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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289화 (289/471)

EP.289 사이비에 빠진 언니를 구제해야겠어요! #5

맞은편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는 실비아.

요상한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다.

그녀의 연홍색 홍채를 지그시 응시하던 내가 말했다.

“할 말 있으면 하세요.”

“.... 누가 전화 받으라고 했어?”

관계 중간에 있었던 일을 말함이었다.

“제가요.”

실비아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내가 받으라고 했을 줄은 몰랐던 듯했다.

“왜...? 설마 날 갖고 논 거야?”

“화났어요?”

“당연히 화나지... 너 같으면 화 안 나? 내 마음이 어떤지 알면서도 받으라고 했어? 진짜 실망스럽다...”

“질투도 했어?”

“.... 입 닥쳐.”

질투했구나? 아주 좋아요.

근데 예쁜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나오니까 마왕님이 슬프잖아요.

어깨를 으쓱인 내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질투하라고, 화나라고 받은 거예요. 아델한테 말하라고 시켰어. 기분이 어땠어요? 나 보고 싶었지? 자위했어요?”

그 말에 실비아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목소리를 낮췄다.

“미, 미친놈 아니야...? 안 했어...!”

했네, 했어. 그럴 줄 알았지.

베일에 꽁꽁 싸인 척 해봐도 넌 내 손바닥 안이란다.

방글방글 웃은 나는, 그녀의 아메리카노를 빼앗아 들이켰다.

그러다가 화장실에서 나온 한 여자가 우릴 스쳐지나가자 눈을 힐끔 돌렸다.

컬이 잔뜩 들어간 머리가 제법 예쁘다.

검은색 코트를 입고 도도한 듯 걸음을 옮기는 모습도 마음에 든다.

만족스러운 듯 웃는 이런 내 모습을 본 실비아가 한심한 듯 고개를 가로젓는다.

“너 돌았냐 진짜...? 엄청 찌질해보여...”

“왜요? 또 질투했어요?”

“진짜 정신 나간 새끼... 내가 어쩌다가...”

어쩌다가 나 같은 놈한테 빠졌을까... 라고 말하고 싶은 듯했다.

장난은 여기까지만 하자.

커피를 내려놓은 나는 표정을 굳혔다.

“박사님한테 들었어요. 마물도 안 나타났는데 변신해서 에너지를 소모했다죠?”

순식간에 바뀐 분위기에 당황한 실비아가 헛기침을 했다.

그러다가 찔끔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응...”

“갑자기 왜? 이유라도 있었어요?”

“그건...”

내 눈치를 보는 실비아.

아델과의 전화통화로 인해 싱숭생숭해져서, 리프레쉬를 하려고 변신한 게 틀림없다.

변신하면 혼란스럽던 마음이 진정되니까.

라고 생각하던 나는, 이어지는 실비아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했다.

“아이테르의 한계를 알고 싶어서.”

“한계?”

“아이테르의 원래 이름은 에테르야. 너도 알지?”

“그야... 두 사람이 지구에 오셨을 때 그랬었잖아요. 에테르라고.”

“맞아. 여태까진 그걸 누가 만들었는지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어. 그 제작자가 누구인지는 너도 예상하고 있을 거야.”

로사리오지.

예상이 아니라 확신이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로사리오 님이요?”

“응. 아델이 받은 신탁에 다섯 명이 있는 것과, 다섯 개의 아이테르... 그리고 아이테르가 정의로운 에너지인 것을 종합해보면... 분명히 로사리오 님께서 만드셨을 거야.”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성적인 방법으로 충전된다는 게 조금 그렇긴 하지만요. 로사리오 님은 약간... 개구쟁이 같으실 수도 있겠네요.”

“.... 그건 나도 동의해.”

“근데 그게 한계랑 무슨 상관입니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 아이테르는 악을 멸하는 힘이잖아. 강대한 적에 맞서 싸우기엔 에너지량, 그리고 충전방식이 걸려. 로사리오 님 같은 전지전능하신 분이 아이테르를 만드셨다면... 완벽해야하지 않을까?”

지금도 완벽한데? 악의로 침식시킬 수 있잖아.

이 이유 하나만으로도 완벽한 에너지지.

“하고 싶은 말씀이 뭔가요?”

“여러 방법을 통해 아이테르의 진정한 힘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보는데, 일단 에너지를 전부 소모해보고 싶어. 왜 이런 말도 있잖아. 만물은 무에서부터 창조됐다고.”

빙빙 돌려서, 자신이 생각해낸 의견처럼 말하고는 있었지만 나는 눈치챘다.

