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254화 (254/471)

EP.254 아델은 언니가 밉다 #2

그날 밤.

보고 싶다는 내 연락을 받은 아델은, 연구실에 찾아오자마자 내게 꼭 안겼다.

그녀의 이마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지친 숨소리까지 내뱉는 걸 보니,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한달음에 달려온 듯했다.

“사랑해... 지혁 씨, 사랑해요...”

다짜고짜 사랑고백을 하는 아델.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머리 위에 턱을 살포시 가져다댔다.

몸을 약간 떨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치 정말 힘들지만 아델을 봐서 안심한 것처럼.

이런 행동에, 내 옷자락을 잡은 아델의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저한테는 왜 아무런 말씀이 없으시지요...?”

“.... 사랑해요, 아델.”

“입술에 뽀, 뽀뽀도 해주세요... 원래 만나면 해주셨잖아요...”

“지금은 안 되겠습니다.”

“왜요! 빨리 해주세요!”

빼액 소리를 지르는 그녀.

힘없는 웃음을 터뜨린 내가 말했다.

“이런 자세에선 뽀뽀가 불가능한데요.”

“아...”

자신의 실책을 알아차린 아델이 가슴팍에서 얼굴을 떼어냈다.

그리고는 날 위로 올려다보면서, 눈을 감고 입술을 살짝 내밀었다.

한 번, 그리고 두 번, 마지막으로 세 번.

아델의 입술에 애정이 담긴 뽀뽀를 해준 나는, 그녀의 정수리부터 옆머리까지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제 됐나요?”

“더...”

“여기서 더요? 참아주세요.”

“왜 참아야 하지요...? 저희는 연인인데요...?”

“그럴 기분이 아닙니다.”

그 말에 아델의 눈이 동그래졌다.

충격 받은 얼굴을 하던 그녀가 울상을 지었다.

조막만한 손으로 눈가를 닦아낸 그녀가 사과한다.

“많이 힘드셨죠...? 죄송해요...!”

“아델이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울지 마세요.”

“저는... 박사님한테 지혁 씨만 좋다면 그래도 된다고 했어요...! 그것도 잘못했는데... 그랬는데도 지혁 씨의 반응이 두려워서 지금까지 연락을 하지 않았어요... 저는 바보 멍청이에요...!”

난 스스로를 자책하는 아델을 다시 포근하게 안아주었다.

“아델은 바보 멍청이가 아니에요. 제가 안정을 얻을 수 있는 보금자리죠.”

“.... 흐아아앙...!”

약간 구슬픈 말투를 섞어 말하자 대성통곡을 터뜨리기 시작하는 그녀.

입은 티셔츠가 순식간에 젖어간다.

눈물 한 번 많다. 넌 다른 물도 많아서 좋아.

잠자코 아델을 달래주던 나는, 그녀를 번쩍 안아들고 박사의 휴게실로 들어갔다.

한숨 푹 재워야지.

지금부터 나는 연기를 시작할 테니, 일어나면 날 몰래 염탐하도록 해.

그 뒤 집으로 돌아가서, 내가 따뜻한 마음씨로 요리해놓은 실비아의 반응을 보고 화를 내도록 하렴.

@@

“우응...”

눈이 침침하다. 눈물이 말라붙어서 그런가보다.

누운 상태로 조심스럽게 눈곱을 떼어낸 아델은 상체를 일으켰다.

얼마나 잔 걸까? 지혁의 나긋한 목소리를 자장가 삼았으니, 아마 오랜 시간이 지났을 것이다.

푹신한 이불을 턱끝까지 끌어당긴 아델은, 협탁에 놓인 우유를 집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다 식어있었지만 그래도 맛있었다.

입가에 묻은 우유까지 핥아먹은 아델이 침대에서 나왔다.

이후 방 문을 아주 조심스럽게, 약간만 열어보았다.

문틈 사이로 무언기를 열심히 만드는 지혁이 보인다.

무기 같은데, 손잡이가 긴 것을 보니 자신이 사용할 망치 같다.

헌데 이상했다. 평소의 그답지 않게 한쪽 다리를 마구 떨어댔고, 자신의 손톱을 물어뜯었다.

또한 용접기를 떨어뜨리거나, 화상을 입었는지 손을 확 빼며 고통스러워하기도 했다.

잦은 실수를 저지르던 그는, 이대로는 안 되겠는지 용접기를 던지듯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작업대에 팔꿈치를 대고, 양손을 모아 기도를 올렸다.

“거룩하신 로사리오 님이시여, 죄와 허물 많은 저의 혼탁한 영혼을 신성한 보광으로 구원해주시옵소서. 어머님의 마음에 합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는 비천한 저를 긍휼히 여겨주시옵소서. 거룩하신 로사리오 님이시여, 죄와 허물....”

