그러자 내 품으로 쏙 들어오다시피 한 실비아가 말했다.
“동굴 생각나...”
“아... 그때?”
“응...”
탐색기를 고친다는 명목으로 폭우가 쏟아지는 그랜드캐니언에 갔었다.
거기서 마물에게 당해 거의 죽을 고생을 하던 실비아를 도와줬던 적이 있다.
실비아는 그때 그 사건을 말하고 있었다.
나와 마르셀라가 짜놓은 판인 줄도 모르고... 순진하긴.
“너는 안 추워...?”
“별로요. 조금만 이러고 있다가 가요.”
“알았어...”
실비아가 내뿜은 따스한 콧바람이 가슴을 간지럽힌다.
꽤나 긴 시간동안 실비아와 포옹을 하던 나는, 그녀가 품 안에서 인상을 찌푸리자 물었다.
“아파요?”
“조금... 네가 너무 난폭하게 해서 그래...”
“미안해.”
“괘, 괜찮아... 그냥... 쉬면 나아질 것 같아...”
알겠다고 대답한 나는 실비아를 번쩍 안아들고 차로 향했다.
비를 맞으며 차 안으로 들어와 히터를 트니, 오들거리고 있던 실비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지간히 추웠나보다. 평소에 점잖은 그녀가 이런 내색을 할 정도면.
히터의 풍량을 최대로 높인 내가 물었다.
“아델은 집에 있어요?”
“아니. 교회 간다고 나갔어.”
“교회?”
“신기를 모으려나봐. 아델 스스로도 자신이 바뀌어가고 있다는 걸 자각하고 있는 듯해. 아무래도 내 말을 듣고 경각심이 생긴 것 같아.”
글쎄... 그 교회는 네가 생각하는 교회가 아닐 텐데...
안타깝다, 실비아야.
“그래요? 아델한텐 잘 된 일이네요. 로사리오 님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너도 심심하면 따라가 봐. 혹시 알아? 꿈에서 그분을 만날지.”
“옆에서 쭉 지켜봐야하니 따라가긴 할 겁니다. 집에 혼자 있을 수 있겠어요?”
“웬 어린애 취급하는 말투래... 당연하지. 집에서 잘 거야. 힘들어 죽겠어. 그리고 노예라고 했던 거 사과해. 욕한 것도 사과하고.”
한창 할 때 실비아에게 주종관계를 각인시켜보려고 노예년, 봉사 같은 단어를 지껄였었다.
근데 너도 웃긴다. 앙앙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주제에 지금 사과하라니.
실소를 터뜨린 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거면 나한테 미친 새끼라느니, 또라이라느니 한 것부터 사과해야지.”
“그건 네가 먼저...!”
버럭 화를 내려던 실비아가 입을 꾹 다물었다.
내게 바락바락 대들어봐야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한 듯했다.
그래, 그렇게 순종적으로 바뀌어 가면 돼.
빨리 나한테 충성을 바쳐. 그러면 우린 매일매일이 행복할 거야.
**
뒷문을 통해 지하실로 들어간 나는,
-꺄아아아아아악!
찢어지는 듯한 여자의 비명소리가 복도를 타고 귀에 닿자 씨익 웃었다.
뭔가 일이 진행되고 있구나.
아주 악독한... 그런 일이.
복도 중간에 있는 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가니, 교화대에 앉아 온몸을 버둥거리고 있는 젊은 여자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옆엔 민지가 무심한 표정으로 전기고문을 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델은...
“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지요? 김민지 사제, 제게 경과를 보고하셔요!”
양손으로 딱 눈만을 가린 채, 법대에 앉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명령은 제가 내려놓고 무서워서 보지 못하는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날 발견한 민지가 고문을 멈추더니 인사를 했다.
“오셨습니까, 교주님.”
그러자 아델이 눈에서 손을 떼어내지도 않은 채로 소리쳤다.
“지, 지혁 씨! 오셨나요? 당장 제 옆에 앉으셔요!”
누가 보면 장난이라도 치는 건 줄 알겠다.
벌어지는 일 자체는 무시무시하다만.
아델의 옆으로 간 나는, 그녀가 입고 있는 슬립을 보고 침을 삼켰다.
무척 섹시해 보이는 잠옷이다.
브라조차 차지 않아 상의에 유두의 실루엣이 보인다.
윗가슴이 드러나는 것도 정말 마음에 들고... 대체 이런 걸 어디서 구한 거지?
상당부분 해소되었던 욕구가 다시 끓어오르려 한다.
작게 심호흡을 하여 가슴을 진정시킨 내가 말했다.
“눈 떠도 돼요.”
