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293화 (293/471)

EP.293 구하려는 자, 떨어뜨리려는 자

@@

철컥!

-으읍! 읍! 으으으읍!

민지라는 여자가 의자를 가져와 죄인을 앉혔다.

힘이 어찌나 센지 낑낑거리지도 않았다.

운동선수라고 생각될 정도다.

민지는 죄인의 몸에 여러 기계장치들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딱 봐도 불길한 느낌을 풀풀 풍기는 기계.

톱날 같은 게 달려있기도 해서, 고통을 주기에 최적화된 고문기구 같았다.

잔뜩 긴장한 아델이 지혁에게 말했다.

“지혁 씨... 너무 무서워요... 보기 싫어...”

절로 떨리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만큼 이 자리는 불편했고, 분위기가 무서웠다.

“중죄인은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려 하지 않습니다. 이 정도는 해야 그나마 희망이 있죠.”

“어, 어차피 신도로 받아들이지도 않을 사람이잖아요... 국가의 법에 맡기는 게...”

“국가의 법은 이 죄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습니다. 그냥 풀어두면 다시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거예요.”

“그렇긴 하지만...”

“마음을 다잡은 지 얼마나 됐다고 이러십니까?”

오늘따라 지혁의 말이 너무 차갑다.

싫다아... 지혁은 자신에게 저런 식으로 말을 해선 안 된다.

항상 따뜻하게, 사랑이 가득한 말투로 자신을 보듬어주어야 한다.

“지혁 씨...! 지금...”

아델이 버럭 화를 내려고 할 때, 지혁이 그녀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제가 너무 흥분했네요. 죄인의 죄목을 다시 읽어 내리니 갑자기 화가 솟아나서... 잘못했어요.”

그렇구나. 저 천민 때문에 화가 난 거였다.

천하디 천한... 사회에 발을 들여선 안 될 쓰레기!

저놈 때문에 지혁과 싸울 뻔했다!

그나저나 역시 지혁은 자신의 마음을 아주 잘 안다.

영혼끼리 이어졌다고 생각이 들 정도다. 너무 좋다.

수줍은 듯 몸을 배배 꼬던 아델이 말했다.

“용서해드리겠어요...”

“고마워요, 아델.”

두 사람이 그렇게 달콤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보속 준비가 끝났습니다.

민지가 저런 말을 해왔다.

-으으읍! 읍!

재갈이 물려 떽떽거리고 있는 죄인.

고개를 처박고 무릎을 꿇어도 모자랄 중죄인이면서 시끄럽게 굴다니.

용서가 안 된다! 일단 보속을 행한 후에 죄를 추궁하던지, 회개의 기도를 해주든지 해야겠다!

눈을 부릅뜬 아델이 지혁을 쳐다보았다.

“시작하셔요.”

묵묵히 고개를 주억거린 지혁이 마이크에다 대고 말한다.

“민지 씨, 보속을 시작하세요.”

-네.

상체를 천천히 숙여 공손히 인사한 민지가 손에 쥐고 있던 버튼을 눌렀다.

키이이이잉-!

죄인의 어깨부근 위쪽에 달려있던 톱날이 서슬 퍼런 기세로 회전했다.

깜짝 놀란 아델이 흠칫하는 사이, 민지가 리모컨을 조작했다.

그러자 톱날이 천천히 내려오며 죄인의 어깨를 아주 천천히, 느릿느릿하게 갉아먹기 시작했다.

카가가각-!

-흐으으으으으으으읍!!!

뼈와 살이 긁혀나가는 소름끼치는 소리, 그리고 영혼마저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듯한 죄인의 비명.

나무의자에 죄인의 피가 스며들어 시뻘겋게 물들어간다.

그 잔인무도한 장면에 기겁한 아델이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그만! 멈춰요!!”

“신성한 보속을 행하는 중입니다만...”

“멈추라고 했잖아요! 당장 멈춰요!”

“예. 민지 씨, 보속을 멈추세요.”

-알겠습니다.

곧바로 멈춘 고문기구. TV에 민지의 예쁜 얼굴이 보인다.

죄인의 피가 튀었음에도 무표정인 그녀.

저 잔인한 짓을 행하고도 아무런 느낌이 없는 것인가?

너무나도 섬뜩하다. 감정이 없는 존재 같다.

충격을 받은 아델이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거렸다.

후다닥 달려와 그녀를 부축한 지혁이 묻는다.

“괜찮으십니까?”

“.... 더 이상 보지 못하겠어요.”

“첫 보속이니만큼 힘드신 것 같네요.”

그렇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았다지만... 저건 처음 보는 광경이다.

차라리 마물들을 상대하는 게 더 나을 지경.

사람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은 도저히 못 보겠다.

