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70 더럽고 치사한 치정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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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어억-!
아델이 디딘 대리석 바닥에 원형으로 균열이 갔다.
당장 튀어나갈 것 같은 그녀의 모습을 본 실비아는 뒷일을 생각했다.
아델이 진심으로 자신과 싸울 생각이라면 받아준다.
그러나 여기선 아니다. 싸우기 시작하면 보는 눈이 많아질 테고, 본부가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었다.
실비아는 금빛 기운을 넘실넘실 뿜어대며 자신을 죽일 듯 노려보는 아델에게 말했다.
“여기서는 말고, 다른 데...”
“야아압!”
하지만 아델은 주변 상황 따윈 신경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큼지막한 기합을 내지르더니 실비아에게 달려든 것이다.
질겁한 실비아는 사이드 스텝을 밟으며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는 포탈을 열어 아델을 끌어들였다.
목적지는 그랜드캐니언. 지금 생각나는 곳이 이 한군데밖에는 없었다.
쩌어엉-!
굉음과 함께 박살난 거실 벽.
충격이 넓게 퍼져나가 천장이 우지끈거리며 무너져 내리려고 했다.
주먹을 휘두른 아델은 몸을 돌리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눈앞이 포탈의 빛으로 인해 환해졌기 때문이다.
“으읏...!”
침음을 내뱉은 아델은, 눈을 뜨자 보이는 고원지대에 의아해했다.
앞엔 손깍지를 낀 실비아가 몸을 풀면서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델이 소리쳤다.
“여기가 어디지요!?”
“그랜드캐니언.”
“왜 여기로 온 건가요!”
“너는 생각이 있는 애니? 아무렇게나 마구 박살내고 다니면, 지혁이나 박사님이 곤란할 게 뻔하잖아.”
움찔한 아델이 입을 다물었다.
그녀를 향해 이죽거린 실비아가 말을 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딱 그 꼴이네.”
“이...! 이...!”
성질이 뻗친 아델이 다시금 달려들었다.
뻐엉-!
공기가 찢어지는 파공성과 함께, 금빛 섬광이 일직선으로 쭉 쏘아져나가며 실비아의 연홍색 기운 쪽으로 다가갔다.
실로 어마어마한 속도. 그러나 실비아의 눈엔 굼벵이보다 더 느리게 보였다.
화아악-!
실비아의 코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아델의 주먹.
일부러 한 끗 차이로 공격을 피한 실비아는, 아델이 자세를 가다듬는 틈을 타 중지를 들었다.
이후 아델에게 딱밤을 때렸다.
따악-!
“아악!”
이마를 감싸 쥔 아델이 뒤로 물러났다.
한쪽 입꼬리를 올린 실비아는, 고통을 가시게 하려고 이마를 마구 비비는 아델을 놀렸다.
“맨날 신성력만 믿고 싸우니까 그딴 허접한 자세가 나오지. 준비동작부터 시작해서 휘두르는 모션까지 너무 한심하잖아. 마물한테는 네 신성력이 쥐약이지만, 나한테는 아냐.”
“이...! 시끄러워요!”
“힘만 더럽게 세 가지고... 그래서 건드릴 수나 있겠어?”
“닥쳐! 닥쳐요!”
다시금 실비아에게 짓쳐 들어간 아델이 주먹을 마구 휘둘렀다.
허나 실비아는 아델의 눈먼 공격 따윈 전혀 맞아주지 않았다.
“얏! 야앗!”
“호흡은 공격에 따라 다르게, 딱딱 끊어서 쉬어야지. 그런 식으로 기합만 내지르면 금방 지쳐.”
“이얍!”
“그런 거 하지 말라니까? 듣고 있긴 한 거니?”
“이이...! 야아아압!”
후우웅-!
“무식한 공격만 해대는 걸 보니까 눈은 이미 멀었는데... 이젠 귀까지 닫힌 것 같네.”
아델은 요리조리 공격을 피해 다니며 자신을 약 올리는 실비아가 정말 미웠다.
종이 한 장 차이로 공격이 실패하는 것이나, 공격 중간중간에 전투에 대한 팁을 주며 조롱하는 것이나...
