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283화 (283/471)

EP.283 신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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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선한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잠에서 깨어난 실비아는 상체를 일으켰다.

막 일어나서 몽롱해야 정상일 텐데, 그런 느낌이 전혀 없었다.

육체와 정신이 아주 맑았다.

‘뭐지...?’

그녀는 가장 먼저 보이는 푸르른 초원에 입을 떡 벌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자신은 분명히 침대에서 자고 있었는데...

이건 꿈이 확실했다. 그리고 꿈을 꾸고 있다는 걸 확실히 자각하는 중이었다.

그렇다면 자각몽이라는 건데...

몸을 한 바퀴 돌려 주변을 살펴본 실비아는, 자신의 눈앞에 갈대숲으로 뒤덮인 능선이 보이자 고개를 갸웃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장소였다.

헌데 갑자기 나타났다. 그것도 자연스럽게.

원래였다면 경계를 했겠지만, 있는 장소가 워낙 편안해서 그럴 생각이 안 들었다.

능선의 가장 위쪽을 바라보니, 거기에 누군가가 있었다.

멀어서 제대로 분간할 순 없지만 사람 같은 형체였다.

그 형체를 인지한 순간, 실비아는 자신의 몸이 포근해지면서 눈에 힘이 풀리는 느낌을 받았다.

화아악-!

곧이어 그 형체에서부터 황금빛 광채가 줄기차게 뿜어지더니, 하늘까지 영향을 주었다.

마치 태양을 바로 지척에 가져다놓은 듯 샛노랗게 변하는 창공.

익숙하지만 편안하고, 그러면서도 아주 약간 거북한 기분이다.

이건... 신성력 같다. 그것도 몹시 강한.

“아델...? 아델이니!?”

언성을 잔뜩 높여 정체 모를 누군가를 불러보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금빛으로 칠해진 하늘을 바라보며 탄성을 터뜨린 실비아가 능선으로 발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

-실비아 리즈. 강인한 마음을 지닌 딸이여.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온화하고 아리따운 음색이었다.

그 순간,

“핫!”

실비아가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눈을 뜬 그녀가 본 것은 온통 어두운 방 안이었다.

꿈에서 깬 것이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킨 실비아가 이마를 짚었다.

“하아...”

꿈에서 한 번, 그리고 지금 한 번...

깨끗한 정신을 가진 상태로 두 번 잠에서 깬 기분은 정말 이상했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무엇이었을까?

형용할 수 없는 힘이 담긴 음성이 뇌리를 강타했고, 곧바로 꿈에서 벗어났다.

대사는 확실히 기억한다.

자신의 풀 네임을 정확히 불렀으며, 강인한 마음을 지닌 ‘딸’이라고 했다.

그리고... 약간 높으신 분이 아랫사람을 굽어 살펴주는 것 같은 말투였다.

엄청난 신성력, 위엄이 담긴 신비로운 목소리, 가까운 듯하면서도 먼 느낌, 그리고 보진 못했지만 익숙하다고 느껴지는 존재...

이건 혹시...

‘로사리오 님...?’

로사리오가 자신의 앞에 현신한 게 아니었을까?

아니, 너무 확대해석하지 말자.

꿈이었잖은가. 그래, 그냥 요상한 꿈을 꾸었을 뿐이다.

운동이나 가자. 잡념을 날려버리자.

화장실로 들어가 세수를 한 실비아는 시간을 보았다.

6시, 무척 이른 시간.

아델은 어제 늦게 돌아왔다.

지혁과 무조건 격렬한 관계를 가졌을 텐데, 지금쯤 곯아떨어져있겠지.

대충 점퍼를 챙겨 입은 실비아는, 공원을 신나게 달리다가 헬스장 오픈시간이 되자마자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열심히 운동을 했지만, 뇌리에 각인된 신비의 목소리는 전혀 지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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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

“우응... 왜애...”

“일어나, 벌써 점심이야. 밥 같이 먹자.”

“더 잘래요...”

“발가락 간지럽힌다?”

“몰라아...”

비몽사몽한 상태로 앙탈을 부리던 아델은, 자신의 발가락이 무척이나 가렵자 인상을 찌푸렸다.

발바닥을 잔뜩 오므리고 이불 안으로 쏙 들여보낸 그녀가 짜증을 냈다.

“아잇...! 더 잘래요...! 밥 안 먹어요...!”

“그러지 말고 같이 먹자. 네가 좋아하는 스파게티 해놨어. 두 종류로.”

실비아의 말에 귀를 쫑긋한 아델이 고개만 살짝 돌렸다.

“두 종류...?”

“응. 까르보나라랑 로제 파스타.”

“으음...!”

수면욕과 식욕 사이에서 진지한 고민을 하던 아델.

결국 거의 다 채운 수면욕을 머릿속에서 홱 날려버린 그녀가 상체를 일으켰다.

기지개를 쫙 편 아델이 하품을 했다.

