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78 변해가는 아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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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한 표정으로 카페에 앉아있던 실비아는, 아델이 들어오자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가 표정을 가라앉히며 반가운 기색을 최대한 자제했다.
아델의 기분에 따라 맞춰주기 위해서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실비아는 손을 들었다.
“아델, 여기야.”
목소리는 최대한 순하게, 그리고 정적이도록.
이런 노력이 통했을까? 아델이 환히 웃더니 달려와 실비아를 껴안았다.
“보고 싶었어요, 언니.”
포옹을 하며 아델의 등을 쓰다듬던 실비아가 속으로 안도했다.
전화할 때도 텐션이 꽤나 높아 보였는데, 여태까지의 화가 풀린 듯싶었다.
이때가 사과하면 받아줄 확률이 무척 높을 터였다.
포옹을 푼 아델이 맞은편에 앉자, 실비아가 분홍색 액체가 가득 찬 기다란 컵을 내밀었다.
“딸기 요거트 시켜놨어. 네 거야.”
“마침 먹고 싶었는데, 언니는 제 취향을 참 잘 아셔요.”
“응... 너니까 알지.”
희희낙락해한 아델이 요거트를 쪽 빨아먹었다.
그녀의 안색이 매우매우 밝아지는 것을 확인한 실비아는, 자신의 앞에 놓인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고는 사과를 했다.
“아델. 정말 미안해.”
빨대에 입을 가져간 상태였던 아델의 눈매가 초승달 모양으로 변했다.
진심이 느껴져서 기쁜 모양이었다.
입맛을 찹찹 다신 아델이 물었다.
“어떤 부분이 미안하시지요?”
“지혁이를 좋아한다고 한 거... 걔랑 충전하겠다고 한 거, 그리고 걔가 나한테 마음이 있다고 한 거.”
원하는 부분을 정확히 긁어주는 말에, 아델이 고개를 한 차례 크게 주억거렸다.
흐름을 탄 실비아가 말을 이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화가 많이 났을 거라고 생각해. 지혁이는 나한테 마음이 없는데, 내가 거짓말을 해버렸어.”
실비아의 선택은 거짓말이었다.
아주 약간의 진실을 섞은 거짓말.
이미 썩을 대로 썩어버린 자신이다.
어차피 여기까지 온 마당인데, 이젠 철저하게 아델을 속일 생각이었다.
“지혁 씨를 좋아하신다는 말씀은 거짓이 아니지요?”
“응...”
“충전을 하겠다는 마음도?”
“그건...”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리자, 아델이 괜찮다는 듯 말했다.
“말씀해보셔요. 저는 여기 싸우러 온 게 아니라, 언니와 화해하러 온 거니까요.”
“알았어... 충전을 하겠다는 마음은 있어. 하지만... 네가 싫다면 안 할게.”
“그러면 디바이스의 에너지가 다 떨어졌을 때, 어떻게 마물들을 상대하실 생각이지요?”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어. 아직은 다른 남자와 만나볼 생각은 들지 않아... 미안해, 아델. 나 진짜 한심하지?”
아델은 자책을 하는 실비아에게서 무척 편안한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박사와 같이 있을 때보다 더욱 포근한... 그런 느낌.
그 기운이 마기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던 아델이 물었다.
“지금은 몇 퍼센트가 남으셨나요?”
실비아가 주위를 둘러보면서, 조심스럽게 디바이스의 충전량 표시 버튼을 눌렀다.
허공에 나타난 수치는 [84%]였다.
아델이 이런 질문을 할 걸 예상해서, 지혁과 헤어진 뒤 변신한 상태로 16퍼센트를 썼다.
딱 아델과 싸운 직후 남았던 수치였다.
“이 정도...”
에너지 소모에 대한 강박관념?
지혁과 호텔에서 질펀하게 놀 때부터 없어졌다.
어차피 자주 만나서 충전할 예정이었으니,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이러는 게 훨씬 나았다.
자신은 쓰레기가 맞다.
하지만 그딴 이미지 따윈 감수해도 될 정도로 지혁이 좋았다.
어쨌든 아델은 분명 자신과 싸웠을 때 비슷한 수치가 떨어졌을 터였다.
예상대로, 충전량을 보고 의심을 푼 아델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휴...”
“0퍼센트가 되어도 절대 지혁이를 건드리는 일 따윈 없을 테니까... 안심해도 좋아.”
“언니의 마음이 잘 전해지네요. 그래요... 사과는 받아주겠어요. 저희 같이 고민을 해보도록 하지요.”
실비아가 귀를 쫑긋했다.
고민해보자는 말은 혹시... 급한 상황이라면 지혁과의 충전을 허락해주겠다는 의미가 아닐까?
