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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물 야겜 속 최종보스가 되었다-250화 (250/471)

EP.250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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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석 창문을 연 실비아는 사이드 미러를 통해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거의 20분 동안 울어댄 결과는 띵띵 부은 눈이었다.

이건 완전 개구리눈이잖은가. 너무 추하다.

지혁의 품에서 떨어진 직후, 그가 따뜻한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았을 때... 속으로는 비웃고 있었을 것 같았다.

이젠 물기조차 없어진 눈 밑을 닦아낸 실비아는, 눈동자를 데굴 굴려 운전을 하고 있는 지혁을 흘끗거렸다.

짧은 머리, 고집스런 눈매와 눈썹, 그리고 도톰한 입술.

샤프한 턱선과 어우러져 남자다운 모습을 풍겼다.

쉽게 말해 잘생겼다.

실비아는 지혁의 얼굴을 낱낱이 살피고 싶다는 유혹을 간신히 참아내며, 다시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지혁은 아델 같은... 애교가 많고 귀여운 사람을 좋아하나?

자신 같은 털털한 사람은 별론가?

우리 성격은 잘 맞는 것 같은데, 내가 여자로 보이지는 않나?

얼굴은 저번에 예쁘다고 돌려 말해주었었던 것으로 보아 마음에 드는 모양인데...

‘미치겠네... 왜 이래...’

생전 해보지도 않던 여성스런 생각이 새록새록 피어나니 어이가 없었다.

가뜩이나 엉엉 울어대서 쪽팔려 죽겠는데... 자괴감이 전신을 타고 흐른다.

“슈트는 바지 형식으로 만들어드릴게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실비아는, 옆에서 들려오는 지혁의 낮고 중후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어? 응?”

“슈트요. 치마가 아니라 바지로 만들어주겠다고요.”

“아, 그래... 고마워...”

“딱 달라붙는 타이트한 가죽바지 비슷하게 만들 겁니다. 흰색으로다가.”

“가, 가죽바지...? 흰색...?”

뭐 이런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다 있다는 말인가.

“제 취향이에요.”

평상시엔 사려가 깊지만 이럴 땐 유치해지는 게 참... 지혁답다고 해야 할지...

“가죽바지는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는데... 뭔가 꽉 낄 것 같아.”

“편의성이 좋게 잘 만들어드릴 테니까, 이번에 입어보는 건 어때요?”

뭐든 상관없었다. 치마만 아니라면.

음흉한 속내가 보이지만 취향이라고 하니까... 흔쾌히 입어줄 수 있을 것도 같다.

“알았어. 그냥... 잘 만들어만 줘.”

“물론입니다.”

실비아는 자신이 울었던 일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는 지혁에게 고마웠다.

무슨 일 있냐고, 왜 그러냐고 물어보는 것보단 이런 일상적인 대화가 훨씬 좋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유지한 채로 의정부에 도착했다.

동네 입구에 선 자동차.

안전벨트를 푼 실비아가 웃는 낯으로 감사를 전했다.

“이만 가볼게. 데려다줘서 고마워.”

“뭘요. 들어가세요.”

차에서 내린 실비아는 지혁에게 손을 한 번 흔들어주고 냉정하게 몸을 돌렸다.

지혁의 저 부드러운 미소를 계속 보면 떠나기 싫을 것 같아서였다.

그녀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고 싶은 유혹을 참아내며 가로등이 켜진 조용한 동네를 걸었다.

소나기가 왔다 갔는지 길바닥에 물기가 있었는데, 가로등 불빛과 달빛을 반사시켜주어 꽤나 운치가 있었다.

여길 지혁과 걸었으면 괜찮았겠다고 생각하던 그녀는, 집에 다 와갈수록 마음이 점점 불편해졌다.

아델에게 지혁과의 일을 말하기가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미리 고백을 해놓는 것이 좋아보였다.

단, 약간 방법을 바꿔서.

그 방법이란 바로 아델의 정의감에 기대는 것이다.

아델은 사람들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자신처럼... 아니, 자신보다 더욱 강하다.

이를 이용하면 좋게 해결을 볼 수도 있을 듯했다.

이렇게 생각하니 미리 일을 벌인 게 후회되었다.

차라리 아델에게 먼저 물어보고 지혁에게 들이댈 걸... 급한 마음에...

‘생각 좀 하고 살자... 이 멍청한 년아...’

자기 자신을 나무라며 집에 도착한 실비아는, 도어락 버튼을 아주 약한 압력으로 눌렀다.

그러다가 헛웃음을 켰다.

약하게 누른다고 삑삑거리는 소리가 작아질 리 없는데... 이게 뭔 짓인지...

그냥 빠르게 비밀번호를 입력한 그녀는, 제발 아델이 깨지 않길 바라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도둑고양이마냥 살금살금, 빛 한 점 없는 거실을 가로질러간 실비아는 아델의 방 문에 귀를 갖다 댔다.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방 안.

