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265화 (265/471)

EP.265 다시 들른 동굴에서

마계의 배신자들은 쉽사리 움직이지 못한다.

지구엔 비스트 슬레이어가 있고, 놈들은 그녀들이 강한 걸 아주 잘 안다.

또한 내 추종자들이 아직 남아있는 만큼, 말파스는 내부의 안정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지.

이 말인 즉, 나에겐 시간이 있다는 거다.

문제는 아직까지 날 모시고 있는 마물들이다.

말파스나 4기사, 비네 같은 고위급 마물들은 영향력에서 벗어난 이후 날 배신했다.

허나 그들은 그리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말파스에 맞서 싸우기까지 하고 있다.

내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충성심을 보여줄 정도라?

끝까지 책임지고 데려가야 할 충신들이었다.

비네는 그들의 책임자를 모른다고 했다.

게다가 속속들이 격파당하고 있다면, 구심점이 없다고 봐도 좋다는 뜻.

그게 마음에 걸렸다.

내 진정한 수하들 중에선 군단을 이끄는 마물들도 많을 테니, 전황이 순식간에 확 바뀌지는 않을 테지만...

‘조치가 필요하다.’

현재 마계의 내 수하들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는 자신들을 이끌 수 있는 리더다.

마왕 특유의 마력을 따르고 있는 마물들에게, 내 현신은 효과가 아주 좋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실비아와 아델 때문에 자리를 자주 비워야 한다.

이러면 마물들의 사기가 다시 꺾일 가능성이 컸다.

얼굴을 잠깐 비추는 방법도 있지만 직접 행차하는 것보단 효과가 떨어지고, 비췄다가 금방 사라지면 마물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난 그냥 아델과 실비아를 타락시키는 일에 집중하는 게 나았다.

‘이러면 세화와 유리아를 먼저 보내는 방향이 좋겠다.’

세화는 내 마력을 가장 진하게 이어받았고, 공유하고 있는 왕비다.

왕비가 된 직후 모든 고위급 마물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도 했다.

두려움에 떠는 기색도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당시 철이 없던 그녀였지만 그때만큼은 완벽한 왕비의 기품, 위엄을 풍겼었다.

마물들 또한 진심으로 숙이고 들어오는 게 보였고.

유리아는 온화한 성품으로 하급 마물들이 좋아하고, 선망한다.

두 사람 모두 내 최측근에다 힘도 강하니만큼, 구심점 역할을 충분히 잘 수행해줄 것이다.

어쩌면 내가 나서는 것보다 더 나을 수도 있다.

왜? 둘은 나보다 강하니까.

일선에 서서 반란세력과 싸우는 세화와 유리아.

감복하지 않을 수가 없겠지.

“마르셀라.”

“네, 마왕님.”

“권속들은 마계로 보냈느냐?”

“아직 보내기 전입니다.”

“지금 보내라. 그 녀석들을 하루 동안 여기저기 들쑤시도록 만들면서, 마계에 소문을 퍼뜨리도록 해라. 왕비와 후궁이 혼란스런 마계를 수습하기 위해 간다고.”

서슬 퍼런 내 말에, 마르셀라가 침을 삼키더니 대답했다.

“아, 알겠습니다.”

“또 있다. 자력으로 포탈을 열지 못하는 마물들을 위해 기지에 포탈을 하나 열어놓아라.”

“네...? 그럼 반란세력이 타고 들어올 가능성도...”

“내 고성에 설치해놓는다면 그럴 가능성이 줄어들겠지. 게다가 설치로 인한 위험성보다 얻는 이득이 더 많다. 남극기지에 있는 의료기기는 은평구의 본부로 옮겨놓자꾸나.”

이미 박사까지 내 권속으로 만든 마당이고, 최우선 경계대상이라 할 수 있는 아델의 몸에 악의까지 주입했다.

이젠 부활 초창기 때처럼 기지를 마물들의 쉼터로 만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이러면 내가 마물들을 충분히 생각하고 있다고 알리는 효과도 낳는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 마왕님.”

“말하라.”

“감사합니다...”

갑작스레 감사를 표한다?

마르셀라도 마물들을 걱정하고 있었다는 방증이었다.

신성력에 영향을 받기 전의 내 마력은 무적이었다.

그 어떤 마물들도 명령을 의심하거나,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날 위해 희생하는 걸 당연한 듯 생각했다.

하지만 영향력이 옅어진 지금은?

