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71 마왕님의 자애와 성액을, 몸과 마음속 깊숙한 곳에 받아들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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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킁 하세요.”
자신의 코 윗부분을 감싼 지혁의 말이었다.
눈동자만 데굴 굴려 그를 쓱 바라본 아델은, 눈을 질끈 감고 코를 풀었다.
크으으응! 하는 소리와 함께 막혀있던 코가 뻥 뚫렸다.
눈을 슬쩍 떠보니 갈색의 진득한 흙덩어리들이 지혁의 손에 묻어있었다.
더러워 미칠 지경. 순간 지혁이 싫어할까봐 노심초사한 아델이었지만, 그는 태연한 표정으로 손을 씻어내더니 다시 자신의 코에 대었다.
“다시.”
“크으으으응!”
코를 깨끗하게 씻어준 지혁은, 손에 샴푸를 묻히더니 아델의 머리를 정성껏 마사지해주었다.
이후 칫솔에 치약을 묻혔고, 양치까지 시켜주며 수발을 들어주었다.
그렇게 양치와 간단한 샤워를 마친 아델은 지혁의 손에 이끌려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
눈 밑이 퍼렇게 부어오른 그녀가 지혁의 눈을 바라보았다.
흑요석 같은 시꺼먼 눈빛 속에 담긴 사랑이 느껴진다.
“왜 이제야 오신 거지요...?”
울먹거리는 아델의 목소리에, 지혁이 면목 없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오다가 사고가 나서... 보험처리를 하지 않겠다고 해도 절 잡더라고요. 그래서 좀 늦었습니다.”
사고...? 설마 자신 때문에 연구실로 오다 교통사고가 났던 것인가?
너무 미안하다... 면목이 없다.
“.... 죄송해요... 저 때문에...”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늦어서 죄송할 따름이죠.”
부드러운 지혁의 말투를 들으니 서러운 마음이 꽤나 가신다.
“다친 곳은 없으신가요...?”
“예. 그냥 가벼운 접촉사고였어요.”
나긋나긋 말을 마친 지혁이 아델의 맞은편에 몸을 담갔다.
자신의 코를 한 차례 쓰윽 닦아낸 아델은, 엉덩이를 달싹거리며 그의 앞으로 다가가 안겼다.
널따랗고 단단한 가슴팍.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오는 것만 같다.
그의 가슴에 얼굴을 부빈 아델이 말했다.
“저는 지혁 씨가 구해다준 집을 부수고, 자연경관을 훼손했어요.”
“알고 있습니다.”
“이런 제가 한심하시지요...?”
“아뇨.”
“거짓말... 거짓말이에요... 제가 생각해도 멍청한 짓이었는데, 지혁 씨도 박사님처럼 생각하고 있을 게 뻔해요...”
자책하는 아델.
그런 그녀를 들어 올려 허벅지 위에 올린 지혁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델.”
“왜요...”
“제가 아는 아델은 상대방을 헤아려주는 것을 가장 우선시하는 사람이에요. 물론 약간 경솔한 면이 있기는 해요. 하지만 금방 다시 생각하고, 상대방의 심중을 살피고 멋진 결론을 내리죠.”
자신이 그런 사람이었던가?
지혁의 말을 들으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저번 일도 그래요. 제가 교리에 대해 의심을 했을 때, 아델은 무척 화를 내며 제게 징계를 내렸어요. 허나 그 징계는 겉핥기식으로 금방 끝내주셨고, 집으로 가는 길에 이런 말을 했죠. 의심을 해도 된다. 올바른 길잡이인 자신이 있으니, 궁금한 게 있다면 뭐든 물어봐라. 함께 해답을 찾자... 라고.”
“.....”
“그런 생각이 깊은 아델이 폭발해서 앞뒤 안 가리고 싸움까지 할 정도라면 실비아 씨가 큰 실수를 했다는 뜻이죠. 그렇지 않나요?”
그렇다. 이건 실비아가 먼저 잘못한 거다.
입을 삐죽 내민 아델이 투덜거렸다.
