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284화 (284/471)

EP.284 신탁 #2

평소에 타는 차가 아닌 다른 차에 탄 나는 멀리서 실비아를 미행했다.

“얘 봐라...?”

만났을 때는 오피스텔 공원에서 산책을 하려는 척을 하더니, 다른 곳으로 가고 있다.

나한테 거짓말을 했다는 뜻이다.

복도에서부터 상태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정답이었구나.

어디 무슨 짓을 하나 보자고.

실비아는 곧 택시를 타고 동네를 벗어났다.

멀리 가지는 않았다.

한 10분 정도 가다가 규모가 제법 큰 성당에서 내렸다.

‘성당?’

갑자기 여긴 왜 온 걸까?

평소엔 쳐다보지도 않던 곳이면서.

신앙심이 갑작스레 폭발한 것도 아닐 텐데...

택시요금을 지불한 실비아는, 마침 입구에 나와 있던 신부와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디바이스에 내장된 음성기능을 몰래 켜보았다.

-자유기도를 드리고 싶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안 되나요?

-물론 가능합니다. 처음 뵙는 자매님이라 확인만 해본 것뿐입니다. 들어가셔서 자유롭게 앉으시면 되겠습니다.

-입장료는 없나요?

순진무구한 물음.

신부가 작게 웃음을 터뜨린다.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신부님.

-별말씀을...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하길...

자유기도라... 천주교를 믿는 것도 아니면서 성당에서 기도?

아리송한 일 투성이다.

입장료도 물어본 것으로 보아 오늘 처음 간 것 같은데... 일단 기다려보자.

실비아는 1시간 정도 후에 성당을 나섰다.

예의 바르게 신부와 인사를 하고 나온 그녀는, 또 택시를 잡고 어딘가로 향했다.

이번에 그녀가 들른 장소는 교회였다.

여기선 거의 2시간 가까이 있다가 나왔다.

다음은 절. 플라잉 택시를 타고 서울까지 올라가 유명한 곳을 찾았다.

성당, 교회, 그리고 절.

모두 종교와 관련된 대표적인 장소였다.

뭘까? 아델처럼 새로운 종교를 배우는 데에 관심이 있어보이지도 않는데...

2시간 뒤에 절에서 나온 실비아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는 않았다.

일이 잘 안 풀린 것 같았다.

절에서 나와 시내로 간 그녀는 배가 고팠는지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갔다.

투명한 유리 속에서 햄버거를 먹는 실비아의 모습을 바라보며 전화를 거니, 휴대폰 화면을 보고 놀란 그녀가 빠르게 입을 오물거렸다.

그러더니 조신하게 전화를 받는다.

-응, 지혁아. 완성됐어?

“그건 아니고요, 뭐하시나 해서.”

-나... 그냥 산책 끝내고 밥 먹으러 왔어.

“산책을 꽤 오래 하시네요?”

-그냥... 걷다보니까 생각이 좀 많아지더라.

“그래요? 무슨 고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화의 장은 언제나 열려있어요. 아시죠?

-응... 알았어. 고마워.

몇 마디 더 대화를 나누고 전화를 끊은 나는 실비아를 살펴보았다.

얼굴을 싸매고 있는 그녀.

날 속여서 미안한 표정이다.

난리도 아니다. 일탈을 저지르고 있는 실비아의 저의가 궁금하다.

운전대를 잡고 깊은 고민을 하던 나는, 아델에게서 전화가 오자 휴대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지혁 씨! 왜 연구실에 안 계시지요?

“잠깐 회사에 일이 생겨서요. 만나고 싶으셨으면 미리 연락을 주시지... 어쨌든 금방 가겠습니다.”

-몇 분?

“30분 안에 도착할 듯싶습니다.”

-좋아요. 시간을 잴 테니 얼른 오셔요. 오실 때 참치김밥을 사오는 게 좋겠어요. 떡볶이도 포함이에요.

“예.”

아델은 알려나? 실비아의 이상한 행동을?

한 번 슬쩍 떠봐야겠다.

시동을 건 나는 은평구 쪽으로 차를 돌렸다.

**

턱을 괴고 아델을 빤히 바라보는 나.

떡볶이와 김밥을 흡입하던 아델이 이런 내 시선을 느끼고는 물었다.

“김밥 하나 드릴까요?”

“네.”

가장자리에 있는 가장 큰 김밥을 집은 아델은, 그걸 떡볶이 국물에 반쯤 담그고는 내밀었다.

잽싸게 김밥을 받아먹고 삼킨 내가 히죽 웃었다.

“맛있네요. 하나 더 주세요.”

“배가 고프셨으면 2인분을 사오시지 그랬어요.”

“딱히 고프진 않았는데... 아델이 먹는 모습을 보니까 갑자기 뺏어먹고 싶어서요. 저한테 주기 아까우세요?”

“그럴 리가 있나요? 다 드셔도 되어요.”