저게 실비아가 받은 신탁이라는 것을.

아이테르의 진화방법에 대해 조언이라도 들은 건가?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그 전까진 절대 마음대로 하게 두지 않는다.

“혹시 저와의 충전 때문에 죄책감이 느껴지는 겁니까? 그래서 뭐라도 해보려는 거예요?”

“그, 그건 절대 아냐...! 그냥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물어보고 싶어.”

“실비아 씨의 의견은 받아들이겠습니다만, 안 됩니다.”

단호한 내 거절에 흠칫한 실비아가 묻는다.

“왜?”

“리스크가 너무 커요.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데 에너지를 다 쓰겠다니... 지금 마물들이 조용하다고 방심이라도 했나요?”

“난 방심하지 않았어. 어느 때보다 더 경계하고 있는 중이야.”

“그런 사람이 에너지를 다 쓰겠다고 해요? 그러다 소멸이라도 된다면요? 그렇게 되면 비스트 슬레이어 중에서 가장 강한 실비아 씨를 잃게 됩니다. 절대 승낙할 수 없어요.”

실비아가 가슴을 쿵쿵 쳤다.

로사리오는 자신에게 방향성을 제시해줬는데, 나는 거절하니까 답답하겠지.

그냥 솔직하게 신탁을 받았다고 말해!

그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줄 테니까.

계속 비밀을 가지고 있으면 너만 손해라고.

실비아가 탁상에 올려놓은 손을 꽉 쥐었다.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피가 통하질 않아 하얘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한숨만을 푹푹 내쉬던 그녀가 날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 의견은 잘 알아들었어. 요는 불안하다는 거지?”

“예, 엄청 불안합니다.”

“그럼 내가 했던 말은 다 빼놓고, 네 의견은 어때? 아이테르에게 뭔가 비밀이 있을 것 같아?”

로사리오가 지껄인 얘기잖아. 그럼 무조건 있겠지.

그러니까 내 허락 없이 이상한 짓 같은 건 할 생각하지 마.

그랬다간 곧바로 봉인이야.

나는 너희들을 스무스하게 떨어뜨리고 싶어.

여기서 대놓고 없다 말하면 실비아가 의심하겠지.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는 게 중요하다.

“글쎄요. 아이테르 자체가 미지의 에너지고, 저희가 완벽하게 파악했다고 자신할 수 없는 만큼 뭔가 더 있을 것 같기는 해요.”

“그렇지?”

“하지만 그저 가능성일 뿐입니다. 심증만으로 움직이기엔 너무 위험해요. 그러니까 경거망동할 생각은 마세요.”

“.....”

“대답.”

“자, 장담은 못하겠어.”

여전히 반골이로구나.

달달하게 해주면 말 들을래?

“실비아 씨.”

“왜...”

“실비아 씨 얼굴에 비밀이 가득해보여요.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전 실비아 씨를 사랑하니까 기다려드릴게요. 마음의 준비가 되면 얘기해요.”

사랑한다.

실비아와 특별한 관계를 가진 이후 처음 해주는 말이었다.

입을 떡 벌린 저 모습을 보니 제대로 감격한 것 같다.

한동안 입을 열지 못하던 실비아가 날 나무랐다.

“그런 놈이 나한테 장난을 쳐?”

“그것도 사랑하니까 하는 거지.”

“개소리하지 마... 이 변태새끼야...”

“나 변태인 거 알고 있었잖아. 맞춰줘요.”

“하... 진짜 짜증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 입가에는 왜 얕은 미소를 띠우고 있는 건데?

피식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주었다.

살살 꼬드겨줬으니까 답답하면 말하겠지.

사랑의 힘은 위대하잖아? 넌 그걸 믿어야 돼.

@@

엘리베이터에 탄 실비아가 벽에 머리를 쿵 박았다.

그냥 전부 솔직하게 말할 걸 그랬나?

로사리오에게 신탁을 받았다고?

타이라트가 지혁에게도 어떤 수를 써놨을까 불안해서 돌려 말했는데... 괜히 그랬나 싶다.

얻은 게 아무것도 없잖은가.

괜히 지혁에게 경각심만 심어주고 말았다.

멍청한 년... 자신은 진짜 바보였다.

두근!

심장소리가 크다.

지혁에게 들었던 사랑한다는 말이 아직까지 뇌리에 남아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모든 것을 잊고 지혁에게 안기고 싶었었다.

너무 놀라서 대답해주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

다음번에 만날 땐, 자신도 사랑한다고 말해주리라.

띵-!

[25층입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실비아는 자신의 집으로 갔다.