도어락 소리 때문에 깨지는 않은 듯했다.

안도한 실비아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이후 문을 닫은 뒤, 문짝에 등을 기대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하아...”

그때,

“언니이...”

침대에서 아델의 졸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상치 못한 목소리에 실비아가 기겁을 했다.

“흐아악!”

거의 경기를 일으키다시피 하며 몸을 떤 실비아.

그런 그녀의 반응에, 아델이 상체를 일으키며 눈을 비볐다.

“언니... 왜 그래요...? 제가 말도 없이 여기 와있어서 그래요? 놀란 거 엄청 오랜만에 봐요...”

적잖이 당황한 상태였던 실비아가 빠르게 숨을 고르며 반문했다.

“아, 아냐... 근데 네가 왜 여기 있어...?”

“천둥소리에 깼어요... 무서워서 언니랑 자려고 했는데요... 언니가 없었어요...”

“그랬니...?”

“네... 어디 갔다 오셔요...?”

재빨리 머리를 굴린 실비아가 대답했다.

“늦게까지 성경책을 읽다가, 몸이 찌뿌둥하길래 운동을 좀...”

“이 시간에요...? 한 시간 전에 비도 왔었는데...”

“그러니까 말이야. 런닝하고 있는데 비가 오더라. 그래서 그냥 사우나에 들려서 씻고 왔어.”

“그렇구나...”

배시시 웃는 아델을 보니 가슴이 정말 아파왔다.

놀란 마음을 달래고 자리에서 일어난 실비아는, 침대에 걸터앉아 아델의 뺨을 쓰다듬어주었다.

“많이 무서웠어?”

“조금요...”

“연락이라도 하지... 그럼 당장 돌아왔을 텐데.”

“그러려고 했는데... 언니 이불을 덮으니까 잠이 솔솔 와서요...”

이토록 자신을 든든하게 생각하는 아델인데...

너무나도 귀여운, 자신의 소울 메이트인데...

‘미안해...’

정말 미안하다. 죽을죄를 지었다.

라고 말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생각해두었던 뒷수습은 또 언제 한담... 눈앞이 캄캄하다.

‘자고... 자고 일어나서 말하자.’

그리 다짐한 실비아는, 아델을 부축해 침대에 눕히고는 그녀 자신도 옆에 누웠다.

그러자 아델이 헤실헤실 웃더니, 이내 꿈나라에 빠진 듯 규칙적인 숨소리를 냈다.

고민거리 같은 건 하나도 없어 뵈는 아델의 평온한 얼굴을 잠깐 주시하던 실비아 또한 눈을 감았다.

오늘 상당한 심력을 소모한 실비아였기에, 그녀 또한 아델처럼 곧장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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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점심.

아델은 실비아가 만들어준 스파게티를 아주 맛있게 먹었다.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면발을 흡입하던 그녀는, 실비아의 얼굴이 좋지 않자 고개를 갸웃했다.

면을 제대로 씹지도 않고 삼킨 아델이 물었다.

“왜 안 드셔요? 입맛이 없나요?”

“그건 아니고... 일단 다 먹어. 다 먹고 얘기하자.”

무언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모양.

고개를 천천히 주억거린 아델이 대답했다.

“알았어요.”

오늘은 지혁과 뭘 할까?

개봉이 예정된 드라마의 체험 부스가 열렸다는데, 거기 가볼까?

인사동 쌈지길이 새단장을 했다던데, 거기도 괜찮을 듯싶다.

지혁과의 달달한 데이트 코스를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스파게티를 다 먹은 아델이 포크를 내려놓았다.

실비아의 그릇은 전혀 비워져있지 않았다.

그저 면을 한 가닥씩 깨작깨작 먹기만 했다.

마치 일부러 느리게 먹는 것처럼 보이는 건 착각인가?

근심이 깊은 것 같은데... 얌전히 기다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스파게티와 아델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던 실비아가 말문을 열었다.

“저... 아델.”

“네?”

“나한테 디바이스가 생긴 거... 알고 있지?”

“물론이지요.”

“난 지금 아이테르 에너지가 얼마 없어... 이것도 알지?”

“알아요.”

“내가 지금 엄청 급하다는 것도... 알아?”

실비아의 표정엔 조급해하는 티가 확 났다.

그녀는 아델 자신처럼 정의감이 투철한 사람이다.

당장 마물이 나타나면 싸우고 싶은데, 아이테르 에너지가 없어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하니 저러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것도 알아요.”

“그런데 내가 만날 사람이 전혀 없거든...? 억지로 만나볼까도 싶었지만...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와 성적인 행위를 하면 충전이 전혀 안 되잖아...”

그건 아델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문제 중 하나였다.

아름답고 착한 자신의 언니와 잘 맞는 남자가 없다는 게 참 안타까웠다.

“그렇지요...”

“.... 그래서 말인데...”

