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299화 (299/471)

EP.299 신의 뜻 #3

보랏빛 기운이 모조리 민지에게 들어가고 난 후임에도 한참동안 기도를 멈추지 않던 아델이 눈을 떴다.

힘에 취한 듯 온몸을 떨고 있는 민지를 바라보던 그녀가 돌연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새끼손가락을 이빨로 가져가 살짝 깨물어 피를 냈다.

천천히 위로 솟아오르는 핏방울.

피를 검지로 훑은 아델이 민지의 이마에 그것을 묻혔다.

“저, 아델라인은 성령의 이름으로 김민지 신도에게 세례를 내리어요. 그대는 성령의 날인으로 세례를 받았으며, 주님의 영원한 종비가 되었어요.”

그 말에 민지의 눈이 천천히 뜨였다.

자신의 손부터 시작해서 몸 곳곳을 살펴보던 민지.

그녀가 대답했다.

“교, 교주님과 성녀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녀 또한 이 기상천외한 일에 당황한 것 같았다.

그 모습을 감격한 것이라고 착각했는지, 아델이 방긋 웃었다.

“지혁 씨의 은총을 받아 기쁜 것 같네요. 본디 세례명을 내려야 하지만, 교의 역사가 짧아 성인이라 불릴만한 존재가 없어요. 그러니 김민지 사제가 원하는 이름을 고르도록 하셔요.”

“그, 그래도 될까요...?”

“이런 권한을 드리는 건 교주님과 제가 김민지 사제에게 큰 기대를 품고 있기 때문이에요. 자아, 원하시는 이름이 있나요?”

침을 삼킨 마르셀라가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마르셀라... 마르셀라로 하고 싶습니다.”

“마르셀라라... 어여쁜 이름이네요. 허가하겠어요.”

“감사합니다... 성녀님...”

“단, 아직 성덕을 많이 쌓지 못하였으니, 교주님과 제가 충분하다고 말씀드리기 전까지는 김민지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도록 하셔요.”

어느 안전이라고 거절할까?

본의 아니게 김민지가 되어버린 마르셀라가 이마를 거의 바닥에 닿을 정도로 상체를 숙였다.

“그리하겠습니다...”

“몸에 이상은 없으신가요?”

“아, 그게... 제 몸이 뭔가... 가벼운 것 같습니다... 힘이 넘쳐흐르는 것 같아요...”

“그대는 마음속 깊이 교주님을 모시는 신도. 진실 된 마음을 열고 은총을 받았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김민지 사제에게 내려진 힘은 교주님인 지혁 씨의 뜻이에요. 다시 말해 신의 뜻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니 그대의 주님에게 감사하셔요.”

민지가 내 앞에 그대로 엎드렸다.

“교, 교주님의 성은에 너무나도 황송하옵니다...!”

“지혁 씨의 뜻을 받들어 평생을 봉사하는 것이 김민지 사제의 임무에요. 앞으로 지혁 씨의 뜻을 거역하는 간악한 자들을 색출하여 심판하도록 하셔요.”

“알겠습니다...! 성녀님...!”

“이단심문관은 사제품, 임무를 수행하시다가 충성스런 부제들이 입교하면 따로 선별할 자리를 만들어드리겠어요. 쓸 만한 자들을 골라 부리도록 해요.”

“황송하옵니다...!”

만족스런 표정으로 민지를 내려다보던 아델이 명령했다.

“이제 김민지 사제가 해야 할 일을 하셔요.”

지하창고의 죄인들을 옮기는 것을 말함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인사를 한 민지가 대답했다.

“네, 성녀님.”

그녀가 집을 나서자, 아델이 날 바라보며 배시시 웃었다.

“김민지 사제가 저희 교의 첫 신도가 되어 기쁘네요.”

그에 정신이 번쩍 든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죠... 그런데 아델, 김민지 사제가 왠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느낌이 드는데...”

“당연한 일이에요. 그녀는 지혁 씨에게 크나큰 신앙심을 가지고 있던 상태였으니까요.”

“그게 어째서 당연한 일입니까?”

“신의 힘을 갖게 된 지혁 씨의 성체가 제 신성력과 감응하여, 김민지 사제에게 축복을 부여해준 것이지요. 만약 지혁 씨가 범부였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예요.”

아... 아델의 신성력이 내 마력과 제대로 섞였다는 뜻이구나.

그로 인해 강화 같은 능력이 생겼고, 날 충심으로 모시고 있는 마르셀라의 마력이 증폭됐다고 보면 되려나 싶다.

뭐가 됐든 내겐 어마어마하게 좋은 일이었다.