실비아는 분명 자신을 능욕하고 있었다.
그게 티가 나서 화병이 날 지경이었다.
한참동안 공격을 해도 전혀 먹히질 않자, 잔뜩 흥분한 아델이 두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우직! 콰아아앙-!
가공할 힘이 그랜드캐니언의 고원지대를 박살내면서, 퇴적층으로 이루어진 파편이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이로 인해 실비아의 회피 범위와 움직임에 제약이 걸렸다.
이때다 싶은 아델은 실비아의 얼굴에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후웅-!
공격은 지금까지처럼 실비아를 때리지도 못한 채로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실비아는, 아델의 이마에 또 딱밤을 때렸다.
따악-!
“아아악!”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아델이 휘청거리다가, 울퉁불퉁한 바닥에 걸려 뒤로 넘어졌다.
실비아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등골이 서늘했다. 꽤 뛰어난 임기응변.
방금 공격은 정말 위험했다.
하지만 겉으로 튀어나온 말은 마음과는 정반대였다.
“내가 이런 어설픈 공격에 당할 것 같아?”
“우으으...!”
아끼는 여우 잠옷에 묻은 흙먼지,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아픈 딱밤.
열심히 공격을 해도 옷깃 하나 스치지 못했다는 원통함, 시종일관 여유로운 실비아의 태도.
교육을 해야 하는데 그 반대가 된 입장, 지혁을 포기하게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좌절감 등...
이 모든 감정기복이 확 올라온 아델은,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흐아아아앙!”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대성통곡을 터뜨리는 그녀.
이 일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제 3자가 봐도 서러움이 묻어나올 정도였다.
“허어어엉! 흐어어어어엉!”
콰직! 쾅! 콰앙!
닭똥만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땅을 쳐대는 아델의 주변으로 암석 파편이 계속 튀었다.
자신에게로 날아오는 파편을 간단히 쳐내던 실비아는 표정을 굳혔다.
“.....”
저렇게 우는 모습을 보니 너무나도 미안했다.
자꾸 욕을 하길래 감정 컨트롤을 못해서... 아델을 너무 많이 조롱해버렸다.
아델은 당연히 분노해야하는 입장인데...
그냥 한 대 맞아줄 걸 그랬나 싶었다.
전의 따윈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은 채로 엉엉 울던 아델은, 눈물을 닦아내기 위해 손을 들었다.
그 모습을 본 실비아가 흠칫했다.
흙 묻은 손으로 눈가를 닦아내면 눈에 들어가는데... 그럼 따가울 텐데...
사랑하는 동생의 생각 없는 행동을 걱정한 실비아는, 아델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하면 눈에 흙먼지가 다 들어가잖아. 그냥 내 옷으로 닦... 허억!”
실비아가 말을 하다 말고 까무러치게 놀랐다.
자신이 도망갈 수 없도록 손목을 꽉 잡아챈 아델이 주먹을 뻗었기 때문이었다.
‘소, 속았...!’
기겁한 실비아는 아델의 타점을 확인했다.
공격 경로의 끝이 몸통임을 확인한 그녀가 재빨리 가드를 올렸다.
뻐어어억-!
“컥!”
짧은 단말마를 내뱉은 실비아의 신형이 순식간에 저 멀리 날아갔다.
쾅! 쾅! 콰앙!
높게 솟아오른 돌무더기를 몇 번이나 뚫고 협곡에 처박힌 그녀.
후두둑 쏟아지는 퇴적암 파편을 뚫고 비틀거리며 나온 실비아가 이빨을 갈았다.
“이게 진짜...! 윽...!”
가드를 했던 왼팔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뼈가 부러진 듯싶었다.
기운을 최대한 집중해 방어했는데도 너무 아프다.
숨 또한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갈비뼈도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아델의 주먹에 살의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중간에 힘을 빼는 것도 눈치챘다.
그럼에도 이 정도. 정말 힘 하나만큼은 장사였다.
짧게 호흡을 고른 실비아는, 저 멀리 보이는 금빛 기운을 향해 몸을 날렸다.
쐐애액-!