그에 아델이 날 쳐다보며 눈을 떴다.
교화대 쪽으로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 안도한 그녀가 입술을 열었다.
“후우...!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참에 오셨군요. 역시 지혁 씨는 저와 영혼으로 이어져있어요.”
“역시 그렇군요.”
“네? 역시라니요?”
“아델의 목소리가 뇌리에 들려왔거든요. 그래서 빨리 왔습니다.”
까르르 거리며 기뻐한 아델이 내 허벅지 위에 앉았다.
마주본 상태로 아델의 뽀뽀세례를 받던 내가 칭찬을 했다.
“잠옷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
입가에 부끄러운 미소를 띠우는 아델.
흠흠! 하며 헛기침을 한 그녀가 돌연 깜짝 놀라선 어깨를 달싹였다.
둔부에서 순식간에 딱딱해진 자지의 감촉을 느낀 모양이었다.
태연한 얼굴을 한 내가 물었다.
“근데 지금 뭘 하고 계셨습니까?”
“아... 저 천것이 임시 신전의 성유물을 파손했어요.”
“성유물? 우리한테 그런 게 있었습니까?”
“아이 참... 이곳의 모든 물건은 지혁 씨의 것이잖아요. 신의 물건이니 성유물이 맞지요.”
아... 기물을 파손했다 이거구나.
거의 가둬놓다시피 해서 불만이 터져 나온 모양이다.
그나저나 별 이상한 것들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아델이 정말 사랑스러웠다.
이젠 로사리오한테 욕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중에 실험해봐야지.
“저 천것은 교회에 다닌대요. 그러니 보속과 교화를 끝낸 후, 그곳에도 죄를 물어야 옳아요. 이와 관련해서 좋은 생각이 있으신가요?”
“음...”
우리 아델, 교회한테 죄를 묻고 싶었어요?
원하는 대로 해줘야지.
“이건 어떨까요? 저 여자를 저희 쪽 신도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네에...? 왜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티가 팍팍 난다.
부드럽게 웃은 내가 아델을 달랬다.
“교화를 시켜야한다면서요.”
“그냥 교화만... 입교는 다른 문제에요.”
“저 죄인의 신상정보를 살펴보니, 교회에서 집사를 맡고 있더군요.”
“그래서요?”
“청년부의 행사를 주관한다던데... 보속이 끝나고 개종을 시킨 후, 교회로 보내 청년들이 배교를 하도록 만들면 어떻겠습니까? 신앙이 있는 쓸 만한 신도들도 모으고, 그 교회에 죄도 묻고... 더 나아가 저 죄인이 참회할 수 있는 기회도 주는 셈이 되잖아요.”
“으음...! 마음에 들어요... 아주 마음에 들어요!”
흥분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아델의 눈.
신이 난 듯 몸을 들썩이기까지 한다.
“벽관에서 보속을 받고 있는 죄인과 함께 보낸다면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다만 저 죄인은 평신도가 될 수 없어요.”
“그건 당연합니다. 아델을 화나게 했는데, 갈기갈기 찢어 죽여도 시원찮죠.”
과격한 언행에 아델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가, 갈기갈기 찢어 죽인다니요... 너무 잔인해요...”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저 죄인은 평생 노예로 부릴 생각입니다. 개종을 시켜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해요.”
“옳은 말씀이에요. 자비로운 지혁 씨가 자랑스럽군요.”
“감사합니다. 그럼 진행할까요?”
“네, 지혁 씨에게 맡길게요.”
고개를 끄덕인 나는 아델의 엉덩이를 톡톡 쳐 허벅지에서 내려 보냈다.
이후 자리에서 일어나 여자의 앞으로 가서 쪼그려 앉았다.
재갈이 물려진 채로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그녀.
유세라에게 고통을 줄 때와 비슷한 양상이구나.
여자를 잠시 쳐다보던 내가 인자한 투로 경고했다.
“재갈을 풀어줄 텐데, 제대로 처신하지 않으면 사형을 구형하겠습니다. 알겠나요?”
정신없이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이는 여자.
눈빛에서 무조건 말을 듣겠다는 진심이 느껴진다.
만족스럽게 웃은 내가 민지에게 명령했다.
“김민지 사제, 재갈을 푸세요.”
“네, 교주님.”
재갈이 풀렸음에도,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절대 죽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민지가 건네준 서류를 살표보던 내가 여자에게 물었다.
“이름이 송혜윤 맞죠?”
“마, 맞아요...”
울먹거리지도 않고, 그저 눈물만을 흘리며 대답하는 모습이 뭔가 기괴하다.