“.... 맞아요... 언니가 너무 미워요... 박사님도 미워. 실비아 언니가 먼저 잘못했고, 많이 맞은 건 전데... 언니한테는 별 말씀을 안 해요... 흐윽... 아까 벌을 섰는데... 언니는 운동해서 손을 잘 들 수 있는데... 저는 아닌데... 힘든데에... 계속 하라고... 흐으윽...!”
울기 싫은데 또 눈물이 맺힌다.
지혁은 그런 자신을 다 이해한다는 듯 토닥이면서, 눈 밑을 닦아내주었다.
“박사님이 너무하셨네요.”
그렇다! 정말 너무했다!
역시 지혁은 자신에게 깊은 공감을 해주는, 아주 든든한 사람이다.
의지가 된다. 어리광을 더 부리고 싶다.
“시, 실비아 언니는요... 제게 딱밤을 때렸어요... 그것도 모자라서 제 엉덩이를 스무 대가 넘게 때렸어요...! 너무 아팠고... 수치스러웠어요... 저는 한 대밖에 못 때렸는데...”
“다 큰 처녀의 엉덩이를 때렸다고요? 그것도 스무 대나?”
“스무 대 넘게요... 아, 아마도 서른 대...”
“허... 참... 실비아 씨도 심하시네요. 지금은 괜찮아요?”
“네에...”
긍정적인 대답을 하려던 아델이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아니요...! 치료는 했지만 아직도 아파요...”
그 말에 지혁이 아델의 엉덩이에 손을 올리고는 부드럽게 만져주었다.
이걸 원했다. 지혁의 따스한 손길을.
물 안에 있어서 그런지 느낌이 뭔가 편안하다.
늘어지는 하품을 한 아델은 지혁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지혁 씨는 제 편이지요...?”
그러자 지혁이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물론입니다. 아델이 실수로 살인을 해도, 저는 절대 변하지 않아요. 무조건 아델의 옆에 있을 겁니다.”
살인이라니... 비약이 심하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을 생각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 좋았다.
자신이 어떠한 실수를 하든, 지혁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
이는 듣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다.
“사랑해요, 지혁 씨...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저도요.”
욕조 안에서 지혁에게 안겨있다 보니, 그가 저번에 해주었던 말이 생각난다.
쾌락으로 인해 정신이 없던 와중, 지혁이 이렇게 속삭였었다.
당신을 유일하게 사랑해주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라고.
그 말이 이토록 마음에 와 닿을 줄이야...
‘지혁 씨만 있으면 돼요...’
그렇다, 그만 있으면 된다.
자신에게 변치 않는 사랑을 주는 지혁만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필요가 없다.
**
“네, 박사님. 그럼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미리 입을 맞추어둔 대화를 나누고 전화를 끊은 나는, 내 와이셔츠를 입은 채로 손을 꼼지락거리고 있는 아델을 차에 태웠다.
이후 시동을 걸고 오피스텔로 출발했다.
“어디로 가는 거예요...?”
“저희 집으로 갑니다. 의정부 집이 부서졌으니... 당분간은 저와 함께 지내요.”
“그럼 실비아 언니는요...?”
굴욕적으로 당했음에도 실비아를 챙기다니.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디바이스에 딸려있는 통신기를 통해 듣고는 있었다.
만약 거기서 실비아가 사과를 했으면 받아줬을 가능성이 꽤 높았었겠구나.
박사가 타이밍 좋게 끼어들지 않았더라면 먼 길을 돌아갈 뻔했다.
“박사님이 자신의 집에서 재우신다더군요.”
“아, 네에... 저 오늘 세화랑 놀아도 돼요...? 잠은 지혁 씨와 같이 잘래요...”
“세화는 유리아 씨와 함께 해외로 파견을 갔습니다.”
“파견이요...? 왜요?”
“이란에서 마물 세 마리가 발견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조사차 보냈죠. 바쁜 일이니만큼 당분간 연락을 받지 못할 겁니다.”
“아하...”
아델이 창밖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세화와 유리아는 열심히 일을 하는데, 자신들은 한심하게 주먹다짐이나 하고 있었으니 자책하는 모양이었다.
오피스텔 주차장에 주차를 마친 나는, 여우 잠옷과 속옷이 들어있는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내렸다.
그러자 아델이 총총걸음으로 다가오더니 내 손을 잡았다.