제각각의 개성을 본격적으로 뽐내고 있다.

이제부터 날 따르고 있는마물들은 자식처럼 대해줄 것이다.

마력에 의한 구속을 벗어날 수 있음에도 자의로 날 택했으니까.

아이테르 복제연구가 끝나면, 새로이 만들어진 이블 발키리들과 함께 마계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도록 해야겠다.

영향력에서 벗어날 때만을 기다리다가 야욕을 드러낸 놈들은... 예전에 생각했던 대로 처리한다.

정리를 마치고 마르셀라를 보낸 나는, 얼마 뒤 세화와 유리아가 상기된 표정으로 찾아오자 피식했다.

그녀들도 답답해하고 있었구나.

그래, 공주처럼 모셔만 두면 천계는 어떻게 정복할 거야?

이때 실전경험도 쌓고, 힘도 키우고, 지도력도 기르는 거지.

그러고 보니 유리아는 마계로 가면 메릴을 찾겠군.

잘 만났으면 좋겠다.

**

“.... 씨.”

“.....”

“지혁 씨! 손 다쳐요!”

멍한 표정으로 무기를 제작하고 있던 나는, 아델의 다급한 외침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용접기에 화상을 입을 뻔했다.

제작대를 옆으로 치운 나는,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아델에게 괜찮다는 듯 웃어주었다.

“고마워요.”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길래 집중을 못하시는 거지요? 찔릴 뻔했잖아요!”

무슨 생각? 널 빨리 타락시킬 생각을 하고 있었단다.

그러니까 제발 로사리오 같은 년은 그만 모시고, 나한테 신앙을 줘라.

“어제 나타난 마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 그 약한 마물이요?”

약하다니. 그래도 S급인데...

뒈진 비네가 서운해 하겠어.

“예.”

“근데 머리를 남겨놓으라고 하셨잖아요? 시체는 어떻게 처리하셨나요?”

“머리요? 깨끗하게 씻어서 마계로 보냈습니다. 경고하려고요.”

“네에...?”

입이 점점 벌어지는 아델.

실소를 터뜨린 내가 말을 정정했다.

“농담이고, 연구해서 에너지원으로 사용해볼까 했는데 금방 소멸되더라고요.”

“그, 그렇군요... 살벌한 말씀을 하셔서 무서웠어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악하다 하여도 생명인데... 목을 사용하려 하시다니 너무 잔인해요. 망자는 곱게 보내주는 것이 도리랍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셔요.”

잔인하다니... 비네의 배때지를 주먹 한 방으로 뚫은 게 누군데?

너는 천성이 마족이란다.

“명심할게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실비아가 도착했다.

그녀는 밝은 표정으로 아델과 내게 인사를 건네더니 휴게실로 향했다.

비스트 슬레이어로서의 첫 활동이 무척 만족스러운 것 같은 모습.

뉴스를 튼 실비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내가 아델에게 말했다.

“실비아 씨의 얼굴이 꽤나 좋아 보이네요.”

“네, 자신도 이제 지구를 지킬 수 있다면서 좋아했어요.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구요. 근데... 언니가 제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무슨 소립니까?”

아델이 실비아의 눈치를 보더니 목소리를 낮추었다.

“어제 언니가 변신한 모습을 봤는데요... 언니의 목에 쓸린 상처가 있었어요. 저한테는 운동하다가 무리해서 파스를 붙였다고 했는데...”

쓸린 상처라고? 키스마크가 그 정도 상처는 아닌데?

실비아가 자해라도 했나?

“그래요? 쓸린 상처에 파스라... 확실히 이상하긴 한데... 제가 넌지시 떠볼까요?”

“으음... 아니에요. 지혁 씨는 신경 쓰지 마셔요.”

난 말없이 내 무릎 위를 툭툭 쳤다.

그러자 아델이 실비아가 보란 듯 냅다 다가와 올라탔다.

지금도 상당히 의식하고 있구나. 좋은 징조다.

아델의 도톰한 볼살을 꾹꾹 누르며 애정을 표현하던 내가 조심스레 그녀를 불렀다.

“아델.”

“네?”

“출장을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내일 하루 해외로 나가야 해요. 회사의 해외지부에서 사고를 쳤다고 해서요.”

“사고라니요?”

“한 직원이 실수를 했는데, 수습해야합니다.”

“그래요...? 어쩔 수 없지요...”

이해한다는 투로 내 머리를 쓰다듬는 그녀.

어른스러운 척하지만 서운한 티가 난다.

