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285화 (285/471)

EP.285 사이비에 빠진 언니를 구제해야겠어요!

“이,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야...!”

무척 당황해하던 실비아가 침대에서 뛰쳐나왔다.

재빨리 불을 켠 그녀는 의자에 앉아있는 내 뒷목을 제법 강하게 쳤다.

찹! 하는 찰진 소리와 동시에 고개가 앞으로 튕겨져 나간 나는, 씨익 웃는 표정으로 실비아를 바라보았다.

“보고 싶어서 와봤죠.”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건데...?”

“아델이 비밀번호 알려줬어요. 바나나우유가 모자라다고 채워 넣으래서 와봤는데, 실비아 씨가 주무시고 계시더라고요.”

“미치겠네... 언제 온 거야?”

“3분 정도 됐어요.”

“하아...”

기다란 날숨을 내쉰 실비아가 머리를 짚었다.

힘없이 침대에 걸터앉은 그녀가 물었다.

“아델은?”

“박사님이 밥 먹자고 부르셨어요.”

“그래...? 근데 내가 무슨 잠꼬대를 했는데?”

“힘겨운 듯 끙끙거렸어요. 그래서 물어본 거야. 괜찮냐고. 근데 뭐... 큰 이상은 없는 듯하네요. 힘을 실어서 머리통을 때릴 정도면.”

“그... 미안. 조금 희한한 꿈을 꿔서 그래.”

“무슨 꿈인데요?”

“나중에... 나중에 말해줄게.”

나는 실비아의 눈을 빤히 응시했다.

눈은 감정이 잘 드러나는 기관이다.

실비아의 동공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으로 볼 때, 그녀가 지금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 왜 그렇게 쳐다봐...?”

“서운해서요.”

“서운하다니...? 뭐가?”

“저한테 비밀이 있는 것 같아서.”

그 말에 실비아가 자신의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구슬픈 얼굴로 내 시선을 피한 그녀가 말한다.

“말할 수 있을 때... 가장 먼저 너한테 말할게. 지금은 곤란해... 미안... 이 얘기는 그만해주라.”

“알았어요.”

확실히 뭔가가 있다.

근데 그게 뭔지 모르겠어서 답답하다.

종교시설과 아델에게 한 질문을 생각해보면, 로사리오와 만났을 수도 있다.

아델 또한 로사리오를 꿈에서 만났다고 했으니까 말이다.

설마 신탁 같은 걸 받은 것은 아니겠지?

“자리 좀 피해줄래? 혼자 생각할 거리가 있어서...”

“그 전에 디바이스부터 줘보세요. 슈트를 완성했는데 넣어드릴게요.”

“아, 응...”

실비아가 망설임 없이 디바이스를 풀어 내게 내어주었다.

이런 행동을 보면 날 의심하거나 하는 건 아닌 듯한데... 왜 거짓말을 하는 거지?

갖고 온 가방에서 디바이스 개조용 장비를 꺼낸 내가 말했다.

“잠깐 나가계실래요? 집중해야 돼요.”

“그, 그래...? 알았어. 절대 실수하지 마.”

신신당부를 한 실비아가 방에서 나가 문을 닫았다.

나는 디바이스 봉인장치가 잘 작동되고 있는지 확인을 해본 후, 이상이 없자 소형화시켜놓은 슈트를 집어넣었다.

실비아야. 대체 나한테 뭘 숨기고 있는 거니?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강제로 알아내기 전에 네 입으로 말해줬으면 좋겠구나.

15분에 걸쳐 일을 마친 나는 실비아를 불렀다.

방으로 들어온 그녀에게 디바이스를 내민 내가 말했다.

“지금 한 번 변신해보실래요? 자동으로 착용될 겁니다.”

“지금...? 이따가 혼자 해보면 안 돼?”

“이상이 있으면 바로 보완해야 되니까 지금 확인해보는 게 맞겠죠?”

“웃기시네... 너 내가 슈트 입은 모습을 보려고 그렇게 말하는 거잖아.”

“물론 그런 의도도 있기는 하죠.”

실비아가 실소를 터뜨렸다.

솔직한 내 대답이 웃긴 모양.

다 죽어가는 얼굴에서 그나마 볼만하게 변했구나.

그래, 넌 얕은 미소를 짓고 있는 표정이 어울려.

“음흉한 자식...”

그리 말한 실비아는 디바이스를 두 번 터치했다.

화아악-!

연홍색 빛이 번쩍하고 일어났다 수그러들면서, 슈트를 입은 실비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광택이 묻어나오는 흰색 슈트.