“손이 차네요. 추우니까 빨리 들어갈까요?”
“네... 근데 지혁 씨... 저 휴대폰을 잃어버렸어요...”
“무너진 집에 있을 겁니다. 전부 회수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뭣하면 새로 사도 되고.”
“살 때까진 뭐 써요...?”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그 안에 탄 나는, 아델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실비아 씨가 신경 쓰이나보죠?”
“네... 언니랑 연락하고 싶은데요...”
“연락해서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요?”
“따끔하게 한 마디를 해야 해요... 사과도 받아야 해요...”
“무슨 따끔한 한 마디를 하려고?”
“지, 지혁 씨는 몰라도 되는데요...”
이미 다 아는데.
피식한 나는 아델과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여기가 마치 제 집인 양, 자연스런 발걸음으로 침실을 향해 가더니 침대에 누웠다.
이후 이불을 덮고는 얼굴만 빼꼼 내밀었다.
“지혁 씨도 들어오셔요...”
“세탁기부터 돌리고 오겠습니다.”
“얼른 제 옆에 누우셔요... 얼른요...”
재촉에 마지못한 척 침대에 누우니, 아델이 배시시 웃으며 내 손을 만지작거렸다.
“저번에 지혁 씨가 하셨던 말씀 있잖아요... 교도들을 가려 받으라는 거요...”
“예.”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맞는 말 같아요...”
나는 속으로 거듭 쾌재를 불렀다.
실비아를 걱정했던 아델의 모습으로 보아, 두 사람 사이는 내 의도대로는 됐지만 딱 거기까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반응을 보니 내 말을 기대이상으로 받아들인 것이 틀림없었다.
“죄인이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해 종교를 가져서는 안 되어요. 최소한의 용서는 받고 입교를 논해야 정당하다고 봐요...”
“그때 저는 죄인이 아니라 악신들을 대상으로 말했는데요.”
“그럼 지혁 씨는 염치가 없는 자들이 입교하는 게 괜찮다는 말씀이신가요?”
“그건 아닙니다. 깨끗한 로사리오교에 음험한 마음을 가진 자가 입교한다면 이미지가 실추되겠죠.”
“제 말이 바로 그거에요.”
아델의 말투는 꽤나 공격적이었다.
실비아와 싸웠던 원인을 생각하니 다시금 화가 치민 모양이었다.
“헌데 갑자기 왜 그런 말씀을...”
“그런 일이 있어요. 더 이상은 묻지 말아주셨으면 해요.”
이번 사건으로 아델의 신앙이 흔들리지는 않을 테지만, 그래도 미세한 균열은 갔다.
아주 잘 무르익었다.
아델의 현 심리상태로 보았을 때, 악의를 더욱 잘 받아들일 수 있을 거다.
오늘 좀 무리해서라도 많이 넣어보자.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럴 때 지혁 씨가 옆에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 제게서 떠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생겨요.”
“절대 안 떠납니다. 로사리오 님께 원망스런 마음이 드네요. 아델이 이토록 힘들어하는데 옆에 계시지도 않다니...”
“.... 지혁 씨, 그 말씀은 너무 갔어요. 로사리오 님께서는 많이 바쁘셔요. 천계는 바람 잘 날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건사고가 일어난답니다. 또한 로사리오 님께서는 항상 저희...”
“마음속에 계신다고요? 예, 물론 그렇겠죠.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한 명밖에 없는 성녀이자 대리인의 심신이 무척 피폐해져있는데... 먼저 나와서 조금 굽어 살펴주시면 어디 덧난답니까?”
“.....”
분개하는 날 보고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 아델.
공감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래도 눈빛만큼은 가라앉아있었다.
로사리오를 비판하니 마음이 편치 않은 듯했다.
아델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꾹 다물자, 그녀가 내 뺨에 손을 올렸다.
“지혁 씨...”
“예.”
“주무시면 안 돼요...”
잔다고? 내가?
오늘 이 마왕님의 은총을 네 몸 안에 주입할 거란다.
그러니까 너는 진심을 다해 나의 자애로운 성액을 받아주었으면 해.
나는 말없이 아델의 연녹색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면서, 그녀가 입은 와이셔츠 단추를 아래에서부터 위로 하나하나씩 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