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91 신앙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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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간계에 빠졌다? 이단 심판? 구제? 정화? 참회의 불꽃?
도저히 대화가 안 통한다.
아니, 그냥 믿고 싶지 않은 거겠지.
로사리오가 아델이 아닌 실비아 자신에게 강림했다는 것을.
언제나 순수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듣던 아델이 왜 저런 고집불통 머저리가 되어버렸을까?
분명히 타이라트의 술수일 것이다.
자신도 시간이 지나면 저렇게 변해버린다는 말인가? 죽어도 싫다.
재빨리 침대에서 벗어난 실비아가 무시무시한 눈빛을 하고 있는 아델에게 간절히 호소했다.
“아델... 제발 제정신으로 돌아와...”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에요. 얼른 제 앞에 무릎을 꿇으셔요.”
“넌... 진짜 미쳤어...”
“거부하시는 건가요? 성녀로서의 명령이라고 했을 텐데요?”
“나는 간계에 빠지지 않았어. 착각을 한 네가 스스로 그렇게 결론을 내렸을 뿐이야.”
쯧! 하고 한 차례 혀를 찬 아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점점 신도의 자격에서 멀어지고 계시는군요. 마귀의 간사한 혀에 넘어가버린 지 오래에요. 하지만 괜찮아요. 저는 언니를 엄청 사랑하니까요. 그러니 강제적으로라도 교화를 해야겠어요.”
말을 마친 아델이 자신의 디바이스로 손을 가져갔다.
불길하다. 왠지 이번 다툼은 저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변신을 하게 두면 안 된다.
실비아가 다급히 소리쳤다.
“자, 잠깐! 무릎 꿇을게...! 너랑 싸우기 싫어...!”
그 말에 아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나마 아직 저에 대한 마음은 남아있으셨군요. 좋은 징조에요. 잘 생각하셨어요. 저도 언니와 싸우기 싫었답니다.”
침대에서 내려온 아델이 자신의 발밑을 가리켰다.
“자, 이리 오셔요.”
침을 꿀꺽 삼킨 실비아가 천천히, 경계심 어린 눈초리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아델이 자비로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언니의 몸 안에 씌어있는 마귀의 기운을 날려버리기 위해서에요. 너무 겁먹지 마셔요.”
“난... 난 진짜 괜찮은데...”
“언니는 괜찮아보일지 몰라도, 제 눈에는 다 보여요. 성녀인 저를 믿지 못하시는 건가요?”
자기야말로 좁아진 시야를 갖게 됐으면서 다 보이긴 개뿔... 못 믿겠다.
조심스럽게 아델의 지척까지 간 실비아가 무릎을 굽혔다.
이후 아델의 얼굴에 만족스러움이 깃들려고 하는 순간,
팟-!
그녀를 향해 돌진했다.
“흐엑!”
깜짝 놀란 아델이 당황해할 틈도 없이, 실비아는 아델을 침대에 넘어뜨리고 자신의 다리로 팔을 결박했다.
“무, 뭐하시는 건가요!! 당장 놓으셔요!”
빼액 소리를 지르는 아델.
실비아가 사과했다.
“미안해... 진짜 미안...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이번에 변신하면 이 오피스텔 전체가 날아갈 수도 있단 말이야... 무고한 사람이 다치게 돼...”
“언니만 반항하지 않으면 다 되는 일이었어요!”
“네가 강제로 정상인 날 교화시키려 하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
아델이 몸을 마구 버둥거렸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군요! 이 마귀! 악마!”
입에선 저런 과격한 말이 튀어나왔다.
마귀라니... 악마라니... 바보, 멍청이라는 말보다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변한 아델이 너무나도 슬프다.
감정이 북받친 실비아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져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때, 맑고 투명한 그 눈물을 본 아델의 얼굴에서 적의가 상당히 사라졌다.
발악을 하던 몸도 얌전해졌다.
“언니... 지금 우시는 건가요...?”
“.....”
대답하지 않고 코를 훌쩍거리는 실비아.
아델이 재차 물었다.
“왜요...? 왜 울어요...? 언니는 마귀에 씌었잖아요...”
“흐윽... 아니야...”
“네...?”
“난 마귀에 씌지 않았어... 네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라고...”
실비아가 흐르는 눈물의 양이 많아졌다.
이젠 뺨을 거치지 않고 아델의 얼굴에 뚝뚝 떨어질 정도.
“로사리오 님이... 진짜 그랬단 말이야... 그리고 넌 날 세상에서 가장 믿는 언니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내 말을 안 믿어줘...?”
“.....”
“넌 언제든 날 믿어주겠다고 했잖아. 소울메이트라고 하기까지 했으면서... 흐어어엉...!”
