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268화 (268/471)

EP.268 어, 언니는 더러운 년이에요!

나는 세화와 유리아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내려와.”

포탈을 타기 직전인 상태의 그녀들은, 날 안심시키려는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주인님. 틈틈이 내려올게요.”

세화의 믿음직한 대답.

유리아가 그 말을 받았다.

“주인님께서는 실비아와 아델을 권속으로 만드는 데에만 집중하세요. 배신한 마물들은 저희가 처리할 테니까요.”

“무리하지는 말고... 말파스 측의 골치 아픈 마물들은 다 지구로 보내는 거야. 알지?”

“네, 물론이에요.”

나는 두 사람을 부서져라 안아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둘은 곧 포탈을 타고 떠났다.

현재 마계는 권속들의 소문으로 인해 내 추종자들이 결집해있다.

더군다나 세화와 유리아는 힘을 모조리 개방한 상태.

혹시 몰라 디바이스 안에 들어있는 전용 슈트까지 챙겨놓은 만큼, 두 사람의 안위를 위협할만한 일은 드물 것이다.

틈틈이 내려온다고 했고, 마르셀라도 도와주러 자주 올라간다니까... 마음을 편안하게 먹자.

이젠 사라진 포탈이 있던 위치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나는 몸을 돌려 박사를 바라보았다.

“복제 연구 상황은 어때?”

“잘 진행되고 있어. 이제부터 슬슬 임상실험을 해보려고 해.”

“그렇게 해.”

다른 일상적인 대화를 몇 차례 나누던 나는, 휴대폰이 울리자 전화를 받았다.

“네, 아델.”

-지혁 씨! 언제 오셔요?

“한국시간으로 점심 중엔 도착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저 실비아 언니랑 운동 다녀올게요! 도착하면 꼭 연락하셔요!

“예, 그럴게요.”

전화를 끊은 나는 박사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누나.”

“응?”

“조만간 부를 테니까, 약은 꾸준히 먹고 있어.”

“알았어요. 지금 바로 돌아갈 거야?”

“그래야지.”

“마기는? 지워야 되잖아.”

“아델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만 지우면 돼.”

시간을 보낼 장소야 차고 넘친다.

박사와 작별키스를 나눈 나는, 포탈을 열고 강남에 도착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연수의 집 앞이었다.

내가 새로이 구해준 투룸 말이다.

거기서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문을 여니, 속옷차림으로 있던 연수가 깜짝 놀라 날 맞이했다.

“지혁아!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자연스럽게 침대로 가서 털썩 누운 내가 대답했다.

“굳이 그럴 필요 있나. 나갈 준비하고 있었어?”

“아니... 지금 일어나서 씻으려고 했는데...”

난 다가온 연수의 뽀얀 다리를 발가락으로 콕콕 건드렸다.

그러자 연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침대로 들어왔다.

여기서 시간을 좀 보내다가, 마기만 적당히 지우고 아델한테 가야지.

**

[이번 하와이에 나타난 괴물은 비스트 슬레이어에게 처리되었습니다. 건물피해는 한화 약 192억 원 정도로 추산되며, 재건과 관련된 모든 일은 세계연합에서……]

아델을 품에 안은 채로 조용히 뉴스를 보고 있던 나는 귀를 쫑긋할 수밖에 없었다.

앵커가 눈에 띌만한 보도를 내보냈기 때문이다.

[지구의 평화를 지키는 비스트 슬레이어와 본부를 볼 낯이 없는 장면이 포착되었습니다. 화면으로 보시겠습니다.]

화면에 이블리언 경고가 울리고 나서 벙커로 대피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마물이 나타나면 으레 볼 수 있는 모습이지만, 이번만큼은 꽤 특별했다.

덩치 큰 한 남자가 노인의 등을 팍 밀치는 장면이 나왔던 것이다.

그는 다급한 표정으로 벙커 안으로 숨어들어갔다.

그리고 노인은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무시를 당하다가, 한 정의로운 청년에 의해 부축을 받고 벙커로 대피할 수 있었다.

[이런 비인간적인 행위를 저지른 남성은, 벙커 내부에서 사람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하여 병원에 입원해있다고 알려졌습니다. 네티즌들은 정의구현이다, 꼴좋다는 반응을 보여주고 있으며……]

힘없고 죄 없는 노인을 밀친 남자.

도와주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인민재판.

아델의 심리에 악이 싹틀만한 것들은 모조리 들어있는 종합선물세트였다.

마지막에 청년이 도움을 주긴 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노인을 무시했다는 점이 중요했다.

나는 눈동자만 슬쩍 내려 아델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TV에서 눈을 떼지 않고 분을 뿜어내는 중이었다.

