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264화 (264/471)

EP.264 선전포고

[주민, 관광객 여러분들께서는 당장 벙커로 대피하십시오.]

대피방송은 관광지인 만큼 여러 언어로 반복되었다.

관광객들이나 주민들은 곧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사라졌고, 그에 따라 거리가 아주 조용해졌다.

저것도 다 나와 박사가 깔아놓은 인프라인데... 갑자기 짜증이 확 올라오네.

전투기를 타고 하와이로 향하던 나는, 모니터를 통해 그쪽 상황을 살펴보았다.

고오오오오...

안 그래도 우기라 먹먹하던 하와이의 날씨가 더욱 흐려진다.

거의 시꺼멓게 변할 정도. 가로등이 자동으로 점등되며 서늘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빗줄기가 아주 굵은 장대비.

‘흠...’

내 허가가 떨어지지 않은 요란한 포탈이라...

심지어 크기마저도 거대하다.

마치 마계에서 선전포고를 하는 것 같구나.

탐색기의 게이지를 보니 91퍼센트에서 멈춰있었다.

딱 S급에 걸칠 정도의 마물이 등장한다는 뜻이었다.

뇌우를 동반한 S급 마물이라면...

‘비네로군.’

쩌어어억-!

빗물이 흘러내리고 있는 아가리가 열리고, 그 안에서부터 온통 시꺼먼 사슬갑옷을 입은, 거대한 활을 든 미남자가 나타났다.

여유로운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녀석은, 먼 허공에서부터 연홍색, 금색 광채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자 얼굴을 굳히며 활을 겨눴다.

끼이이익...

시위에서부터 마치 영혼들의 비명소리 같은 해괴한 소리가 났다.

비네는 실비아와 아델이 지척까지 다가올 때쯤 시위를 튕겼다.

푸화악-!

그러자 주변을 뒤흔들 만큼 굉장한 굉음이 퍼지더니, 모니터의 중앙 부분에 일직선으로 된 검은 선이 생겨났다.

동시에 엄청난 충격파가 발산되면서, 경로 상의 모든 기물을 박살냈다.

퍼어어어엉-!

곧 풍선이 터지는 소리가 스피커에서부터 들려왔다.

소리가 너무 커서 일순 걱정을 했지만...

금빛 기운을 두른 연홍색 광채가 검은 기운을 가르며 쏜살같이 나아가는 걸 보고 안도했다.

아델의 신성력이 방어를 해준 듯싶었다.

-으음!?

비네의 입에서 놀란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게 놈의 마지막 단말마였다.

서걱-! 서거걱!

비네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다가온 실비아에게 온몸이 난도질되어 발이 묶였고, 뒤따라온 아델의 맞고 뒈져라 펀치에 몸통이 꿰뚫려 죽었다.

멀리서 화살만 뿅뿅 쏴대는 마물이라 그런지 근접전에 매우 취약하구나.

근거리형 마물이었다면 그래도 시간은 끌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 됐다.

그나저나 실비아와 아델의 힘이 대단하다.

아무리 원거리 마물이라 해도 이토록 빠르게 끝낼 줄은 예상하지 못했건만...

두 사람이 모이면 뭔 시너지 효과라도 내나? 어이가 없다.

빨리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 힘이 너무 탐난다.

-처리했어요, 지혁 씨. 어땠나요?

전투기 안을 울리는 아델의 상기된 목소리.

그녀의 보고를 들은 내가 대답했다.

“빨라서 잘 보진 못했지만, 실비아 씨에게 신성력을 둘러주신 것 같더군요. 덕분에 화살이 막힌 거죠?”

-정확하셔요.

“멋졌습니다. 이만 복귀해보세요.”

-네...? 시체는 어떡해요?

“지금 회수하러 가고 있는 중이니까, 의정부로 돌아가서 쉬고 계세요.”

-저도 같이 있으면 안 되어요? 또 다른 포탈이 나타날 수도 있잖아요.

“그럴 기미가 보이면 디바이스에서 소리가 나겠죠. 그때 도와주러 오십시오.”

-으음... 알았어요.

두 사람을 돌려보낸 나는 하와이에 도착했다.

거기서 비네의 머리만 남겨놓고 나머지를 모두 소각시킨 뒤, 아무도 모르게 남극으로 향했다.

**

“크으아...”

고통스런 신음을 내뱉은 비네가 눈을 떴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상황을 파악해보던 녀석은, 자신이 순식간에 당한 것이 믿어지지 않는 듯 잠깐 벙 쪘다.

그러다가 온몸이 결박되어있는 상태인 것을 자각했다.

몸이 깡마른 인간의 것으로 교체되어있는 것도.

“이...! 이...!”