지혁은 몇 번이나 기도를 반복했다.

어찌나 간절한지 목소리와 합장한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아델의 눈물샘에 자극이 오면서, 또 눈물이 나오기 시작한다.

저토록 괴로워하는 지혁을, 반응이 무섭다는 핑계로 가만 놔두다니... 너무나도 후회된다.

아델은 장장 한 시간동안 기도를 올리고 있는 지혁을 보며,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 지혁을 향해 달려가, 그의 머리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왔다.

위로를 해주고 같이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였다.

“저는 죄악을 저질렀습니다.”

아델의 허리를 강한 힘으로 붙잡은 지혁의 말이었다.

아델은 대의를 위해, 한 사람을 고뇌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지혁에게 고마웠다.

하지만 슬펐다.

그 스스로가 직격타를 맞아 괴로워하고 있어서.

신앙심이 투철함에도 번뇌를 전혀 벗어던지지 못할 정도라면 그가 가진 마음의 짐이 상당하다는 뜻.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마물들이 나타났을 때, 자신이 조금만 더 고생한다면 어찌 저찌 처리가 가능했을 텐데...

실비아가 남자를 만날 때까지 버틸 자신이 있는데...

박사에게 안 된다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고 단호하게 말할 걸.

괜히 마물들의 동향이 이상하다고 하여 걱정이 돼서, 실비아가 마음고생을 하는 게 싫어 승낙을 해버렸다.

당시엔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처참한 결과로 돌아왔다.

“지혁 씨의 잘못은 전혀 없어요... 죄는 제가 저지른 거예요...”

“제가 대의를 위해 행동했다고 말씀해주세요...”

“지혁 씨는 대의를 위해 행동하셨어요... 보통 마음가짐으로는 할 수 없었던 일을 하셨지요... 자책하지 마세요...”

지혁의 정수리에 입술을 가져다댄 아델이 생각했다.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 당황하지만 말고 신중하게 고민해볼 걸이라고.

어떤 상황이든 더 나은 선택지는 존재하는데, 항상 일을 먼저 저지르고 후회를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다 그렇다. 그리고 그건 자신도 다르지 않았다.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선택으로 인한 결과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해쳐나가는 것.

하지만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강제적으로 실비아의 디바이스를 충전시킨 지혁에게, 어찌 감히 조언이랍시고 이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제발 지혁이 이 사태를 극복했으면 좋겠다.

자신과 함께 괴로움을 벗어던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지혁을 보듬어주고 있던 아델은, 이어지는 그의 말에 정말 행복해졌다.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아델만 사랑할 겁니다.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해요.”

이런 와중에도 자신 걱정이라니... 바보가 분명하다.

자신도 마찬가지로, 지혁만 사랑할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인 그와 평생 함께하면서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 거다.

“저도요... 저도 지혁 씨만을 사랑할 거예요...”

지혁과의 연애에서 심력을 이만큼 소모한 적은 처음이었다.

오일 마사지나 섹스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오늘은 정말... 심적으로 지치는 날이었다.

자신도, 그리고 지혁도.

허나 기분도 좋았다.

지혁이 자신을 의지하고자 하는 것 같아서였다.

항상 어른스러운 면모만 보여주었던 그였는데, 지금은 입장이 완전히 반대가 되었다.

그게 못내 뿌듯했다.

허나 내색하지는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티를 내며 기뻐하는 게 얼마나 한심한 짓인지 아니까.

@@

“들어가세요.”

목이 잠긴 지혁의 말.

아델이 손을 꼼지락거리며 대답했다.

“네에...”

“저는 정말 괜찮아졌습니다. 너무 걱정하시지는 말고, 내일 봬요.”

“.....”

“왜 그러세요?”

“아니, 아니에요...”

지혁이 괜찮아진 건 좋은데, 눈치가 또 없어진 건 문제였다.

헤어지기 전의 굿바이 키스는 당연한 상식 아니던가?

그래도 고생을 했으니, 오늘은 넘어가자.

라고 생각하며 안전벨트를 풀던 아델은, 운전석에 있던 지혁이 다가와 이마에 키스를 해주자 고개를 푹 숙였다.

눈치가 없다는 건 취소다.

그나저나 오늘의 키스는 뭔가 색달랐다.

큰 폭풍이 지나가서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몰랐다.

연구실에서의 일을 상기하니 금세 다시 슬퍼진다.

아델은 그렁그렁한 눈을 한 채로 지혁의 손등을 쓰다듬었다.

“집에 도착하시면 전화하셔요... 꼭이요...”

“예.”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지혁의 눈빛엔 근심이 가득했다.

혼자 있으려니 덜컥 두려워진 모양.

아델이 그런 지혁의 손을 잡아채고는 물었다.