이미 지혁을 몰래, 그리고 꾸준히 만날 마음을 굳힌 상황에서 이게 뭐가 중요하겠느냐만...
그래도 허락을 받고 안 받고는 차이가 컸다.
물론 이건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아델의 성격상 허락 같은 건 절대 해주지 않겠지.
“응... 고마워, 아델.”
“아니에요. 저도 죄송해요. 언니에게 욕을 한 거...”
“아냐... 욕먹어도 쌌지...”
“그런 말씀 마셔요.”
“저... 그리고... 하나 부탁이 있어.”
“뭔가요?”
“이런 내가... 로사리오교를 계속 믿어도 될까...?”
배덕감과 죄책감이 장난이 아닌 지금, 성녀에게 공식적으로 허락이라도 받고 싶었다.
자기만족으로, 그저 기댈 곳을 찾기 위해 종교를 가지려는 것뿐이지만... 원래 종교가 다 그런 법 아니겠는가.
아델이 생긋 웃었다.
“언니에게 진실한 믿음만 있다면 당연히 믿어도 되어요.”
“하지만 그때... 네가 그랬잖아. 나는 로사리오교를 믿을 자격이...”
“물론 그랬지요. 그때는 그냥... 흥분해서 확 튀어나온 말이었어요. 진심이 아니었다는 뜻이지요.”
아델에겐 로사리오교의 교리를 바꿔야한다는 마음은 여전히 있었다.
실비아의 입교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삿된 자들이 입교하는 것이 싫어서였다.
때문에 조만간 로사리오에게 간청을 해볼 생각이었다.
답이 올지 안 올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실비아는 이러한 아델의 배포에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아델은, 실비아가 목을 가다듬고 놀라운 말을 하자 눈을 크게 떴다.
“아, 네게 꼭 말해주고 싶은 사실이 있어.”
“그게 무엇인가요?”
“지혁이가 나한테 훈계를 하면서, 기분을 풀어준다고 공연장에 데리고 갔었는데... 알고 있지?”
“네, 알아요.”
“혹시 지혁이한테 마지막 아이테르의 주인을 찾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니?”
“네에!?”
목소리가 꽤나 커서, 카페 손님들의 시선이 주목되었다.
자신의 실책을 알아차린 아델이 찔끔하며 소리를 낮추었다.
“그, 그게 정말이에요...?”
“응. 어떻게 된 거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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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아델라인 님.”
공손히 고개를 숙이는 인포데스크의 직원들.
배시시 웃은 아델이 그녀들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안녕하셔요. 지혁 씨는 위에 계신가요?”
“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직원 한 명이 빠른 걸음으로 나와 엘리베이터를 잡아주었다.
다른 한 명은 사장실로 연락을 하려는지 수화기를 들었고 말이다.
마치 드라마에서나 보던 사모님이 된 듯한 기분.
함박미소를 짓던 아델은, 직원의 깍듯한 안내를 받고 사장실이 있는 층으로 이동했다.
1층씩 올라가는 표시기를 멀뚱멀뚱 바라보던 아델이 옆에 있는 직원을 흘끗거렸다.
색감이 밝은 베이지색 정장에 살색 스타킹을 신은 모습이 무척 어울렸다.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은 것 같다.
혹시 지혁과 따로 만나는 건 아니겠지?
절대 아닐 것이다.
저 여자가 예쁘다고는 하지만, 실비아는 훨씬,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더 예쁘다.
그런 실비아에게도 사심 하나 없어 뵈는 지혁인데, 한눈을 팔 리는 없을 것이었다.
그래도 왠지 모르게 짜증나긴 한다.
특히 허벅지가 살짝 드러나는 짧은 스커트가 상당히 기분 나빴다.
저게 대체 뭐람.
평상시에 저런 옷을 입는 건 괜찮다.
하지만 여긴 회사다.
게다가 인포데스크 직원이라면 단정해야 할 텐데... 저 모습은 외설스럽기 짝이 없다.
지혁이 눈길을 조금이라도 줄까봐 싫다.
정말 천하다. 교화를 시켜야...
“앗...!”
저도 모르게 과격한 생각을 한 아델이 헛기침을 했다.
“흠...! 흐흠...!”
직원이 걱정스런 투로 묻는다.
“어디 불편하신 곳이라도...?”
“아, 아니에요. 업무가 힘들지는 않으신가요?”
“괜찮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띵-!
어느새 사장실이 있는 층수에 도착했다.
직원은 아델에게 양해를 구한 후 먼저 내렸고, 사장실 문을 노크했다.
그러자 문 안에서부터 낮고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짝만 열어놓으세요.”