이런 건 전혀 겪어본 적이 없을 텐데도 상황파악을 잘하는 눈치, 그리고 의지력이 마음에 든다.
어차피 한 방에 떨어지겠지만.
“교회 집사라고 하던데, 맞습니까?”
“네...! 노량진에 있는 동선 교회에 다니고 있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뭐든 할게요...! 무, 무조건 얌전히 있을게요! 흐윽...! 제발요...”
감정이 북받쳐서 흐느끼기 시작하는 혜윤.
쯔쯔... 방금 칭찬했는데 이러면 어쩌냐.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이해는 하지만서도.
“해코지할 생각은 없습니다. 말만 잘 듣는다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말 잘 듣겠습니다!”
“반성은 많이 하셨는지?”
“반성합니다! 제가 주제도 모르고 이 교회...”
“신전.”
“네! 신전... 신전의 기물을 훼손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홧김에 그랬습니다...!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이젠 거의 악을 쓴다.
뭔가 마음이 아픈데... 빨리 구원을 내려줘야겠다.
“저희 아델라인교에 입교하세요. 그럼 모든 죄를 사하고 당신을 편안하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평생 아무런 걱정 없이 살 수 있어요.”
“이, 입교하겠습니다! 아델라인 교의 신도가 되고 싶어요... 흐아아앙...!”
배교죄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죄악을 서슴없이 저지르겠다고?
하긴, 목숨이 가장 소중한 법이지.
혜윤을 권속으로 만들기 위해 손을 따려던 나는 멈칫했다.
실험해보고 싶은 것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델의 신성력은 내 마력과 융화된 상태.
악의가 아주 진하게 들어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아델의 피 또한 대상을 권속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 능력은 마왕인 내 특유의 능력이지만... 아델의 몸 안에 있는 신성력은 마력으로 변질되었다.
그것으로 민지의 마력까지 증폭시켰으니 가능할 것도 같은데... 한 번 꼬셔봐야겠다.
생각을 마친 나는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으며 이쪽을 구경하고 있는 아델을 불렀다.
“아델, 잠깐 이리 와보실래요?”
그 말에 법대에서 폴짝 뛰어내린 아델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죄인이 충분히 반성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세례를 시작할까요?”
잠깐 혜윤의 얼굴을 살펴본 아델이 대답했다.
“으음...! 성유물을 파손한 죄인에게 세례는 조금 그렇지만... 진심으로 반성하는 것이 느껴지고, 일평생을 바쳐 교에 봉사해야 하니... 특별히 자비를 베풀어주는 것도 좋겠지요. 결정했어요. 세례를 내려주셔도 되어요.”
혜윤의 얼굴이 무척 밝아졌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구명의 동아줄이 내려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 혜윤을 지켜보던 내가 아델에게 말했다.
“이번엔 아델의 성혈도 사용할게요.”
“네에...? 손가락 따면 아픈데에...”
“중죄를 저지른 죄인인 만큼, 참회시키려면 저희 둘 모두의 성혈이 필요하다고 봐요.”
“으으으음...! 어쩔 수 없지요... 자아...”
아델이 조심스레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민지가 품에서 바늘을 꺼냈다.
준비성 한 번 철저하다. 저러니까 아델이 좋아하지.
바늘을 받아든 나는, 아델의 소지 첫 마디에 그것을 가져다댔다.
“저 죄인의 죄를 사해주겠다는 경건한 마음을 먹고 성혈을 축성하는 겁니다. 알았죠?”
“지혁 씨, 저는 당신의 성녀에요. 제가 그것도 모를 것 같나요?”
“노파심에 말해봤습니다. 그럼 채취할게요.”
“조, 조금만... 아주 쪼오오오금만 찌르셔야 해요...”
“걱정하지 마세요. 자, 눈을 감아볼까요?”
아델의 눈이 질끈 감기는 것을 확인한 나는 바늘을 콕 찔렀다.
“흐익...!”
귀여운 신음을 터뜨리는 아델.
그녀의 손가락에 아주 시뻘건 피가 맺히기 시작했다.
검붉지는 않다.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피의 색을 보니 희박할 것 같다.
모든 일을 끝마친 내가 혜윤을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히죽 웃었다.
이런 내 표정을 본 혜윤의 눈빛이 공포로 젖어 들어갔다가, 이내 단념의 감정이 맺혔다.
그래, 살려면 뭐든 해야지.
“성녀님, 상처에 패치를 붙여드리겠습니다.”
민지가 타이밍 좋게 아델의 시선을 돌렸다.
그 틈을 탄 나는 혜윤의 입을 강제로 벌리고 혀에 피를 묻혔다.
이제 어떻게 되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