인상을 마구 찌푸린 비네는,

“마왕님! 타이라트 님! 제 주인이시여!”

에란델 공용어로 방 안이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밖에서 세화, 유리아, 마르셀라, 그리고 박사와 함께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유리아가 내 뒤에 시립했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호위를 하려는 것이다.

그녀에게 방긋 웃어준 나는, 망설임 없이 단단한 합금으로 된 문을 열었다.

철컹!

요란한 소리와 함께 좌우로 개폐되는 문.

빛 한 점 없는 장소에 빨간 빛이 새어 들어오자, 비네가 잠깐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내 얼굴을 본 순간부터, 유리아가 활시위를 겨눈 모습을 본 순간부터 비굴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옥체를 알현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마왕님! 결박되어있어 제대로 된 인사를 올리지 못하는 저를 용서해주시옵소서!”

난 아무 말 없이 문을 닫고 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이후 양팔과 다리가 사슬로 묶여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놈의 앞에 쪼그려 앉아 시선을 맞추었다.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구나. 사탕발린 말이나 하고.”

낮게 깔리는 내 말에, 비네의 얼굴이 공포로 젖어 들어갔다.

인간형 마물이라 감정이 눈에 드러나서 정이 간단 말이지.

일단 이놈은 내 마기에 감응하고 있긴 한데...

“마, 마왕님...! 저는 여태껏 충심으로 마왕님을 모신 하인입니다...! 그런 제게 어찌 인간 따위의 몸을 붙이실 수가 있습니까!”

이런 주제 넘는 발언을 하는 걸 보면 영향력에서 벗어났다고 봐도 좋겠군.

“영겁의 시간동안 고통을 받기 싫다면 아부는 집어치워라.”

“.....”

“인간형 마물이라 그런가 융합이 제법 잘됐구나.”

“인간형 마물이라니... 어째서 인간을 기준으로 생각하시는 겁니까?”

이건 반박할 말이 없네. 내 실수다.

인정해주마.

“몸은 괜찮으냐?”

“목에서부터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집니다. 고통스럽습니다! 저를 풀어주시옵소서!”

한쪽 입꼬리를 올린 나는 비네의 곁에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유리아가 활시위를 최대로 당겼다.

여차하면 당장 쏠 기세. 비네가 겁을 잔뜩 집어먹었다.

그런 놈을 향해 한쪽 입꼬리를 올려 보인 내가 말했다.

“묻는 말에 솔직한 대답을 한다면, 네 몸을 다시 복구시켜주겠다. 그뿐이랴? 원래라면 사형에 처할 상황이지만, 참작까지 해주겠노라.”

“.....”

“용서를 해주겠다는 소리다.”

용서라는 단어에 눈깔이 돌아간 비네가 정신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기괴하게 삐걱거리는 놈의 모가지를 보며 혀를 찬 내가 물었다.

“말파스가 보냈지?”

누가 보냈냐고 물은 게 아니라, 대상을 특정했다.

그만큼 나는 말파스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흠칫한 비네가 순순히 실토를 했기 때문이다.

“.... 맞습니다... 말파스가 보냈습니다...”

“보낼 때 뭐라고 하던?”

“저, 전언을 전하라고...”

“전언이라... 오만방자한 것...”

“.....”

“그놈이 네게 했던 말을 토씨 하나 빼놓지 말고 말해보아라.”

그 말에 비네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심지어는 유리아의 눈치까지 보았다.

말파스 이 씨발새끼가 도전적인 말을 했구나. 딱 봐도 알겠다.

차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힌 내가 말을 이었다.

“각색할 필요는 전혀 없다. 편하게 말해보아라.”

꽤나 온화해진 말투에 용기를 얻었을까?

비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마, 마물들을 소홀히 대하고, 마계를 등한시한 당신이 설 자리는 없다... 두 번 다시 발을 들이지 말라... 전 마왕에 대한 마지막 예우다... 라고 하였...”

비네가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분노한 유리아가 시위를 놓았다.

쐐애액-! 퍼억!

놈의 얼굴 옆에 있는 벽을 단숨에 뚫어버린 화살.

온 얼굴을 부르르 떤 비네가 흐느꼈다.

“으흐윽...! 죄, 죄송합니다...!”

한손을 들어 유리아를 만류한 나는, 비네의 턱을 잡고 들어올렸다.

“발록도 배신했겠지?”

“바, 발록 님은 아닙니다...!”

아니라고? 내가 보냈던 권속들이 발록의 지옥불에 재가 되었는데?

일단 거짓말을 지껄이는 건 아니라고 본다.

아직 비네는 내 마기에 영향을 받고 있기도 하고, 이런 상황에서 거짓말을 할 깜냥은 이놈에겐 없었다.