말끝을 흐린 실비아가 잠시 입술을 오물거리더니, 생애 최고의 용기를 냈다.

“.... 지... ....주면... 안 될까?”

하지만 입에서 튀어나온 목소리는 개미소리보다 작았다.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아델이 얼굴을 15도 각도로 돌렸다.

못 들었다는 표정. 그 모습을 본 실비아가 자신의 이마를 짝! 소리가 나도록 쳤다.

이후 마음을 다잡고 다시 제대로 물었다.

“.... 지, 지혁이를 빌려주면 안 될까...?”

“네...?”

아델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지혁을 빌려달라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아니, 애초에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다.

벙 쪄있는 아델을 향해, 실비아가 눈을 질끈 감고 핑계거리를 늘어놓았다.

“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아이테르는 이성으로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동료로서 좋아해도 충전이 된대... 나는 지혁이를 동료로서 좋아하거든...? 그래서 걔랑 아이테르 충전을 하고 싶은데... 네 허락을 받고 싶어...”

제대로 들은 게 맞구나.

할 말을 완전히 잃어버린 아델은 입을 쩌억 벌린 채로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실비아가 깊디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내가 좋아한다고 할 수 있는 이성이라곤 지혁이밖에는 없어... 다시 강조하지만, 남자로서가 아니라 동료로서 좋아해. 그러니까 허락해주면 안 될까...? 충전만 할게...”

자존심까지 내팽개치고 간절히 호소하는 실비아.

큼지막한 눈망울을 끔벅이던 아델이 말을 더듬었다.

“그, 그럼... 어, 언니가 지혁 씨랑... 성적인 행위를... 하시겠다는 건가요...?”

“응... 그... 성기를 맞대는 심한 수위까진 절대 아니고... 그냥 적당히... 충전이 될 정도로만 약하게...”

자신의 남자친구와 성적인 행위를 하겠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실비아의 입장을 이해하며, 걱정까지 하고 있긴 하지만... 이건 별개의 문제였다.

새벽에 실비아의 상태가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구나!

눈을 부릅뜬 아델이 고개를 마구 저으며 소리쳤다.

“안 돼요...! 안 돼!”

심지어는 다리를 세게 들었다 놨다 하며 쿵쿵거리는 소음까지 냈다.

설마 아델이 이렇게 격하게 거절할 줄은 예상치 못했던 실비아가 당황해했다.

사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신탁까지 받은 아델이라면, 자신을 끔찍이 위해주는 아델이라면 대의를 위해 고민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사실 아델이 이러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아델은 자신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훤칠한 미모와 몸매를 가진 실비아를 선망했다.

저런 여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아델의 눈으로 보기에, 실비아는 완벽한 여성이었다.

그런 사람이 지혁과 파렴치한 짓을 한다?

그렇다면 지혁의 마음이 잠시나마라도 흔들릴 터였다.

물론 지혁은 올곧은 사람이고, 그를 굳게 믿고 있지만 일말의 불안감이 있었다.

세상 그 어떤 남자도 저런 여성이 들이댄다면 유혹을 참아낼 수 없으리라.

두 사람이 서로의 몸을 만지는 상상을 하니 정말 싫었다.

지혁은 오로지 자신만의 남자여야만 한다.

물론 이런 제안을 한 실비아의 마음도 이해가 됐다.

실비아는 분명 대의를 위해서 이런 말을 한 거다.

마물에게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해, 아델 자신의 옆에서 함께 싸우기 위해.

머리로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아델이었으나, 가슴은 머리의 입장과 완전히 반대였다.

그리고 지금, 아델은 머리보단 가슴의 의견을 따랐다.

벌떡 일어난 그녀가 아까보다 더욱 큰 목소리로 외쳤다.

“방금 그건 못 들은 걸로 하겠어요!! 잘 먹었습니다!”

고개까지 꾸벅 숙이며 식후인사를 마친 아델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쾅!

문이 강하게 닫히는 소리를 들은 실비아가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일단 승낙만 받아놓은 뒤, 이번 사건을 흐지부지 넘기려고 했는데... 완전한 오판.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게 됐다.

게다가 지혁과 이미 성적인 행위를 했다는 걸 아델이 알아차린다면 그 여파는...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아델이 지혁을 만나면 분명히 이 대화내용을 말할 텐데, 눈치가 빠른 지혁이라면 자신의 의도를 눈치채고 거짓말을 해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그저 가설일 뿐이었다. 그것도 가능성이 매우 낮은.

그러니 이것에만 기대는 건 미련한 짓이었다.

‘이제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무조건 설득해야지.

만약 아델이 모든 사실을 알아낸다면?

자신을 포함한 세 사람의 관계는 파국에 직면하게 될 터였다.

지금 이미 거짓말이 꼬리를 물고 길게 늘어진 상태인데, 여기서 다른 줄기가 더 생겨나기 전에 꼭 승낙을 받아내서 상황을 무마하고야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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