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92 신앙의 방향 #2
“여긴 어디인가요?”
불안한 듯 내 손을 꼭 잡는 아델.
그녀를 진정시킨 내가 대답했다.
“죄인의 심판을 위한 장소입니다. 재판소라고 생각해주시면 되겠네요. 따로 구해놨죠.”
“재, 재판을 이런... 불길하고 냄새나는 장소에서 하다니요... 성스러운 행위인데... 실망이에요...”
우린 지금 새로이 개조한 지하창고에 와있었다.
예전에 내가 지혜와 보영을 권속으로 만들 때 쓰던 곳 말이다.
“임시로 만든 겁니다. 신전이 제대로 완성되기 전까지만 쓰려고 해요.”
“으음...! 싫다아... 음험한 사이비들 같아요...”
“저희의 의지만 있다면 어느 장소든 신전이고, 심판대가 될 수 있습니다. 아델이 그랬잖아요. 물질적인 건 싫다고.”
“그렇지요... 하지만 냄새가 너무 심해요... 더러워... 싫어...”
“이단의 냄새입니다. 현재 잡혀있는 것들이 가진 고유의 추잡한 냄새죠.”
그 말에 아델의 눈빛이 음험해졌다.
이를 뿌드득 간 그녀가 말했다.
“다행이에요.”
“뭐가요?”
“언니에겐 아직 이런 냄새가 나질 않으니까요. 향기롭기만 해요. 아직 교화할 시간은 충분하다는 증거에요.”
“그렇죠. 하지만 언제 이런 악취를 풍기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니 아델은 경험을 쌓아야합니다.”
고개를 주억거린 아델이 날 올려다보았다.
“제 옆에서 도와주셔요.”
“물론입니다. 저는 평생 아델의 옆에 있을 거예요.”
내 고백에 얼굴이 환해진 아델이 까치발을 들었다.
실소를 터뜨린 나는 아델에게 애정이 담긴 뽀뽀를 해주고는, 그녀를 새로 만든 컨테이너로 데려갔다.
거긴 두 평쯤 되는 음침한 장소였다.
어둡고, 가운데 벽을 가득 채우는 TV와 의자, 그리고 마이크가 있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안을 둘러본 아델이 말했다.
“여긴... 심문을 하기 위한 방이군요.”
“정확합니다. 비대면 취조실 같은 느낌을 냈어요.”
“이런 곳은 죄인과 얼굴을 맞댈 수 있도록 만들어야한다고 성경에 나와 있지 않던가요? 이건 지혁 씨의 실수에요.”
“실수가 아닙니다. 아델을 그딴 냄새나는 놈들과 붙어있게 만들기 싫어서 그랬어요.”
“참... 지혁 씨도 너무 주책이에요. 팔불출 같아요.”
“애처가라고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애처가.
단어의 뜻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아델의 얼굴이 활짝 폈다.
“말씀은 고맙지만, 이단을 다시 개종시키려면 직접 얼굴을 맞대어야...”
“아뇨. 안 됩니다.”
단호한 말투.
아델이 내 엉덩이를 토닥여주며 말했다.
“냄새 때문이라면 참아볼 수 있어요. 아주 불쾌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새로운 규칙을 만들 필요가 있기 때문이에요. 로사리오교의 신전이 완공되면, 교는 한동안 사이비로 취급받을 겁니다. 지구의 꽉 막힌 인간들은 새로운 종교를 인정하려 하지 않죠. 지금도 수많은 신흥종교들이 탄압을 받고 있습니다.”
아델의 손이 부르르 떨려왔다.
같잖은 것들이 교를 탄압한다니 꼴 뵈기가 싫은 모양이었다.
“감히...!”
“그러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일단은 아델을 교주로 추대하여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도록 할 예정인데... 어떻습니까?”
흠칫한 아델이 날 홱 돌아보았다.
“네...? 저를 교주로요...?”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저 로사리오교의 분교 느낌입니다. 지구는 이미 여러 종교들이 수백 년, 수천 년 뿌리를 내렸습니다. 신흥종교에 대한 텃세가 무척 심할 거예요.”
“방금 말씀하셨잖아요.”
“네. 그래서 로사리오 님 같은 전지전능하신 분은 지구인들이 큰 거부감을 느낄 테니, 예비 신도들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아델이 새 교주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아, 안 돼요...! 저는 교주가 될 수 없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어?
날 교주로 추대해야겠지?
“부활한 헬릭스가 실비아 씨의 마음을 좀먹는데도 나 몰라라 하시는 로사리오 님보다, 아델이 더욱 교주에 걸맞다고 생각합니다.”
“나 몰라라 하지 않았어요...! 제게 신탁을 내려주셨잖아요...!”
“그건 타이라트와 관련된 신탁이잖아요. 유리아 씨가 말해주지 않던가요? 타이라트는 에란델 은하의 총수이자, 마물들의 왕이에요. 어둠을 먹고 사는 존재인 헬릭스와는 전혀 다릅니다.”
“그, 그렇지요...”