“너무 의기양양하시면 안 돼요. 지혁 씨는 성체를 가지게 된지 얼마 안 되었으니까요. 아직은... 으음... 쉽게 말해 반신 같은 존재라고 보면 되겠군요.”

우리 아델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근데 진짜 신이 되어버린 것 같잖아.

“아델도 성체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닙니까? 이러한 축복을 직접 내려줄 정도니까...”

“그렇지요.”

“천것들과는 다른 고귀한 존재가 됐네요. 기쁩니다.”

“저도 마찬가지에요. 이제 날이 밝아오는군요. 언니가 걱정할 테니, 어서 함께 오피스텔로 돌아가도록 하지요.”

아델의 마음가짐은 오늘부로 완전히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상태에서 실비아와 만나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실비아 씨도 신도로 만들 계획이십니까?”

“언니는 제가 무척 사랑하는 분이에요. 우매한 인간인 채로 둘 수는 없지요. 다만 헬릭스의 간계에 빠진 상황인 것이 걱정이에요.”

“헬릭스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강대한 악이잖습니까. 아직 저흰 세력이 약하니, 일단 두고 보는 게 어떨까요? 평소처럼 생활하며 실비아 씨를 지척에서 감시하도록 하죠.”

“그것이 지혁 씨의 뜻이라면 따르겠어요.”

아델의 기꺼운 대답에 더 이상 참지 못한 나는, 그녀를 번쩍 안아들었다.

“그런데 제 피로 세례를 내릴 줄은 몰랐습니다.”

“지혁 씨가 그러지 않았나요? 생각하기 나름이라구요. 제게 있어서 지혁 씨의 성혈은 성수이기도, 성유이기도 해요.”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예쁜지 모르겠네요. 착한 성녀에게 상을 내려야겠습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그러자 아델이 낮은 웃음을 흘리더니, 눈을 감고 입술을 내민다.

지금은 뽀뽀면 족하다는 뜻이구나.

얼마든지 해줄게. 사랑해, 아델.

**

“두 배 정도 강해졌다?”

“지, 지금 느끼기엔 그렇습니다...”

마르셀라의 더듬거리는 대답.

민지에서 원래대로 돌아온 그녀의 헐벗은 몸을 샅샅이 살펴보던 내가 다른 질문을 했다.

“다른 특이사항은 없느냐? 예를 들자면 아델이나 로사리오를 향한 신앙심이 생겼다든지, 뭔가 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든지, 내가 껄끄럽다든지...”

마르셀라에게 들어간 힘의 근원은 로사리오의 신성력이다.

마력에 잘 섞여 들어갔다고는 하지만 불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내 걱정에 기분이 좋아졌을까?

마르셀라가 환히 웃었다.

“그런 건 전혀 없습니다... 힘을 제외한 모든 것이 평소와 똑같아요... 아무래도 아델라인 님의 신성력이 마왕님의 마력과 아주 잘 융화된 것 같습니다...”

마르셀라도 나처럼 생각할 정도면... 확실히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우리가 엄청난 선물을 받은 듯하구나.”

“네... 만약 아델라인 님의 힘을 마물들과 왕비님, 그리고 유리아 님이 받으신다면...”

“너나 세화, 유리아, 박사가 적응할 수 있는 건 당연하다고 보지만, 마물은 또 다른 문제지. 그들은 내 마력에 충성을 바칠 뿐, 공유를 하지는 않잖느냐.”

“그렇긴 합니다.”

떨려오는 가슴을 진정시킨 나는 마르셀라에게 외투를 걸쳐주었다.

이후 히죽 웃으며 그녀를 칭찬했다.

“연기가 제법이더군. 세례명을 말할 때도 기지를 발휘하다니 다시 봤다.”

“가, 감사합니다...”

쑥스러운 듯 고개를 푹 수그리는 마르셀라.

몸을 배배 꼬는 것이, 내 호의에 기쁜 듯했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내가 말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아델에게 모든 걸 맞춰줘라. 박사도 잘 도와주도록 하고... 마계 소식이 나오면 곧바로 연락하고.”

“물론이에요... 이제 아델라인 님을 뵈러 가실 예정인가요?”

“잠깐 들를 데가 있다.”

“알겠습니다. 성체를 꼭 보중해주시옵소서.”

너도 슬슬 미쳐가는구나. 아델을 따라서.

하긴, 나도 몰입할 정도인데 넌 오죽했겠냐.

이러다가 지구를 신권으로 통치하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아 보인다만.

나는 마르셀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자신 또한 지혁과 같이 성체를 갖게 되었다.

헌데 이 몰려오는 졸음은 무어란 말인가.

아직 성체에 적응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삐비빅-! 덜컥.