바지는 라텍스와 가죽바지를 반쯤 섞은 것 같았고, 구두와 일체형이었다.

상의는 간편해 보이는 가죽재킷 느낌.

벨트엔 단검집을 넣을 수 있게끔 양옆으로 홈이 나있었는데, 전체적으로 제복 같은 느낌을 물씬 풍겼다.

실비아의 냉랭한 이미지와 완벽하게 어울린다.

치마보다 훨씬 낫네.

그녀의 슈트 차림을 대놓고 살펴보던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괜찮네요.”

그러자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실비아가 신기하다는 듯 말한다.

“엄청 편한데...? 구두만 빼면 옷을 입은 것 같지도 않아...”

“폴리머스가 괜히 만능 물질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에요.”

“고마워... 솔직히 사심이 잔뜩 들어가서 기대 같은 건 하지 않았는데... 엄청 만족스러워.”

“너무하시네. 어쨌든 저도 만족스럽네요. 이 상태에서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 말에 실비아가 기겁을 하더니 변신을 풀었다.

그리고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날 나무랐다.

“이게 미쳐가지고... 이제 빨리 가.”

“어딜요?”

“집에.”

“왜? 조금만 같이 있다가 갈게요.”

“됐으니까 가...”

내 한쪽 팔을 뒤로 꺾으면서 등을 미는 그녀.

힘으로 그녀의 결박을 뿌리친 나는 몸을 돌렸다.

“지금 고생해서 슈트를 만들어준 사람한테 이게 무슨 태도죠?”

“미안... 근데 생각할 거리가 많단 말이야... 다음에 하자...”

“무슨 생각할 거리?”

“나중에 말해주겠다고 했잖아.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쉬어.”

단호한 말투였다.

선물까지 줬는데 이러니까 정말 서운하네.

“알겠습니다. 대신...”

말끝을 흐린 내가 입술을 슬쩍 내밀었다.

그러자 실비아가 못 말리겠다는 듯 헛웃음을 켜더니, 애정이 잔뜩 담긴 키스를 해주었다.

너 나중에 꼭 말해준다고 했다?

말없이 수상한 짓을 벌이면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그러니까 처신 잘해라.

@@

지혁을 보낸 실비아는 아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델, 어디야?”

-저 지금 집으로 가고 있어요. 뭐 사갈 거 있나요?

집에 오고 있다? 지혁과 그렇고 그런 일을 했으면 정말 큰일이 날 뻔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아니, 없어. 얼른 와. 나 심심해.”

-금방 갈게요! 조금만 참으셔요!

힘찬 아델의 대답을 들은 실비아는 전화를 끊고 생각에 잠겼다.

헬릭스를 닮은 자가 아델의 마음을 좀먹고 있어서, 로사리오의 목소리가 닿지 않는단다.

아델이 최근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이유도, 자신과 싸웠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던가?

‘아냐, 그건 내 잘못이 크긴 한데...’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헬릭스를 닮은 그놈... 그놈이 대체 언제, 어떻게 아델의 마음을 좀먹었고, 자신에게도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내야 한다.

‘난 정상처럼 보이는데...’

하지만 로사리오가 한 말이니 믿어야 한다.

일단 그놈은 타이라트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놈은 마왕이니 크나큰 악의를 가지고 있을 터.

성녀인 아델의 마음을 좀먹기에도 충분하다.

헌데 무슨 능력을 써서 아델을 물들였을까?

바이러스처럼 살포하기라도 한 건가?

마물의 몸 안에 숨겨놓고, 놈들이 죽으면 공기 중으로 퍼지도록 만들었을 수도 있다.

이런저런 고민을 해보던 실비아는, 타이라트가 변장을 해서 인간계에 내려왔다는 가정을 하기에 이르렀다.

가장 먼저 아델에게 접근을 해서, 그녀에게 악한 힘을 심어주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망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피식했다.

“말도 안 돼...”

아델을 물들이려면 신성력에 감지되지 않고 접근했어야 하는데, 마왕 정도라면 어마어마한 마기를 가지고 있을 터.

아무리 은밀하게 숨긴다 해도 들키지 않을 리가 없었다.

만약 그러려고 했다면 아델이 초창기에 눈치를 챘을 것이다.

“모르겠다...”

무식한 자신에게 이런 시련을 주다니...

로사리오도 너무했다.

한숨만 푹푹 내쉬던 실비아는, 로사리오가 그 다음에 했던 말을 상기했다.

순수한 에테르가 자신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준다고 했고, 에테르는 무에서 창조되는 만물과 똑같다고도 했다.