“돌아가서, 로사리오교의 분교 느낌이라고 했잖습니까. 신전이 완공되면 편입할 예정이니 문제는 없다고 봅니다.”
“으으음...!”
깊은 고민을 하는 아델.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내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로사리오교엔 여러 분교가 있어요. 그건 아델이 더 잘 아시잖아요.”
“그렇긴 한데에... 교주라니... 로사리오교의 교주는 단 한 분뿐이세요...”
“잠깐 떠났다가 분교로 편입될 때, 로사리오 님의 인정을 받아 총대주교가 되면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봅니다. 지구에 만들어질 신전은 로사리오교의 주교청, 교황청이 되는 거예요.”
아델의 귀가 쫑긋하는 게 보이는 것만 같다.
그녀의 앞에 쪼그려 앉은 내가 구슬픈 투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전 하루라도 빨리 신도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당당하게 교의 사람으로서 아델을 만나고 싶어요. 지금 이 자리에서 종교 창시를 공표하시고, 저를 공식적인 신도로 임명해줬으면 좋겠어요.”
“지혁 씨...”
내 얼굴을 가슴으로 끌어당긴 아델이 정수리에 대고 키스를 한다.
감격했구나. 그럼, 그럼. 그럴 수밖에 없지.
한동안 쫍쫍거리는 소리를 내던 아델이 날 풀어주고 말한다.
“지혁 씨의 마음은 정말 잘 알겠어요. 하지만 큰 문제가 있어요.”
“그게 무엇입니까?”
“그 제안은 제가 소속을 옮긴다는 뜻이 되어요. 성녀라는 직책은 로사리오 님의 직속이에요. 그러니 저는 교주가 될 수 없어요. 대신...”
“대신?”
“우호적인 종교, 혹은 흡수가 필요한 종교를 지원할 수는 있어요. 예를 들자면... 지혁 씨가 창시한 종교에 지원 자격으로의 파견은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이는 앞서 말한 모든 조건에 해당이 되어요.”
나더러 교주가 되라는 뜻이었다.
기다리고 있던 말이기도 했다.
음음... 표정관리부터 하자.
잠깐 충격에 빠진 척한 내가 물었다.
“제가요?”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린 아델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구에 평화가 찾아오면 정식으로 로사리오 님께 기도를 드려요. 그 뒤 총대주교가 되어 저와 혼인식을 올리도록 하지요. 원래는 추기경으로 임명할 생각이었는데, 지혁 씨의 제안을 듣고 마음이 바뀌었어요.”
“아델...”
“감동한 얼굴이로군요. 그럴 만도 하지요. 자아, 이제 지혁 씨는 새로운 종교의 창시자이자 교주로서, 저와 함께 지구의 평화를 해치는 악독한 것들을 교화시켜야 해요. 이것이 로사리오교를 위한 첫걸음이에요. 아시겠나요?”
“명령인가요?”
“그래요. 성녀로서의 명령이자. 조언자로서의 조언이랍니다.”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난 내가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저는 새로운 종교의 교주로서, 간악한 자들을 교화시켜 로사리오교에 바칠 공을 쌓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그거에요.”
“그리고 모든 사항은 아델과의 토의 후에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야 마음이 놓이거든요.”
“지혁 씨도 참... 애처가로서의 자세가 되어있으시군요. 좋아요. 그렇다면 종교의 이름부터 정할까요?”
당연히 타이라트교여야지.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명명해선 안 된다.
아직 아델은 내 진정한 모습인 타이라트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으니까.
일단은 로사리오교를 따르는 척한다.
이후 악의를 주입할 때마다 신앙의 방향을 바꿀 것이다.
아주 빠르게.
따스한 미소를 지은 나는 아델의 앞머리를 정리해주었다.
“종교명은 나중에 정하는 것이 어떨지? 지금 더 중요한 일이 있잖습니까.”
“아, 그렇지요... 교화...”
“맞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교화를 위한 교법부터 정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로사리오교의 교법을 따라가도 되는데요...?”
“로사리요교의 교법은 지구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너무나도 자비롭고, 개나 소나 신도로 받아들입니다. 용서도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기만 하면, 보속 같은 것도 없이 거의 다 받아주는 수준이죠. 참 우유부단합니다.”
“으으음...”
아델이 일 리 있다는 듯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 너도 깨달은 게 있잖아.
실비아와의 다툼으로 인해서, 그리고 지구의 하찮은 인간들을 보면서.
“게다가 아직 저희는 로사리오교에 정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런데 어찌 감히 교법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과연 그렇군요. 지혁 씨의 말이 옳아요.”
“좋습니다. 제가 말씀드렸죠? 지구는 텃세가 심하다고. 신흥종교로서의 첫 발을 내딛은 저희는 강력한 행동강령이 필요합니다. 특히 로사리오교를 모욕한 이단에겐 제대로 된 벌을 내려 회개의 기회를 줘야한다고 생각해요.”
주먹을 불끈 쥔 아델이 말했다.
“동의해요.”
“그래서, 고통으로 보속을 행하려고 합니다.”
“고, 고통이요...?”