아델이 주는 김밥을 하나 더 먹은 나는 물로 입가심을 했다.

“아델.”

“하나 더 드려요?”

“그게 아니고... 연구실에 오던 도중 실비아 씨를 봤습니다.”

“으음? 실비아 언니를요?”

“예. 우연히 봤는데... 서울에 있는 절에 들어갔다 나오시더군요.”

“절?”

고개를 30도 각도로 꺾는 그녀.

눈은 똥그랗게 뜬 채로 날 응시하고 있다.

뜬금없는 장소가 나오니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언니가 절을 왜 가셨을까요?”

“제가 물어봤잖아요. 뭐 짚이는 부분은 없나요? 실비아 씨가 불교를 새로 믿게 됐다든가...”

“그럴 리가요. 언니가 오늘 점심에 이랬어요. 자기도 이제 본격적으로 로사리오교의 신도가 되고 싶은데, 그분의 모든 것이 궁금하니 옥음이 어떤지 알려달라구요.”

옥음이라... 갑자기 목소리를 궁금해 한다고?

보통 자기가 모시는 신의 얼굴부터 알려고 하지 않나?

“그러고 보니 언니가 오늘따라 오지랖을 부리시더라구요. 식탁에 앉은 제게 식전기도를 드리지 않느냐고 여쭤보시질 않나... 요즘 통 기도를 드리지 않아 노파심이 생겼다고 하시질 않나...”

“아델은 식전기도를 잘 드리지 않잖습니까.”

“그러니까요. 언니도 참... 저를 너무 걱정하셔서 탈이에요.”

아직 공식적인 신도도 아닌 주제에 성녀인 아델에게 그런 말을 했다?

확실한 오지랖이었다. 평소의 사려 깊은 실비아라면 하지도 않았을.

상황을 파악해보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한 것도 아니고, 오늘 처음 의문을 제기한 듯한데...

이는 갑작스런 심경의 변화라 봐도 좋았다.

원인은 분명히 로사리오와 관계되어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델에게 저런 질문을 할 이유도 없었거니와, 종교시설을 계속 들르는 것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예의주시해야겠어.’

어차피 실비아는 내 손아귀 안에 있다.

뭘 하든 날 벗어날 순 없을 것이다.

@@

밤이 될 때까지 총 여섯 군데의 종교시설을 돌아다닌 실비아는, 자신의 예상이 완벽하게 틀리자 실의에 빠졌다.

실패, 실패, 그리고 또 실패.

로사리오를 만나기는커녕 시간만 버렸다.

집으로 돌아온 실비아는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아델은 지혁을 만나고 있겠지.

자신도 만나고 싶은데, 이게 대체 뭐라고 열심히 뛰어다녔는지...

천장을 응시하던 실비아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너무하세요...’

꿈에서 무언가를 말해줄 것처럼 얘기했으면서 쏙 사라져버리다니... 굉장히 서운하다.

허탈함에 한숨만 푹푹 내쉬던 실비아의 눈꺼풀이 잠깐 감겼다가 다시 열렸다.

그 순간, 실비아의 시야가 바뀌었다.

심지어 분명히 누웠었는데, 지금은 서있다.

두근!

가슴이 뛴다. 이건 자신이 로사리오를 처음 만났을 때 겪었던 일과 똑같았다.

장소는 다르지만 확실했다.

자신은 로사리오의 부름을 받았다!

거칠어지는 호흡을 진정시킨 실비아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경건함이 절로 느껴지는 기둥들이 양옆으로 쫘악 늘어서있다.

벽은 온통 하얗다.

전체적으로 아델의 행성에 있을 때 잠시 와봤던 신전과 비슷했다.

중앙에는 거대한 조각상이 떡하니 있었다.

그 어떤 미사여구를 붙여도 모자랄 정도로 찬란한 미모를 빛내고 있는 조각상.

실비아는 저 조각상이 로사리오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 이제 어떻게 해야...’

그냥 기다리면 되나? 저번처럼?

이라고 생각하던 실비아는 조각상을 빤히 쳐다보았다.

정말이지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미모.

감정 따윈 전혀 없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무척 아름다웠다.

왜 아델이 어떠한 상상을 하든 그 이상이라고 말했는지 알겠다.

“와아...”

순수한 감탄을 터뜨린 실비아가 조각상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려고 할 때,

-실비아 리즈. 강인한 마음을 지닌 딸이여.

어제 머릿속을 울렸던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어억!”

그녀는 기겁을 하고 말았다.

조각상이 말을 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조각상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느껴졌다. 말을 하고 있다고.

‘치, 침착하자...! 침착해...!’

애써 마음을 가다듬은 실비아는, 제발 깨지 않길 바라며 입을 열었다.

“로, 로사리오 님이세요...?”

마음만 같아선 당당하게 묻고 싶지만 더듬거리는 말이 튀어나왔다.