이제는 완전히 엉엉 울기 시작하는 실비아.
아델을 결박하던 다리에도 힘이 빠진, 완전히 무너진 모습이었다.
실비아가 처음 보여주는 그 모습에 정신이 돌아온 아델이 황급히 팔을 뺐다.
그리곤 실비아를 끌어안았다.
“언니... 울지 마요... 왜 울고 그래요...”
“네가... 흐으윽...! 내 말을 안 믿어주니까... 이 고집불통 멍청이... 허어어엉...”
거의 대성통곡을 터뜨리자, 아델이 실비아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우리 언니 착하지이? 진정해요...”
“나는 너랑 진실한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혼자 이상한 망상을 하면서 날 강제로 교화시키려고 하고... 너무 서러워... 진짜 죽고 싶어...”
죽고 싶다니! 그 정도로 원통했다는 말인가!
헬릭스 이노옴! 대체 실비아를 어디까지 떨어뜨린 것인가...!
“옳지, 옳지. 착하다아... 제가 잘못했어요. 그러니 눈물을 뚝 그치도록 하셔요. 알았지요?”
아델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로 고개만 주억거리는 실비아였다.
아델은 안쓰러운 감정이 들기보단, 그런 실비아가 무척 색다르다고 생각했다.
입장이 정반대가 되어버려서 그런가? 뭔가... 소유하고 싶었다.
장난감처럼.
“우리 오늘은 이만 잘까요? 손 꼭 잡고 자요.”
“아무 짓도... 안 할 거야...?”
실비아는 헬릭스에게 넘어갔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반응으로 보아 아직 시간이 있는 듯했다.
그러니 신도교육도 시킬 겸, 천천히 정화시키면 될 것이다.
“응. 안 해요.”
“정말...?”
“제가 이상한 행동을 하면 언니가 이토록 과격하게 나오는데, 겁이 나서 못하겠네요.”
실비아는 아델의 정신이 제대로 돌아왔다고 판단했다.
이유가 뭘까? 자신이 울어서? 진심이 느껴져서?
둘 다일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정말 서러워서 눈물을 흘린 건데, 이게 통할 줄이야... 다행이었다.
아델에게서 내려온 실비아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그건 미안해... 네가 귀를 닫고 내 말을 듣지 않으려 하니까...”
“저는 언니를 끔찍이 생각해요. 다 언니를 위해서 한 행동이니 이런 제 마음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아시겠지요?”
“응... 이해해... 그리고 로사리오 님께서 또 다른 말씀을 하셨어...”
아델의 눈썹이 꿈틀했다.
좋게 대해주니 또 이런다. 짜증이 솔솔 나려고 한다.
하지만 참자. 헬릭스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전부 들어보는 거다.
“그게 뭔가요?”
“헬릭스를 닮은 자가 악신의 자격을 갖추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대... 그리고 순수한 에테르가 날 올바른 길로 인도할 거래. 에테르는 무에서 창조된 만물과 똑같다고 하셨는데,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
쯔쯔... 전부 속임수인데 그걸 곧이곧대로 믿고 있다니.
이단이 되어버린 이 가련한 영혼을 어찌해야할까.
답은 당연히 구제였다.
지혁과 상의를 해봐야겠다.
“음... 언니는 어떻게 생각하시지요?”
“나는... 아이테르 에너지를 전부 써봐야 한다고 생각해. ‘무’라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잖아. 그리고 로사리오 님 같은 분이 아이테르에게 한계를 부여해준 게 이상하지 않아? 에너지를 소모해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
조잘조잘 떠들어대는 게 시끄럽다.
하지만 이야기를 잘 들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또 돌발행동을 할지도 모르니까.
“음음... 일리가 있는 신탁이로군요.”
“그, 그렇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네. 하지만 잘 생각해봐야 해요. 저희는 에너지를 한계까지 소모해본 적이 없잖아요. 큰일이 날 수도 있어요.”
“.... 지혁이랑 똑같은 말을 하네?”
아델의 귀가 쫑긋했다.
무섭게 고개를 돌린 그녀가 물었다.
“지혁 씨에게 이 이야기를 말했나요?”
“마, 말했어... 하지만 오해하지 마. 신탁을 받았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어. 그리고 그냥 조언만 구한 거야. 다른 행동은 안 했어.”
“그런가요? 지혁 씨는 뭐래요?”
“아까 말한 대로야. 경거망동하지 말래...”
역시 지혁이다. 그는 모든 걸 알고 있다.
실비아가 이상해진 걸 눈치채서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했구나!
그에 대한 경외심이 샘솟는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아델이 아직까지 촉촉한 실비아의 눈가를 닦아내주었다.