다음부터는 이걸 자신이 직접 해야 한다고?

물론 명령을 내리면 민지가 실행에 옮기는 방식이겠지만,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다.

“소리... 소리가 너무 소름끼쳐요...! 보는 것도 힘들어요...!”

“아델,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합니다.”

“저, 저 광경을 보고 어찌 마음을 굳게 먹을 수가 있을까요!? 저 남자를 죽일 생각인가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저 중죄인의 보속일 뿐입니다. 저 죄인의 죄목을 생각해보세요.”

가정폭력, 학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기.

로사리오교의 신전 자재를 빼돌려 이득을 취한 나쁜 놈...!

죽어 마땅한 이단이다...!

꿀럭!

갑작스레 가려워지는 눈을 비빈 아델이 호흡을 정돈했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시작하셔요... 그리고... 소리는 끄셔요.”

“예.”

@@

아무리 TV 소리를 껐다 한들, 화면은 그대로였다.

온몸에 피칠갑을 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남자.

이제는 혼절했는지 간헐적으로 몸을 꿈틀대기만 할뿐이었다.

온몸의 살이 찢겨 뼈가 드러날 정도의 심한 중상.

너무 잔인하다. 제대로 눈에 담아두기도 어렵다.

의연해지려 해봐도 적응이 안 된다.

대체 이 보속은 언제 끝날까?

결국 아델은 민지가 죄인을 치울 때까지 TV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몸을 벌벌 떨었고, 지혁의 다정한 말이 들려오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죄인의 보속이 끝났습니다.”

드디어 끝났구나. 저 죄인이 저지른 죄의 보상은 달게 받았다.

그러니 저 천민... 아니, 저 사람의 죄는 없다.

“저... 저 사람은 어디로 가는 것이지요?”

“치료를 하고 사회로 돌려보내려 합니다.”

“좋아요. 저를 저 사람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주셔요.”

“지금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냄새가...”

“냄새는... 참아야지요. 저분의 죄는 사하여졌어요. 그러니 앞으로 사회에서 훌륭하게 살아가길 바라며 기도를 드려야 옳아요. 회개는 이렇게 해야 해요.”

“음... 알겠습니다.”

지혁은 아델을 창고의 가장 구석에 마련된 치료실로 데리고 갔다.

그 안에 들어선 아델이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인상을 구기는 일이었다.

퀴퀴한 먼지 냄새와 피비린내가 섞여 코를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아델은, 낡아빠진 병상에 남자가 누워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물었다.

“간호인은 없나요?”

“민지가 치료할 겁니다.”

“의학에 소질이 있는 분인가요?”

“뭐든 다 잘하는 친구입니다. 방금 보속도 훌륭하게 하지 않았습니까?”

“그분이 보속과 치료까지 전부 한다구요?”

“예.”

이건 너무 주먹구구식이 아닌가!

아무리 준비가 덜 된 상태라지만... 너무 가혹하다.

정색을 한 아델이 말했다.

“보속이 끝난 죄인은 더 이상 죄인이 아니에요. 그저 길을 잃은 양일뿐이지요. 내일까지 간호인을 몇 명 섭외하도록 하셔요. 체계를 잡아야 해요.”

“알겠습니다. 민지에 대한 평가는 어떻죠?”

민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보속을 행하는 것으로 보아 이단 심판관으로서의 자질은 충분하다.

하지만 한 가지가 걸린다.

“따로 이야기를 할 거예요. 감정이 결여되어있는 것 같은데, 교육이 필요하겠어요.”

“예. 지금 바로 불러올까요?”

“일단 기도부터 드려야 해요. 잠깐 조용히 하셔요.”

알겠다고 대답한 지혁이 뒤로 물러나자, 남자에게 다가간 아델이 한숨을 내쉬었다.

난도질된 몸을 실제로 보니 토악질이 나오려고 한다.

하지만 참자. 경건하게 기도를 해주자.

마음을 다잡은 아델이 회개의 기도문을 읊기 시작했다.

“인애하신 로사리오... 님이시여, 세상의 법도에 거역하고, 인륜을 저버리고, 교의 의를 이루는데 방해꾼 노릇을 한 이 가여운 영혼을 치유해주시어….”

우우웅-!

기도를 하던 아델의 몸에서부터 기운이 뭉실뭉실 피어났다.

그건 평소의 그녀가 내뿜던 찬란한 금빛 광채가 아니었다.

거의 검은색에 가까워져가는 아주 탁한 노란색이었다.

방 안이 원체 어둑한데다 눈을 감고 있었던 아델은, 그 꾸덕한 기운이 남자의 칠공으로 들어가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오랜 시간 끝에 기도를 끝낸 아델이 눈을 떴다.

기운은 온데 간데 없어진지 오래.