첫 대담인데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창피했다.

로사리오를 알현했던 사람들의 반응 중에서, 자신의 반응이 가장 한심했으리라.

-그렇습니다, 실비아 리즈여. 저는 로사리오, 천계의 주신입니다.

어감 자체에 겸손과 기품이 가득했다.

천상의 목소리다. 귀가 정화되는 것 같다.

게다가 너무나도 기쁘다.

로사리오가 자신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었다는 사실이.

입이 함지박 만하게 벌어진 그녀는, 자신이 아직까지 서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이 무슨 무례란 말인가? 당장 무릎을 꿇어야 한다.

헌데 그러지 못하겠다. 무형의 힘이 몸만 꽉 옥죄는 것 같은 기분.

이건 로사리오의 힘인 듯했다.

그렇다고 해서 죄송스런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냥 이게 자연스러운 것 같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그녀는, 이어지는 로사리오의 부드러운 말투에 침을 꼴깍 삼켰다.

-신기를 모아주신 덕분에, 신전이 없는 이곳에서 저희가 이렇게 담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군요. 저의 딸이여.

신기? 교회나 성당에 들러 기도를 드린 일을 말하는 걸까?

그렇다면 자신의 행동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고, 고맙다니요...! 그런 말씀은 마세요. 저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신도답지 않은 자신의 말투가 원망스러워진다.

“죄송해요... 제 말투가... 많이 한심하죠...?”

-자격지심은 갖지 마세요, 딸이여. 당신의 마음은 오롯이 전해져오고 있답니다.

이 얼마나 자비로운 말씀인가.

가슴이 만족감으로 가득 찬다.

몇 번이고 로사리오에게 감사인사를 전한 실비아가 물었다.

“그... 로사리오 님께서는 저를 찾으신 거죠...? 제게 하실 말씀이 있으셔서... 맞죠...?”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아델에게 하시지 않고 저를...”

-저의 또 다른 딸이자 대리인인 아델라인... 당신의 자매인 그녀에게 제 목소리가 닿지 않습니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저 전지전능한 주신의 목소리가 닿지 않는다고?

“어, 어째서죠...? 아델은 성녀잖아요...”

-헬릭스를 닮은 자가 그녀의 마음을 좀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헬릭스라면... 창세기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놈은 초대 성녀를 타락시켜 로사리오의 뒤통수를 치게 만든 순수악이었다.

-그리고 당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네에...?”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들은 실비아가 입을 헤 벌렸다.

“저, 저도요...?”

-네, 당신 또한 아델라인처럼 그자가 쳐놓은 덫에 걸려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로사리오 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요...?”

-당신의 강인한 마음이 악의 힘을 몰아낸 덕분입니다. 하지만 그 힘은 여전히 당신의 마음속 한켠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부디...

치지직!

기이한 소리와 함께 실비아의 시야가 잠깐 일렁거렸다.

마치 노이즈가 낀 것처럼 말이다.

실비아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담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거의 다 끝나간다는 것을.

-부디 그 마음을 잃지 마십시오. 에테르와 함께 항거하십시오.

에테르라면 아이테르 본연의 이름이었다.

역시 로사리오는 아이테르를 알고 있었구나.

어쩌면 직접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치지지직-!

노이즈가 한 차례 더 강해졌다.

절로 다급해진 실비아는 말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붕어처럼 입만을 뻐끔거리고 있는 그녀에게, 로사리오가 말을 이었다.

-저는 이미 개입이 늦어버렸지만, 당신에겐 시간이 있습니다.그자가 악신의 자격을 갖추게 되어버리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순수한 에테르가 당신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겁니다. 에테르는 무에서부터 창조되는 만물과 똑같습니다. 이를 명심하세요.

우우웅-!

로사리오가 조언을 끝마치자마자, 실비아의 몸이 허공에 뜨더니 조각상과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담화시간이 완전히 끝났다고 자각했다.

아직 머릿속이 정리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헤어져야한다니... 어이가 없다.

‘로사리오 님...! 기다려주세요...! 그자의 정체는 타이라트인가요? 그는 지금 어디 있나요!? 알려주세요! 답을 내려주세요! 저를 이대로 보내지 마세요!’

팔을 허우적거리면서 속으로 외쳐보았지만 허사.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인데... 미치겠다.

그래도 지시는 들어서 다행이었다.

내일 다시 한 번 신기를 모아서 대화를 시도해봐야겠다.

로사리오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려오지 않자, 실비아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여길 올 때처럼 하면 깨어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눈을 뜨니 어두컴컴한 천장이 보였던 것이다.

“하아...”

이제는 조금 적응이 되어버린 감각을 느끼면서, 실비아가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녀는,

“잠꼬대를 참 격정적으로 하시던데, 괜찮아요?”

침대맡에서 들려오는 지혁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까무러칠 정도로 놀라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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