“그 말대로에요. 지혁 씨의 조언이니까 믿어야 옳아요. 저흰 신중해야 해요.”
“하지만 지혁이도 뭔가 더 있을 것 같다고 했어...”
그건 당연히 시간을 벌려고 한 말이겠지!
어쩜 이렇게 바보처럼 변해버렸는지... 쯧.
한심하다. 하지만 이해해주자.
초대 성녀 또한 헬릭스에게 넘어가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지도 않게 되었고, 창녀처럼 변해버렸으니까.
언니도 지금 그 과정 중에 있었다.
더욱 더러워지기 전에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자, 언니. 내일 한 번 지혁 씨에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아보아요.”
“그럴까...? 신탁을 받았다고 말하면... 지혁이도 마음을 바꾸겠지?”
“글쎄요. 장담할 수는 없지요. 하지만 지혁 씨는 저희보다 똑똑하잖아요. 현명한 답을 내놓을 거예요.”
실비아는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왜 지혁을 의지하는 것처럼 말하지?
아니, 의지가 아니라 맹신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해는 한다.
아델은 지혁을 무척 사랑하고, 지혁도 로사리오교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래... 생각했던 대로 하자.’
다 말하고 토론을 해보는 게 맞았다.
그러니 내일 전부 털어놓자.
**
연구실, 박사의 방.
“그래서 실비아 씨가 그런 질문을 했던 것이로군요.”
모든 이야기를 들은 내 말에, 실비아가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수그렸다.
“응... 맞아. 속여서 정말 미안해...”
속일만한 일이긴 하지. 네 마음 다 안다.
하지만 실비아는 실수했다. 날 속일 생각이었으면 끝까지 그랬어야 됐다.
뭐, 이미 내게 빠지고 주변이 모두 내 권속인 그녀에겐 답이 아예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로사리오의 개입은 아주 좆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는데, 잘 처리될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그나저나 내 생각대로다.
실비아의 강력한 의지 때문에 음문이 피어나지 않았구나.
다시 봤고, 감격스럽다.
“아닙니다. 누구한테 털어놓을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니까요. 마음고생이 정말 심하셨겠습니다.”
“아냐... 그래도 아델이 이해해줘서 고마웠어.”
“그렇군요. 좋습니다. 이제 휴게실에 가서 아델을 불러오실래요? 아델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봐야겠습니다.”
“같이 들으면 안 돼?”
“실비아 씨가 같이 계실 경우, 아델은 실비아 씨를 배려하느라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할 겁니다.”
실비아가 일 리 있다는 듯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방에서 나가 아델을 데리고 왔다.
이후 자신은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실비아의 기척이 휴게실로 향했음을 확인한 나는, 걱정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델에게 물었다.
“전부 들었습니다. 아델의 의견은 어떻죠?”
“전... 실비아 언니가 사이비에 빠졌다고 생각해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고 계셔요. 헬릭스에게 넘어간 것이 분명해요.”
아주 착하구나. 역시 나의 아델이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렇지요? 교화를 해야겠지요?”
당연히 그래야지. 실비아를 번뇌에서 구해주자꾸나.
“물론이죠.”
“하지만 걱정이에요. 언니에게 당당히 교화하겠다고 말하긴 했었지만, 저는 교화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거든요. 제 행성이 무척 평화로워서... 이단 심판관들이 신전에 하루 종일 있으면서 뒹굴거릴 정도면 말 다한 셈이에요.”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이단을 몇 명 체포할 생각이니까요.”
“네에...? 그게 무슨 소리지요?”
똘망똘망한 아델의 눈동자를 지그시 주시하던 내가 반문했다.
“저번에 신전 이야기를 꺼냈었잖아요?”
“맞아요.”
“현재 좋은 땅자리에 건물을 올리는 중입니다.”
“그, 그게 정말인가요?”
뛸 듯이 기뻐하는 아델.
그녀를 진정시킨 내가 조용히 말했다.
“네. 하지만 중간에 자재와 돈을 빼먹으려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파렴치한 것들이 또...! 지구는 참으로 더럽군요...!”
“그렇습니다. 정화가 필요해요. 어쨌거나 로사리오교의 신전을 짓고 있는데, 신성한 마음으로 봉사를 해도 모자랄망정 그따위 짓을 하다니... 이단이 분명하잖습니까. 그렇죠?”
꿀럭!
아델의 홍채가 보라색으로 변했다가 돌아왔다.
몸에선 검은 악의가 약하게 피어올랐다가 쏙 들어갔다.
“맞아요...! 감히 그런 짓을...”
“그러니 놈들을 교화시켜보세요. 그 이단들을 이용해서 경험을 충분히 쌓은 뒤, 실비아 씨를 정성스레 교화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