도어락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문을 여니, 거실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개새끼들! 다 죽여 버리겠어!]

남자의 격정적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델이 액션영화라도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선 실비아는, 자신을 보며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는 아델을 발견했다.

“언니! 오셨나요?”

자신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미소였다.

관계 도중 전화를 받은 부분에 대한 미안함은 없는 건가?

아니, 지혁이 직접 시킨 일이라고 했으니까 넘어가주자.

“응. 밥 먹었니?”

“네! 치킨 시켜먹었어요. 언니도 얼른 앉으셔요! 같이 영화 봐요!”

아무런 걱정도 없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속 편하다... 속 편해...

지금 자기가 무슨 처지에 처해있는지도 모르고...

“그래...”

아델의 옆에 털썩 주저앉은 실비아가 TV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그녀는 깜짝 놀라고야 말았다.

잔인한 고어 씬이 연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델은 이런 영화를 보지 못하는데...

‘설마...’

설마 이것도 타이라트의 영향인가 싶었던 실비아가 잠자코 영화를 보며 아델의 반응을 살폈다.

복수를 결의한 주인공이 적들의 눈알을 뽑고, 창자를 꺼내고, 목을 자른다.

“히이익!”

그럴 때마다 아델은 놀라선 실비아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잔뜩 겁을 집어먹는 모습을 보면 평소의 아델 같긴 한데...

그냥 폭력적인 영화가 당긴 건가?

그래도 지금은 촉각을 곤두세워야할 때다.

이런 걸 보면 정서에 안 좋으니 꺼야겠다.

“아델, 우리 채널 돌릴까? 나 무서운데...”

그 말에 아델이 고개를 슬쩍 들었다.

“그런가요...? 그렇다면 그렇게 하셔요...”

아델도 은근히 다른 걸 보길 원했구나.

대답을 들은 실비아는 아예 TV를 껐다.

그러자 아델이 미간을 살짝 구겼다.

“왜 끄시지요? 채널을 돌리는 게 아니었나요?”

몸을 돌린 실비아가 아델의 어깨를 세게 잡았다.

“아델.”

“네?”

“절대 무너지면 안 돼.”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가요?”

“로사리오 님에 대한 믿음... 잃어버리면 안 돼. 알았니?”

아델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말씀이시지요?”

“그냥... 말하고 싶었어.”

“제 믿음은 확고해요. 걱정하지 마셔요.”

걱정을 안 할 수가 있겠니?

로사리오 님께서 네가 악에 물들었다고 하시는데.

“응...”

“왜 이런 이상한 행동을 하시는 건가요? 언니가 너무 수상쩍어요. 걱정이 되니 고민거리가 있다면 털어놓도록 하셔요.”

이걸 말해야 할까?

그러면 분명히 성녀인 자신에게 찾아오지 않았다고 화를 낼 텐데...

또한 아델은 분명 지혁에게 자신이 들은 말들을 말할 텐데, 그렇다면 지혁이 서운해 할 것이 뻔했다.

자신에겐 말하지 않고 숨겨놨다고 말이다.

혼자 끙끙 앓는 것도 지치긴 한다.

정말 답답하다. 대나무밭에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다.

어떡할까 고민을 해보던 실비아가 눈을 빛냈다.

혹시... 혹시 아델도 자신처럼 신기를 모은다면, 로사리오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악에 물들었다고는 해도 아델의 신성력은 정상이다.

만약 여기서 새로운 신기를 받아 몸과 마음을 정화시킨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네 말대로, 난 고민거리가 있어. 근데... 누구한테 말하기 힘들어.”

“저한테도요? 저를 믿지 못하시는 건가요?”

“그건 절대 아냐. 하지만 네가 도와줄 수 있어.”

“그게 무엇이지요?”

“나랑 같이 어디 좀 가자.”

“어디요?”

“날 믿는다면 아무것도 묻지 말고 따라와 줬으면 좋겠어. 그래줄 수 있니?”

아무것도 모르는 강아지처럼 눈을 똥그랗게 뜬 아델.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말한다.

“물론이에요.”

망설임이 전혀 없다.

아직까진 몸과 마음이 모두 깨끗하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해도 될까?

아니, 복잡한 생각은 그만하자.

일단 해보는 거다. 뭐든 해봐야 활로가 열린다.

“가자. 외투 입어.”

“네.”

쪼르르 방으로 들어간 아델을 기다리며, 실비아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마지막... 이번이 마지막이야.’

이번 일도 실패하면, 그냥 가장 믿는 두 사람에게 터놓고 말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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