“하아암...! 언니는 언제 일어나셨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 다녀왔어.”

“그래요...? 깨워주시지 그랬어요. 같이 가고 싶었는데...”

“방금까지 코골면서 자더라. 깨워도 안 일어났을 거야.”

코골이까지 했다는 말인가?

어쩐지 입과 코가 텁텁하더라니.

어제 지혁과의 그... 부끄러운 일 때문에 엄청 피곤했었나보다.

부스스한 몸짓으로 침대에서 나온 아델이 한손을 뻗었다.

그러자 실비아가 피식하더니, 아델의 손을 잡고 방을 나왔다.

식탁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는 스파게티.

그걸 본 아델이 잽싸게 앉아 포크를 집었고, 까르보나라를 한 입 먹고는 녹아내린 표정을 지었다.

“맛있다아...”

그런 아델의 맞은편에 앉은 실비아가 물었다.

“식전기도는 안 드려도 돼?”

“식전기도요? 원래도 잘 안 드렸었는데... 왜요?”

“요즘 통 기도를 드리지 않는 것 같아서... 노파심에 물어본 것뿐이야.”

“언니도 참... 이상한 걱정을 다 하시네요. 그래도 기뻐요. 언니가 로사리오...”

아델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한 위화감을 느껴서였다.

정확히 설명하기엔 힘들지만, 뭔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느낌이 난다.

“왜 말을 하다 말아?”

걱정스런 물음에 퍼뜩 정신을 차린 아델이 대답했다.

“아, 아니에요... 언니가 로사리오교에 충실하신 것 같아서 좋네요.”

“믿음을 최대한 가져보려고 노력하는 중이야.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역시 언니는 훌륭한 신도가 될 자격이 있으셔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는 실비아.

아델이 스파게티를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린 그녀가 물을 내밀었다.

“저... 아델.”

“네?”

“너는 로사리오 님께 신탁을 받았잖아?”

“맞아요.”

“그러면 그분의 옥음을 들어봤겠네?”

눈을 가늘게 뜬 아델이 물었다.

“그건 왜 물어보셔요?”

“아니... 성경을 읽다보니까 로사리오 님을 너무나 뵙고 싶은 거 있지? 이제 나도 본격적으로 신도가 되고 싶은데... 그분의 모든 것이 궁금해.”

아델이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종교를 절대 안 믿을 것 같던 자신의 언니가 이렇게 변한 게 너무나도 좋았다.

이 모든 것이 전부 로사리오... 아니, 지혁의 은총 덕이었다.

실비아는 지혁을 좋아해서 죄책감을 느꼈고, 그로 인해 종교를 갖게 됐다.

또한 자신과 싸우기도 하면서 우애, 사랑이 깊어졌다.

그러니 지혁의 덕이 맞다!

대충 그렇게 생각한 아델이 목을 가다듬었다.

“흠흠...! 좋아요. 언니니까 특별히 말씀드리지요. 로사리오 님의 목소리는 신묘해요. 자비롭기도 하고, 소녀 같기도 하고... 어쩔 땐 온화한 숙녀 같기도 하지요. 천의 음성을 갖고 계셔요.”

장황하게 말하고는 있었지만 신비하다는 뜻과도 다름없었다.

실비아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오늘 꾸었던 꿈은... 일반적인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

새벽녘에 한 생각대로, 로사리오가 현신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놀라움보다 기쁨이 더 컸다.

왜? 자신을 딸이라고 지칭해주어서.

이는 공식적인 신도로 인정한다는 뜻과도 상통했다.

그런데 왜 로사리오는 자신의 꿈에 현신했을까?

자신은 죄책감과 배덕감을 덜기 위해 신앙을 가진 쓰레기인데, 대리인이자 성녀인 아델이 버젓이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저히 모르겠다.

“언니?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시지요?”

멍하니 앉아 신의 뜻을 이해해보려던 실비아가 고개를 여러 번 털어냈다.

“아, 로사리오 님의 옥음과 성안을 상상해보고 있었거든.”

“어떠한 상상을 하셔도 그 범주를 초월하신 분이셔요. 언니도 열심히 기도를 드리다보면 언젠가 좋은 말씀을 해주실 지도 몰라요. 참고로 일반적인 신도들은 로사리오 님을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답니다.”

“그, 그 정도야?”

“네. 주교 급 인사들 중에서도 드물어요. 저도 딱 세 번 만나 뵌 게 전부에요. 신전에 맡겨졌을 때 한 번, 성녀로 간택되었을 때 한 번, 그리고 신탁을 받았을 때 한 번이요.”

높은 직급을 가진 신도들에게도 나타나는 일이 드문데, 왜 자신에겐 옥음을 들려주었을까?

고작 한 마디뿐이지만 무슨 뜻이 있으리라고 짐작된다.

알아봐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그리고 한 가지만은 명확하게 알겠다.

이 일은 아델에게 말해선 안 된다.