문고리를 돌려 아주 약한 힘으로 민 직원은, 아델에게 인사를 한 후 돌아갔다.
사장실로 들어간 아델은 달갑지 않은 사람을 만났다.
저번에 한 번 보았었던, 지혁의 개인비서였다.
‘우이 씨...’
저‘년’도 스커트가 너무 짧다. 짜증나 죽겠다.
아람이 머리를 조아리고 나갈 때까지 거의 노려보다시피 한 아델은, 지혁의 맞은편에 성큼성큼 걸어가 앉았다.
“저 사람은... 그 비서지요?”
“맞습니다. 업무보고를 받으려고 불렀었어요.”
업무보고라... 그렇다면 참작이 가능하니 봐줘야겠다.
“근데 연락도 없이 웬일이십니까? 내선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네요.”
“실비아 언니가 스텔라 씨에 대한 얘기를 해주셨어요.”
“그렇군요. 화해는 잘 하셨고요?”
“물론이에요. 친자매보다 더 가까운 사이이니만큼 잘 화해했답니다. 중요한 건 이게 아니라... 왜 말씀하시지 않았지요?”
고개를 갸웃한 지혁이 반문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스텔라 씨요. 제게 말이라도 해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왜 숨기고 있었냐는 뜻이에요.”
“숨기다니... 어제 차에서 말씀드리려고 했었는데, 아델이 저보고 조용하라 하셨잖습니까.”
“제가요?”
“예. 잘 생각해보세요.”
그러고 보니, 지혁이 앵콜 이야기를 꺼낸 것이 기억났다.
그때 자신이 그에게 조용하라고 소리를 질렀던 것까지도.
할 말이 없어진 아델이 소매 안으로 손을 넣고 우물쭈물하자, 지혁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왜 또 저를 나무라지 못해서 안달이십니까? 너무 서운한데...”
항상 앞서 생각하는 것!
지혁은 저게 문제였다!
사실 오늘은 나무라려고 하긴 했지만... 어쨌든 문제는 문제다!
여태 열심히 경고를 했음에도 나아지는 기색이 전혀 없다니...
그래도 양심에 찔리니 화제를 돌려야겠다.
“저는 지혁 씨를 나무랄 생각이 저언혀 없었는데, 그렇게 생각하셨다니 유감이네요. 그나저나 무슨 보고를 받았던 건가요?”
“연예기획사와 사업 연계를 하고 있었는데, 그쪽 주가가 많이 떨어진 상황이라서...”
“으음... 그거 참 문제네요.”
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을 하는 아델이었다.
인자한 미소를 지은 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문제이긴 한데 해결할 수는 있어요.”
“어떻게 해결하실 것이지요?”
“일단은...”
눈을 빛내면서 어려운 말을 하기 시작하는 지혁.
화제를 잘 돌리는데 성공한 아델이 속으로 시시덕거렸다.
역시 그는 단순했다.
아델은 지혁의 설명을 대충 들어주는 척하다가 양팔을 벌렸다.
그러자 열심히 말을 하던 지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다가오더니, 아델을 번쩍 안아들었다.
그러더니 이런 말을 했다.
“아델 때문에 미치겠습니다.”
이는 아델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지혁 때문에 미치겠다.
그에게서부터 사랑이 느껴진다. 진실하고 따뜻하고 깊은... 그런 사랑이.
입이 함지박 만하게 벌어진 아델은, 지혁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지혁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와 함께라면 보쌈을 과대포장하는 악덕업주도, 관광지에서 회오리 감자를 만 원에 파는 사기꾼도 용서해줄 수 있을 듯싶다.
지혁만 옆에 있으면 된다.
자신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그만 있다면, 다른 존재는...
찌릿-!
“앗.”
갑작스레 아랫배가 아프다.
바늘로 쿡쿡 쑤시는 느낌.
아니, 아픈 게 아니라 약간 간지러운 것 같기도 하다.
인상을 찌푸린 아델이 내려달라고 말하려 할 때,
“여기가 불편해요?”
지혁이 아델을 소파에 앉히더니, 아랫배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저런 말을 했다.
그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던 아델이 반문했다.
“어떻게 알았지요?”
“눈을 보니 왠지 그럴 것 같았습니다.”
눈만 봐도 알다니...
심지어 지혁의 손길이 닿은 순간부터 고통이 사라졌다.
이것이 운명, 천생연분인가?
“.... 조금만 더 세게 눌러주셔요.”
“많이 아프세요?”
“네에...”
“병원이라도 가야 되는 게 아닌지...”
병원이라니... 분위기 한 번 못 읽는다.
‘쯧...’하며 자그마한 흡착음을 낸 아델이 말했다.
“벼, 병원은 됐어요...! 계속 문지르도록 하셔요...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