무는 아무것도 없다는 뜻인데...

이는 즉, 아이테르의 에너지를 전부 소모하라는 뜻인가?

이게 정답일 것 같다는 강한 확신이 선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신은 아이테르의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영영 사라지거나, 사라지지 않더라도 다시는 사용하지 못할 것 같았으니까.

그저 불안감에서 비롯된 강박으로, 증명조차 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생각했다.

‘좋아.’

이젠 든든한 보금자리인 디바이스도 있겠다, 한 번 0퍼센트가 될 때까지 소모해보자.

다짐을 마친 실비아가 다시금 변신을 하려고 할 때,

삐비빅-! 덜컥!

현관문에서부터 도어락 소리가 들리더니, 아델이 들어왔다.

움찔한 실비아는 변신을 그만두고 거실로 뛰쳐나갔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아델의 얼굴부터 시작해서 온몸을 샅샅이 살피기 시작했다.

“어, 언니...? 뭐하셔요...?”

아델의 당황스런 물음에도 아랑곳 않고 몸을 만지작거리던 실비아가 중얼거렸다.

“몸은 괜찮은 것 같은데... 음...”

“네...?”

양손을 교차해 자신의 가슴으로 가져가는 아델.

그녀의 눈은 무척 떨리고 있었다. 겁을 집어먹은 듯했다.

그제야 자신의 실책을 알아차린 실비아가 입을 꾹 다물었다.

갑작스레 이런 짓을 하다니... 아델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어찌해야할까 고민하던 실비아는, 아델을 소파로 데리고 갔다.

이후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아델.”

“.... 네...?”

“너 혹시 요즘 무슨 일 있니?”

“그게 무슨 말씀이셔요...?”

“아니... 평소와는 다른 요상한 기분이 든다거나... 아니면 네 주변에서 막... 뭐라고 해야 할까... 나쁜 기운이 느껴진다거나... 신성력을 사용할 수 없다거나.”

아델이 인상을 찌푸렸다.

“신성력을 사용할 수 없다니요...?”

“실례가 되는 말인 건 알지만 대답해줬으면 좋겠어. 부탁할게.”

진중한 실비아의 표정을 빤히 쳐다보던 아델.

그녀의 고개가 작게 가로저어졌다.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아요... 신성력은 제 몸에 그대로 있단 말이에요. 지금도 느껴지구요. 대체 왜 그러시지요?”

실비아가 망설였다.

자신이 로사리오에게 신탁을 받았다고 말한다면, 아델은 분명 화를 낼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위해서라면 말해야 한다.

관계가 나빠지더라도 말이다.

허나 그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건 바로 아이테르.

로사리오의 지시 또한 순수한 아이테르의 인도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이게 가장 우선순위로 두어야 할 일이었다.

아이테르를 전부 소모하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는 게 먼저다.

하지만 그 전에... 확인부터 해보자.

아델이 정말로 악에 물들었는지.

“그러면 나한테 한 번 보여줄 수 있을까?”

“보여달라구요? 신성력을?”

“응.”

“언니... 오늘따라 왜 이렇게 이상할까요...? 혹시 술을 드신 건가요?”

“아델, 날 믿는다면 한 번만 보여줘.”

실비아의 간절한 부탁.

잠깐 침묵하던 아델이 귀엽게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휴... 다짜고짜 이런 부탁을 하는 언니를 이해할 수가 없네요.”

“미안해.”

“그냥 보여드리기만 하면 되지요?”

“응, 아주 약간만 보여주면 충분해. 아니다, 나한테 쏴줘. 로사리오교의 기운을 느끼고 싶어.”

“참... 알겠어요...”

고개를 주억거린 아델이 힘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그녀의 몸에서부터 피어나기 시작하는 금빛 기운.

그것을 본 유심히 살펴본 실비아가 생각했다.

아델의 신성력을 받으면 포근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녀가 악에 물들었다면, 신성력은 변질되어 악한 힘이 되었을 것이다.

이로 인해 자신이 영향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로사리오가 그랬다.

자신의 강인한 마음이 악한 힘을 한켠으로 몰아냈다고.

그러니 마음을 굳게 먹으면 괜찮을 거다.

실비아는 금빛 기운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자 디바이스에 손을 가져갔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다고 느껴진다면 바로 변신할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우웅-! 웅!

자신의 몸에 닿은 신성력은 저번에 느꼈을 때처럼 부드럽고, 순수했으며, 따뜻했다.

‘무, 뭐야...?’

이 기운은 평소의 아델이잖은가...

혹시 로사리오가 착각을 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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