“예. 교의 신전이 지어지는 공사임에도 공사비 일부와 여러 희귀한 자재들을 빼돌려 팔아먹으려 한 것들입니다. 강한 보속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지혁 씨... 초범에겐 그런 심한 벌을 내려서는 안 되어요...”
연구실에선 노발대발했는데, 막상 고통을 준다니 마음이 약해진 모양.
아아... 나의 아델, 마음씨도 너무 고와.
난 TV 밑의 협탁에서 종이 하나를 빼냈다.
그리고는 그것을 아델에게 흔들었다.
“초범이 아닙니다. 여기 저들의 범죄목록이 있죠. 자, 첫 번째 대상의 죄목을 읊겠습니다.”
목을 가다듬은 나는 아델의 앞에 서서 첫 심판대상의 범죄를 읊었다.
“이름 이만수, 나이 42세. 건설회사 협력사의 반장입니다.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치었으나 비싼 변호사를 선임, 심신미약과 과실치사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고등학생인 아들과 딸을 상습적으로 폭행하는 가정폭력범이며, 와이프는 그의 학대에 버티지 못하고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설명을 듣던 아델의 눈에 분노의 감정이 맺혔다.
“그, 그럴 수가...!”
“뒷돈을 받는 건 예삿일이고, 여러 건설자재를 중국에 팔아 이득을 취했죠. 모아둔 돈은 자식 교육에 쓰지도 않고 유흥업소에서 탕진합니다.”
“어떻게 이런 자가 다른 사람들을 공정히 이끌어야하는 협력사 반장이 될 수 있지요? 중죄...! 중죄에요!”
여러 차례 헛웃음을 켠 아델이 가운데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다리를 꼬았다.
“죄가 매우 불량하고, 재범을 행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 보속을 허가하겠어요!”
고개를 주억거린 나는 TV를 켰다.
거기엔 온몸이 결박되어있는데다 재갈까지 물려져 있는 팬티바람의 중년인이 구석에 쪼그려 벌벌 떨고 있었다.
그를 본 순간, 아델이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저긴 어디지요...?”
“이 앞에 있는 컨테이너 박스입니다. 심판용으로 개조해놨죠. 다음 죄인도 뒤에서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아... 그래서 이곳에 더러운 냄새가 났군요...! 보기만 해도 추잡해요. 사회의 폐기물이므로, 죄를 진심으로 뉘우칠 때까지 고통을 주도록 하셔요!”
“첫 보속이므로 제가 시범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다음 죄인부터는 아델이 직접 보속 수위를 결정하셔야합니다.”
“네에...?”
눈을 여러 번 깜박이며 날 쳐다보는 아델.
인자한 미소를 지은 내가 말했다.
“아델은 실비아 씨를 교화시켜야 하잖습니까. 그녀를 원래대로 돌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아델뿐입니다.”
“어, 언니에게도 고통을 행할 생각이신가요...?”
“그건 실비아 씨의 죄목을 따져보고 결정할 사항이죠.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 부분에 있어서, 아델은 냉정해져야합니다. 무려 헬릭스와 관계된 일이니까요.”
그 말에 아델이 서슬 퍼런 눈으로 TV를 바라보았다.
어두운 컨테이너 안임에도, 아델의 연두색 홍채가 보라색으로 서서히 물들어가는 게 보인다.
“지혁 씨의 말씀이 맞아요...! 헬릭스와 관계된 일이니만큼 진중해져야 해요...!”
“그렇습니다. 이제 시작할까요?”
“그러도록 하셔요.”
씨익 웃은 나는 마이크 옆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죄인이 있는 컨테이너 가운데에서 젊고 예쁜 여자가 들어와 TV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아델라인 님.
“으응...? 저 여자는 누구지요?”
고개를 빼꼼 내밀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아델.
그녀의 뺨을 어루만진 내가 여자의 정체를 말해주었다.
“소개드리겠습니다. 저 친구의 이름은 김민지. 제 소꿉친구고, 앞으로 아델과 절 보좌하게 될 예비 신도입니다.”
“버, 벌써 입교를 권했다는 말씀이신가요?”
“일단 저 친구 한 명에게만 권한 상태입니다.”
“저 사람은 제가 비스트 슬레이어인 것을 아시나요?”
“전혀 모릅니다. 제가 왜 그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그리고 저 친구는 아델의 명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충성스런 자이기도 합니다. 믿어도 괜찮아요.”
아델의 눈이 번들거렸다.
“제 명이라면 무엇이든...?”
“네, 무엇이든. 성녀임에도 보좌관이 없어 마음에 걸리던 차였는데, 저 친구가 마음에 드셨으면 합니다. 오늘 아델의 명령에 따라 보속을 행할 친구인데, 앞으로도 수족처럼 사용해주세요.”
흡족해하던 아델이 돌연 정색을 했다.
“그건 평가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저 분께서 오늘의 임무를 잘 수행하신다면, 입교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누어보도록 하겠어요.”
마음에 안 들 수가 없을 걸?
마르셀라는 진짜 유능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