“돌아오면 같이 놀러가요.”

“그러면 바다를 보러 가요.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에 보고 싶어요.”

“그렇게 하죠.”

배시시 웃은 아델이 내 양 뺨을 잡더니 입술을 들이밀었다.

그녀와 키스를 하던 나는 실눈을 뜨고 휴게실을 흘끗거렸다.

실비아는... 우릴 보고 있었다.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다.

**

다음 날 이른 아침, 연구실.

껌을 질겅질겅 씹고 있던 나는, 편한 차림의 실비아가 머뭇머뭇 다가오자 환하게 웃었다.

“왔어요?”

“응... 지금 바로 갈 거야?”

“그래야죠. 근데...”

의미심장한 눈으로 실비아를 바라보자, 그녀가 흠칫하더니 시선을 피한다.

“무, 뭐...”

“아델한테는 뭐라고 했어요?”

“가라테 동아리 회식 다녀온다고... 오, 오늘 돌아온다고 했어...”

“당일치기로 가자는 겁니까?”

“너 출장 간다고 거짓말했잖아... 나까지 없으면 아델이 외로워해. 한 열 시간 정도만 있다가 돌아오자...”

아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자매애인가.

그러면서 아델 몰래 날 만나다니.

훌륭하다, 훌륭해.

저토록 아델을 생각하니 받아줘야지.

어차피 오늘 실비아의 처녀를 가져가고 악의를 주입할 계획은 변함없으니까.

“왕복하는 데에만 네 시간 정도 걸리겠네요.”

“차로 부산 가는 것보단 짧잖아...”

“그렇긴 하네요. 속옷은 예쁜 걸로 입고 왔어요?”

“.... 뼈 부러지기 싫으면 조용히 해.”

내가 바라는 대로 입었구나.

나중에 감상해주마.

코웃음을 친 나는 실비아에게 성큼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녀의 이마와 코를 검지로 톡, 두 번 건드렸다.

이어서 실비아의 입 근처에 손을 가져가려고 하자, 그녀가 입술을 안으로 오므렸다.

또 내가 틴트를 번지게 할까봐 걱정되는 모양이다.

그녀의 반응에 어깨를 으쓱한 내가 말했다.

“출발할까요?”

입술이 쏙 들어간 모습으로 고개만 주억거리는 그녀.

퍽 귀여운 모습이었기에 웃음이 터져 나온다.

“디바이스 충전량은요?”

“8... 85퍼센트...”

“마물을 순식간에 죽인 것치고는 꽤나 많이 소비하셨네요.”

“포탈을 타기 전부터 변신하고 있었거든...”

“그래요? 알겠습니다.”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자, 실비아가 날 흘끔 올려다보았다.

“왜요?”

“.... 혹시 오늘... 아냐... 나 의료기기에 먼저 들어가고 싶은데...”

오늘 충전할 거냐고 물으려 하다가 주제를 돌린 듯싶었다.

박기까지 할 거라고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여줄까?

잠깐 실비아를 빤히 바라보고 있던 나는, 그녀의 목에 붙은 파스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자 실비아가 내 손을 떼어내려고 했다.

“하, 하지 마...”

“가만있어보세요.”

“.....”

“어제도 의료기기에 들어가려고 연구실에 왔는데 못했잖아요. 당당하게 치료하면 되지, 괜히 아델 눈치 보면서 쭈뼛대기는...”

“난... 하아... 아델이 같이 집에 돌아가자고 하는데 어떡해.”

“치료한 다음 가겠다고 말하면 되잖아요. 줏대가 그렇게 없어요?”

발끈한 실비아가 날 노려보았다.

제법 무서운 눈빛이지만, 내 눈엔 예뻐 보이기만 한다.

개의치 않고 실비아의 목을 확인해본 나는 미간을 구겼다.

“상처가 꽤 깊은데... 일부러 긁었어요?”

“.... 응.”

“대체 왜 그런 짓을 하셨대?”

“변신할 때 파스가 날아갔어... 아델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다가...”

“참... 무식한 방법을 쓰시네요. 지금 치료해드릴게요.”

“알았어...”

실비아는 이런 묘한 분위기가 될 때마다 소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평소의 당당한 모습과 괴리감이 커서 웃기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다.

실바아의 목에 난 상처를 치료한 나는, 그녀와 함께 소형 전투기를 탔다.

이후 그랜드캐니언에 몰래 만들어둔 아지트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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