“저... 오늘 지혁 씨랑 같이 있을까요?”

“아뇨. 아델은 지금 실비아 씨와의 관계회복이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비아 씨는 그... 일이 끝나고 무척 심란해하셨어요. 제게 연신 사과를 하셨고, 아델에게 미안하다면서 눈물까지 보이셨죠.”

“그, 그랬어요...?”

“예. 실비아 씨가 저보다 더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셨을 겁니다. 위로해주세요.”

저 널따란 마음씨를 보라.

어찌 사랑하지 않고 배기겠는가.

“그럴게요...”

마지막으로 지혁과 진한 작별키스를 나눈 아델은, 마음을 다잡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들어가니, 편한 차림의 실비아가 아델을 맞이했다.

“왔니?”

“네, 언니.”

아델은 미간을 좁힐 수밖에 없었다.

실비아의 안색이 괜찮아보였기 때문이다.

완전하게 좋다고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마음의 짐을 던 것처럼은 보였다.

“지혁이는 괜찮아?”

“네... 그럭저럭요. 언니는요?”

“처음엔 마음이 많이 아팠는데... 지금은 괜찮아졌어. 시간이 약인가 봐.”

아... 시간이 지나니까 그냥 괜찮아진 거구나.

다행인 건가?

“그리고 지혁이가 위로의 말도 건네줘서...”

“위로의... 말이요?”

“응. 내 마음을 다 이해해줬어.”

이해하다니... 그건 그냥 이해한 척한 것일 뿐이다.

지혁은 한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진실한 기도를 올릴 만큼 정신이 지쳐있었다.

실비아가 이 사실을 알아야할 텐데...

“아, 그리고... 이 모든 걸 허락해줘서 정말 고마워, 아델.”

“.... 디바이스는 완전히 충전하신 건가요?”

“약속한 시간이 끝나고 나니까 89퍼센트까지 충전됐어. 자, 보여줄게.”

실비아가 손목을 내밀어 아델에게 충전량을 확인시켜주었다.

89퍼센트... 맞구나.

실비아는 지혁과 함께 여덟 시간이 넘도록 있었다.

자신이 지혁과 성적인 행위를 하면, 오르가즘을 크게 느끼는 게 아닌 이상 100퍼센트를 다 채우는데 그 정도 걸린다.

그렇다면 실비아 또한 자신과 비슷한, 혹은 덜한 쾌락을 느꼈나본데...

‘진짜 싫다아...’

지혁의 손에 의해 흥분하여 높은 톤의 신음을 터뜨리는 실비아.

그 상황을 상상해보니 정말 끔찍했다.

아델은 속으로 울분을 터뜨렸다.

방금 했던 생각은 차치하고서라도, 실비아의 양 뺨에 띠인 미세한 홍조가 너무나도 싫었다.

게다가 지혁은 제대로 웃지도 못하고 힘들어하고 있는데, 실비아의 얼굴엔 희미한 미소가 피어나있는 것도 싫다.

아무리 충전을 해서 좋다고 해도 그렇지, 눈치는 챙겨야할 것 아닌가!

설마 자신이 승낙해주었다고 해서 마음을 놓은 걸까?

실망스런 점은 또 있다.

지혁은 실비아를 걱정했고, 자신에게 그녀를 위로하라고 했다.

실비아를 위해서 자신과의 시간을 포기했다.

헌데 저 모습을 보니... 위로하고 자시고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아델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실비아가 찔끔하며 사과했다.

“미안해... 이제 지구를 지킬 수 있다니까 들떠서... 미안.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어.”

진정성이 느껴지는 사과.

아델의 속이 약간이나마 풀렸다.

“앞으로 이런 일은 없을 거지요?”

“.... 그... 응. 앞으로는... 이런 일 없어.”

머뭇거리는 대답. 아델이 눈을 부릅떴다.

저... 저 뜸들임은 무엇인가!

왜 다짐을 하면서 자신의 눈을 피하는 것인가!

설마 이번 일로 인해 지혁에게 마음이라도 생겼나?

동료로서 좋아하는 감정에서, 이성으로서 좋아하는 감정이 생겨난 걸까?

‘나, 나도 그랬는데!’

상황 자체는 다르지만, 자신도 지혁을 동료로서 좋아했다가 그를 이성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혁은 좋아하지... 아니,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는 사람이다!

방금 부끄러워하던 실비아의 표정도 그렇고... 그의 이야기를 할 때 나긋해졌던 목소리도 그렇고.

실비아는 지혁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안 된다! 그녀 같은 단아하고 예쁜 여자가 지혁을 좋아해선 안 돼!

가슴이 시큰하다.

예전엔 실망하거나 서운했을지언정 밉진 않았는데, 지금은 아니다.

처음으로 실비아가 미워진다.

속이 다시금 부글부글 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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