“어째서 저런 파렴치한 짓을...!”

속으로 쾌재를 부른 내가 덤덤히 말했다.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만약 저 청년이 ‘먼저’ 노인을 구했다면, 아델은 기뻐했을 것이다.

왜? 자기도 살고 싶은 일개 소시민이 배려와 희생을 하는 모습은 영웅보다 더욱 영웅 같았을 테니까.

허나 부정적인 장면을 먼저 본 이후 저런 장면을 본다면 긍정적인 마음 따윈 생기지 않는다.

심지어는 청년의 행동이 가식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다.

‘훌륭하다.’

세화 때도, 유리아 때도, 박사 때도 그러더니... 인간들이 날 도와주는구나.

역시 이기적인 생물들이다. 아주 좋아.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 가여운 노인을 밀친 것이지요!? 게다가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할 텐데 사적 제재라니...! 말도 안 돼요...! 정말 실망스러워요!”

여기서 살짝 급발진을 해보자.

“생명이 사는 곳엔 어두운 면이 있는 법입니다. 천계도, 마계도, 그리고 인간계도 똑같아요.”

“무슨... 아니에요! 천계는 절대 저렇지 않아요!”

“글쎄요... 과도기 마지막 장에 이러한 내용이 있습니다. 일곱 행성의 혼돈을 잠재운 로사리오 님께서, 그 행성에 새로운 신 일곱 명을 앉혔다고.”

아델이 고개를 홱 돌려 날 노려보았다.

“그게 어쨌다는 것이지요?”

“일곱 신은 선량한 신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공물을 덜 바쳐서 노하여 홍수를 일으킨 신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행성 전체에 집단난교를 명령한 신도 있지요. 선신을 행성주로 앉혀도 모자랄 판에, 왜 그런 악신들을 앉혔을까요?”

“그 일곱 행성들은 정화가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로 타락해있었어요. 혼란은 잠시 잠재웠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욱 큰 사건이 생길 것이 자명했어요. 때문에 로사리오 님께서는 차악을 선택한 거예요!”

“차라리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선신을 앉히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어쨌거나 누굴 앉혔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천계에서도 선신, 악신이 구분되어있는 만큼...”

“선신, 악신은 저희 인간들이 정한 기준일 뿐이에요! 천계에서는 모두 똑같은 신이라구요!”

“그 선악구분이 성경에 쓰여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로사리오 님을 대신하여 성경을 집필한 교도들이 그리 썼다는 건, 천계에 어두운 면이 있다는 방증 아니겠습니까.”

“조용, 조용!”

빼액 소리친 아델이 내 품에서 뛰쳐나왔다.

“성경의 2번째 장 이름이 왜 과도기인 줄 아셔요!? 굳건한 교도들의 믿음이 흔들리는 시기가 이 악신 파트이고, 여기를 잘 넘겨야 진정한 교도로서의 단계로 접어들 수 있어서 그래요! 로사리오 님의 진의를 의심하지 마셔요!”

이 정도도 허용해주지 않다니. 아직 신앙심이 투철하구나.

그래도 악의 주입의 효과는 보고 있다.

예전의 아델이 이런 매도를 들었다면 나와 말도 섞으려 하지 않았겠지.

상체를 일으킨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로사리오 님을 의심한 게 아니에요. 그저 제 의견을 피력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천계의 신들은 모두 로사리오 님을 모신으로 모시잖습니까.”

“그, 그런데요?”

“그럼 그 행성을 다스리는 악신들도 로사리오교의 교도라 할 수 있는 겁니다. 교도들을 좀 가려 받는 게 좋지 않나 싶은데...”

“지혁 씨!!”

푸화악-!

아델의 온몸에서부터 발현된 기운이 휴게실 전체를 휩쓸었다.

짧은 머리카락에 매서운 바람이 스쳐지나가는 게 느껴진다.

그러나 정말 신기하게도, 안의 기물들엔 피해가 일체 없었다.

내 이 행동은 아델의 품 안에 있는 악의가 커지지도 않는, 아주 쓸데없는 도발이었다.

특히 교도들을 가려 받으라는 건 자충수 중에서도 자충수였다.

그럼에도 내가 굳이 이런 식으로 아델의 화를 돋우는 이유는, 실비아와 아델을 싸움 붙이기 위해서였다.

실비아는 날 포기하지 않으려 하는 상태다.

그리고 로사리오교를 믿으려 하고 있다.

그녀의 성격상 조만간 아델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할 텐데, 아델은 분명히 분노할 터.