쏜살같은 속도로 아델의 뒤를 잡은 실비아는, 다리를 쫙 뻗어 아델의 목에 오금을 걸었다.
이후 그녀를 바닥에 내다 꽂아버렸다.
쩌억!
“흐엑!”
아델의 비명소리를 한 귀로 흘린 실비아는, 앞으로 넘어진 아델의 잠옷바지를 내리고 손바닥으로 볼기짝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짜악!
“아아악!”
“이게 감히 언니한테...”
짜악!
“아앙! 아파아!”
“욕을 하는 것도 모자라서...”
짜악!
“언니이! 그만! 그마안...!”
“치사하게 날 속여? 그리고 진짜로 죽이려고 해!?”
짜악!
“히약! 아니야아! 언니...! 약하게 때렸단 말이에요!”
짜악! 짜악! 짜악!
찰진 소리가 그랜드캐니언의 맑은 공기를 타고 사방으로 퍼졌다.
아델은 이 미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온갖 발광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실비아가 다리를 걸거나 하며 중심을 무너뜨렸다.
짜아악!
결국 아델은 탈출을 포기하고 실비아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흐아아아앙! 언니 미워요! 미워! 흐어어엉...”
“얘가 아직도...!”
짜악! 짜악! 짝! 짝!
“아악! 아파...! 바보...! 멍청이...! 진짜 시러어...! 허어어엉...!”
“뭐!? 바보? 멍청이?”
짜아악! 짜악!
몇 대나 때렸을까?
전의를 완벽하게 상실한 아델의 엉덩이가 부풀어 오르고, 실비아의 손바닥이 얼얼해질 즈음,
“하...”
여러 감정이 뒤섞인 복잡한 한숨을 내쉰 실비아가 아델을 놓아주었다.
왼팔이 너무 아팠기도 하거니와, 아델의 거셌던 기운이 수그러드는 것을 보아서였다.
또한 그랜드캐니언은 자신과 아델이 처음 도착한 장소였다.
마물과 싸우던 이곳에서 동생과 싸우려니 마음이 정말 아팠다.
“모르겠다... 때리려면 때려라...”
그리 말한 실비아는 바닥에 철퍼덕 누워버렸다.
눈이 띵띵 부은 채로 엉덩이를 만지작거리던 아델은, 무방비한 실비아의 모습을 보고 울음을 뚝 그쳤다.
크응! 하는 소리와 함께 새어나온 콧물을 쏙 빨아들인 그녀는, 잠깐 훌쩍거리더니 쭈그려 앉았다.
그러다 엉덩이에 찌릿한 통증이 찾자오자 또 다시 눈물을 보였다.
“흐윽...! 흑... 아파아...”
그런 아델을 올려다보던 실비아가 오른팔을 눈가에 가져다댔다.
한 대 얻어맞고 흥분해버려서, 아델에게 큰 굴욕을 줘버렸다.
스스로가 너무 한심했다.
집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반목이나 하다니, 이래서 어떻게 마물을 상대할까...
‘사과해야 돼.’
그렇게 실비아가 진심어린 사과를 하려고 할 때,
-야! 이 정신 나간 년들아!
두 사람의 디바이스에서 박사의 노한 외침이 들려왔다.
누가 뭐랄 것도 없이 깜짝 놀란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지금 당장 연구실로 와!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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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바로 들어!”
박사의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손을 들고 있는 실비아와 아델.
의료기기에서 간단한 치료를 끝낸 둘은, 사형을 앞둔 죄인마냥 고개를 푹 수그렸다.
두 사람을 한심한 눈으로 바라본 박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물을 상대하라고 만들어준 디바이스를 서로 싸우는데 사용하다니... 니들 진짜 정신머리가 있는 애들이니!?”
“.... 죄송합니다.”
“.... 죄송해요...”
이구동성으로 튀어나오는 대답.
헛웃음을 켠 박사가 말했다.
“의정부 집도 박살내고... 에너지는 에너지대로 소비하고... 정말 실망이다. 그리고 실비아.”
“네...”
“너는 네 살이나 어린 동생이랑 으르렁거리며 싸우고... 최연장자라는 애가 창피하지도 않니?”
“.....”