상쾌한 얼굴을 한 그녀가 남자를 잠시 내려다보다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끝났어요. 저분의 얼굴은 매우 평온해요. 이제 더 이상 죄를 저지르지 않을 거예요.”

“그렇습니까? 다행이네요.”

뭔가 지혁이 사악하게 웃고 있다고 느껴지는 건 왜일까?

아니, 그냥 기쁜 거겠지.

보속과 회개가 끝나서, 그리고 자신이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어서.

“다음 죄인을 심판하시겠습니까?”

“아니요.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어요. 모든 죄인들에게 빵 하나와 물 한모금만 주고 가둬놓도록 하셔요.”

“그럼 보속은...”

“내일 해요. 마음을 굳게 먹어야하는 건 알지만... 저는 이번이 첫 보속이라구요. 적응이 필요해요. 또한 앞으로는 경범죄를 저지른 죄인부터 보속을 진행하려고 하는데, 어떠시지요?”

“저는 아델의 의견을 최우선 순위로 둡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잘했다는 듯 지혁의 옆통수를 살살 토닥인 아델이 말했다.

“자, 이제 이 추잡한 곳에서 나가요. 영혼까지 더러워지는 기분이에요.”

“그러죠. 민지는 지금 만나보실 건가요?”

“물론이에요. 제대로 교육만 하면 훌륭한 신도이자 이단 심판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신도가 된지 얼마 안 됐는데 이단 심판관이라고요? 너무 과분한 직책이 아닐지?”

“지혁 씨...! 제대로 교육만 하면이라고 했잖아요. 어쩜 이렇게 말귀가 어두우실까요?”

“아, 그렇죠...”

참... 이렇게 둔해서야 제대로 된 포교활동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민지라는 사람은 대체 어떻게 꼬신 거람?

혹시... 그녀가 지혁에게 마음이 있어 일을 승낙한 건가?

그렇다면 민지도 보속 대상이었다.

지혁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자신만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실비아가 아직 지혁에게 마음이 있는 듯한데...

뿌득!

저도 모르게 이를 간 아델.

지혁이 의아한 투로 묻는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아니에요... 민지라는 분은 어디 계시지요?”

“금방 올 겁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수술용 기계를 든 민지가 치료실에 들어섰다.

그녀는 아델을 보자마자 딱딱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박았다.

“성녀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거의 오체투지를 하는 것 같은 그 행동에, 아델의 얼굴이 기껍게 변했다.

어떤 명령을 해도 다 들어준다 하였으니 충성심도 높을 것 같고... 그녀에게서 풍겨져오는 포근한 기운이 기분 좋다.

무엇보다 자신의 주제를 아는 것이 마음에 든다.

잠깐 민지를 빤히 내려다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하셔요.”

그에 민지가 천천히 일어나더니, 두 손을 공손하게 앞으로 모았다.

“김민지 씨라고 하셨지요?”

“네, 아델라인 님. 제 이름을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쯧. 다 좋은데 너무 로봇 같은 게 문제다.

이지를 상실해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죄인에게 보속을 행하면서 어떠한 감정이 들으셨지요?”

“교주님과 성녀님의 명이시니 기쁜 마음으로 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 아무리 이단에 대한 심판이라고는 해도, 같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데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던 건가요?”

“.....”

우물쭈물하는 민지를 본 아델의 눈동자가 따스해졌다.

저런 모습을 보이는 걸 보면 감정이 있는 듯한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괜찮으니 의견을 말해보셔요.”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우러러봐야할 존재인 교주님과 성녀님께 해를 끼친 자를 사람이라고 취급하기는 싫었습니다.”

민지의 말투에서부터 진심이 전해져온다.

꽤 마음에 드는 수족이 될 것 같은 느낌.

활짝 웃은 아델이 말했다.

“맞는 말씀이지만, 민지 씨는 아직 모자란 부분이 많아요. 그러니 제게 교육을 받도록 하지요.”

“서, 성녀님께서 직접... 말씀이십니까?”

“네, 제가 직접 가르쳐드릴 예정이에요. 그러니 열심히 배우셔요. 그리고 훌륭한 신도이자 이단 심판관이 되어서, 교주인 지혁 씨와 성녀인 저를 보좌하도록 하셔요.”

감격에 겨운 듯 몸을 바르르 떤 민지가 다시금 머리를 땅에 박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런 민지를 본 아델이 낮은 실소를 터뜨렸다.

“좋아요. 일단 여기서 나가지요. 냄새가 나서 더는 못 버티겠군요. 치료를 끝낸 뒤 올라오도록 하셔요.”

자신이 심연 속으로 떨어졌음을 자각하지 못한 아델.

지혁의 음모에 머리끝까지 빠진 그녀는, 그렇게 점점 종교놀이에 심취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