도어락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집으로 돌아온 아델은, 코로 쏙 들어오는 블랙체리 향 방향제의 냄새를 맡고 기지개를 켰다.

그러고 나니 잠이 조금 달아나는 기분.

찔끔 나온 눈물을 닦아낸 아델이 실비아의 방 문을 두드렸다.

노크를 하고 기다렸음에도 들려오지 않는 반응.

고개를 갸웃한 아델이 문을 열었다.

덜컥.

눈앞에 곤히 자고 있는 실비아가 보인다.

인상을 팍 찌푸린 아델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으음...! 싫다아...’

실비아는 자신들의 사도가 되어야한다.

그 누구보다도 지혁과 자신에게 충성을 바쳐야할 사람이 퍼질러 자기나 하다니!

고귀한 존재가 돌아왔으면 영접하는 것이 마땅한 일인데!

조금 실망스럽다.

그래도 아직 신도가 아니고, 헬릭스에게 넘어간 상태이니만큼 이해해주어야겠다.

조심스레 문을 닫은 아델이 소파로 가서 앉았다.

이후 TV를 켜고 아침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아나운서의 정확하고 빠른 발음을 듣던 아델.

그녀의 뇌리에 좋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건 바로 종교방송이었다.

지구엔 기독교 방송이니 불교 방송이니 하는 종교방송이 있다.

교의 규모가 조금 커진다면, 지혁의 말씀과 복음을 전파할 아나운서를 한 명... 아니, 한 오백 명은 구해야겠다.

음음, 모든 지구인들에게 매일 두 시간 씩 말씀을 듣게 하는 것도 나쁘진 않아 보인다.

우매한 인간들에게 구원을 내려주는 건 지혁과 자신의 사명이니까.

[다음 소식입니다. 강남구 한남동에 좀비처럼 보이는 행인이 출몰했습니다.]

지혁과의 장밋빛 미래를 그리던 아델이 귀를 쫑긋했다.

좀비라니? 저게 무슨 소리일까?

호기심이 동한 아델이 눈을 가라앉히고 뉴스에 집중했다.

화면엔 모자이크처리가 된 남자가 사람들을 습격하고 있었다.

느릿느릿한 발걸음으로 걸어가다가, 사람이 가까이 오면 좀비 마냥 물어뜯으려고 했다.

허나 전부 미수에 그쳤다.

애초에 부상을 입은 상태라 걸음걸이가 느릿하고, 팬티바람인 만큼 사람들이 경계를 했기 때문인 듯했다.

[이 행인은 한 건설회사 협력사의 직원인 42세 이 모 씨로 알려졌으며, 범죄전과가 여러 개 있는 전과자입니다. 이 모 씨는 현재 강남경찰서에 구금되어 약물 검사를 진행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경찰청은 부상을 입은 이 모 씨가 마약과 관련된 사건에 휘말렸다고 추측하고 있으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아나운서의 예쁜 입에서 나오는 설명을 듣던 아델이 눈을 부릅떴다.

42세 이 모 씨? 건설회사 협력사의 직원?

그렇다면 저 사람은 저번에 보속을 받은 자잖은가!

자신이 기도도 해준!

‘이이...!’

보속을 받는 게 불쌍해서 지혁에게 칭얼거려 봐줬었는데, 감히 마약 같은 걸 했다?

저런 자에게 자비를 내려주다니... 자신이 바보였다.

인세에 있어서는 안 될 폐기물! 저 불가촉천민을 어찌 처리할지 지혁, 민지와 상의해야겠다!

또한 앞으로 보속을 확실히 할 것이다!

덜컥.

“아델... 언제 왔어?”

분노로 부들대던 아델은, 실비아가 방에서 나와 자신에게 다가오자 활짝 웃었다.

“방금 왔어요.”

“그래...? 뭘 보고 있었길래 눈빛이...”

“눈빛이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밥은 먹었어?”

자리에서 일어난 아델이 실비아의 품에 안겼다.

일어나자마자 자신을 챙기려고 하다니, 아까의 실망스런 감정이 싹 날아간다.

사도의 자격이 있음에도 헬릭스에게 넘어가려고 하는 불쌍한 우리 언니...

빨리 구원을 내려주고 싶다.

일단은 감시, 관찰이 먼저다.

그것이 신의 뜻이니까.

하지만 실비아가 위험한 낌새를 보인다면, 강제력을 동원해서라도 가두고 교화할 것이다.

이 모든 건 실비아를 위해서, 정의를 위해서, 그리고 지혁을 위해서다.

결심을 마친 아델이 말했다.

“배고파요. 스파게티 해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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