이때 아델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실비아는 임자가 있는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죄를 덜기 위해 신앙을 가지려는 것]이라고,

[아무나 교도가 될 수 있다는 허점을 파고든 것]이라고,

이로 인해 아델이 내가 했던 말에 쥐꼬리만큼이라도 공감한다면, 믿음에 균열이 갈 거다.

이러면 내 목적은 완료. 나머지는 아델이 어떠한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지혁 씨를 대주교가 될 인재라 생각했던 제 자신이 한심해지는군요! 징계를 내리겠어요!”

“로사리오교를 위해서 한 말입니다.”

“교를 조롱하고 있다는 생각만 드는데요!?”

“충언을 조롱으로 생각하시다니 서운할 따름입니다. 벌을 받아야만 진심이 전해지는 것이라면, 달게 받겠습니다.”

“이이익...! 또... 또 앞서 생각하고 있군요! 당장 화장실로 들어가셔서 제가 허락하기 전까지 나오지 마셔요! 교도 훈시를 위한 성녀로서의 명령이에요!”

근신하라는 곳이 화장실이라니... 너무 없어 보이잖아.

방 같은 편안한 장소에 두는 건 싫어서 이러는 모양이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나는 구슬픈 눈빛으로 아델을 한 차례 바라보았다.

그러자 마음이 약해진 듯한 아델이 찔끔했지만, 기세를 죽이지는 않았다.

죄인마냥 시선을 내리깐 내가 아델을 스쳐지나가자, 그녀가 경고했다.

“초, 최소 열 시간은 있어야 하니, 마음을 단단히 먹도록 하세요!”

딱 보니까 한 2시간 정도면 날 달래러 들어오겠구나.

“알겠습니다.”

**

마왕이나 돼서 화장실에 퍼질러 누워있어야 하나...

처량하다, 처량해.

1시간가량 빈둥거리던 나는, 경건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나머지 1시간을 기다렸다.

그렇게 총 두 시간하고도 10분가량이 지나고 연골이 슬슬 아파올 때쯤,

덜컥.

화장실 문이 열리더니 아델이 들어왔다.

눈을 부릅뜨고는 있었지만 전혀 무섭지가 않다.

허리춤에 손을 올린 모습도 귀엽다.

간신히 웃음을 참고 있는 내게, 그녀가 누그러진 투로 묻는다.

“지혁 씨의 죄를 아시겠나요?”

“예.”

“대답을 잘하시면 징계를 끝내드리겠어요. 무엇을 잘못하셨지요?”

“아델을 화나게 한 것이 잘못입니다.”

“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신 건가요? 지혁 씨는 로사리오교의 근간을 무시했어요. 이는 곧 성령 모독죄에 해당되어요.”

“성령 모독죄라면 용서받지 못하는 죄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저는 파문이로군요.”

그 말에 아델이 이를 악물었다.

“더, 더 갔으면 모독죄를 물어 파문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지혁 씨는 의견을 피력했을 뿐, 주장을 한 건 아니니까요. 그, 그러니 어서 잘못했다고 하세요. 명령이에요.”

내가 파문을 당하는 게 무서우니 권위를 앞세워서라도 죄송하다는 말이 듣고 싶은가보다.

진심으로 뉘우치길 바라는 게 아니라.

이는 곧 로사리오교의 율법과 내가 비등한 입지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어쩌면 더 위거나.

“.... 잘못했습니다.”

바라던 사과가 나왔기 때문인지, 아델이 후다닥 달려오더니 나를 끌어안았다.

“지혁 씨는 노하신 로사리오 님의 벌을 받을 뻔했어요. 지혁 씨의 죄는 제가 사하여주시라 요청할 테니, 더 이상 교를 모독하는 행위는 그만하셔요.”

네가 점점 타락하고 있는데도 얼굴 한 번 비추지 않는 로사리오의 벌이라?

어디 한 번 받아보고 싶구나.

“교를 모독하다니요... 저는...”

“지혁 씨... 그만...!”

“.... 알겠습니다.”

“흔들리지 마세요. 지혁 씨에겐 바른 길잡이인 제가 있어요. 저만 믿으시면 돼요... 아셨지요?”

“네, 아델.”

“좋아요. 이제... 눈을 감으셔요. 회개의 기도를 드린 뒤, 공식적으로 징계를 종료하겠어요. 준비되셨나요?”

“그렇습니다.”

“전능하신 로사리오 님이시여, 잠시나마 사특한 마음을 지니게 된 송지혁 교도의 죄를 사해주시길 청하노니....”

우우웅-!

아델이 기도문을 읊자 뿜어져 나오는 금빛 광채.

그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던 나는 그녀 몰래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예전엔 침을 뱉고 싶을 만큼 좆같은 기운이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너무나도 끈적끈적해서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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