그렇다면 말파스가 간악한 술수로 발록을 속였거나 했겠군.

발록은 권속에게서 내 마기를 느꼈을 테지만, 단순한 놈이니만큼 이런저런 거짓을 늘어놓은 말파스에게 속았겠지.

품에서 수첩을 꺼낸 내가 말했다.

“비네.”

“예...! 예! 마왕님!”

“날 배신한 마물들의 이름만 대라. 그럼 네놈은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이 사실이 마계에 알려진다면 저는...”

“마계의 주인이 눈앞에 있는데 알려지는 게 두려운가? 내 영향력이 많이 줄긴 했군.”

“저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오라...”

“배신한 놈들의 이름.”

“마, 말파스, 4기사, 단탈리온, 푸르....”

이름을 적어 내려가던 나는 헛웃음을 켰다.

모두 A급 이상. S급도 절반 가까이 된다.

“여, 여기까지입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비네의 입에서 나온 마물들의 마릿수는 스물이 넘었다.

비네가 모르는 놈들도 있다고 가정하면 그 수는 더 많을 거다.

특히 4기사의 배신은 뼈아팠다. 이 씹새끼들이 기사면 기사답게 충정을 지킬 것이지...

아무리 내가 요즘 소홀해졌기로서니 뒤통수를 치려고 해?

전부 사형감. 자비란 절대 없을 것이다.

고개를 주억거린 내가 다시 물었다.

“현재 마계 상황은?”

“두 파벌로 갈라져있습니다. 말파스를 따르는 자들, 그리고 마왕님께 충성을 바치는 자들...”

오오... 나의 창대한 뜻을 알아주는 마물들도 있었구나.

그 녀석들은 평생 보듬어 주리라.

반역자들을 처리하고, 그들의 고성을 내어주는 것도 방법이겠군.

“후자 쪽의 책임자는 누구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 쪽 전황이 우세하여 속속들이 제거되는 중... 헉!”

‘저희 쪽 전황’이라는 말실수를 한 비네가 숨을 삼켰다.

실소를 터뜨린 나는 부드러운 투로 놈을 달랬다.

“불안해하지 말거라. 전언을 전하러 왔다고 했잖느냐. 네가 말파스에게 붙었다는 방증이지.”

“저는 마왕님의...”

비네의 뺨을 살짝 쳐서 놈의 말을 끊은 나는 무릎을 폈다.

“유리야.”

“네, 주인님.”

“이 새끼 모가지 따서, 잘 닦은 다음 권속 하나의 손에 쥐어주고 마계로 보내.”

그 말에 비네의 눈이 두 배는 더 커졌다.

“마, 마왕님! 분명히 묻는 말에 대답을 잘 한다면 용서해주신다고...!”

“한 번 뒤통수친 놈은 두 번도 치거든. 내 옆엔 믿을만한 놈들만 놔둬야겠다.”

“마계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하셨잖습니까...!”

“내가 언제 살려서 돌려보내주겠다던?”

“자비를...!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제가...”

“비네여, 내가 사실을 하나 알려주겠다. 고위급 마물인 네가 왜 고작 전언자로서 지구에 보내졌는지 아느냐?”

“....?”

“말파스도 네놈의 이 승냥이 같은 모습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으니까 보낸 거다. 희생양으로 말이지.”

비네의 눈이 부릅떠졌다.

“.....”

“몰랐나보군. 네놈도 웃기는 놈이구나. 무식한 놈에게 이런 뺀질이 기질이 있는 건 흔치 않은데... 어쨌거나 운 좋은 줄 알거라. 날 배신한 놈들은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어 고통을 주려고 했으나, 네놈만큼은 곱게 보내주마.”

“마...”

퍼억-!

무어라 말을 지껄이려다 목 정 가운데에 화살을 맞은 비네.

놈의 몸이 축 늘어지면서, 목과 입, 코, 눈에서 검붉은 액체가 새어나왔다.

융합한 인간의 빨간 피가 비네의 검은 피와 섞인 것이다.

무심한 눈으로 비네의 시체를 바라보던 나는 몸을 돌렸다.

이후 유리아의 새하얀 턱선을 한 차례 쓰다듬었다.

“잘 씻어서 목만 보내라. 피도 다 빼고.”

“굳이 피를 다 빼는 이유가 뭔가요?”

“나도 전언을 보내주는 거다. 목 깨끗이 씻고 기다리라고.”

마계는 먹혔다. 허나 날 모시는 마물들이 남아있다.

그리고 말파스의 배신을 확실히 알아낸 것만으로도 수확은 컸다.

‘개새끼가...’

절로 이가 갈린다.

정면으로 도전하다니, 마계를 충분히 먹었다 이건가?

그 용기만큼은 칭찬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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