성녀임에도 고작 세 번밖에 만나지 못했는데, 실비아 자신에게 현신했다는 걸 알면 노발대발할지도 모른다.

“그렇구나...”

“그런데 왜 안 드셔요? 입맛이 없으신가요?”

“아, 응... 맛이 별로 없네?”

“맛있기만 한데요...?”

입맛을 찹찹 다시는 아델.

아직 배가 차지 않은 듯했다.

픽 하고 웃음을 터뜨린 실비아가 물었다.

“더 해줄까?”

“으음...! 기다리기 힘든데에...”

“그래...? 그럼 이거라도 먹을래?”

실비아가 자신의 그릇을 슬쩍 밀었다.

그러자 아델이 배시시 웃더니 말한다.

“언니의 부탁이시니, 특별히 제가 먹어드리도록 하지요.”

“응, 많이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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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을 몇 번이나 청했지만 잠이 전혀 오질 않았다.

몸만 아팠다. 오전에 상념을 날려버리려고 오버 트레이닝을 한 결과.

결국 답답한 마음이 든 실비아는, 아델의 놀러 나가자는 칭얼거림도 뒤로한 채 침대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강인한 마음, 신의 딸, 신탁, 계시...

온갖 단어를 검색해보았지만 허사.

원하는 결과를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저런 단어들로 뭘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바라는 건 욕심이었다.

지혁과 한 번 상의를 해볼까?

그도 로사리오교의 신도가 되길 원하니까... 자신의 고민을 아주 잘 들어줄지도 모른다.

지혁의 번호로 전화를 걸려던 실비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지 말자.’

지혁은 아델에게 이 고민거리를 말할 가능성이 있다.

비밀로 해달라고 사정하면 알겠다고 해주겠지만... 지혁에게 죄를 심어주는 꼴이 되니 껄끄럽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밤에 잘까?

그렇게 되면 다시 만날 수 있으려나?

아니면 교회나 성당, 혹은 절에 가볼까?

거긴 온갖 인간군상의 신앙이 모이는 장소.

신기가 있고 경건한 곳이니만큼, 거기서라면 대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괜찮은 생각 같은데...’

일단 뭐라도 해보자.

근처의 제법 큰 성당을 검색한 실비아는, 벌떡 일어나 외투를 걸치고 거실로 나갔다.

아델은 TV를 등진 채로 소파에서 잠들어있었다.

먹고 자고... 세상 참 편하게 사는구나. 그래서 더 귀엽다.

아델은 한 번 잠들면 깊게 자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안했던 실비아는, TV 볼륨을 제법 높여놓고는 현관문을 열었다.

이후 최대한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덜컥!

그때, 지혁의 집 현관문이 열리더니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움찔한 실비아가 물었다.

“지, 지혁아... 어쩐 일이야?”

그러자 지혁이 뭔 황당한 소리를 하냐는 눈빛으로 반문했다.

“무슨... 불청객이 찾아온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왜 이렇게 당황해하시지?”

“그... 타이밍 좋게 만나니까 놀라서... 혹시 어디 가는 거야?”

“연구실이요. 슈트가 거의 다 완성돼서 마무리하려고.”

“아...”

“실비아 씨는요?”

“나는... 집에만 있기 답답해서, 근처 산책이나 좀 하다 오려고...”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린 지혁이 실비아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지하층을 누른 그가 말했다.

“산책은 어디로 가시려고? 오피스텔 공원?”

“거기도 갔다가, 다른 곳도 갔다가... 아무데나 돌아다닐 생각이야.”

“계획 없이 움직이는 스타일은 아니잖아요. 고민거리라도 있어요?”

그의 눈빛은 부드러웠지만, 속에 날카로움이 조금 담겨있었다.

거짓말이 들통 날 것 같다. 마치 온몸이 샅샅이 벗겨지는 느낌이다.

“그런 거 없어.”

“그래요?”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면서 실비아를 지그시 바라보는 지혁.

찔끔한 그녀가 시선을 피했다.

“뭔데...? 왜 그런 눈으로 쳐다봐? 불만이라도 있어?”

“아뇨. 오늘따라 싸늘해서요...”

퍽!

실비아가 지혁의 엉덩이를 약하게 찼다.

태연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행동이었다.

“싸늘하긴 무슨... 슈트는 얼마나 완성됐어?”

“말했잖아요. 마무리 단계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는 거야. 이해력이 왜 이렇게 달려? 바보야?”

“허... 오늘내일 중으로 끝날 것 같습니다. 연락하면 연구실로 오세요. 디바이스에 넣어드릴 테니까.”

“알았어.”

띵-!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지혁의 입술에 간단하게 키스를 한 실비아가 말했다.

“잘 다녀와.”

“그럴게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지혁에게 손을 흔든 실비아는, 표시기가 지하 2층에서 멈추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대폰 지도를 켠 그녀는 곧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 가는 성당은 자유기도를 하는 신자들을 위해 항상 오픈되어있다고 한다.

일단 가서 기도를 드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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