“널 의젓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였지... 아델! 손 똑바로 안 들어!?”
은근슬쩍 요령을 피우려던 아델이 찔끔하며 팔을 번쩍 들었다.
혀를 찬 박사는 이번엔 아델을 나무랐다.
“너는 언제까지 그렇게 철없는 어린애처럼 굴래? 지구에 얼마 남지도 않은 자연경관이나 훼손하고... 너는 성녀가 아니라 그냥 파괴만 일삼는 마물이라 해도 좋겠다. 응?”
“.... 그건 아닌데에...”
“얘가 진짜...!”
“죄, 죄송해요...!”
“세계연합과 중요한 회의가 있었는데, 거기선 마물이 나타난 줄 알더라. 나도 이블리언 탐색기가 고장 난 줄 알았어! 알아!?”
유구무언.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손을 바짝 드는 것밖엔 없었다.
이마를 탁 짚은 박사가 말했다.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할지 걱정이다... 하아... 세 시간동안 이 자세로 꼼짝 말고 있어. 너희들이 먼저 애처럼 굴었으니, 벌도 그에 맞게 내릴 거야. 알았어?”
“.... 네...”
“네에...”
둘은 그렇게 박사의 감시 아래 30분이 넘는 시간동안 벌을 섰다.
실비아는 흔들림 하나 없이 의젓하게 손을 들고 있었지만, 아델은 달랐다.
몇 분마다 한 번씩 팔이 내려갔던 것이다.
그 때문에 아델은 박사에게 계속 혼이 났고, 서러운 마음에 눈물을 쏟았다.
“흐윽... 흑...”
그러자 박사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뭘 잘했다고 울어? 질질 짜기만 하면 다 통하는 줄 알아?”
실비아는 운동을 해서 잘 버티는 건데!
자신은 팔이 가냘파서 힘든데!
얼굴을 씻지 못해 흙먼지가 자꾸 눈, 코, 입으로 들어가서 집중이 안 되는데!
숨도 잘 안 쉬어지는데!
자신의 상태도 몰라주고 저런 말을 하다니... 너무하다!
“.... 흐으윽...! 힘드러요...”
“진짜 미치겠네... 둘 다 일어나.”
낑낑거리며 일어나는 두 사람.
아델의 자그마한 몸집이 휘청거리면서, 잠옷에 묻어있던 흙먼지가 바닥에 우수수 떨어졌다.
그에 인상을 찌푸린 박사가 화장실을 가리켰다.
“난 실비아랑 따로 나가서 할 얘기가 있으니까, 아델은 일단 씻은 다음 방에서 쉬고 있어.”
“.... 네에...”
힘없는 대답을 한 아델이 몸을 돌리자, 실비아가 박사에게 부탁을 했다.
“저... 박사님... 아델과 있으면 안 될까요...?”
“너희 둘을 한 자리에 놔두라고? 지금?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안 돼.”
“무조건 가만히 있을 게요. 나중에 어떠한 벌이든 달게 받을 테니까...”
“안 된다고 했어. 따라오기나 해. 디바이스 압수하기 전에.”
단호한 대답.
어깨를 축 늘어뜨린 실비아는, 화장실로 향하는 아델의 뒷모습을 보다가 박사의 뒤를 따랐다.
터벅터벅 화장실로 들어간 아델은 잠옷을 벗고 수전을 틀었다.
세찬 물줄기가 몸에 묻은 흙과 섞여 주황색으로 변한다.
아델은 자신의 엉덩이를 슬쩍 만져보았다.
의료기기에 들어갔다 나와서 그런지 아프지는 않았다.
붓기도 가라앉았고 말이다.
하지만 수치스러웠다. 마치 아이를 훈육하듯 볼기짝을 두들기다니... 그것도 수십 대가 넘게...!
지금 훈육을 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데!
지혁은 어디로 갔길래 코빼기도 비추질 않는 것인지...
서글픈 마음에 샤워실 바닥에 쪼그려 앉은 아델이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물을 맞으며 질질 짜기를 한참,
똑똑.
화장실 문에서 노크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아델, 저에요. 들어가도 돼요?”
문 밖에서부터 보고 싶어 마지않던 지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